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05)
너희들은 변호됐다-505화(505/641)
최종현과 조봉준이 하는 말을 배경 음악 삼아 멍하니 있었더니, 전화가 울렸다.
그 나지막한 진동 소리가 마치 경종을 울린 듯 느껴져 나는 어깨를 움찔 떨며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오 사무장이었다.
─변호사님, 지금 수술 끝났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싶어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한 시간 반이 흘러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최종현과 조봉준도 다급하게 내 뒤를 따랐다.
수술실 앞에 도착하자, 강수일과 백찬근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강수일은 거듭 백찬근을 향해서 허리를 숙여 보였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강 변의 수술이 잘 되었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백찬근은 강수일에게 묵례한 뒤 떠났고, 강수일은 그대로 맥이 풀려 버린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강수일과 함께 이야기를 들었던 오 사무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변호사님, 들으셨죠? 수술 잘 됐답니다. 중환자실로 옮겨서 상태 지켜본 후에 예후에 따라서 일반 병실로 이동할 거래요.”
“의식을 찾는 데까지는 얼마나 걸린답니까?”
“하루 이틀 말씀하시더라고요. 더 빠를 수도 있고요.”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니 고비는 한 번 넘긴 셈이다.
테이블 데스가 일어날 경우까지 상정했던 나는 절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 뒤에 서서 함께 이야기를 들은 최종현과 조봉준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던 중, 수술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강수일의 모습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어, 변호사님……. 들으셨죠? 민재 수술 잘 끝났다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변호사님이 아니셨다면 이렇게 빨리 대응하지 못했을 겁니다. 특히 소방방재청이 보유한 헬기를 민재한테도 쓸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헬기 얘기하셨을 때도 순간 명대 병원 헬기를 요청해야 하나, 그럼 문역까지 왔다 갔다 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생각이 참 많았는데…….”
강수일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도 꽤 긴장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아까까지는 횡설수설했던 것은 오히려 나였던 것 같은데, 이번엔 강수일이 쉼 없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다는 방증인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실장님이 빠르게 확인해 주신 덕분입니다.”
“저야 당연히 이런 일 하는 사람인데요……. 변호사님한테는 정말 큰 빚을 졌습니다.”
나 때문에 강민재가 다친 것인데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성이 돌아온 이 시점에서는 여기서 ‘오히려 제 잘못입니다’하며 피로한 대화를 이어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 굳이 다른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저도 어르신과 강 실장님, 그리고 강 변한테 큰 빚을 지지 않았습니까. 지금쯤 교도소에 있었어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서로 빚이 없는 걸로 하시죠.”
“……그런가요. 하하. 이제 정말 민재가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것만 기다리면 되겠습니다. 아, 이럴 때가 아닙니다. 중환자실 들어가면 면회도 마음대로 못 하는데, 수술 직후에 볼 수 있을 때 얼른 보러 가시죠.”
강수일은 마치 잊고 있던 중요한 것을 떠올린 것처럼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향 감각도 잊은 것 같았다.
강관웅의 일이 있었을 때는 그가 고령이었던 데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강수일은 걱정하는 것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복잡한 절차 없이 마음 놓고 강민재의 안위만 걱정해도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뭐가 더 나은 건지는 모르겠다.
불안할 겨를도 없이 바쁜 것과 마음 놓고 걱정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강민재 보호자입니다.”
중환자실 면회를 위해 이동하여 데스크로 갔더니, 간호사가 키보드를 두드려 보고는 곧 대답했다.
“아, 네. 강민재 환자 좀 전에 중환자실 들어오셨고요, 지금은 수술 직후라 면회 가능하시지만 이후에는 오전, 오후에 한 번씩 면회하실 수 있으십니다. 일반 병실로 옮기신 다음엔 해당 사항 없고요. 보호자 한 분만 면회 가능하신데, 어느 분이 들어가시겠어요?”
“아, 이분이 들어가실 겁니다.”
나는 강수일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그럼 면회하실 보호자분 여기 명단 작성해 주시고, 저쪽에서 소독 비누로 손 씻어 주신 뒤에 오실 게요.”
강수일은 안내에 따라 움직였고, 나와 남은 사람들은 대기 장소로 가 앉았다.
“중환자실에서 금방 나오겠죠?”
“강 변호사님이랑은 다른 케이스지만, 주변에 뇌출혈 때문에 수술받고 중환자실 갔던 친구 있거든요. 강 변호사님 수술하는 중에 혹시 참고가 될까 싶어서 물어봤는데 근데 그 친구는 다다음 날에 일반 병실로 옮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은 지금 후유증 같은 건 안 남으셨어요?”
“네. 지금 멀쩡해요. 처음에는 냄새를 못 맡았는데, 다시 돌아왔대요.”
“다행이네요.”
기다리는 동안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나 역시 인터넷에 급성 경막하 출혈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다.
동진이 설명을 해 주긴 했지만, 바쁜 그를 붙잡고 계속해서 물어 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많은 케이스를 접해 보려면 검색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주한아!”
한참을 검색해 보고 있는데, 한쪽에서 동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동시에 내 곁에 있던 이들도 동진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아, 이들은 동진을 본 적이 없었나.
“저분은 누구셔?”
동진이 나에게 다가오는 사이, 최종현이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조용히 물었다.
“제 친굽니다. 백찬근 과장님하고 같이 민재 수술 들어갔던.”
“아, 그 친구분이 저분이구나.”
내 대답을 듣기가 무섭게 모두 일어나 동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동진은 다소 어리둥절한 것 같았지만, 그들의 소개를 들으며 한 명 한 명 떠올린 모양이었다.
모두와 악수를 나눈 뒤, 동진이 나에게 다가왔다.
“너 중환자실 쪽으로 갔다고 해서 와 봤는데, 왜 여기 있어? 민재 면회 안 해?”
“한 명만 된다고 해서 가족분이 들어가셨어.”
“아……. 잠깐만 기다려 봐.”
동진은 데스크로 가서 간호사와 몇 마디 주고받는가 싶더니, 곧 활짝 웃으며 연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며 손짓했다.
“여기 명단 작성하고 손 씻고 와. 너도 가서 봐야지. 민재 걱정 많이 했잖아.”
“그래도 되는 거야? 문제없어?”
“왜 안 물어보나 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규정 찾냐. 이 정도는 괜찮아. 얼른 손 씻고 와.”
나는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고, 동진의 말 대로 명단을 작성했다.
규정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건 알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는 말로 위안을 삼아 보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규정을 찾기에는 내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나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다.
강민재는 나를 FM 로봇이라며 놀려 대었는데, 나도 별수 없는 모양이다.
“아, 변호사님.”
동진의 안내를 받아 중환자실로 들어서자, 먼저 들어와 강민재를 살피고 있던 강수일이 나를 발견하고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울음이 한차례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그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몸에 이것저것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강민재의 모습에 시선을 뺏긴 지 오래였다.
“민재 삼촌이시죠? 저는 미리 수술 준비하느라 얼굴을 못 뵈었습니다. 과장님 도와서 같이 민재 수술했던 양동진입니다.”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강수일입니다. 차 변호사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가 제 얘기도 했을 줄은 몰랐네요. 음……. 과장님께 설명 들으셨겠지만, 민재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궁금했는데 못 물어보신 거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가능한 선에서는 대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술은 잘 끝났다고는 하지만 예후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씀을 못 들어서요.”
“민재 정도의 의식 수준에서는 예후를 예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표가 있지만, 그중에서 두부외상이 어느 정도인지도 꽤 중요한 지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민재 두부외상은 심하지 않은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민재의 경우에는 두부외상이 심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럼 예후가 좋을 것으로 예상해도 되겠습니까? 아, 그런데 과장님께서 수술 전에 민재가 혈종 크기가 작지 않다고 하셨는데, 이 점은 영향이 없겠습니까?”
“혈종 크기는 예후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장님께서 혈종 크기를 언급하신 건,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걸 설명하시기 위해서라고 짐작됩니다. 아무래도 두개골을 건드리는 수술이다 보니, 그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시고 약물 치료 하겠다고 하시는 보호자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렇군요…….”
“그리고 민재의 경우 원체 건강했고, 기저 질환도 없었기 때문에 금세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처음에 내원했을 때는 의식 수준이 좋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관 삽관 중에 민재가 의식을 찾아서…….”
“강 변이 중간에 의식을 찾았어?”
전혀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강수일도, 오 사무장도 내가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과장님이 말씀 안 하셨어? 왜 말씀을 안 하셨지…….”
“아닙니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동진이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강수일이 끼어들었다.
“내가 중간부터 들어서 못 들었나 봐.”
“의식 돌아왔었어. 그때 지남력 확인했는데 정상이었어. 통증 때문에 좀 혼미한 상태긴 했지만, 오답은 없었어.”
“선생님, 지남력이라는 게 상황 인식 능력이라고만 대충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어떤 건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말씀하신 정의가 맞습니다. 아까 의식이 돌아왔을 때 지남력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서 저희가 민재한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본인은 누구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지금이 몇 년도인지, 이런 질문들이요. 민재는 모두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아무튼 이런 여러 가지 지표로 봤을 때 예후는 좋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저희 의료진들도 긴장 놓치지 않고 민재가 잘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 많이 하겠습니다.”
동진은 강수일과 눈을 마주치며 말해 주었다.
보호자의 마음은 의료진의 태도가 좌우하는 만큼, 강수일도 눈에 띄게 안심한 기색이었다.
동진의 설명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면회 시간이 종료되었다.
“친구분은 정말 좋은 의사이신 것 같습니다.”
중환자실을 나오며 강수일이 입을 열었다.
“그런가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선 많은 조건이 필요할 테고 저는 단편적인 모습만 봤지만, 양동진 선생님은 환자하고 환자 가족 생각을 많이 해 주시는 것 같아요. 말씀하시는 태도에서 느껴집니다. 저희 입장에선 의학 지식이 없는 우리가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는지, 선생님의 열의가 보이는지, 이런 게 중요하잖습니까. 그러니 제 입장에선 좋은 의사시죠. 물론 민재 수술도 잘 끝내 주셨으니 실력도 뛰어나실 테고요.”
“동진이가 들으면 좋아하겠네요.”
“그래서 사실 후유증에 대해서 조금 더 여쭤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냥 물어보시지 그러셨습니까.”
“맥 빠지는 질문일 것 같아서요. 의료진 입장에선 환자나 환자 보호자한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두잖습니까. 그런데 양동진 선생님 같은 분들은 거기에 더해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 하시니까요.”
강수일의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입장에서 동진을 본 적이 없어서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그가 의대생이었을 때부터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 맞는 말이다.
그는 환자를 걱정하는 보호자에게 차갑게 구는 의사들을 이해하지만, 본인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과장님도 후유증에 대해선 쭉 지켜봐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제가 수술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찾아봤을 때도 그건 정말 민재가 눈을 떠 봐야 알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의사 입장에서는 단언했다가 결과가 다르게 나오면 괜히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요. 당연하게 명쾌한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인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양동진 선생님 같은 분은 환자한테 미안해하실 것 같기도 하고요.”
어쩌면 강민재의 성격은 강수일에게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아는 여유는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아무튼 양동진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처음에 100 정도 불안했다고 치면, 지금은 한 40 정도로 내려온 것 같습니다. 변호사님도 좀 진정하신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나는 잘 모르겠다.
강민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는 벗어났지만, 그에게 후유증이 남을 거라는 걱정은 여전했다.
동진의 말을 들으니 후유증이 남더라도 심각한 수준은 아닐 거라는 희망이 생겼지만, 심각하든 심각하지 않든 후유증은 후유증이다.
그것도 이번 삶에서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장애의 일종 아닌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적어도 이번 삶이 이전 삶보다는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 목적에 따라 움직였고, 그때 항상 함께했던 것이 강민재였다.
그런데 정작 그런 강민재에게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장애를 안게 된다면, 나에게는 이번 삶에 부여한 의미가 퇴색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강민재가 눈을 뜰 때까지는 조금도 안심할 수 없었다.
“네. 이제는 한시름 놨습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다.
오늘 필요시 약을 챙겨왔던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빨리 먹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