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14)
너희들은 변호됐다-514화(514/641)
─고상준 거 맞다고요? 증거도 갖고 계십니까?
“증거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입증할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김찬영이 갖고 있는 녹음 파일도 있고, ICIJ에서 곧 터트릴 예정이라 이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이네요.
“RND는 일본에도 유사한 시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카시마 병원 부지가 RND 소유거든요.”
─아, 그랬군요. 그럼 송주산 근처 그 시설도 병원이겠네요.
“아마 그럴 겁니다. 게다가 최재훈 씨가 남긴 블로그 일기를 보면, 딱히 이 장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만일 임현일이 병원 이외의 장소로 데려가서 뇌사 상태가 아닌 환자의 장기 적출을 지시했다면, 임현일이 장기 매매를 하는 거라고 확정적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최재훈의 일기에서는 ‘장기 매매단 하수인 아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병원 시설이 아닌 곳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아마 ‘딱 봐도 장기 매매하는 거네’ 같은 식으로 언급했을 것이다.
최재훈 역시 임현일이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갔으니 별다른 의심 없이 수술방까지 들어가지 않았겠는가.
병원 같지 않았더라면 못해도 ‘내 이럴 줄 알았다’라든가, 여러 방법으로 말을 붙였을 거라 생각한다.
짐작해 보자면, 대충 본인이 몰랐던 우신 계열 병원으로 생각한 게 아닐까.
─그렇네요. 그럼 우신이 설마 국내에서도 장기 매매를 시작하려고 한 걸까요?
“글쎄요. 그들이 장기를 불법적으로 공급받으면서 고상준한테 얼마를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태 일본 쪽 수요만 감당하며 지내 왔는데 별일 없이 잘 진행되니 발을 뻗쳐 보려는 게 아닐까 싶긴 합니다. 토지 등기부 등본을 보니 토지 매입도 작년 말에 이루어졌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그때부터 국내 수요를 충당해 보겠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장 계획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오카시마 병원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 맞는 것 같네요.”
오카시마 병원은 아무나 가서 진료받을 수 있는 일반적인 병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송주산 자락에 위치한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은 이렇다 할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만일 병원인 것처럼 보이는 걸 지었다면 이 지역에도 큰 병원이 생긴다며 기사 한 줄 나왔을 법도 한데, 찾아보니 그런 것도 없다.
지금 당장 고민해 보면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 내부를 직접 본 것도 아니라 소설 쓰기에 불과하다.
“아무튼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하셨네요.”
─고생은요. 그런데 저곳이 뭐 하는 데인지 미리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중에 영장 쳐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전에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설계도면 같은 걸 얻을 방법은 없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김찬영이 언제 RND의 주식을 보유한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받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약속받은 시점에서 그는 고상준의 큰 신뢰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찬영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도 더욱 많아질 테고, 그러다 보면 고상준이 본인의 사업에 대해서 좀 더 알려 줄지 누가 아는가.
─그렇게 될 수만 있으면 최고죠. 그런데 방법이 있을까요. 보아하니 구청에 설계도면도 제출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불법 건조물로 물고 늘어져서 밀고 들어가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순 있겠네요.
“대비해 놓지 않았겠습니까. 대충 전원주택 지었다고 신고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건축물대장 한 번 떼 봐야겠네요.”
─아, 건축물대장도 뗐습니다. 그건 17번 파일입니다.
내 주변에 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지만, 허민우는 그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필요할 것 같은 서류들을 전부 정리해서 보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역시 주택이네요. 건물 주인도 RND고요. 그럼 병원 간판을 걸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애초에 의료 시설을 짓겠다고 신고했다면 모를까.”
─네. 그래서 어쨌든 외관상 병원처럼 보이게 해 놓은 게 있을 텐데. 사소하게는 병원 간판이라도 하나 달려 있겠죠. 그러니까 그걸로 밀고 들어가자는 말이었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최재훈 씨 일로 영장 쳐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으니 그 부분은 차차 생각해 보시죠.”
아무튼 송주산 자락에 뭔가 병원 비슷한 걸 지어 놨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만 해도 큰 이득이다.
하지만 최재훈이 일기에 기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병원처럼 보이게 지었을 거라고 확정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진짜인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만일 정말로 병원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면, 건축물대장에 적힌 용도와 다르다는 점을 들어 ‘역시 수상하다’는 여론을 끌어내기에 상당히 적합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 한 건 한 건가요.
“엄청나게 큰 한 건 하셨습니다.”
─아, 이 맛에 강 변호사님이 그렇게 변호사님한테 칭찬을 받고 싶어 하나 봅니다.
“…….”
─하하. 추가적으로 필요하신 거 있으면 알려 주십시오. 그리고 저한테 아직 공유 안 된 거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RND 얘기 같은데. 그것도 정리되는 대로 같이 부탁드리겠습니다.
허민우는 전화를 끊었고, 나 역시 그사이 뜨끈해진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변호사님. 다 왔는데요.”
허민우와 바쁘게 통화하다 보니 어느덧 집에 도착했나 보다.
언제 주차까지 끝낸 건지, 태식은 시동을 끄며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으, 배고프다. 우리 밥 좀 먹어요. 변호사님 통화하는 동안 생각해 봤는데 역시 치킨을 시켜 먹는 게 좋지 않을까…….”
“태식아.”
“예? 왜요. 치킨 싫으세요?”
“지금 다른 차 키 갖고 있냐.”
“어, 지금 타고 있는 이 차 말고요?”
“응.”
“제 차 있는데요.”
태식은 맞은편에 주차된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게 좋은 차를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월급제로 전환된 이후 할부로 질렀다며 자랑했던 새 외제 차였다.
“잘됐다. 집에 올라갔다 오지 않아도 되겠네. 시승식 하자.”
“시승식이요? 아니, 차 뽑은 지 반년이 넘었는데 무슨 갑자기 시승식이에요. 그리고 어디로 갈 건데요.”
“국정원한테 가자. 얼른 가. 시승식.”
“……시승식이 아니라 그냥 차 바꿔 타고 싶은 거였네.”
“어쩌겠어. 강 변이 내 차를 폐차시켰고, 아직 새 차를 사 주지도 않았는데. 지금 내가 뭐 바꿔 탈 게 있어야지.”
치킨 먹을 생각에 꽤 많이 신나 있었던 건지, 태식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툴툴거리며 본인의 차 운전석에 올랐다.
“국정원한테 간다고 얘기는 해야 할 거 아닙니까. 퍼질러 자고 있을 텐데, 분명히.”
“그럼 일어나서 좀 치우고 있으라고 해.”
그러고 보니 국정원에게 특수 청소 좀 하라고 말했는데, 했을지 모르겠다.
그 말을 한 뒤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청구 금액을 아직 받아 보지 못했다.
* * *
“어. 여기 항상 쿰쿰한 냄새가 났는데 오늘은 안 나네요.”
국정원의 노래 주점 앞에 차를 대 놓고 지하로 내려가는데, 태식이 신기하다는 듯이 코를 킁킁댔다.
나 역시 국정원의 노래 주점으로 내려가는 길엔 층계참에 가득 쌓인 쓰레기봉투 때문에 힘들어했는데, 쓰레기봉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오히려 반짝반짝해 보이기까지 해서 놀라는 중이다.
“이 새끼 진짜 청소했나?”
태식은 그대로 뛰어내려 굳게 닫힌 노래 주점 문을 두드렸다.
“야! 형님 왔다! ……오, 문짝도 안 찐득찐득해요.”
문을 쾅쾅 두드렸던 손을 들여다보며 태식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 오시려면 좀 몇 시간 전에 미리미리 말하기. 몰라요?”
국정원은 눈을 비비며 문을 열었다.
원래 이렇게 문을 열면, 그 사이에서 또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곤 했는데 이번엔 무려 방향제 향기가 났다.
“아, 변호사님. 저 청소했어요.”
“그래서 놀라는 중이야.”
나는 노래 주점 안으로 들어가며 내부를 살폈다.
이렇게까지 깨끗할 수 있는 곳이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국정원 특유의 더러운 습관 때문에 쓰레기가 테이블 위에 방치되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병들 것 같은 느낌은 사라졌다.
“아무튼, 오늘은 왜요.”
국정원은 의자를 빼며 테이블 앞에 앉았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앉기 위해 의자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조금은 감격하고 말았다.
“뭐, 별건 아니고.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뭘 물어보시게요.”
“드론도 구할 수 있어? 촬영 가능하고, 중간에 추락하면 안 되고, 아주 높게 날아야 해. 아, 제일 중요한 거. 너무 크면 안 돼.”
“……드론이요?”
“왜. 국정원에서도 드론 날리잖아.”
“그렇긴 한데, 아니……. 저 댓글 부대였다는 거 잊으셨어요? 저번부터 도청기에 카메라에 다 구해 달라고 하시는데, 저 댓글만 달다가 퇴사했다고요.”
“근데 구했잖아.”
“아니, 뭐. 그렇죠. 하, 정말 유능한 걸 티 내면 손해 보는 세상이라더니 그게 딱 맞는 말이네.”
국정원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드론이 아니어도 된다.
굳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카메라를 장착한 미니 카 정도지만, 그건 적발될 확률이 너무 높아서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
2012년 기술로 만든 소형 드론이 얼마나 높게 안정적으로 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송주산 자락에 위치한 그 병원인지 뭔지를 살펴보려면 드론 이상으로 좋은 방법은 없어 보인다.
허민우가 찾은 그 쪽문으로 몰래 들어가 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
게다가 우리는 그곳을 샅샅이 뒤지는 걸 목적으로 삼은 게 아니다.
그냥 병원처럼 보이는지, 병원처럼 보일 목적으로 간판을 달아 둔 건 없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뭐라도 더 건질 수 있으면 좋고.
“어딜 찍으실 건데요.”
“그냥 못 들어가는 곳 대충 둘러보는 용도야.”
“그럼 들키면 안 되는 거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아주 높게 날아야 해.”
건축물대장에서 봤던 대로라면,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이었다.
그러니 못해도 5층 이상 높이의 상공에서 날 수 있어야 한다.
“흠, 한 20m 정도 상공이면 괜찮으려나요.”
“최소한이 그 정도지.”
“방송국에서 쓰는 헬리캠으로 될 것 같기도 한데…….”
“그건 좀 크지 않나? 아, 소음도 크면 안 돼.”
“흐으음. 몇 분 동안 촬영할 수 있어야 해요?”
“길수록 좋지만, 못해도 천 평 가까이 되는 대지라서. 반씩 끊어서 본다고 쳐도 한 번 충전으로 10분 이상은 봐야겠지.”
“가격은 상관없으시고요? 되게 비쌀 건데.”
“되게 비싼 게 얼마나 되는데.”
“뭐, 천만 원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이거 하나 보기 위해 천만 원 쓰는 건 아무리 경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나라고 해도 조금 부담스럽다.
하지만 필요한 작업이니까 감수해야겠지…….
“사는 거 말고 빌릴 수 있는지 알아볼게요. 대여비는 줘야겠지만.”
“그러면 빌려주는 사람이 내가 누군지 알려고 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제 신용으로 하는 거죠. 진짜 저 같은 팔방미인 만난 걸 다행으로 아세요.”
국정원은 툴툴댔지만, 이러면서 결국 해 줄 것을 알고 있다.
“네가 왜 팔방미인이냐. 할 거면 팔방미남이지. 근데 너는 미남도 아니잖아. 멸치 새낀데.”
“에휴, 무식아.”
조용히 있던 태식이 끼어들자, 국정원은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드론 조종할 줄 아는 사람도 필요하겠네요?”
국정원은 내가 말한 조건들을 정리하여 메모하며 물었다.
“너 할 줄 몰라?”
“……젠장! 할 줄 알아요. 하, 나는 왜 이런 것까지 할 줄 알지? 진짜 열받네.”
아무래도 국정원이 드론도 구해 오고, 촬영도 해 줄 모양이다.
내 주변에 일 잘하는 사람이 많아 다행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