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16)
너희들은 변호됐다-516화(516/641)
“당신.”
김미자는 갑작스러운 부름에 오다 사토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다 사토시는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
정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살 맞대고 사는 동거인과 나아가 요정에 관련된 모두를 속이고 있는 마당 아닌가.
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도청이 들킨 것은 아닐까.
아니, 설마.
만일 들켰더라면 진작 자신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폭력을 가했을 것이다.
머릿속에 난무하는 생각들을 가까스로 정리하며 김미자는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네?”
“오늘 오노데라 영감 외에 한 명이 더 와.”
“아, 그런가요? 어떤 분이 오세요?”
“한국에서 고윤수가 올 거야.”
김미자는 놀랐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도청했던 대로라면, 오늘 오는 사람은 고윤수가 아니라 고상준이어야 했다.
무언가 변동이 생긴 모양이다.
차주한에게 고상준 대신 고윤수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미리 전달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이곳으로 그와 연락할 때 쓰는 휴대폰을 가져오진 않았다.
“고윤수는 누구죠? 고씨면 우신 사람인가요?”
“……아, 당신은 모르나? 고상준 장남이야. 원래라면 지금쯤 부회장이 됐어야 했는데, 무슨 일 때문인지 똥물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눈치나 보고 있는 것 같던데.”
“그런가요. 어쩐 일로 한국에서 사람이 오나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는 거예요?”
그녀가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그러자 오다 사토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좋은 일은 아니지. 분위기가 꽤 심각해질 거야. 그러니까 다른 놈들은 방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해.”
“알겠어요. 당신한테 피해가 가거나 하는 일은 아니죠? 걱정이 되어서…….”
김미자는 바닥에 떨어진 오비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러자 오다 사토시가 그녀의 손에서 오비를 잡아채며 그녀를 제 앞에 세웠다.
그리고 오비를 허리에 둘러 주기 시작했다.
기모노를 입는 일에 숙련된 김미자에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작업이었는데, 오다 사토시는 매듭 부분에서 한참을 헤매는 듯했다.
“제가 할까요?”
김미자가 뒤를 돌아보며 묻자, 오다 사토시가 질렸다는 듯 오비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벗겨 보기만 했지, 입혀 보길 했어야 말이지.”
“……네.”
“나한테 피해가 갈지 안 갈지는 나도 몰라. 고상준한테 오노데라가 엄청 화가 났으니 잘 달래 줘야 한다고 말하긴 했는데, 지가 안 오고 고윤수를 보낸 걸 보니 느낌이 안 좋아.”
“고 회장은 왜 안 오는 거예요?”
“몰라. 지금 아파서 입원 중이라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게다가 아들놈은 일본어를 잘 못해서 통역사를 껴야 하는데……. 그 답답한 상황을 오노데라 영감이 견딜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
“직접 오노데라 의원님 비위 맞추기 싫어서 아들을 대신 보낸 걸까요?”
“그게 아니면 뭐겠어. 뭐, 그래도 고상준이 뒈지면 우신을 이어받을 놈이라니까 미리 기강을 잡는다고 생각하면 아주 나쁘지만은 않아.”
고상준이 죽으면 너희들도 이미 관짝에 있지 않을까, 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참았다.
오비를 다 묶은 뒤, 김미자는 미소 지으며 오다 사토시에게 조심스레 안겼다.
“다 잘될 거예요.”
“……그래야지. 아무튼 오노데라 영감 기분이 엄청 안 좋을 테니까 괜히 사소하게라도 실수했다가 책잡히면 당신도 나도 골 아파. 직원들도 웬만하면 영감 눈에 띄지 말라고 해.”
“……그럼 애들은요?”
며칠 전 방문 때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일본어에 익숙해졌으니 듣는 귀가 늘면 안 된다고 부르지 않았다.
그 덕분에 김미자는 안심했다.
처음에는 알레르기 핑계를 대며 아이들의 출입을 막았지만, 그다음부터는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하지만 오늘은 어떨지 가늠할 수가 없다.
“안 돼. 걔들도 듣는 귀잖아.”
다행히 오다 사토시는 바라던 대답을 해 주었다.
하지만 김미자는 내색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
“제가 직원들 조심시킬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리고 당신도 얼씬하지 마. 그 영감이 전부터 당신 보는 눈이 예사롭지가 않아. 남의 마누라 손목을 덥석덥석 잡아 대질 않나……. 돌아서 당신 자빠트리려 할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란 말이야.”
“그럴 리가요.”
이제는 혼인 신고도 하고 대외적으로 아내로 알려져 있는데도, 오다 사토시는 김미자를 조심스럽게 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만일 자신이 전처였다면 이런 언행을 했을까?
아마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고윤수는 6시쯤 올 거니까 그때까지 준비해. 기분 잡친 채로 올 테니, 당신이 한국어로 뭐라고 알랑거리면 그래도 좀 낫지 않겠어? 오노데라한테 한 소리 들으면 주제도 모르고 기분 나빠할 텐데, 어쨌든 관계는 중요하니까.”
“네. 노력해 볼게요.”
“아, 참. 그때 그 목걸이 예쁘던데. 그건 안 해?”
오다 사토시가 물었다.
김미자는 다시 한번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지만, 짐짓 모르는 체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목걸이요?”
“그 왜 있잖아. 녹색……. 녹색밖에 기억 안 나. 못 보던 건데, 예쁘더만.”
“아, 그거요. 동료 교수를 좀 도와줬는데, 고맙다면서 줬어요. 잘 어울리던가요?”
“동료 교수를 도와줬다고? 뭘 도와줘?”
“별건 아니고 전시 준비하면서 조금 도와줬어요.”
“그 사람이 당신한테 도와 달래? 교수 맞아? 미술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그것도 못 알아보고 당신한테 도와 달라는 것도 웃기네. 수준하고는.”
그의 말 기저에 깔려 있는 멸시의 기운은 어떻게 해도 걷어 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교수가 된 것부터 문제긴 하지만, 그렇게 만든 건 오다 사토시 아니던가?
애초에 자신에게 예의를 차릴 생각조차 없으니 저런 말이 시도 때도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거겠지만…….
“그러게요.”
김미자가 함께 웃자, 오다 사토시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방 밖으로 나갔다.
카메라 달린 목걸이인 줄도 모르고 예쁘다며 하고 나오라는 멍청이가 누군데.
그녀는 차디찬 비웃음을 흘리며 목걸이를 꺼냈다.
“사모님, 고윤수 대표가 도착했습니다.”
5시 50분이 되었을 무렵,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김미자는 앞뜰로 나가 보았다.
그곳에는 검은 세단 세 대가 서 있었다.
그녀가 나오기가 무섭게 가운데에 멈춰 있던 차에서 기사가 내려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고윤수가 내렸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김미자가 먼저 다가가 그에게 인사했다.
고상준은 이따금 한국에서 한자리한다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긴 했지만, 고윤수는 초면이었다.
여태 이 카메라에 얼굴이 담긴 사람 중, 차주한이 가장 반길 만한 인간이었다.
고상준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고윤수도 나쁘진 않다.
김미자는 카메라의 각도가 잘 맞기를 바라며 고윤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저는 이곳 경영을 맡고 있는 오다 토미코라고 해요. 처음 뵙지요?”
김미자가 방긋방긋 웃자, 고윤수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곁에 서 있던 사람과 잠시 속닥대며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그 끝에 피식 웃었다.
자격지심일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을 들은 모양이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듣던 대로 아주 아름다우십니다.”
나름대로 칭찬이랍시고 하는 말이겠지만, 그의 시선에서도 오다 사토시를 비롯한 이곳 ‘고객’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눈빛과 같은 감정이 읽혔다.
악수조차 청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과는 손도 닿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긴, 악수를 요청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김미자가 방긋방긋 웃자, 고윤수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곁에 서 있던 사람과 잠시 속닥대며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그 끝에 피식 웃었다.
자격지심일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을 들은 모양이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듣던 대로 아주 아름다우십니다.”
나름대로 칭찬이랍시고 하는 말이겠지만, 그의 시선에서도 오다 사토시를 비롯한 이곳 ‘고객’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눈빛과 같은 감정이 읽혔다.
악수조차 청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과는 손도 닿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긴, 악수를 요청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악수를 요청할 땐, 주무르거나 손등을 슬쩍 쓸어 보는 등의 기분 나쁜 움직임이 뒤따랐으므로.
“감사해요. 아, 오노데라 의원님은 아직이신데……. 괜찮으시다면 이곳 구경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뇨, 됐습니다.”
고윤수는 차갑게 일축하고는 김미자가 걸어 나왔던 곳을 가리켰다.
“저깁니까?”
“아, 그럼 바로 안으로 드시겠어요? 아, 그 전에……. 타카하시 씨, 고 대표님께 소지품 체크 안내해 드려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직원이 앞으로 나와 고윤수 곁에 서 있던 통역사이지 싶은 사람에게 몇 마디 건넸다.
그 말에 고윤수는 순순히 품에 지니고 있던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금속과 전파 탐지기 확인까지 받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리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고윤수도 이곳에 오기 전에 고상준에게 여러 가지 경고를 들었을 테니, 기분 좋아 보이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이쪽이에요. 오노데라 의원님 오시기 전까지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오다 의원님은 언제쯤 오실 것 같습니까.”
방 안에 좌정한 고윤수가 물었다.
김미자와 집에서부터 함께 왔으니 오다 사토시는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존심을 세우느라 고윤수를 기다리게 하려는 것 같았다.
김미자는 난감한 듯 웃으며 말했다.
“업무를 보느라 조금 늦으실 모양이에요. 무료하시면 제가 말동무를…….”
“됐습니다. 굳이…….”
그는 김미자와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을 물고 늘어져 봤자 좋을 건 없다.
“차는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직원과 얘기하고 싶으니 자리 좀 비켜 주시죠.”
어쩔 도리가 없다.
김미자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에게 물도, 차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 당장부터 직원과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잠자코 눈을 감았다.
오늘 그들은 분명 오노데라 손자의 수술을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덤프트럭 운전수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오노데라는 고상준의 안일한 진행을 비난하며 고윤수에게 수모를 줄 모양이다.
오늘 도청기에 담길 내용은 여태까지 이곳에서 엿들은 이야기 중 가장 값진 것일 터다.
얼른 차주한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손발이 오싹오싹하기까지 했다.
* * *
8시가 되자 오노데라가 요정에 도착했다.
고윤수가 기다린 지 2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오노데라가 왔다는 소식에 마치 오지 않은 것처럼 방에서 혼자 장기를 두던 오다 사토시도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고윤수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갔다.
“당신은 자리 좀 피해 주지. 부를 때까진 아무도 얼씬 못 하게 해.”
그들을 방으로 안내하는 것까지가 김미자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미련도 없는 듯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복도를 가로질러 사라졌다.
오다 사토시는 오노데라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고윤수라고 합니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고윤수가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러자 통역사 역시 빠르게 일본어로 고윤수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고윤수는 허리를 제법 많이 굽혔고, 그 자세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오노데라는 마뜩잖은 눈치였다.
그는 혀를 차며 맞은편에 앉았다.
“자네는 일본어를 못하는가?”
그리고 턱을 묘하게 치켜든 채 물었다.
고윤수는 오노데라의 말을 전달받은 후, 정중히 대답했다.
“배울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무례를 범하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실력 있는 통역사를 데려왔으니 의사소통에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쯧. 그러게 내가 고상준이하고 말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일본어도 못하는 친구랑 무슨 얘기를 한다고……. 말을 옮기느라 불편하기만 하지.”
“외람된 말씀이지만, 아버지가 지병인 고혈압 때문에 얼마 전에 쓰러지셨습니다. 현재 입원 중이라 의원님들을 직접 찾아뵙지 못한 점에 대하여 대단히 면구스럽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드리고 싶은 말씀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전해 받았으니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자네 아버지가 뭐라고 하던가. 내가 통화했을 땐 자네 아버지는 딱히 나와의 인연에 미련이 없어 보이던데. 그 변호사 놈이 좀 설친다고 겁쟁이처럼 숨어서는. 나와 했던 약속을 제대로 지킬 생각도 없었잖나. 아니야?”
“그럴 리가요. 저희가 얼마나 의원님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의원님께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다면 저희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겠지요. 하지만 결단코 의원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손자분의 상태가 한시라도 빠르게 심장이식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전달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시기를 앞당기려다가 의원님께 괜한 위험을 안겨 드리게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금 더 좋은 시기를 정해 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한시라도 빠르게 심장이식을 받아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고? 허!”
고윤수는 차분히 대답했지만, 오노데라로서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쳤다.
“자네! 자식이 있으면 알 거 아니야! 어린 손주가!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할딱거리는 걸 보는 게! 얼마나 마음 아픈 줄 알아?!”
“물론 저도 자식 가진 입장에서, 의원님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아시겠지만, 저희 집안 역시 심장 기형이 유전이라, 막냇동생이 고생하는 것도 지켜봐 왔고요.”
“그런데도 급하지 않다는 말을 해?”
“제가 실언했습니다. 다만 모든 것을 마음 놓고 진행할 수 없는 시기인데, 아주 위급한 상태가 아닌데도 모험을 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뭐?”
오노데라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그럼 내가 어리석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이 말이야?”
“……그런 뜻은,”
“됐어. 듣기 싫네! 내가 오늘 기회를 준 건, 고상준에게 같잖은 변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야! 너희들이 얼마나 나와 내 손자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는지! 일 처리를 멍청하게 한다는 걸 알고는 있는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오노데라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통역사는 고윤수에게 재빠르게 그의 말을 전달했고, 고윤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면목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저를 보낸 까닭도 의원님께 제대로 사죄드리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변명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고윤수가 고개를 숙이자, 오노데라는 그의 뒤통수를 보며 콧방귀를 꼈다.
그리고 곁에 앉아 있던 오다 사토시를 향해 물었다.
“오다 의원님. 설마 조선 반도 사람들은 사과할 때 고개나 숙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설마요. 이렇게까지 화나게 했으면서 고작 고개나 숙이고 말 리가요.”
통역사는 그들의 대화를 고윤수에게 전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듯했으나, 오다 사토시는 통역사를 향해 눈짓했다.
얼른 자신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 주라는 뜻이었다.
통역사는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고윤수에게 그들의 말을 해석해 주었다.
그러자 고윤수는 놀란 듯 통역사를 바라보았다.
통역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릎을 꿇으라는 것 같습니다. 일본어로는 도게자라고 하는데……. 일본인들이 사죄할 때 취하는 행동입니다.”
“씨발, 무릎을 꿇으라고?”
그리고 고윤수는 기가 막힌다는 듯 통역사에게 물었다.
물론 여전히 고개를 숙인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들리지는 않았다.
통역사는 거듭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고윤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야 아프지도 않은 아버지가 왜 입원했다고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건지 깨달았다.
이들은 무릎 꿇고 사과하길 원할 테고, 그렇게 해야 상황이 좋아질 거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본인은 그들 앞에서 무릎을 꿇기 싫으니, 아들에게 대신하라 보낸 것이다.
하지만 고윤수는 거부할 수 없었다.
만일 이들의 화를 풀지 못하고 돌아가면 아버지는 분명 불벼락을 내릴 게 분명했다.
“…….”
고윤수는 입술을 깨문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덜덜 떨리는 무릎을 한쪽, 한쪽 무너트리듯 접으며 꿇어앉았다.
그리고 포갠 손 위에 이마를 얹으며 말했다.
“……면목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