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02)
너희들은 변호됐다-502화(502/641)
헬기는 예상 시간보다 2분 늦은 26분 뒤 서울 명운대학교 병원 헬기 착륙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미리 연락을 받은 의료진들이 대기 중이었는데, 그중에는 백찬근 과장과 동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민재는 신속히 환자용 이동식 침대로 옮겨져, 의료진들에 의해 병원 내부로 이송되었다.
그들과 함께 달리며 동진은 달리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어깨를 툭 쳤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건 알지만, 그런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강민재는 바로 CT 검사실로 들어갔다.
그가 CT를 찍는 동안,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동진이 나에게 다가왔다.
“민재 보호자분 따로 계신 걸로 아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으셔서 너한테 설명할게. 만일 수술 들어가야 하는데 그때까지 보호자분이 도착하지 않으시면 네가 서명해야 해.”
“수술 안 하게 될 수도 있는 거야?”
“아직 모르겠어. 일단 지금 민재 뇌 CT부터 찍어 볼 거야. 의료진한테 뇌출혈 소견 있다고 전달받았는데,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개두술 하지 않고 약물 치료로 가능할 수도 있어. 의식을 잃은 점으로 봐선 사실상 약물 치료로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짐작되긴 하지만…… 심하지 않기를 바라야지. 아, 다른 부위는 EM 콜해서 1차적으로 살펴보고 나오는 소견에 따라 타과 진료도 할 거고. 일단 가장 급한 건 뇌출혈이니까…….”
“뇌출혈이 위험하잖아.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후유증이나 장애가 남을 수도 있고. 그건 어떨 것 같아?”
“CT 결과 나와 봐야 알아. 사고 직후에는 잠깐 의식이 있었다면서. 그때 혹시 말이 어눌하다거나, 의사소통이 힘들거나 하진 않았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사소통은 매우 잘 됐다.
본인보다는 나를 걱정하는 헛소리를 해 댔지만…….
혹시 현실감이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닐까?
그것도 뇌출혈 때문에 순간 사리 분별이 힘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원래 덤프트럭 사고는 나한테 일어나야 할 일이었어. 그런데 강 변이 그걸 막다가 본인이 대신 사고를 당한 거야. 그래서 내가 강 변한테 처음 갔을 때 나한테 괜찮냐고 물었고, 그다음엔 피곤해서 자겠다고 말했어. 처음엔 그게 본인의 의식이 흐려지니까 날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둘러댄 거라고 생각했는데, 뇌출혈 증상 중에 졸음이 있다면서. 혹시 강 변이 뇌출혈 때문에 현실 감각이 지나치게 떨어져서 본인보다 나를 걱정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음, 그건 아닐 것 같긴 한데. 발음이랑 그런 건 어땠어?”
“괜찮았어.”
“그렇구나……. 그런데 지금 상황에선 쉽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가 없어. 책임 회피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알 수가 없어서. 이해하지?”
“이해하지.”
“아무튼 CT 결과 보고 만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과장님이 집도하실 거고 내가 어시로 들어갈 거야. 너도 알겠지만 우리 과장님 수술 엄청 잘하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그리고 나도 어시할 짬 아니다. 그런데도 같이 들어가서 민재 볼 거고, 나도 과장님도 최선을 다할 거야. 알았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백찬근의 실력에 대해서는 동진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전임 과장은 손댈 엄두도 내지 못했을 정도로 고난도였던 설형석의 교모세포종 수술까지도 성공적으로 해냈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도 명운대학교 병원으로 강민재를 데리고 온 것이다.
“CT 결과 나왔대. 잠깐만 기다려.”
동진이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간 사이, 나는 의자에 주저앉아 이마를 짚었다.
수술이 잘될 거라는 생각과는 별개로, 강민재에게 후유증이 남을 것이 가장 걱정되었다.
내가 걱정하는 후유증의 범위는 매우 넓다.
그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소하게는 그의 일상에 불편을 가져다줄 모든 것들까지.
내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니, 이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생긴다면 과연 내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차 변호사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멀리서 강수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민재는 어떻습니까? 지금 CT 검사 중이라고 하던데…….”
“결과가 나와서 지금 확인하러 들어갔습니다.”
“민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물론 아까 말씀하신 것과 큰 차이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통화하는 내내 놀란 기색은 있었지만 큰 충격을 받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직접 얼굴을 보니 강수일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이곳까지 달려오느라 숨이 가득 찬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동시에 하얗게 질려 있기까지 했다.
그는 가슴팍을 움켜쥐고 숨을 고르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습니다. 좋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일단 같이 헬기에 탑승했던 의료진도 지적한 게 없었고요.”
“그랬군요…….”
“의사 말로는 검사 결과에 따라 수술을 진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수술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민재의 수술을 포기하겠다는 뜻입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약물로 치료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 놀랐네요.”
강수일은 겨우 숨을 고른 듯 벽에 등을 기댔다.
그는 비록 피는 이어져 있지 않았지만, 강관웅과 강민재에게는 가족이었다.
강수일 역시 강민재가 그랬던 것처럼 강관웅을 잃은 슬픔에 오랫동안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강민재한테까지 이런 일이 닥쳤으니, 크게 충격을 받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아, 그러고 보니 변호사님은 괜찮으십니까? 민재하고 같은 곳에 계셨다면 변호사님도 사고를 당하신 것 같은데…….”
“저는 사고를 당하진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덤프트럭은 절 노리고 있었고, 강 변이 그걸 발견하고 덤프트럭을 들이받았습니다. 그래서 강 변이 다쳤고, 저는 아무렇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강 변은 오히려 저한테 괜찮냐고…….”
지금 상황에서 이 말을 하면 강수일의 원망이 나에게 쏟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였다.
차라리 누군가가 나를 원망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 사고의 배후는 역시 나를 죽이겠다고 공언했던 오노데라일 것이다.
그들은 나를 최우선 척살 대상으로 삼았다.
강민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사지가 멀쩡하고, 강민재는 의식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죄송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강수일은 내 두 어깨를 잡았다.
“변호사님이 죄송하실 일이 아닙니다. 민재 선택이잖아요.”
“강 변 선택이었다고 해도, 저기에는 제가 누워 있었어야 했는데 강 변이 대신 사고를 당한 겁니다. 어르신도 생전에 저에게 강 변을 부탁하셨는데, 오히려 제가 여러모로 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님, 그런 생각은…….”
“강민재 환자 보호자님!”
그때, 간호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검사 결과가 나온 모양이라, 지체할 새 없이 나와 강수일은 간호사를 따라갔다.
“CT상으로는 외상성 경막하 출혈로 예상됩니다. 외상성 경막하 출혈은 외부 충격으로 인해 뇌를 둘러싸고 있는 세 겹의 막 중에 두개골과 맞닿은 부분……. 경막이라고 하는데, 이쪽 부분입니다.”
백찬근은 CT 검사지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어두운 부분이 뇌혈관이 터지면서 경막과 뇌 사이에 피가 고인 겁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뇌를 압박하는데, 환자분의 경우 출혈량이 적진 않아서 수술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차 변호사님이 잘 대처해 주신 덕분에 수술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수술은 가장 혈종이 큰 부위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혈종을 제거한 뒤, 그 구멍에 도관을 삽입해서 그곳으로 혈액이 흘러나오게 하는 천공술 및 혈종배액술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행히 뇌 일부를 절제하는 식의 큰 수술이 필요할 정도는 아닙니다.”
“혹시 수술 중에 사망할 확률도 있겠습니까?”
백찬근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수일이 물었다.
“사망 확률이 없다고 단언할 순 없습니다.”
“수치로 말씀해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외상성 경막하 출혈은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수술을 한다고 해도 사망률은 50% 이상으로 봐야 합니다. 게다가 수술 전 환자의 의식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럴 경우 사망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진다고 판단합니다. 60% 이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민재가……. 아주 심각하다고 봐야 하는 거군요.”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경막하 출혈은 발생 시기에 따라 급성, 아급성, 만성으로 나뉘는데 환자분의 경우 출혈 직후에 오셨기 때문에 급성으로 분류됩니다. 보통 급성 경막하 출혈로 오셨다는 건 단기간에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다는 뜻이라, 이 셋 중에선 안타깝게도 급성이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외상성 경막하 출혈이어도 의식을 잃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겁니까?”
“가벼운 출혈이면 단순히 두통을 호소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인지 능력이 저하되거나 호흡 곤란, 반신 마비까지 보이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데 환자분 같은 경우는 차 변호사님께 들으니 인지 능력 저하나 언어 장애는 없었다고 하시고, 또 헬기에 탑승했던 의료진과 구급대원분들 말씀으로는 호흡 곤란이나 마비 증상도 없다고 하셨으니 희망을 가져 볼 만합니다.”
“……그럼 만일 사망하지 않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가정했을 때, 후유증은 어느 정도로 생각해야 할까요.”
“크게는 마비가 올 수도 있고, 언어 장애나 기억 장애……. 사소하게는 두통에서 그칠 수도 있고요. 사실 뇌 문제다 보니 발생 가능한 후유증은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종류가 많습니다. 하지만 경과가 아주 좋으면 후유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선생님, 혹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요. 사망이나, 큰 후유증, 그러니까 장애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라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출혈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니 빠르게 수술해야 합니다. 지금 저희 의료진들이 수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보호자분 상담이 끝나면 바로 수술 들어갈 겁니다. 수술 동의서 작성 도와 드리겠습니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는 강수일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 역시 크게 상황이 다르진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강민재의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볼 순 없어도 경미하다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강민재가 피곤하다며 자겠다고 했을 때, 뺨이라도 때려서 어떻게든 그를 깨웠어야 했던 것일까.
내가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건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선생님, 저희 민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동의서에 서명을 한 뒤 일어서는데, 강수일이 백찬근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백찬근은 강수일에게 다가와 그의 굽힌 허리를 세우고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잡으며 눈을 맞췄다.
“사력을 다하겠습니다. 같이 수술실 들어가는 양동진 선생도 차 변호사님이 잘 알겠지만 아주 뛰어난 의사입니다. 저희 모두 최선을 다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나와 강수일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
잠시 숨 돌릴 새도 없이, 복도 끝에서 침대 위에 누운 강민재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강수일은 다급하게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강민재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고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민재야, 잘하고 와. 형이 기다릴게. 응?”
강수일은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강민재는 그대로 우리를 지나쳐 열린 수술실 문 사이로 사라졌다.
수술실 문은 그대로 강민재를 삼킨 채 닫혀 버렸고, 나와 강수일은 마치 버려지듯 수술실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수술실 전광판을 살피자, 강민재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백찬근이든, 동진이든 당연하게도 수술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것이 갑자기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백찬근이 사망할 확률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만일 강민재가 죽는다면, 사고 현장에서 퉁명스럽게 ‘말하지 말라고’라며 그를 다그쳤던 게 그가 나에게 들은 마지막 말일 수도 있는 것인가.
나는 어쩌면 이렇게도 멍청하고 학습 능력조차 없단 말인가.
이전 삶에서 마지막에 아버지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고작 퉁명스럽게 바쁘다고 대답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괴로워했으면서, 왜 강민재한테도…….
“…….”
닫힌 수술실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나의 나아지지 않는 어리석음에 진저리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