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13)
너희들은 변호됐다-513화(513/641)
“……그, 있잖아요. 제가 주제넘은 말을 한 거면 죄송합니다.”
나를 상념에서 끄집어낸 것은 풀이 죽은 강민재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아가 비대한 사람에게 그 점을 지적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직접 나서서 지적해 줄 만큼 불편을 느꼈던 적도, 가깝게 느꼈던 적도 없었기에 어려움을 느껴보진 못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맞긴 한 모양이다.
지금 강민재를 보니, 본인이 대단히 무례한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제가 대단한 달변가는 아니어서 드리고 싶은 말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기분 나쁘셨으면, 저기……. 뭐냐, 저 자르지 않는 선에서 해결해 주시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담아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무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감추려 애써 왔던 비밀이 탄로 나는 바람에, 그걸 감추기 위해 했던 거짓말이 들통난 점에 대해서 약간의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이렇게 기분 나쁘지 않게 나에게 교훈을 주는 화법을 구사한 강민재의 능력치에 놀라기까지 했다.
“기분 안 나빠. 주제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리고 강 변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내가 일일이 반박하려고 하면 자꾸 끊기잖아. 그래서 그냥 조용히 듣기만 한 거고, 강 변 말이 다 맞아서 입 다문 거 아닌 건 알지?”
사실 다 맞아서 입 다문 게 맞다.
내가 너무 흘리고 다닌 나머지 반박할 말도 없었다.
물론 이런저런 설정을 덧붙여서 어떻게든 억지로 반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강민재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완벽히 나를 이겼다.
그럼에도 나는 강민재의 말이 다 맞다고 시원하게 시인할 수 없었다.
강민재가 나에게 거듭 존경한다고 말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나를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그 정도로 특별하지는 않지만, 강민재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내가 어떻게 할 도리는 없다.
하지만 특별함도 어느 정도 수준에선 존경할 만한 점으로 작용하지만, 지나치면 위화감으로 변이되는 법이다.
더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진 내 마음과는 별개로, 이렇게라도 마지막 발악이라는 걸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알죠. 그럼요.”
[거짓]초능력의 존재를 부인한 대가로, 나는 이렇게 강민재가 나를 기만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역시 나름대로 어색해질 뻔한 이 상황을 아름답게 매듭지어 보려는 것 같아서, 나는 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강민재가 나에게 말을 꺼냈을 때 그는 이미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튼……. 내가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평균 이상의 짐을 지려고 했다는 건 인정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야. 지금으로서는 강 변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아마 강민재가 지적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모든 일을 계획함에 있어, ‘나 또 시작인가?’ 하며 스스로 무수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그 사이의 중심을 잡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어려운 훈련이겠지만, 본격적으로 우신 특검을 위해 달리기 시작하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민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시게요?”
“가야지. 강 변도 오늘 너무 말 많이 했어. 이제 쉬어, 그만.”
“저 괜찮은데…….”
“그건 강 변 생각이고. 아직 환자인 거 잊지 마. 강 실장님 계실 테니 크게 필요하진 않겠지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나는 병실 안 냉장고에서 주스 한 병을 꺼냈다.
“더워서. 이거 하나 마신다.”
“아, 다 드셔도 돼요.”
“다 드시긴 뭘 다 드셔. 간다.”
병실을 나서자 문밖에 서 있던 강수일이 다가왔다.
대화가 길어진 까닭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그는 달리 묻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까딱 숙여 보이고는 기다리고 있던 태식과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강 변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다행이죠?”
“그러게.”
“고비는 하나 넘겼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재가 괜찮아진 것도 보았고, 후유증 문제는 앞으로 두고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지금 당장 걱정한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일단 지금은 사고로 인해 지연됐던 기존의 조사를 재개해야 한다.
어디까지 진척되었는지 체크해야 하니 다른 이들에게 연락해 봐야겠다.
나는 주머니 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꺼내 메신저를 열었다.
단체 메시지방은 열띤 대화 중인지 계속해서 배지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허민우 : 그럼 강 변호사님 걱정은 이제 좀 내려놔도 되려나요?오양훈 : 네. 오늘 가서 보니까 사고 난 사람 맞나 싶더라고요
최종현 : 역시 민재는 민재더라고요ㅋㅋ 강민재가 아픈건 좀 어색한 느낌이었는데 어색한 느낌 하나도 없을 정도였어요. 참 다행입니다 허 경위도 보면 다친애 맞나 싶을걸ㅋㅋ
허민우 : 강 변호사님 병실에 한번은 가보고 싶은데 아직은 좀 그렇겠죠?]
우신 쪽에 허민우가 우리와 한배를 탔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시기상조이기에, 허민우는 아직 병원에 와 보지 못한 처지였다.
걱정이 많은 모양이라, 나는 메시지를 입력했다.
[강 변 걱정은 이제 안 하셔도 됩니다. 병문안은 천천히 가시죠. 강 변이 지금은 괜찮다고 해도 어쨌든 뇌 수술을 받은 거라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겁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뒤에 다른 용건이 있어 명운대 병원에 가신 것처럼 해서 가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내가 메시지를 입력하기가 무섭게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메시지를 읽었다.
그 한 명은 아마 강민재인 듯하다.
[조봉준 : 오 차변 나왔어? 무슨 얘기했어 궁금최종현 : 보나마나 강민재 눈물 짜지 않았겠어? 차변이 지 걱정 많이 했다는 소식 듣고 감동 받아서 울었을듯]
쓸데없는 대화가 오가려는 모양이라 그대로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는 허민우였다.
“네.”
─강 변호사님하고 따로 대화 중이시라고 해서 전화 안 드리고 있었는데, 이제 나오신 겁니까?
“네. 지금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그러시면 지금 메일함 한 번 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허민우의 말에, 나는 휴대폰에 이어폰을 연결한 뒤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허민우로부터 새로운 메일이 한 통 도착해 있었다.
첨부파일은 여러 개 있었는데, 동영상과 이미지 파일이 섞여 있었다.
“뭐부터 보면 됩니까?”
─동영상을 다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동영상은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라 첨부한 겁니다. 그, 일전에 최재훈 씨가 임현일로부터 뇌사 상태가 아닌 환자의 장기 적출을 지시받았다는 내용의 일기가 있지 않았습니까.
“어디에서 그런 수술을 지시받은 건지 찾으신 겁니까?”
─네. 변호사님 말씀대로 역시 우신 병원 내부는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우신 병원에서 각자 이동했습니다. 최재훈 씨의 카드 사용 내역을 보니, 택시를 타고 이동했더군요. 그래서 해당 택시 번호를 조회해서 공공 CCTV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수술을 하던가요.”
─사실 구체적으로 거기가 뭐 하는 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경비가 삼엄해서 진입은 못 했거든요. 영장도 없으니 밀고 들어갈 수도 없고요. 물론 최재훈 블로그 내용 올려서 영장 치면 칠 수는 있겠지만, 아직 그러면 안 되는 단계잖습니까. 뭐랄까, 이렇게 감춰 둔 곳인데 누군가가 발견했다는 걸 그쪽이 알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감춰 둔 곳이라니, 평범한 병원이 아니었던 건가요? 인터넷으로도 확인이 어렵습니까?”
─네.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을 때 그 위치에 뭔가 사업체가 있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사업체 정보는 안 뜹니다. 로드뷰도 이 숲 진입로에서 끊겨 있어서…….”
2012년에는 위성 사진 확인이 안 됐던가?
아닌데.
2012년에도 당장 해당 지역의 구조를 파악해야 하는데, 거리가 먼 지역은 위성 사진을 통해 지형과 구조를 확인해 본 적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주로 해외 포털에서 제공하는 위성 사진을 확인했다.
국내 포털에서 제공하는 사진은 안보 시설 같은 곳에 다른 이미지를 덧씌워 제공하지만, 해외 포털에서는 남의 나라 사정은 알 바 아니라는 듯 있는 그대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인해 국내에서 소소하게 논란이 되었던 적도 있었으니, 그만큼 정확한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뜻 아닌가.
“위성 사진은 보셨습니까?”
─네. 봤죠. 그건 음……. 아, 15번 파일입니다. 위성 사진으로도 딱히 여기가 뭐 하는 데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신 사진이 작년 말이라 완공된 모습은 안 보이더라고요. 건물은 없고, 터 다지기 해 둔 상태까지만 확인됩니다.
“그럼 공사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이군요. 지금은 완공된 상태입니까?”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펜스 안쪽으로 접근할 순 없었으니까요. 펜스 너머로 보이는 건 거의 나무들뿐이고요. 일단 혹시 몰라서 그쪽 모습을 찍어 오긴 했습니다. 12번 파일이 그 사진입니다. 한 번 보시죠.
나는 그가 말한 파일을 열었다.
대저택의 대문처럼 생긴 커다란 펜스가 산속으로 추정되는 곳에 있었다.
“그렇네요. 뭘 하는 데인지 가늠이 어렵습니다.”
─네.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둘러봤는데 큰 문은 앞뒤로 두 개 있고요. 그중 하나가 12번 사진인 겁니다. 그리고 그쪽은 전부 감시 초소 비슷한 게 있어요. 펜스 주변은 다 숲이라서 살펴보는 데 난항은 겪었지만, 쪽문도 조금씩 있는 것 같고요.
“뭐, 보안에 심혈을 기울이는 정체 모를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네요.”
─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기 뭐 국가 제한 시설이 있나 싶을 겁니다.
“이게 어디 있습니까?”
─경기도 미성에 중림구라는 지역 아실지 모르겠네요. 그 왜, 바로 옆에 전일 신도시 있고요.
“아, 네. 압니다.”
─거기에 있는데, 작은 동산이라고 해야 할까요. 산속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고요. 11번 사진 보시면 지도 나와 있습니다.
“아, 대충 어딘지 알겠습니다. 그 뒤쪽으로 송주산이네요. 근데 여긴 송주산으로 보긴 어려운 것 같고요. 사유지입니까?”
─등기부등본상으로 봤을 때 사유지 맞습니다. 소유주는 RND라는 법인입니다.
“RND요?”
─네. 제 발음이 안 좋았나요? 아알. 에엔. 디이.
허민우는 어색하게 혀를 굴리며 강조했다.
RND라니.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
또 이게 이렇게 재미있게 돌아가나?
RND는 고상준이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 아니던가.
원래의 미래대로라면 ICIJ를 통해 내년쯤 폭로될 페이퍼 컴퍼니 중 하나라,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최종현에게 ICIJ에 가입해 보라고 한 상태다.
그래서 그는 ICIJ에 어필할 수 있는 스크랩과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중이다.
심지어 ICIJ는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진 기자를 원하는 모양이라, 그는 뒤늦게 영어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험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최종현은 영어를 꽤 잘하는 것 같았으니.
“그렇군요. RND……. 반갑네요. 그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고상준은 KDL컴퍼니와 L&B를 들켰던 과거를 생각하며 이번에는 더 많은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서 RND의 주식을 나눠 놓는 방법으로 혼란을 주려고 했다.
결국 그 RND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페이퍼 컴퍼니 역시 고상준의 것이기에 우리 입장에선 크게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아마도 고상준은 여러 페이퍼 컴퍼니 중 RND는 들키더라도 마지막으로 들킬 거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장기 매매는 그들이 가장 감추고 싶은 사업 중 하나라, 그런 의미에서 해당 사업을 RND 명의로 진행한 것이고.
그렇기에 오카시마 병원이 설립된 토지도, 지금 허민우가 발견한 이 병원의 토지도 전부 RND의 이름으로 매입했을 터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RND는 그냥 토지 임대업을 하는 것으로 보일 것 아닌가.
공교롭게도 그 토지들에 병원이 두 개나 있지만 말이다.
─왜 그러십니까? 아시는 데예요?
“아, 모르셨던 걸 보면 허 경위님께는 아직 공유가 안 된 건이었나 봅니다. 하긴, 파일 정리를 아직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겁니다. 허 경위님이 파악하기 편하게 자료를 편집하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그간 최 기자님도 이것저것 서류 준비하느라 바쁘셨을 거라.”
─예? 그, 제가 RND라는 회사 등기부등본을 떼 봤을 때는 크게 이상한 점을 느끼진 못했는데요. 아, 등기부등본 떼 본 것도 첨부했으니 보시면서 말씀 나누시죠. 다 영어긴 하지만 해석하는 데 무리는 전혀 없으실 테고.
“RND 등기부등본은 저도 갖고 있습니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있는 회사 맞죠?”
─아, 네. ……잠깐, 설마 고상준 겁니까?
“맞습니다.”
장기 매매가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오카시마 병원, 그리고 장기 매매를 위해 준비된 듯 보이는 한국의 알 수 없는 장소.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