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00)
너희들은 변호됐다-500화(500/641)
#500화
모든 일은 삽시간에 일어났다.
태식이 핸들을 있는 대로 꺾어 급하게 차체를 틀었고, 나는 그 속도에 휩쓸려 몸이 한쪽으로 쏠린 채로 손잡이를 세게 붙잡았다.
커브를 도는 차 안에서 찰나 확인한 바깥 상황은 참담했다.
정말로 우리를 노렸던 게 맞았는지 덤프트럭이 차선을 무시한 채 이쪽으로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계속해서 트럭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몸이 격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시야를 온전히 확보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빠아아앙!
쿠웅!
거대한 차에서, 그러니까 덤프트럭 정도는 되는 차에서 날 법한 클랙슨 소리와 동시에 육중한 철 덩어리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타이어가 지면에 마찰하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왔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 소리라면 지금쯤 이 차는 전복되었거나, 아무리 못해도 인도로 밀려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런 충격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태식이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차를 세웠고, 나 역시 마찬가지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그 소리는 차와 차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어느 방향을 보아야 덤프트럭이 있는 쪽인지 가늠할 수 없어서, 나는 다급히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
어리둥절했던 것도 잠시, 나는 사거리 한가운데에 넘어진 덤프트럭 한 대와 SUV 한 대가 엇갈린 채 멈춰 선 모습을 발견했다.
멈춘 모습과 차가 찌그러진 부분만 봐서는 SUV가 덤프트럭을 받았고, 덤프트럭은 갑작스러운 돌진에 놀라 핸들을 꺾다가 옆으로 쓰러진 것 같았다.
SUV는 덤프트럭을 향해 돌진하다 덤프트럭을 받고 진로가 뒤틀린 채 조금 달려가다 멈춘 것 같았고.
멀리서 보아도 차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 파편들이 도로에 가득했다.
덤프트럭은 넘어져 버려서 잘 모르겠지만, SUV는 꽤 큰 손상을 입은 것 같았다.
전복되진 않아 다행이지만, 저 SUV 운전자는 누구일까.
혹시 무고한 시민이 덤프트럭이 나에게 향하는 경로를 지나가다 사고라도 당한 건가?
……그런데 저 차, 내 차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씨발, 저거 변호사님 차 아니에요?! 차 넘버가 변호사님 넘버 같은데?!”
태식이 버럭 소리 지르며 사거리 한가운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내 차?
내 차가 왜 저기 있지.
난 오늘 강민재 차를 타고 왔는데.
아, 강민재가 내 차를 가지고 가서 그런 거였지.
그러면…….
그러면 저 차 안에 강민재가 있나?
“씨발, 변호사님! 빨리 오라고요!”
어느덧 사고 현장 코앞까지 다가간 태식이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멍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머릿속에 난무하던 생각들이 순식간에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며 한 문장으로 정리됐다.
저 차 안에 강민재가 있다.
나는 그대로 사고 현장을 향해 달렸다.
“씨발, 씨발, 뭔데. 진짜 뭔데!”
태식은 사고 현장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앞이 찌그러진 SUV 운전석 문을 마구 잡아당겼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선 차 내부에 누가 있는 건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태식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태식은 한참 동안 운전석 문과 씨름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인도로 뛰어 들어가 커다란 돌덩이를 들고 와 뒷좌석 창문을 깨부수고 잠긴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강 변, 강 변, 정신 차려 봐요! 강 변!”
그리고 그때쯤, 나는 차 앞에 도착했다.
조수석 쪽은 찌그러져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삼키며 태식이 열어 둔 뒷좌석 문 앞에 섰다.
“아, 강 변! 장난치지 말라고요, 진짜로. 아! 씨발, 뭔데! 일어나라고요!”
태식이 뒷좌석에서 손을 뻗어 에어백에 얼굴을 기댄 채 늘어져 있는 강민재를 마구 흔들었다.
“…….”
정신없이 흔들어대는 강민재의 머리에서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태식을 툭툭 쳤다.
이성을 잃고 강민재를 채근하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악영향이 있을 것 같아서 태식을 떼어 놓을 셈이었다.
“내려서 119하고 경찰에 신고해. 그리고 덤프트럭 운전자 확인해 봐. 여유 되면 다른 사람들한테 전화해서 문역 보건소로 가 보라고 해. 손정민 있으면 접촉하고, 없으면 근처 수색해 보라고. 강 변은 내가 확인할게.”
현장으로 달려오면서 살피기로, 덤프트럭은 운전석 방향으로 넘어져 있었다.
그 때문인지 덤프트럭 운전자가 도주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서 씨름하는 사이 도망갔더라도 빨리 가면 그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태식은 뒷좌석 반대편 문으로 내렸고, 나는 뒷좌석에 올라타서 강민재의 호흡을 확인했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상처 부위를 확인했다.
지금 피가 흐르는 곳 외에 다친 데는 없는지 살펴봐야 했다.
강민재의 몸을 천천히 짚어보는데, 손이 차갑게 식어 덜덜 떨렸다.
나는 한 번 세게 주먹 쥐었다가 폈다.
눈에 띄는 곳에 출혈은 없었고, 자세가 뒤틀린 부분도 없었다.
“으, 변호사님…….”
정신없이 다친 데는 없는지 살피고 있는데, 강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과 동시에 나는 천천히 강민재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으……. 괜찮아요…….”
“……안 괜찮잖아. 강 변 지금 다쳤어. 무리해서 말하지 마.”
“아니……. 윽, 변호사님 괜찮냐고요…….”
힘없이 중얼거리는 말에 기가 막혔다.
지금 본인이 남의 걱정할 때인가.
누가 누구한테…….
“119 불렀어. 곧 올 거야. 많이 다친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다치긴 한 것 같아. 혹시 장기가 다쳤을지도 몰라. 괜히 힘줬다가 손상 올지도 모르니까 몸에 너무 힘주지 말고 있어.”
“하,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야.”
“변호사님은, 윽, 괜찮아 보여서요…….”
미친놈.
나는 강민재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콘솔박스를 뒤졌다.
유사시에 사용하려고 비상용 차량 망치를 넣어 뒀다.
망치 끝에 안전벨트를 찢을 수 있는 커터가 달려 있다.
안전벨트 부분까지 망가진 것 같진 않지만, 혹시 안전벨트를 풀다가 강민재가 다칠 수도 있으니 찢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느 부분을 찢어야 강민재가 다치지 않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조용히 있던 강민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
“말하지 말라고.”
“저, 으윽, 피곤해서……. 조금만 잘게요……. 그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대로 강민재는 에어백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피곤해서 잔다는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본인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축소하려고 이상한 헛소리나 하는 게 분명했다.
“안 돼, 자지 마. 강 변. 강 변!”
나도 모르게 그를 흔들려다가, 흔들면 혹시 두뇌에 손상이 있을까 봐 손을 내렸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차갑게 식은 손으로 다시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다행히 여전히 숨은 쉬고 있는데…….
“변호사님!”
그때 가까이서 태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됐어. 덤프트럭 운전자는.”
“구급차는 불러서 오고 있고요. 덤프트럭 운전자 새끼는 눈에 띄게 다친 데도 안 보이고 정신도 멀쩡한 것 같은데 지금 눈 감고 쇼하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다른 분들한텐 연락 돌려서 지금 거의 다 오셨다고 하고요. 저희 애들 중 한 놈은 벌써 도착해서 덤프트럭 지키고 있고, 다른 놈들은 보건소로 보냈어요.”
그의 말에 덤프트럭 쪽을 바라보자, 근처에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형진이 덤프트럭 앞을 지키고 서서 사고 현장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강 변은 어때요? 괜찮아요?”
“잠깐 정신 차렸었는데, 다시 정신을 잃은 것 같아. 지금 외상은 머리에서 피 나는 거 외엔 아직 보이는 건 없는데, 다른 데는 어떨지 모르지. 일단 병원에 가 봐야 알겠지만, 아까 잠깐 말도 했고 대화도 했으니까 크게 문제 있는 건 아닐 것 같은데…….”
“변호사님. 진정하세요.”
아까부터 누가 누구 보고 진정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여기 앉아서 강민재를 마구 흔들며 일어나라고 소리 지른 건 태식이 아니던가.
“지금 목소리 엄청 떨려요.”
“너나 진정해. 119는 언제 온다는데.”
“참나, 사이렌 소리 안 들려요?”
태식의 말에 잠시 귀를 기울이니 멀찍이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큰 소리는 아니긴 했지만, 저 정도 소리를 못 듣는 게 말이나 되나.
아닌 척하고 싶었지만, 진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건 태식이 말해 줘서 알았으나 손에 식은땀이 맺히고 덜덜 떨리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는가.
강민재가 어쩌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데.
의학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큰 손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전 삶에선 아무 일도 없었을 강민재에게 이번 삶에 갑자기 나라는 변수가, 폭탄이 등장해서 강민재의 삶을 망쳐 버린 것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이미 강관웅을 떠나보냈다.
강민재까지 잘못되면 나는 이 죄책감을 던져 버릴 자신이 없었다.
이번 삶의 시작부터 함께했던 놈인데, 나만 아니었어도…….
“대체 왜 강 변이 여기서 사고를 당했지? 분명히 덤프트럭은 우리한테 오고 있었잖아.”
“아까 얼핏 보기론 저쪽에서 강 변 차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거든요. 거의 100km 이상 밟았을 거예요. 저도 핸들 꺾느라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처음에 이 차가 내 차라는 자각이 없었을 땐, 사거리에서 누군가 주행하다가 차선을 무시하고 이쪽으로 직진하는 덤프트럭을 받아 버린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곳에서 100km 이상 밟았다면, 과속 수준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그럼 설마 강민재가 덤프트럭이 내 차로 돌진하는 걸 보고 본인이 트럭을 받아 버린 건가.
내 차를 못 치게 하려고?
“미친놈 아니에요? 씨발, 자기 죽을 거 생각 못 하고 어떻게 덤프트럭을 받을 생각을 해요?”
그리고 태식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의식을 잃은 채 늘어진 강민재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러다 큰일이라도 났으면 어쩌려고……. 또라인 건 알았는데 진짜 미친놈이네, 강 변, 진짜로…….”
태식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고자 분이세요?!”
어느덧 119가 도착한 것인지, 구급대원이 열린 뒷좌석 문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나는 그대로 차에서 내리며 생각나는 대로 떠들었다.
“네. 그리고 보호자입니다. 덤프트럭이랑 사고가 났는데 지금 이쪽 운전자는 출혈이 있습니다. 어디서 출혈이 발생한 건지는 확인하지 못했고요. 그 외에 다른 데는 눈에 띄는 외상은 없는데, 자세하게 검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구급대원은 내가 비켜준 곳으로 들어가 잠긴 운전석 문을 열었고, 구급차에서 들것을 가지고 와 운전석 문 앞에 놓았다.
구급대원이 주머니 안에서 커터를 찾는 것 같아서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커터를 넘겨주자 그는 곧바로 안전벨트를 찢고 강민재를 조심스럽게 들것으로 옮겼다.
나는 그들이 움직이는 사이 블랙박스 안에 들어 있던 SD카드를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어차피 경찰이 요청할 테지만, 내가 먼저 영상을 확보해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보호자분 타세요!”
내가 차에서 내리자, 구급대원이 구급차 안에서 손짓했다.
“나 구급차 타고 갈 테니까, 너랑 형진이 둘이 내 차 타고 따라와. 문역 보건소에는 다른 애들 나가 있으니까 손정민 확인하는 건 그쪽에 맡기고, 병원으로 넘어와서 너는 나한테 붙고 형진이는 저 덤프트럭 운전자 도망 못 가게 지키고 있으라고 해.”
“넵.”
태식과 형진은 덤프트럭 운전자 역시 구급차에 올라타는 것을 확인하고, 함께 저쪽에 세워 둔 내 차로 달려갔다.
“출발하겠습니다.”
내가 올라타자마자 구급차 문은 닫혔고, 구급대원은 들것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강민재의 외상 부위를 찾아 지혈하기 시작했다.
강민재의 상태가 어떤지 응급실에 브리핑하는 구급대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강민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찮겠지.
괜찮으니까 나한테 괜찮냐는 한가한 질문을 던진 거겠지.
본인이 괜찮지 않은데 남 걱정해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괜찮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