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2)
너희들은 변호됐다-52화(52/641)
본래 타 지역에 살던 박진철의 가족은, 그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일부러 학군 좋은 이 지역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박진철의 아버지는 명망 있는 대학교수로, 집안은 꽤 넉넉한 모양이었다.
부모는 아들의 기를 살려 주기 위해, 이 지역에서도 값비싸기로 유명한 그랜드펠리스 아파트에 입주했다.
또한, 전학 온 후 친구들과 잘 어울리라며 용돈도 넉넉하게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 박진철은, 부모의 바람대로 괜찮은 친구들을 만나 잘 지냈던 모양이다.
박진철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학생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전교 1등의 수재 이혁민의 무리였다.
게다가 이혁민의 어머니는 학부모회에서도 몇 번 만나 면식이 있었고, 집안도 좋아 그녀는 안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벌어졌다.
“어느 날, 진철이가 용돈을 올려달라고 하는 거예요.”
박진철의 모친은 이마를 짚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역시 그 말을 시작으로 조금씩 이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알 것 같았다.
“이미 충분히 용돈을 주고 있는데도, 더 달라고 하니까……. 있는 집 애들이랑 어울리느라 그러는가 보다 하고 그냥 줬죠.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겉옷을 잃어버렸다, 신발을 잃어버렸다, 갖고 있는 좋은 것들은 죄다 잃어버렸다고 하더라고요.”
빼앗긴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일은 내 어린 시절에도 비일비재했다.
흔히 말하는 ‘무서운 형’들이 괜찮은 브랜드의 신발을 뺏어 가고 본인이 신고 있던 짝퉁 신발을 벗어 주는 일 말이다.
“뭔가 이상해서 담임 면담도 갔어요. 근데 잘 지낸대요. 친구들도 진짜 성실하고 괜찮은 애들이고, 수업 태도도 좋고. 아무 문제 없다고 그러니까, 할 말이 없잖아요. 애한테 물어보면 자존심 상할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속만 썩다가……. 흐흑.”
모친은 가슴을 두드리며 울음을 토했다.
공감 능력이 대단한 강민재는 벌써부터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있었다.
“아이고……. 어머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습니다.”
그는 곁에 놓인 휴지를 그녀에게 건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부친 역시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메인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느 날은, 그 많은 용돈을 혹시 뺏기고 오는 건 아닐까 해서 용돈을 일부러 조금 줘 봤어요. 애가 난리를 피우면서 올려 달라고 하는데도, 무시하고 그냥 조금 줘 봤는데……. 흐흑, 흐흐흑.”
침착하고 말을 이으려던 그녀가 다시금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더는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이번에는 부친이 나섰다.
“애가 평소에 집에서는 반팔에 반바지만 입고 다니는데, 어느 날부터는 갑자기 긴팔, 긴바지를 입는 겁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혹시나 해서 팔이며 다리며 걷어 봤더니,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부친의 말에 강민재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명확한 폭력의 증거였다.
용돈이 넉넉하지 않으니 그들에게 줄 돈도 줄어들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그것이 폭력으로 이어졌을 터였다.
“멍 사진은 찍어 두셨습니까?”
“……아뇨. 애가 하도 난리를 피워서 겨우 보기만 했지, 그걸로 뭘 하진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천천히 진단서를 떼 놓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 그러니까 2008년 당시만 해도 학교 폭력은 이따금 언론에서 다룰 뿐 대단한 해결책이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살던 2018년에는, 이부분이 점차 조명되면서 실질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를 보살펴 주는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른바 ‘문신 삼촌’이 통학 시간내내 곁에 붙어서 괴롭힘 당하지 않게 도와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태식의 사무실에서 해 주는 일도 이 ‘문신 삼촌’인 것 같은데…….
“그러면, 진철 군을 폭행하는 게 누구인지는 알아내셨습니까?”
내가 묻자, 조금 진정한 모친이 말을 이었다.
“애는 끝까지 말 안 해요. 안 하는데, 원래는 학교 다녀오면 혁민이랑 뭘 했고, 혁민이랑 뭘 먹었고, 그런 얘기를 하던 애가 하나도 안 하는 거 보면……. 그 혁민이라는 애랑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그, 전교 1등에 집안도 괜찮다던 그 친구 말입니까?”
강민재가 놀란 듯 말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일진이라 하면 대부분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
집안 환경도 좋지 못하고, 부모의 무관심 속에 자라나 다른 학생을 괴롭히며 즐거움을 찾는 비행 청소년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야, 이제 고3을 앞둔 상황이니 학업에 열중하기도 바쁠 때라 생각되기 마련이다.
“모르겠어요. 그 혁민이라는 애랑 틀어지면서 같이 어울리던 애들이랑 다 틀어진 건지, 어쩐 건지. 근데 용돈을 주면 그걸 다 뺏기고, 안 주면 맞고 오고……. 애는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정말 아무 말도 안 했습니까?”
내 물음에 부부 모두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이전에 사인이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학교 가기 싫다거나, 다시 전 학교로 돌아가면 안 되냐 거나……. 그 시기의 남학생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본인이 학교에서 그런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을 겁니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하긴 했어요. 근데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다고 생각했었죠. 근데 말씀하신 대로, 애가 맞고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래서 그런가 잠깐 생각하긴 했었는데…….”
“진철 군이 폭행당하는 일이 잦았습니까?”
내 물음에 모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많은 것을 되돌아봐야 할 때였다.
그들도 분명 아들이 언제부터 따돌림을 당했을지, 대체 왜 급우 관계가 그 지경에 이르렀을지 몇 번이나 고민해 보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박진철이 직접 그 입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면, 사실 여기서 추측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의 침묵 끝에, 부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축구 하다가 다친 거라고 했잖아요.”
모친이 말했지만, 부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 모르잖아. 애는 축구 하다가 다쳤다고 하는데, 다리도 부러지고 얼굴에도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혁민이랑 다른 애들이 병원에 데리고 와 줬는데 무슨 말이에요.”
모친이 부친을 나무랐지만, 나는 부친의 지적이 맞다고 생각했다.
만일 혁민이라는 학생이 정말로 왕따 주동자라면, 이미 그 학생은 학교 생활부터 면밀하게 계산해서 완벽하게 잡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지 않고서야 전교 1등을 유지할 리도, 교사들 사이에서 평이 좋을 리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마침 집안도 괜찮고, 전교 부회장까지 맡고 있다고 하니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편일 것이다.
그런 학생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이 진철을 따돌리고 있다는 것을 진철 본인조차도 알지 못하게 속이며 조롱해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를 다치게 하고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 병원에 데리고 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아마도 그 학생에게서는, 이미 진철이 어머니에게 일러바치지 않을 거라는 파악이 끝났을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드러난 폭행이 그 정도라면, 아마 진철 군이 당했을 정신적 폭력이 더 많았을 것 같군요. 또 진철 군이 몸을 가리는 걸 보면, 폭행도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모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태식 쪽으로 옮겼다.
“그래서 여기다가 애 뒤를 좀 봐주라고, 등굣길이나 하굣길에라도 별일 없었으면 해서 일을 맡긴 건데……. 한동안 무섭게 생긴 삼촌이 따라다니니까 안 그러는가 싶더니, 이번에 애가 또 맞고 왔다잖아요!”
“진철 군은 처음에 무섭게 생긴 경호원을 붙여 주겠다고 했을 때,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끝까지 맞고 온 것이 아니라고 우기던 박진철이 거절하지 않은 까닭은, 자신 혼자 자존심 하나로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폭력의 정도가 지나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신 삼촌’이 학교 안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니, 학교 안에서는 어떤 모욕을 당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진철 어머님. 저희 변호사들이 드릴 수 있는 조언은 진철 군을 괴롭힌 학생들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시라는 말씀뿐입니다.”
사실상 이 상황을 끊어 낼 수 있는,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법적 처벌이요? 그게 가능합니까?”
부친 역시 놀란 듯이 물었다.
학교 폭력은 대개 학생들끼리의 문제로, 청소년의 분쟁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일이 잘 없던 이 시기에는 그럴 만한 일이었다.
청소년이 처벌받는 일이라고는 일진들이 저들끼리 패싸움을 하다 붙잡혔다거나, 조직 폭력배의 하수인이 되었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을 때가 아니던가.
“가능합니다. 어쨌든 진철 군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받은 것이 사실이고, 폭력을 당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우선은……. 진철 군의 생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진철 군은 다시 전학 가고 싶어한다고 하셨죠?”
강민재의 물음에 모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전학 온 지 몇 달 만에 다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철 군에게 가해자 처벌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또 그밖에 정신적인 폭력을 당한 적은 없는지도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도 없이 물어봤는데, 한 번도 대답한 적이 없어요. 진철이가 말하려고 할지 잘 모르겠네요.”
모친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기 계신 두 분께도 법적 절차를 밟으실 생각이 있으신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아직 진철 군이 미성년자다 보니, 모든 과정을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진행하셔야 하니까요.”
강민재는 쉽사리 말을 덧붙이지 못했다.
언제나 영업 사원처럼 뛰어다니던 그도, 막상 아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는 부모 앞에서는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학교 폭력 가해자를 법정에 세운다는 발상 자체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일단 집에 가서 애 아빠하고 더 상의해 보고, 그다음에 결정할게요. 진철이 얘기도…….”
“진철 군에게는 아직 말씀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째서요?”
“두 분께서 법적 대응하는 것을 망설이듯이, 아직 청소년인 진철 군한테도 법적 대응은 먼 이야기일 겁니다. 그건 두 분께서 결정하신 뒤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결심하신다고 해도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게다가 지금 가해자로 가장 의심되는 이혁민이라는 학생이 교사에게도 인정받을 만큼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면, 거기에 전교 부회장이기까지 하다면 학교의 협조를 받기 어려울 공산도 컸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인 만큼,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진철에게 벌써부터 알려 좋을 것이 없었다.
“우선 진철 군이 또 폭행을 당하고 들어 오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 장 대표?”
갑자기 다른 호칭으로 불린 태식은, 자신을 부르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예, 당연합니다. 저도 직원에게 따끔하게 주의 주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직원을 교체하겠습니다.”
“직원을 교체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직원이 바뀌면 진철 군도 불안해 할 것 같아서요. 마음 불편하시겠지만, 장 대표 한번만 더 믿어 주시죠.”
내가 태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두 사람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단 믿어 볼게요.”
“그럼,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시는 대로 연락 주십시오.”
대화가 마무리되는 분위기에 이르자, 강민재가 그들에게 나와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언제 내 명함까지 가지고 다녔는지 물어볼 틈도 없이, 모친은 명함을 받아서 가방에 넣었다.
“주차장까지 모시겠습니다.”
태식과 직원들이 건물 입구까지 부부를 배웅하러 간 동안, 사무실에는 나와 강민재만 남았다.
평소 같았으면 또 사건이 들어 왔다고, 게다가 의뢰인이 잘 사는 집이라 다행이라고 신났을 강민재도 이번에는 꽤 숙연한 분위기였다.
그는 한참의 침묵 끝에,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진철이 참 안됐네요.”
“그래도 부모가 방치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네. 그런데 공부도 잘하고, 교사들한테 평도 좋은 학생이 학교 폭력이라니, 너무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말 돼. 확실한 건, 그런 학생들이 더 무섭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