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06)
너희들은 변호됐다-506화(506/641)
중환자실의 성격상 그 앞에 진을 치고 있는다고 해서 면회를 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명대 병원에서는 VIP용 중환자실을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창문 너머로 지켜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흩어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강수일은 언제든지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병원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호텔을 잡았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은 강수일에게 뒤를 맡겨 놓고 우선은 회사로 이동하기로 했다.
강민재의 사안이 급한 나머지 사고 처리와 덤프트럭 운전자, 그리고 손정민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한 상태였다.
그가 깨어나기 전까지 나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뭐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강민재가 수술받는 동안 상황을 지휘했던 태식이 회의실에 앉으며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덤프트럭 운전자는 어떻게 됐어?”
“아, 그 새끼는 기절한 척한 거였어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응급실에서 이것저것 확인해 보더니 뼈에 금이 좀 갔다나 봐요.”
“도망가려고 하진 않았어?”
“했죠. 근데 잡았어요.”
“혹시 때리거나 하진 않았지?”
상황 자체는 무척 심플하다.
덤프트럭이 나를 죽이기 위해 중앙선을 넘어 달려왔고, 이를 막기 위해 강민재가 덤프트럭을 받았다.
강민재가 사고를 막은 셈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입장이다.
내가 블랙박스 SD카드를 미리 빼놓았기 때문에, 덤프트럭이 우리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왔다는 것은 입증할 수 있다.
심지어 한낮에 하이빔을 켰기 때문에 눈부심을 유발했다는 것도 입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늘 준비된 거짓말이 있지 않은가.
졸았다고 하면 나에 대한 살인미수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블랙박스에 운전 중인 기사의 모습이 찍혔을 것 같진 않지만, 찍힐 수 있는 각도였다고 하더라도 하이빔을 켠 상태였기 때문에 어차피 보이지 않을 것 아닌가.
법이 어떻게 판단할지 생각해 보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기사는 단순히 졸음운전을 했을 뿐이고, 강민재는 의도적으로 과속해서 덤프트럭을 들이받았다.
물론 그때 신호가 어땠는지 따라 판단은 달라지겠지만, 강민재가 심각하리만치 과속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내 케이스는 제외하고, 강민재와 덤프트럭 운전자, 두 명만 봤을 때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가해자가 될지 모르는 강민재 측이 덤프트럭 운전자에게 물리력을 사용했다는 것은 후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될 여지가 있다.
“아, 그러진 않았죠. 종현 형님이 강 변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행동 조심하라고 했거든요. 그냥 어디 가시냐고, 다친 데 있는지 봐야 한다고,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안 되지 않냐고 하면서 계속 못 가게 막았어요. 그래서 치료가 끝나고 나가는 것까진 막을 순 없었죠.”
“그거 내 아이디어야. 맞지, 차 변? 민재가 가해자 될 수도 있는 거?”
조봉준이 칭찬을 바랐는지 소심하게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덤프트럭 운전자가 저와 태식이를 죽이기 위해 중앙선을 넘었다는 걸 어떻게든 입증한다고 해도 강 변하고의 사고는 별개로 취급될 겁니다.”
“근데 덤프트럭 새끼가 튀려고 했던 걸 보면 결국 그 새끼도 지가 피해자인 상황이 되더라도 강 변한테 물피나 인피로 문제 삼을 생각이 없었다는 거잖아요. 심지어는 그 흔한 보험 처리도 안 할 생각이었던 거고.”
“자기가 가해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도망가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애초에 나를 죽이려다가 일어난 사고니까 여러모로 켕기는 게 있었을 테고.”
“그건 그렇네요. 하긴, 생각해 보면 덤프트럭 새끼 과실이 크게 잡힐 것 같아요. 덤프트럭이 신호 위반한 거잖아요. 강 변이야 기껏해야 과속이지.”
“신호 위반? 그때 신호 어땠는지 기억나?”
교통법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지만, 확실한 건 그때 신호가 어땠는지에 따라 누구의 과실인지 정해질 것이다.
만일 덤프트럭 쪽이 적신호였다면, 피해자는 강민재가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면 덤프트럭 운전자를 묶어 둘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뭔가 자신은 없는데……. 빨간 불이었을걸요?”
“블랙박스 확인해 보면 알겠지.”
어느 쪽이 됐든, 덤프트럭 운전자는 가해자면 당연히 조용히 지나가길 바랄 것이고, 설령 본인이 피해자인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문제 삼을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태식의 직원들이 폭력을 써서 운전자를 묶어 놨다고 해도 운전자는 이에 대해서 부당하다는 생각보다는 도주에 실패한 것을 걱정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경찰이 현장에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은가.
사고 현장에서 나는 강민재를 살피며 구급차를 기다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때 경찰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아마 경찰이 도착했다면 나와 강민재가 현장을 떠난 이후일 텐데, 경찰은 강민재가 헬기를 타고 이송됐다는 걸 확인하고 덤프트럭 운전자에게 붙었을 것이다.
그러니 결과와 상관없이 태식의 직원들은 행동을 조심하는 게 맞다.
만일 강민재 쪽의 과실로 판명될 경우, 덤프트럭 운전자 측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꿔 강민재를 도로 위의 무법자로 언론 플레이를 하려 들지도 모르잖은가.
그때 경찰은 피해자의 증인이 되어 줄 텐데.
“그럼 지금 덤프트럭 운전자는 어떻게 된 거야? 나가는 건 못 막았다면서.”
“일단 연락처를 주고받은 다음에 헤어지는 척했어요. 그리고 바로 뒤따라갔고요.”
“연락처는 진짜 연락처야?”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 걸어 봤고, 전화 울렸다고 하니 가짜 연락처는 아니겠죠. 하지만 대포폰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뒤를 쫓고 있다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은 돼?”
“일단 그 새끼가 병원에서 나와서 전화 통화하는 거 녹음했다고 하고요. 어……. 그 뒤로는 일단 걔가 택시 타고 여관으로 가서 아직 안 나오고 있답니다.”
“그럼 계속 그 사람이 누구하고 접촉하는지 확인해 봐. 그 전화 통화 녹음한 건 언제 받을 수 있어?”
“시간 될 때 보내라고 했으니까 곧 보낼 겁니다.”
태식은 메시지함을 훑어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손정민인데요. 문역 보건소로 갔을 때 손정민은 없었다고 하고요. 문역 전체를 다 뒤져 봤는데도 없었답니다. 터미널 직원들한테 손정민 사진 보여 주고 봤냐고 물어봤더니 봤다고 하거든요? 근데 혼자가 아니었대요. 성인 남자 두 명하고 같이 있었답니다.”
“그럼 역시 손정민은 미끼였네.”
조봉준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종현이 형이 천사의 집 애하고 연락되는 대학생하고 계속 얘기해 봤는데, 손정민은 아직도 안 나타났다고 했거든.”
“어, 맞아. 20분 전에 또 물어봤는데 그때도 손정민 안 나타났다고 했어. 지금쯤이면 돌아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실패로 돌아가니까 그냥 내뺀 것 같은데. 혹시 몰라서 돌아오면 바로 연락 달라고 했어.”
최종현은 대학생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럼 손정민이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는 거야?”
내가 태식에게 묻자, 태식은 머리를 마구 헝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 그게 일단은 터미널에 다시 오진 않았다고 했으니까……. 아마 같이 있었다는 성인 두 명이 그 천사의 집 놈들 같거든요? 걔네가 뭐 차로 태워서 데리고 나갔을 수도 있죠.”
“천사의 집으로 다시 돌아올 것 같진 않고, 내 생각엔 그냥 그대로 내빼지 싶다.”
“손정민은 미끼였고, 또 미성년자라서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천사의 집 애들이 꼭꼭 싸매고 있을 것 같은데. 손정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덤프트럭 운전자 쪽에 집중하는 게 낫지 싶다.”
“맞아. 어차피 하나만 잡으면 줄줄이 끌려 나올 건데.”
나 역시 손정민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내가 손정민으로부터 받은 메일을 문제 삼기도 어렵지 않은가.
남들 눈에 손정민은, 메일만 봤을 땐 천사의 집에서 좋은 거 해 주겠다는데 싫다고 억지를 쓰는 어린애처럼 보일 여지가 있다.
물론 천사의 집에서 말하는 유학이 어떤 의미인지 밝히면 그 메일을 활용해서 손정민을 수색해 볼 수 있겠지만, 그건 손정민을 찾기 위해 쓰기엔 아까운 카드다.
“어차피 그 운전자도 차 변 죽이려고 했던 거잖아. 그럼 그 운전자가 해외로 튈 수 있게 준비를 해 준다거나, 깜빵 가면 얼마 주겠다거나, 뭐 그런 약속을 했을 거란 말이지.”
“그랬겠죠. 바보가 아닌 이상 실패했을 경우도 상정해서 조건을 달았을 겁니다.”
“그렇지. 그리고 실패하면 어떻게 할지도 오노데라 그 새끼가 정해 주지 않았겠어? 근데 차 변이 아니라 전 대통령 손자가 대신 다쳤으니 걔들도 얼타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면서 줄줄이 사탕처럼 뽑아 보자고.”
얼추 상황 정리는 끝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어디로 가시게요?”
태식이 함께 일어서며 물었다.
“일단 집으로 가야지. 강 변이 중환자실에서 언제 나올진 모르겠지만 일반 병실로 이동했을 때 필요한 것도 좀 생각해 보고……. 아, 오후 면회가 6시부터였던가.”
“수술 직후 면회가 마지막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최종현과 조봉준도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대답했다.
“지금 가 봤자 보지도 못하는데, 차 변도 좀 쉬어. 태식이도 오늘 고생 많았다. 둘 다 많이 놀랐을 텐데. 혹시 쑤시거나 그런 데는 없어? 둘 다 한의원에라도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전 괜찮은데. 변호사님은요?”
“나도 딱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가 봐. 내일 오전 면회 갔다가 가든지, 가기 전에 가든지.”
“어차피 면회 한 번에 한 명밖에 안 됩니다. 저보다는 강 실장님이 들어가시는 게 낫고요. 오늘 하룻밤 자 보고 뻐근한 데가 있으면 가 보겠습니다.”
“근데 그 동진 씨한테 말하면 차 변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매번 규정 어기게 도와 달라고 할 순 없잖습니까. 그래도 적당한 시간에 명대 병원에 가 보긴 하려고 합니다. 강 실장님이 강 변 보고 나올 테니까 상태가 어떤지 얘기도 들을 수 있을 테고, 동진이한테 잘 낫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려고요.”
“에휴, 그래. 그래도 동진 씨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때에 동진 씨라도 없었어 봐. 얼마나 불안했겠냐고.”
“그러게요.”
예전에 동진이 전공을 선택했던 때가 새삼 생각난다.
나에게 진지한 고민이 있다며 부르더니, 부모님은 편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과로 가라고 하셨고 본인은 신경외과로 가고 싶은데 바보 같은 짓이냐고 물었다.
편하게 돈 벌 방법이 있는데 지금 당장 매력을 느꼈다고 해서 신경외과로 가는 게 맞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했다.
나중에 신경외과 써전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면 그때 가서 다른 전공을 해 보라고 했던가.
나도 그땐 연수원에서 공부하며 판사 지망을 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검사 지망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상태였기 때문에 쉽게 말했던 것 같다.
그때 나까지 동진에게 부모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면 강민재의 일에도 도움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 * *
해가 지고 나서야 도착한 집은 무시무시한 적막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일순간 큰 위화감을 느꼈지만, 뒤늦게 이것이 내 집이 가진 항상성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강민재와 함께 산 지 보름도 되지 않았는데, 이 적요를 어색하게 받아들이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곧 상길이 올 거예요. 뭐 먹을 거라도 사 오라고 할까요.”
“됐어.”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드셨잖아요.”
“오곡라떼 먹었어.”
“종현 형님이 그거 안 먹었다고 하시던데.”
“됐다니까.”
“안 먹힐 것 같아서 그러세요? 그럼 죽 사 오라고 할까요?”
“내가 아프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글쎄. 당장 생각나는 건 없는데.”
“지금 이 순간 음식을 딱 떠올려요. 이미지로. 그 이미지로 떠오른 게 뭔지 말해 보세요.”
“……칼국수?”
“그럼 상길이한테 칼국수 사 오라고 해요, 그러면?”
“아니, 그건 나중에 강 변이 사다 주면 먹을 거야.”
“……참나.”
나는 좋아하지도 않던 칼국수에 꽂혀 버렸다.
강민재가 일어나서 나에게 칼국수를 사 주는 것으로 나의 변해 버린 기호성을 책임져야 한다.
“죽 사 오라고 할 테니까 드세요.”
태식은 통보하듯 말하고는 전화하러 테라스로 나갔다.
나는 한숨을 쉬며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한 꺼풀, 한 꺼풀 옷을 벗어 내렸더니 입고 있던 옷들이 하나같이 심하게 구겨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구겨진 옷을 입고 돌아다닌 것도 참 오랜만이다.
나는 세탁 바구니에 옷을 대충 넣어 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물을 틀고 온도를 맞추고 있는데, 문득 다시금 이 공간에 맺힌 고요가 신경 쓰였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차라리 빨리 시간이 흐르기를 바랐다.
하루 이틀이면 깬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에게 오늘은,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