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91)
너희들은 변호됐다-491화(491/641)
#491화
나는 허민우가 보내 주었던 스케줄표를 확인했다.
자고 있을 시간 같긴 한데,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가급적 빠르게 일을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아, 네. 변호사님.
자다 깬 목소리일 줄 알았는데, 허민우의 목소리는 그런 기색 없이 아주 맑았다.
“주무셨던 거 아니었습니까? 스케줄표를 보니 밤 근무셨던 것 같은데.”
─자고 있었는데 메일함 알림이 와서요.
“메일 알림 설정을 해 두셨습니까?”
─아무래도 그 메일로 오는 건 중요한 내용들일 것 같아서 그때그때 확인하려고 소리 설정을 따로 해 뒀습니다. 아직 음성 파일은 못 들었고, 스크립트만 따로 읽었는데 안 그래도 연락을 드려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님 꽤 위험해지신 건 아닐까 싶어서요.
“그건 제가 알아서 조심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아, 메일을 마침 보셨다니 부탁 좀 드리려고 합니다. 최재훈 지난 8일 저녁 이후부터 9일 오전까지의 행적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하면서도 통화 목록은 물론이고, GPS와 블랙박스, 심지어는 공공 CCTV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이 밀려왔다.
여태까지 우리는 우리에게 조회할 권한이 없는 정보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생해 왔던가.
이제는 통화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니.
아주 잠깐이지만 허민우를 진작 영입할 걸 그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음, 일단 GPS 확인해 볼게요. 그때 뭐 의심스러운 게 있으신 겁니까?
“그때 저랑 통화하시고 나서 9일 일기 안 보셨습니까?”
─사실 변호사님이 왜 그 날짜를 특정하려고 하신 건지 궁금해서 바로 봤습니다. 임현일이 그날 최재훈에게 장기 적출 수술을 사주한 것 같던데요. 그런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고, 변호사님도 보셨겠다 싶어서 조용히 있었습니다.
“네. 그렇지만 우신 병원에서 그런 수술을 하라고 시키진 않았을 것 같아서, 임현일이 최재훈을 불러낸 곳이 어딘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혹시 거기도 시설이 갖춰져 있다면, 국내에서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음, 그런데 국내에서 장기 적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일본에서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국내에 그런 시설이 있다면 고윤성이나 김찬영 씨도 오카시마 병원까지 갈 필요가 없었을 텐데요. 김미자 씨가 보내 주신 음성 파일만 봐도, 일본에서 수술할 것 같은 느낌이던데요.
“뭐, 그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이유로 저도 경위님과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잖습니까. 최근에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하나 지었을지도 모르고, 그러면 우리도 증거를 잡기 용이할 것 같아서요.”
─일단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으로 데려갔다면 각별히 주의했을 것 같긴 한데.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GPS가 잡히지 않으면 공공 CCTV 확인을 했으면 합니다.”
공공 CCTV로는 최재훈의 차량이 어디에서 어디까지 이동했는지 확인할 수도 있고, 최재훈의 차량이 아니더라도 다른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는지 알아낼 수 있다.
그 시설 바로 코앞까지는 볼 수 없어도, 대충 어디 주변인지라도 알 수 있으면 이득 아닌가.
─변호사님.
“네.”
─솔직히 말씀하세요.
“뭘 솔직하게 말합니까?”
─솔직히 변호사님은 제가 합류하는 거 반대하는 입장 아니셨습니까?
아직도 그걸로 마음이 상했나.
생각보다 뒤끝이 긴 것 같다.
“그랬습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
“경위님의 안전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럼 변호사님과 다른 분들은요.
“저희야 이러다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경위님은 또 다른 문제일 수도 있고요.”
─그렇다곤 해도 제가 계속 은근하게 어필했는데도 외면하셨잖아요.
“그건…….”
이전 삶과 지금은 이제 다른 전개 양상을 띠고 있다.
이전 삶에서 사망했거나 위험에 처한 사람은 지금 안전해졌고, 오히려 이전 삶에서 안전했던 사람이 사망하는 일도 생겼다.
이전 삶대로라면 더 살아야 했던 강관웅을 지키지 못한 것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고, 그로 인해 강민재가 큰 상처를 받은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인다.
그렇기에 적어도 이전 삶에서 사망했던 사람은 더더욱 이번 삶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허민우에게도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전 삶 이야기를 할 수 없기도 하거니와, 내가 그들의 위험을 걱정하며 일에서 배제하려 하는 것이 불쾌하게 생각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최대한 삼가기로 했다.
─뭐, 상관없습니다. 이젠 받아주신 거니까요.
“제가 받아주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요. 절 받아주신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경위님이 제가 손에 넣고 싶어 하는 것으로 협박하셨잖습니까.”
─우리 솔직해지자구요. 공공 CCTV, GPS, 신원 조회. 검사셨을 때는 이런 거 편하게 하다가 이제 못 하니까 답답하셨죠?
“…….”
─근데 이제 하실 수 있으니까 좋으시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왜인지 그렇다고 하고 싶지 않다.
“그럼 확인해 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좋으시면서.
“가급적 빠르게 받아 보았으면 합니다.”
─제가 필요하잖아요, 결국.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왜 해야 하는 겁니까?”
─제가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어디 가서 인정 못 받는 스타일이 아닌데 변호사님한테만 인정 못 받는 기분이라서요. 인정 좀 받아야겠습니다.
“하…….”
나한테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은 강민재로도 충분한데.
아니, 충분한 수준을 넘어서 버겁다.
─얼른 인정하세요.
“이만 끊겠습니다.”
나는 허민우가 헛소리를 하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이전 삶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끼어들어 이전 삶과 이번 삶이 달라지는 경험을 수도 없이 했지만, 허민우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 * *
“……요즘 차 변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였는데, 많은 걸 하고 있었구만.”
박영기를 만난 곳은 그의 자택이었다.
어차피 우신은 내가 박영기와 친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데다, 박영기의 장남이 우신에 의해 누명을 썼을 때 사건을 맡기까지 했기 때문에 굳이 은밀하게 만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를 쓰고 박영기와 접촉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수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잖은가.
강관웅이 사망한 이후로는 처음 보는 것이기도 해서, 적절히 인사차 찾아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를 위해 커다란 과일바구니까지 사 왔고.
“차 변이 보내 준 자료들을 보면서 참, 검찰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많이 부끄러웠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수사기관은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이걸 변호사인 차 변이 조사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이게.”
박영기는 안경을 벗어 협탁 위에 올려놓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차 변이 수사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말은 아니었어. 애초에 차 변이 나설 일 없게 우리가 해야 했던 일이라는 뜻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그래, 돌아가신 선생님께서 예전에 공녀 사건에 대해서 흘리듯 말씀해 주셨던 건 기억해. 그런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고, 게다가 장기 매매까지 하고 있을 줄은, 정말로……. 천사의 집에 사비를 기부한다면서 이미지 관리를 하던 고상준이, 그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이용했을 줄이야.”
“게다가 고상준이 형성한 카르텔은 비단 일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아직 정확한 명단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한가락 한다는 사람들도 드나든다는 제보도 있었습니다. 그 명단은 하루라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차 변하고 강 변한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기분이야. 선배들이 뿌리 뽑지 못해서 후배들이 이렇게 고생하는 거야. 떡검이라느니, 섹검이라느니. 그런 말이 왜 생겼겠냐고. 지금의 검찰은 자정 능력을 잃었어. 우신 장학생들이 검찰을 쥐고 흔드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알아채지 못하는 거겠지. 아니, 어쩌면 알아챘는데도 그걸 수사하기는커녕 그 카르텔의 일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거 아니겠나.”
평생을 검찰이라는 조직에 몸담아 왔던 박영기의 눈빛에서는 지독한 씁쓸함이 읽혔다.
그가 이전 삶에서 권력과는 거리가 먼 학자의 삶을 살았던 까닭 역시도, 어쩌면 현실적으로 바꿀 수 없는 일에 분노하는 것에 지쳐 도피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번 삶에서 내가 강관웅과 접촉하게 되면서 그는 강관웅으로부터 나와 강민재를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는 흔쾌히 그 역할을 받아들였다.
그에게 이전 삶이라는 우주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다른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우습지 않아? 여태 정도에서 맡았던 사건들을 생각해 봐. 변호사들을 싸잡아서 돈을 좇는 집단이라고 하려는 건 아니지만, 역할이 바뀐 느낌이지 않나? 검찰은 기를 쓰고 우신의 허물을 덮어 주기에 급급하고, 변호사인 자네들은 그놈들이 제대로 처벌받게 만들려고 하고. 아무리 역할이 뒤바뀌었다고 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박영기는 연거푸 한숨만 쉬었다.
어쩌면 그는 스스로 억눌러 왔던 갈망을 이번 삶에서 해소할 기회를 잡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두꺼운 얼굴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는 법조계에서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배 중 하나고, 후배들이 바른 법조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것 같아서.
“제가 검찰을 나와 변호사가 된 까닭도 차장님께서 계려하신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검찰 내부에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심지 굳은 검사들은 있지만, 그들이 품은 뜻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이 없습니다.”
“자네는 특검을 생각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나는 이전 삶에서 우신 특검안이 발의되도록 만들 순 있었어도, 특별검사가 되진 못했다.
검사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파견 검사로서 특검팀에 소속되어 수사를 맡았지만, 특별검사였던 조문영이 이른바 후불제 떡검이었기 때문에 특검을 진행하면서 삐걱거렸다.
종내에 나는 특검팀에서 제외되기까지 했으니, 말 다 하지 않았는가.
“그럼 준비할 게 많겠구만.”
통상적으로 특별검사제도라는 것은,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위 공직자의 비위 사실을 공정하게 수사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렇기에 특검이 시작되려면 내가 박영기에게 말했듯이, 우신에게 성 상납 혹은 불법적으로 장기 이식을 의뢰했던 국내 고위 공직자들이 누구인지 확보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신에게 성 상납을 받은 국내 고위 공직자쯤은 한 명만 잡으면 우르르 딸려 나올 것이 뻔하지 않은가.
이젠 도청 장치까지 부착했으니, 포착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검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에서 특검 처리 법안이 통과되어야 하고, 이후에는 특별검사를 추천할 권리를 가진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후보를 올리고 대통령이 그중 한 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해야 한다.
국회는 결국 여론이 뜨겁게 달궈지면 움직일 수밖에 없고, 지난 총선에서 자유정의당이 민우당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어 과반의 의석을 차지했으므로 특검안이 발의되는 것까지는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애초에 여론이 뜨겁게 달궈진 상황이라면 야당에서도 반대만 하고 있을 순 없을 것이다.
빠르게 꼬리 자르기라도 하려 들겠지.
예전에 이정찬의 비위 사실이 알려졌을 때 민우당이 그랬듯이.
물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여론전을 펼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다 떠나서 특검안이 발의되고 국회에서 통과된 다음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이번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렸던 그림은, 내가 특별검사로 임명되는 것이었다.
변협의 추천을 받으려면 변호사로서의 이미지와 업적이 중요했고, 그 조건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흙탕물이 몇 방울 정도 튀긴 했지만, 부족함은 없다.
하지만 변협의 푸시를 제대로 받으려면, 협회장에게 입김을 넣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박영기였다.
“준비 기간은 얼마나 필요할 것 같나. 1년……. 길게 잡아야 1년 반이야. 그 안에 되겠어?”
“변협 회장님 임기가 1년 반 남았습니까?”
“그래. 물론 대통령님이 법무부 장관과 사이가 좋으니 법무부 장관을 통해서 어느 정도 변협에 푸시를 넣을 순 있겠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이 차기 회장이 될지 모르는데 이왕이면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임기 중일 때 같이 푸시하는 편이 낫잖아.”
박영기의 말대로, 지금이 최선의 타이밍이다.
변협 회장이 나를 추천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이세화가 임기 중이므로 후보에 오르기만 한다면 임명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세화 입장에선 우신을 뒤집는 데에 거절할 이유가 없다.
물론 그렇게 되면 자유정의당 의원 중 우신의 돈을 받은 사람들이 일부 쓸려 나가긴 하겠지만, 민우당만 하겠는가.
민우당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정찬은 아예 고상준과 형님 동생 하던 사이였는데.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우신 특검은 아무리 못해도 그녀가 퇴임한 이후 손꼽히는 업적으로 회자될 것이다.
“대통령님은 문제없으시겠습니까.”
“내가 직접 뵙든, 어떤 방법으로든 의향 확인해 볼 테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시간이 너무 촉박하진 않은지, 그것부터 얘기해 봐.”
“입법부터 특별검사 추천까지는 길어야 2주 아니겠습니까. 1년이면 충분합니다. 이제 바람이 부니 돛을 펼쳐야죠. 완벽한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많은 것들이 갖춰졌습니다.”
“좋아.”
“다만 제가 특별검사로 추천받기에는 법조 경력이 짧다는 점이 좀 걸립니다.”
“그런 문제가 발목을 잡긴 하겠지. 아래 기수 특별검사 밑에서 수사하기 싫다는 말도 나올 테고. 하지만 기수 따지느라 중요한 걸 놓치는 게 더 멍청한 짓인 걸 알아야지.”
박영기는 나무로 된 팔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나 역시 이번 삶을 설계했던 순간에는 이렇게 빨리 타이밍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특별검사로 임명되는 데에 이런 문제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전 삶에서 우신 특검이 실시되었던 2018년에, 나는 이미 충분한 법조 경력을 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쓴소리 많이 들을 거고, 선배랍시고 배 내밀고 다니는 놈들한테 역적 취급 받을 수도 있어. 하지만 차 변이 그 모든 걸 감내할 수 있다면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돕겠네.”
처음 검찰청에 출근하던 날부터 나에 대한 험담이 끊이지 않았다.
검찰을 나와 김연준의 사건을 맡았을 때는 변호사들한테까지 상도덕 없이 첫 사건부터 친정을 저격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뿐인가?
내가 보이는 행보 하나하나 그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그들에게 역적 취급당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집단들을 선후배나 동료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격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허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