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07)
너희들은 변호됐다-507화(507/641)
잠을 설쳤지만, 더 자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눈을 떴을 때는 오전 6시.
강민재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들어오진 않았는지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강수일이나 동진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벌써 일어나셨어요?”
씻고 거실로 나가자, 소파에 앉아 있던 상길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태식과 교대하기까지는 2시간이나 남았다.
“어, 그렇게 됐네.”
“근데 얼굴에 반창고는 왜 붙이셨어요?”
“면도하다가 조금 베였어.”
면도가 능숙하지 못했던 시절을 제외하면 처음 있는 일이다.
심지어는 처음엔 베인 것도 몰랐다.
피를 보고 나서야, ‘아, 베인 거구나’ 하고 알 정도였다.
“많이 베이셨어요?”
“아니, 반창고가 작잖아. 그냥 조금 베인 거야.”
“그럼 다행이고요. 아, 어제 죽 사 온 거 냉장고에 넣어 놨는데 드세요.”
“별로 안 당겨. 밤사이에 들어온 소식은 없어?”
“그 덤프트럭 운전자 쪽 말씀하시는 거죠?”
“응.”
“계속 여관에서 죽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나오진 않았다더라고요.”
“창문으로 튈 수도 있잖아. 거기도 확인하고 있어?”
“창문 쪽은 담이 둘러싸고 있고, 창문이랑 담 사이 틈이 고양이나 간신히 들어갈까 말까 한 정도라서 거기로 빠져나오긴 힘들 것 같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보고 있다고는 합니다.”
“그래. 그밖에 별다른 움직임은?”
“그것도 아직은요. 아, 그리고 어제 변호사님이 주신 블랙박스 영상 복사해서 경찰에 제출했어요.”
어제 자기 전에 미리 챙겨 둔 블랙박스 영상들을 확인해 보았는데, 덤프트럭 운전자 쪽이 적신호였고 강민재는 청신호였기 때문에 과실은 덤프트럭 운전자 쪽으로 잡힐 것 같다.
덤프트럭 운전자 쪽에서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지만, 그쪽도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복잡해져서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일 듯하다.
예측해 보자면 중간에 덤프트럭 운전자가 도주하려고 했으니 아예 내빼려고 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교통법상, 강민재의 진단서를 떼 보아야 알겠지만 전치 6주 이상은 너끈히 나올 것 같고, 덤프트럭 운전자는 12대 중과실에 속하는 과실을 범했다.
이 상황에서 덤프트럭 운전자가 적극적으로 강민재에게 보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도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덤프트럭 운전자는 구속되고도 남는다.
차라리 덤프트럭 운전자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서 그가 연락을 피했다는 정황 증거를 남겨 놓고 구속할 수 있도록 가닥을 잡아 보는 게 좋겠다.
“근데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
상길은 컵에 물을 받고 있는 내 뒤까지 바짝 쫓아와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근육이 놀란 것인지 상체가 쑤시는 느낌이 있다.
“방탄조끼 입은 게 조여서 아픈 것 같은데.”
쑤시는 부위가 정확히 그 조끼를 몸에 맞출 때 조여드는 곳이다.
어제 샤워하면서 보니 어쩐지 그 부근이 유난히 붉더라니.
나는 허리께를 짚어 가며 상체를 움직여 보았다.
그래도 심한 것 같진 않은데.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나를 죽이겠다고 하도 펄펄 뛰기에 칼로 쑤신다든지, 총을 쏜다든지 하는 원초적인 방법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클래식하게 덤프트럭으로 밀려고 할 줄은 몰랐다.
이거, 앞으로 차 타고 다녀도 되는 건가.
“그럼 오늘 오전에 병원 가 보세요. 많이 아프신 거 아닙니까?”
“외상은 없고, 그냥 근육이 놀란 정도야.”
“그럼 한의원 가셔야죠. 이런 거 그냥 두면 지병 돼요. 형님한테 오전에 변호사님 모시고 한의원 가야 한다고 말해 둘게요.”
“괜찮……. 아니다. 그래.”
계속 아무것도 아니라며 넘기는 것도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선 속 터지겠다 싶어서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덤프트럭 운전자 번호로 계속 연락 취해 봐.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하고. 아, 그리고 내 대포폰 새거로 바꿔야겠다. 이따 밤에 올 때 새 휴대폰 갖다줘.”
“넵.”
손정민과 연락하면서 대포폰을 사용했는데, 손정민이 천사의 집 측의 미끼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이 번호는 이제 쓸 수 없다.
선의에 배신당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 그건 나를 크게 낙담시키는 요소는 아니다.
이전 삶에서도 숱하게 겪어 보았으니 새삼스럽게 그런 한가한 감상에 빠질 때는 아니지 않은가.
그 무리에게는 최소한의 윤리 의식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놀랍지도 않지만, 문제는 그들이 벌이는 짓으로 인해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 범위가 매우 축소된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조심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나는 남들이라면 쉽게 갈 길도 하나하나 두드려 보면서 가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지금 동원하고 있는 이 방법마저도 내게 이전 삶의 지식이 없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지 못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 아닌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감당조차 할 수 없었을 위협에 맞섰는데도 강민재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으니, 무의미한 가정이지만 이전 삶이 없었더라면 난 진작 어떻게 됐어도 됐겠구나 싶다.
하긴, 그래서 이전 삶이 실패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2018년까지 안 죽고 버틴 게 용할 지경이었다.
아, 이전 삶에는 이번 삶보다 덜 까불어서 가능했던 걸까.
어쨌든, 이제 더는 시간이 없다.
그들에게 시간을 허락할수록 이 싸움은 지루한 소모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라면, 화수분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가진 게 많은 우신이 승기를 거머쥐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 * *
강민재에 비하자면 경미하기 이를 데 없는 내 부상은 방탄복 때문이었지만, 나는 한방 병원에 가면서도 그 방탄복을 챙겨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계절은 초여름을 지나고 있는지라 불쾌지수도 슬슬 올라가서, 누구라도 나에게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하면 싸늘한 시선을 감출 수 없을 것만 같이 예민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방탄복을 벗을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우신의 행적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들은 나에게 하려던 허튼짓이 실패로 돌아가면 당분간은 역풍을 대비하기 위해 얌전히 있곤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손자에게 싱싱한 심장을 주지 못해 안달이 난 늙은이 오노데라의 광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이번에야말로 갑자기 닌자가 튀어나올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이제 옷 입으시면 됩니다.”
이런저런 검사 결과, 내 몸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침을 권하는 의사에게 알겠다고 대답하고 누워서 침까지 다 맞았다.
이제 여기서도 해방이다 싶어 옷을 입으려고 커튼을 치려는데, 침을 놓던 의사가 궁금함을 참지 못했는지 넌지시 물었다.
“차주한 변호사님 맞으시죠?”
진료 차트에도 내 이름이 적혀 있는데,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다.
“네.”
“변호사님이신데 평소에도 방탄조끼를 입으시나 봐요.”
염려증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다.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침착하고 냉정하게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다.
원래라면 대꾸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을 법한 대화인데, 자꾸만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모난 말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입을 닫았다.
“저, 변호사님.”
커튼을 쳤는데도 의사는 가지 않고 얼쩡거렸다.
“혹시 나가실 때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실 수 있나요. 들어올 때 보셨겠지만 저희 병원 방문해 주신 연예인분들 사진도 붙여 놨거든요. 거기 같이 붙이고 싶어서……. 아, 물론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불편합니다.”
“그, 그러시군요. 실례 많았네요. 밖으로 나오시면 저희 간호사 선생님이 안내해 주실 겁니다.”
의사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목소리는 꽤 기분이 상한 듯했다.
어쩌겠는가.
나중에 내가 특별검사 후보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차주한 실제로 봤는데 싸가지 없더라’라는 댓글 하나 달리는 것 외에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다.
“어, 뭐야. 같이 가요.”
바깥으로 나오니 태식이 데스크에서 내 병원비를 결제하고 있었다.
내가 그대로 그의 뒤를 지나쳐 병원 바깥으로 나가자 태식이 급하게 카드를 받아 내 뒤를 쫓아왔다.
“아침부터 표정이 구리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계속 구리시네요.”
“나 침 맞는 동안 연락 온 거 없어?”
“없는데요. 그리고 덤프트럭 운전자한테는 말씀하신 대로 두어 시간 텀으로 연락하고 있어요. 문자도 보내고요.”
“답은 안 온 거고?”
“네. 근데 뭐, 아직 퍼 자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는 시간이니까요. 그리고 참고로 궁금하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저는 다친 데 없답니다.”
덤프트럭을 피하느라 급하게 핸들을 돌렸던 차 안에 있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행이네.”
“아, 그리고 경찰 쪽에도 덤프트럭 운전자하고 연락되는지 물었는데, 아직은 연락이 안 된다네요.”
“튈 모양이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긴, 임무에 실패했을 때도 어느 정도 보상을 주겠다고 약속받긴 했겠지만, 그 돈이 엄청나진 않았을 거 아니야. 경찰 앞에 나타났다간 그 돈으로 보상해야 하고, 보상한다 해도 감옥 갈지 모르는데 튀고 싶겠지.”
“근데 그 일본인 영감탱이가 입막음 비용으로 돈 넉넉히 주지 않았을까요? 돈 아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튈 것 같진 않은데. 그 운전자에 대해서 조사해 봤을 때도 처자식 멀쩡히 다 있었거든요. 혼자 튀기엔 좀 걸릴 게 많달까. 마작을 좋아해서 도박 빚이 좀 있다는 거 보면, 그거 때문에 일 받은 모양이던데.”
“애초에 입 막을 필요도 없게 진행했겠지. 지들이 누군지 밝혔을 리도 없고, 그냥 적당히 1, 2억쯤 약속하면 눈 돌아갈 만하잖아. 큰돈 만지다 보니까 잠깐 잊었나 본데, 평범한 사람들한텐 그것도 엄청 큰돈이야. 그런데 그 돈 가지고 보상할 순 없잖아. 물피, 인피, 전부 보상해야 하는데.”
“보험으로 좀 땡기고, 어쩌고 하면 남는 게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하긴, 남는 게 있어도 고작 그 돈 먹고 빵 가긴 싫겠네요.”
“의외로 돈 많은 놈들이 짜.”
나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그러자 태식이 한숨을 쉬며 시계를 확인했다.
“강 실장님 오전 면회 11시부터 가능하다고 해서 그때 바로 들어가신다고 했는데, 지금쯤 나왔겠는데요. 연락해 볼까요? 강 변 괜찮아졌는지.”
“달라진 게 있었으면 진작 연락 왔겠지.”
벌써 정오다.
면회가 끝나고 30분이나 지났다는 뜻이다.
면회 시간을 다 채워서 강민재를 보고 나와 잠시 슬픔을 다스렸다고 해도, 30분 사이라면 내 생각이 잠깐이라도 났을 법도 한 때다.
그런데 아무 말도 없었으면, 괜히 나한테 강민재의 상황을 상기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뭔가 내가 기뻐하거나 슬퍼할 만한 소식이 있었다면 동진이 언질을 줬을 테고.
괜히 강수일을 들쑤시고 싶진 않았다.
“오늘은 깨어날까요. 오늘 아니면 내일 본다고 했다면서요.”
“수술 직전에 의식 찾았다고 해서 좀 빨리 깨진 않을까 싶긴 했는데, 잘 모르겠네.”
“변호사님, 그냥 변호사님 친구 의사 선생님 만나러 가죠? 그렇게 버티는 것보다 그냥 물어보는 게 더 마음 편할걸요.”
그렇게 말하는 태식의 시선은 내 휴대폰을 향해 있었다.
동진과의 메시지 방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던 걸 들켜 버렸다.
“지금 수술 중일지도 모르잖아.”
“연락은 해 봐요.”
“됐어.”
“참 나. 그럼 내가 하면 되지.”
태식은 내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동진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 변호사님 친구 의사 선생님. 저 장태식입니다.”
태식은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는 콘솔 박스 위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아, 어, 잠깐잠깐. 네, 태식 씨.
뭔가 급해 보이는 동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라 나는 조금 긴장이 되었다.
동진이 급할 일이야 널렸지만, 그래도 이 상황에서는 강민재와 관련되어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변호사님이 옆에서 자꾸 바보짓 해서 제가 대신 연락드렸는데요. 강 변 좀 어떻습니까?”
─아, 저기 안 그래도 제가 지금 중환자실에서 콜이 와 가지고 가는 중이거든요. 제가 조금 이따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중환자실 콜? 강 변 일이야?”
내가 끼어들며 물었지만, 이미 동진은 전화를 끊은 다음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태식에게 소리쳤다.
“명대 병원으로 가. 빨리!”
“예? 아니, 근데 중환자실에 강 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문제가 있었으면 얘기를 하시지 않았을까요?”
“앞에 붙인 말 못 들었어? ‘안 그래도’라잖아. 그럼 강 변하고 관련 있겠지. 빨리 가.”
명운대 병원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사실 물리적인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내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따라 적신호가 너무 자주 들어왔고, 보행 신호는 몹시 길었으며, 만나는 앞차마다 유난히 느리게 갔다.
“여기서 내려 줘. 너는 주차하고 중환자실 앞으로 와.”
주차장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나는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이미 오전 면회 시간은 끝났고, 오후 면회 들어가려면 한참 남아서 간다고 해도 강민재를 볼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가야 할 것 같았다.
오늘따라 나를 도와주지 않았던 도로 사정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끔찍하리만큼 오지 않았다.
나는 바로 비상구 계단으로 달려가 중환자실이 있는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중환자실 앞에 도착하니, 그때부터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고민하다 동진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
휴대폰이 켜지지 않는다.
방전된 모양이었다.
나는 이마를 짚은 채 중환자실 앞을 서성였다.
곧 태식이 올 테니, 태식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볼지, 아니면 간호사에게 말이라도 해 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변호사님?”
별안간,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나와 비슷한 꼴로 숨을 고르고 있는 강수일이 서 있었다.
“실장님, 면회 끝나신 거 아니었습니까? 왜 여기……. 강 변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겼답니까?”
“변호사님도 연락받고 오신 거 아니었습니까?”
“제가요? 지금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연락이 왔어도 못 받…….”
그때였다.
중환자실 문이 열리며 그 사이에서 동진이 나왔다.
나와 강수일은 서로 대화를 하던 것도 잊고 순식간에 동진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나와 강수일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몹시 밝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민재, 의식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