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98)
너희들은 변호됐다-498화(498/641)
#498화
모처럼 조용한 주말 오전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더니, 예상치도 못한 일이 생겼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이상한 양가감정에 시달리곤 한다.
무슨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우신의 꼬리를 잡을 기회가 생겼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신의 악행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늘어났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내가 우신의 꼬리를 잡으려는 까닭은 우신의 악행에 피해 입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니 이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내 머릿속은 손정민과 성공적으로 접촉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하지만, 내 감정이 완전한 중립이 아닐 경우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도록 툭 쳐 주긴 해야 할 것 아닌가.
“강 변한테 차 키 안 받아 놨으면 회사까지 택시 타고 가서 회사 차 썼어야 했겠네요.”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시동을 걸던 태식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강민재가 내 차를 갖고 나갔다는 말에 ‘나 역시 나갈 일이 생기면 어떡하냐’고 물었을 땐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는데, 정말로 나갈 일이 생긴 건 놀라운 일이다.
“앞으론 내 차 빌려주지 마.”
“강 변이 그래서 키 주고 갔잖아요. 근데 이 차 기어가 좀 특이하게 생겼네요. 이 차 한번 몰아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태식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동안, 나는 최종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역시 내 연락을 받기가 무섭게 조봉준을 잠에서 깨워 차에 태운 모양으로, 이제 곧 출발할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강민재에게도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확인을 하느라 강민재의 순서가 뒤로 밀려 버렸다.
나는 강민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네, 변호사님! 저 지금 칼국수 포장 기다리고 있어요.
“칼국수는 못 먹을 것 같은데.”
─헉, 왜요. 칼국수 안 좋아하세요?
“지금 문역으로 가는 중이야.”
─문역이요? 문역이 어디더라. 그, 강원도였나요?
“맞아.”
─거긴 왜 가시는데요?
나는 최종현에게 했던 설명을 녹음기처럼 그대로 강민재에게도 반복했다.
─미친, 그럼 이럴 때가 아닌데요?
“그럴 때가 아니지.”
─저도 지금 출발할게요. 문역까지 몇 분 찍히세요?
“2시간 18분.”
─언제 출발하셨어요?
“한 15분 전에.”
─아, 그럼 저랑 엇비슷하겠네요. 저 2시간 찍혀요.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문역 보건소 맞죠?
강민재는 뛰기 시작한 듯, 휴대폰 너머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소리에는 멀리서 강민재를 애타게 부르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크게 소리쳤다.
─사장님! 죄송해요! 급한 일이 생겨서요! 안 주셔도 돼요!
“계산은 한 거야?”
어느새 헉헉거리던 강민재는, 바로 차에 올라탄 모양이었다.
엔진음이 들려왔다.
─계산 미리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저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돈도 안 내고 튀는 그런 놈 아니거든요?
“아무튼 조심해서 와.”
─네. 거기서 봬요.
나는 최종현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캡처해서 단체 메시지 방에 업로드했다.
내가 백번 말하는 것보다는 이걸 보여 주는 게 한 번에 상황을 파악하기 좋을 것 같아서였다.
메시지를 전송하기가 무섭게 단체 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속속들이 답장이 도착했다.
오양훈 : 메시지 이제 봤습니다. 큰일이네요. 그럼 지금 문역으로 향하고 계신 건 최 기자님 쪽 두 분하고 차 변호사님인가요?
조봉준 : 경찰한테 연락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어쨌든 학생 보호자가 천사의집이니까..
조봉준 : 아 물론 한국 경찰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어 허경위 오해 ㄴㄴ~ 그냥 행정적으로 그렇다는 얘기~ 나 경찰을 견찰이라거나 민중의 곰팡이라고 생각하고 그러지 않아~
허민우 : 저도 그렇게까지 생각하시는 줄은 몰랐는데요.. 저도 언제까지나 경찰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말씀드려 본 거고 손정민 학생한테 경찰에게 가라고 하는 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조봉준 : ㅎㅎㅎㅎ..
조봉준 : 차 변이 민재한테 연락한다고 하지 않았나? 어케됨? 민재야 나와봐라 지금 운전중인가?
조봉준 : 민재야
조봉준 : 엉? 대답하삼
강민재 : 운전중 용건은 전화ㄱ
조봉준 : 왜 니가 운전함? 정혁이는?
강민재 : 엄슴]
“강 변 지금 혼자 있다는데. 정혁이랑 같이 나간 거 아니었어?”
당연히 정혁과 같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강 변이 평창동에서 지낼 땐 주말까지 정혁이가 출근했었는데, 강 변이 변호사님 댁으로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이제 저도 있고 상길이도 있으니까 주말에는 안 나오는 걸로 얘기했었는데. 말씀을 안 드렸나요?”
“주말에 스케줄이 없으면 그렇다는 거 아니었어?”
“아, 네. 그쵸. 근데 오늘 같은 경우는 강 변이 다른 데도 아니고 평창동 들어갔다 금방 오겠다고 했고, 오늘 짐 가지러 갈 거라고 일정을 미리 공유한 것도 아니어서 정혁이가 이미 다른 데에 있었거든요…….”
“그럼 정혁이 늦게라도 불러서 데리고 갔어야지.”
“저도 얘기하긴 했는데, 금방 갔다 올 거라 괜찮다고 해서……. 사실 변호사님한테 말씀은 안 드렸는데 한 달 전에 정혁이네 어머님이 입원하셨거든요. 그래서 강 변도 저도 오늘은 경호가 필요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다녀오라고 했죠. 어머님이 입원해 계신데 한 번도 못 찾아뵌 게 신경 쓰인다고 해서……. 게다가 어머님은 정혁이가 궂은일 한다고 걱정도 많이 하시고요…….”
“정혁이가 어머님 뵈러 간 게 문제가 아니잖아. 정혁이가 못 오면 다른 애한테 오라고 했어야지.”
내 말에 태식은 억울해졌는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대답했다.
“아니, 저는 그래서 아침에 대철이라도 부르겠다고 했는데, 강 변이 평창동만 잠깐 갔다 올 건데 뭐 어떠냐고, 자기가 이 집에 없으면 변호사님이 위험하지 자기가 위험하겠냐고 해서…….”
“아무리 그래도. 결과적으로 그래서 지금 강 변이 평창동만 갔어? 지금 문역으로 온다잖아. 정혁이든 대철이든, 아무한테나 연락해서 오라고 해. 강 변하고 중간에서 만나라고.”
“넵.”
태식은 신호가 걸린 틈을 타 빠르게 대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형님!
“대철아. 지금 어디냐?”
─저요? 저 지금 피방이요.
“어디 피방.”
─저희 집 쪽이요. 아, 똥신 샀더니 cs 드럽게 안 먹어지네…….
“너희 집이 어디였지?”
─회사 근처요, 형님. 몇 번을 말해요. 회사 근처에 원룸 구했다고 했잖아요. 아, 씨발! 짹스 갱 왔잖아, 씨발! 윽, 으윽! 아, 2렙 갱 장난하냐. 플 빠졌네. 억지 갱 개오바 싸네, 진짜 좆같게.
“야, 변호사님도 들으시니까 말투 곱상하게 해라. 스피커폰이다. 그리고 게임 중이면 꺼라. 뒤질라고.”
─아, 예. 죄송합니다. 바로 탈주했습니다. 리폿 당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죠.
짜증스럽게 들렸던 대철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단정해졌다.
“강 변호사님한테 붙은 정혁이 있잖아.”
─정혁이 형이요? 지금 어머님 병문안 갔다던데요.
“아니, 아는데. 강 변호사님 옆에 정혁이가 없잖아, 그래서.”
─아, 예. 그렇죠.
“지금 우리 다 문역으로 가는 중인데, 강 변호사님도 오시거든. 근데 강 변호사님한테 붙은 인원이 없어서 불안하다. 네가 강 변호사님하고 연락해서 붙어.”
─지금요?
“지금이지 그럼 언제야. 너 말고 다른 애들은 아직 덜 영근 것 같아서 첫 빠따를 이런 필드로 보내기가 좀 그래.”
─하, 어쩔 수 없죠. 강 변호사님 지금 어디신데요?
“평창동에서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지금쯤 빠르면 태릉 근처겠고 아니면 거기 어디냐, 미아 근처일 것 같은데. 빨리 연락해서 합류해.”
─넵. 태릉이면 좀 빡센데.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대철아. 나 차주한인데.”
대철이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느낌이 들어, 내가 빠르게 끼어들었다.
─아, 네! 변호사님! 안녕하십니까!
“강 변한테 붙으면서 애들한테 연락 돌려서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애들 문역 보건소 찍고 오라고 해.”
─몇 명 정도요?
“그냥 붙을 수 있는 애들 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내려서 우리한테 오지 말고, 분위기 좀 지켜보다가 붙어야 할 것 같을 때 붙으라고 해.”
─어, 음. 그럼 연장도 챙겨야 합니까?
곰곰이 생각하던 대철이 물었다.
여태 실무에서 자주 본 적은 없었는데, 머리가 꽤 빠르게 돌아가는 놈인 것 같다.
“챙겨야 할 것 같은데. 만일에 대비하려는 거니까 준비물은 많을수록 좋아.”
─넵, 알겠습니다. 빨리 출발할 수 있는 놈들 먼저 보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손정민을 데리러 가는 것에 불과하지만, 만일의 상황에는 대비해야 한다.
손정민이 실제로 천사의 집에서 사라졌고, 그로 인해 그곳이 뒤집어졌다는 걸 확인까지 했으니 심각하게 걱정하진 않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지금 당장 아무거나 떠올려 보라고 해도, 그곳에서 문제가 생길 만한 시나리오는 적지 않다.
손정민이 호정에 도착한 건 어젯밤의 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 오전이 되어 나와 통화하기 전까지 손정민은 휴대폰을 끄지 않았다.
그러니 천사의 집 측에서 손정민을 잡으러 호정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물론 나와 연락할 때까지는 그들에게 들키지 않았던 것 같지만, 재수 없게 문역으로 넘어가려다 터미널 안에서 마주치기라도 했으면 어쩔 것인가.
만일 그곳에서 잡혔다면 이미 게임은 끝났고, 손정민은 문역은커녕 호정에서 사라져 버렸겠지만, 그곳에서 동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나로서는 휴대폰을 끄고 가장 빠른 버스를 타라고 하는 것 외에는 해 줄 수 있는 조언이 없었다.
서울에 모든 기반이 있는 내가 그곳에서 사람을 붙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할 수도 없었던 것이, 앞서 조봉준이 우려했던 대로 손정민의 보호자는 천사의 집이므로 그쪽에 연락을 취할 가능성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니 손정민을 문역에서 만나지 못하면 바로 호정으로 이동해서 사람을 풀어야 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천사의 집 사람들과 맞닥뜨려 물리력을 행사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 정민이라는 애가 문역에 언제쯤 도착할 것 같다고 하셨죠?”
“앞으로 한 30분 정도면 보건소 앞에 도착하고 남을 시간이긴 해. 다른 방해 요소가 없다면.”
문역 보건소에 도착하면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나에게 전화를 걸라고 말해 두었으니, 앞으로 30분가량만 있으면 연락이 올 것이다.
나는 대포폰을 바라보면서 얼른 30분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천사의 집 사람들이 혹시라도 호정 터미널을 기웃거리다가 손정민을 발견하고 문역까지 쫓아왔다면, 터미널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붙잡힐지도 모르는데.
30분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의 안전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중간중간 다른 사람 휴대폰이라도 빌려서 연락하라고 할 것을 그랬다.
나도 갑작스럽게 대처하는 바람에 완벽한 플랜을 짜 주지 못했다.
“아, 태식아.”
“네.”
“아직 여기까지 쫓아오는 차는 못 본 것 같은데. 맞지?”
“네. 저도 눈에 띄는 차는 못 봤어요. 근데 혹시 모르죠, 티 안 나게 쫓아올지. 좀 훼이크 치면서 움직일까요?”
“훼이크를 치는 건 좋은데, 그러는 바람에 늦어질까 봐 좀 걱정돼서.”
하지만 내가 우신을 피해 도망쳐 나온 손정민을 구하러 가겠답시고 섣불리 움직였다가 오히려 그들에게 정보를 주는 일이 생기면 그게 더 곤란하다.
“일단 그 뭐냐, 안전벨트 똑바로 맸는지 확인 좀 해 보세요. 그리고 위에 손잡이도 잡으시고요.”
대체 얼마나 달리려고 손잡이까지 잡으라고 하는 거지.
왠지 세게 잡을수록 생존 확률이 올라갈 것만 같아서, 나는 손잡이를 있는 힘껏 붙잡았다.
“갑니다아아!”
부우우웅!
나는 울부짖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