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20)
너희들은 변호됐다-520화(520/641)
원장은 눈에 띄게 동요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손끝도 떨리고 있었다.
김현종은 한숨을 쉬며 노트북을 덮었다.
원장은 잠시 멍하게 그를 바라보다, 곧 정신을 차린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영상을 가지고 있었으면 왜 미리 말하지 않은 거예요? 그리고……. 그 안경 대체 뭐예요? 카메라예요? 카메라면, 여태까지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허락도 없이 찍어 온 거예요? 그거 불법인 거 알죠?”
원장은 다시 김현종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그는 원장이 이렇게 나올 거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차분히 대답했다.
“처음 질문부터 답변드리자면, 원장 선생님과 성숙한 대화가 가능할 거라고 기대하면서 우선 상황 설명부터 드린 뒤에 보여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원장 선생님은 쭉 폭언을 하셨고, 제 말을 들을 생각도 없으신 것 같아서 쫓겨나기 직전에 보여 드리게 된 겁니다.”
김현종이 원장의 발언을 폭언으로 규정하자, 원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처음 원장이 그의 교사 자격을 운운하며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듯이, 김현종 역시도 그녀가 자신에게 폭언한 증거를 안경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남겨 놓았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냈다.
“그리고 이 안경은 카메라가 맞고, 카메라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또, 카메라로 촬영하는 건 불법이 아닙니다.”
“불법이 아니라뇨?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의 허락도 없이 촬영했는데, 어떻게 그게 불법이 아니에요? 뻔뻔해도 정도가 있지!”
“물론 촬영의 의도가 불순하고, 또 촬영물 역시 그렇다면 당연히 불법입니다. 하지만 제 카메라에 특정 신체 부위나 사적인 장면이 담긴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방송국에서 동의 없이 행인이 가득한 거리를 촬영하는 것도 불법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또, 촬영물이 문제가 되려면 제가 이 영상을 어딘가에 게시해서 초상권을 침해해야 하는데, 아직 그러진 않았습니다. 만일 이 영상을 올리게 된다고 해도, 얼굴에는 모자이크 처리를 할 겁니다.”
김현종은 한 번 더 밀어붙였다.
그 말을 들은 원장은 김현종의 안경 카메라에 무엇이 담겼을지를 떠올려 보았다.
일단 성윤이 자해 행동을 하는 모습이 찍혔다는 것은 확인했고, 그 뒤로 자신이 김현종을 일방적으로 아동학대범으로 몰아가며 폭언을 퍼붓는 장면도 들어갔을 것이다.
만일 김현종이 이에 앙심을 품고 그의 말대로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 처리까지 해서 인터넷에 영상을 올리면 어떻게 될까.
“물론 원장 선생님도 저희를 쫓아내기 위해 건수 하나 잡히기를 기다리시다가 이때다 싶은 마음으로 저를 몰아붙이신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저와 성윤이가 즉시 분리되도록 하는 게 맞죠. 하지만 방금 보여 드린 영상으로 제가 성윤이를 때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셨잖아요. 그런데도 저희 동아리 전체가 봉사 활동을 중단해야 하나요?”
원장은 이마를 짚었다.
이런 상황은 예상해 본 적도 없는 모양이었다.
김현종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원장은 벌떡 일어나 등을 보인 채 원장실을 한동안 걸어 다녔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그녀는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김현종 씨가 성윤이를 때리지 않았다는 것도 알겠고, 성윤이가 자해 행동을 벌였다는 것도 알겠어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상황일수록 그만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세한 얘기는 동아리 회장하고 할 테니까, 김현종 씨는 그만 나가 주세요. 동아리를 계속 받든, 안 받든, 어차피 김현종 씨하고만 얘기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요?”
“……이유를 여쭤봐도 되나요?”
“그 이유도 동아리 회장한테 말할 테니까 그만 돌아가 줘요. 동아리 회장이 여기로 오고 있다고 하니까, 우리 입장 전달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이야기를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라 더는 원장실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다.
김현종은 가방에 노트북을 넣고 원장실 바깥으로 나왔다.
“오빠!”
행정실 밖으로 나오자 봉사자들이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 오빠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는데…….”
“들었어. 이제 우리 보고 그만 나오라고 할 것 같은데.”
“아니, 대체……. 어떻게 얘기된 거야? 오빠 절대 안 그랬잖아.”
“안 그랬지.”
“그럼 성윤이가 맞은 흔적이 있긴 했던 거야?”
김현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만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성윤이 자해 행동을 했다는 걸 모두가 아는 걸 원치는 않았다.
“네가 안 때렸다는 증거 영상은 있지? 보여 줬어?”
김현종이 대답하지 않자, 그의 의사를 알아차린 듯 다른 봉사자가 물었다.
“어. 그래서 이 정도로 끝났지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다.”
“갑자기 왜 촬영을, 그것도 몰래 하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됐는데……. 회장 오빠는 이런 일이 있을 걸 미리 알았나?”
김현종도 알 수 없었다.
저번 주부터 갑자기 천사의 집 교육 봉사 팀장이 안경이나 시계처럼 보이는 카메라를 나눠 주며 봉사 시작 직전에 꼭 패용할 것을 당부했다.
왜냐는 질문에는 ‘요즘 세상이 무서워서 언제 어떻게 문제 생길지 모른다고 회장이 앞으로는 꼭 하고 들어가래’라는 말로 짧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촬영을 시작하고 고작 일주일 만에 카메라가 없었다면 큰일이 났을 법한 상황이 생길 줄은 몰랐다.
“모르지, 뭐…….”
“아, 근데 카메라 없었으면 진짜 뭐 될 뻔했다. 회장 오빠가 천사의 집 안에 못 있겠으면 근처 카페 같은 데서라도 기다리라는데, 어떻게 할래?”
“놀이터에서 기다릴까. 어차피 애들도 곧 밥시간이고, 우리 잘못 없는 거 지들도 아는데 억지로 나가라고는 못 할 거 아니야.”
“그래. 또 회장 혼자 오는 건지 누구랑 같이 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오는 거면 우리도 같이 들어가야 할 수도 있잖아.”
김현종은 동아리 회장의 선구안을 찬양하는 봉사자들과 함께 놀이터로 향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메시지를 입력했다.
[변호사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저는 괜찮아졌어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원장이 저한테 폭언하는 모습도 담았고요. 나머지는 회장하고 얘기한다고 해서 저희는 나왔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메시지가 좀 두서없었는데,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발신 버튼을 누른 뒤, 김현종은 그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차주한 : 김현종 학생 맞습니까? 동아리 회장에게 연락받고 메시지 보냅니다. 차주한 변호사입니다. 통화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요.김현종 : 아네 안녕하세요 회장ㅎ나테 연락받았습니다… 상황을 어디까지 전해들으셨는ㄴ지 모르겠는데 학생이 저한테맞았다고 거짓말로 주장하고있고,원장이 애기좀하자고해서 원장실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일이커지면 제가 곧 ㅈ로업이고 임고도 준비해야하는데 문제가생기지않을까 싶어서 무섭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되는 대로 썼는데, 이제 보니 차주한 변호사가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그땐 너무 마음이 급해 이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다시 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차주한 : 영상 촬영은 해둔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학생이 그 아이를 때린 게 아니라, 그 아이가 자해 행동을 보였다는 증거가 명백히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천사의 집에서도 말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학생을 정말로 신고하거나 고소하는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하진 않을 겁니다.김현종 : 법적조치를 취할지 안취할지 어떻게 아나요…?
차주한 : 그건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마 원장은 학생을 무조건 아동학대범으로 낙인찍은 상태로 대화하려고 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 모습까지 카메라에 모두 담아야 합니다. 원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안경이 카메라였다는 걸 알리면 안 됩니다. 원장이 무리하게 학생을 아동학대범으로 몰아가려는 모습이 담겨야 나중에 1%도 안 되는 확률로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김현종은 차주한 변호사가 이 일의 당사자를 ‘우리’라고 표현해 줘서 크게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일이 커지면 자신을 도와줄 변호사가 있다는 뜻 아닌가.
게다가 차주한 변호사는 천사의 집이 이 일을 키우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해서, 그 점 역시도 안심이 되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변호사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현종 : 바로 영상을 보여주지 않고 일단은 대화를 하라는 말씀이신거죠? 저는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는 건가요..?차주한 : 네. 원장이 원만하게 대화로 풀려고 하면 다행이겠지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원장은 이 일로 학생들을 천사의 집에서 내쫓으려고 할 겁니다. 그 이야기까지 나오면, 그때부터는 논리적인 대화가 아예 불가능할 테니 영상을 보여주세요.
김현종 : 네 알겠습니다… 근데… 저희가 회장이 불법아니라고 해서 촬영을하긴 했는데 정말 문제없는거 맞나요? 만일 촬영했다는걸 원장이 알면 또 그걸 문제삼을까봐요…]
카메라를 나눠 줬던 팀장에게 다른 학생들이 이미 질문한 사항이긴 했다.
그때 팀장이 대충 설명을 해 주었지만, 막상 촬영물을 보여 줄 일이 생기니 불안해졌다.
[차주한 : 불순한 의도로 촬영해서, 그 결과 사적인 장면이나 특정 신체 부위가 담긴 게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또, 초상권 침해라며 걸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해당 영상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게시한 이후에나 발생하는 문제고, 민사 소송을 통해 다툴 영역이라 마찬가지로 범죄가 아닙니다. 해당 법 조항이 궁금하면 곧 찾아서 보낼 테니, 혹시 원장이 이 점을 걸고 넘어지면 그대로 말하세요.]고작 10분 남짓 주고받은 대화였지만, 이것만으로 김현종은 훨씬 안정된 상태에서 폭언을 쏟아붓는 원장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김현종은 차주한의 답장을 기다리면서, 그의 이름을 포털에 검색해 보았다.
소식을 들은 회장이 아는 변호사님에게 연락해 두었으니 그분이 도움을 줄 거라고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차주한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조차도 그의 이름을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이제 보니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기도 한데, 설령 처음 듣는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싶었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면 미담이라도 뿌려서 소소한 도움이라도 줘야 하지 않겠는가.
“헐, 뭐야.”
그리고 그는 검색 결과에 주르륵 나오는 수많은 보도자료를 보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 사람이었어?
“너네 혹시 차주한 변호사 알아?”
“차주한 변호사? 그게 누구야.”
“어, 나 알아. 뉴스에 한동안 엄청 나왔는데. 그 이정찬 살해범으로 누명 썼던 사람이잖아.”
“아, 맞다. 내 기억이 맞으면 되게 잘생겼던 것 같은데.”
“맞아. 우리 엄마가 뉴스에 나온 거 보고 변호사 할 얼굴이 아니라고 했었어. 그러니까 아빠가 기생오라비 같은데 뭐가 잘생겼냐고 함. 누가 봐도 존나 잘생겼는데, 아빠는 괜히 열폭함. 크크크.”
다른 봉사자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역시 차주한 변호사라면 그 사람이 맞는 것 같은데.
혹시 동명이인인가 싶어 검색을 더 해 봤지만, 차주한이라는 변호사는 한 명뿐이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을 회장은 어떻게 아는 거지…….
“우리 동아리 후원해 주시는 갓종현 기자님하고도 친분 있지 않나? 그래서 개인적으로 친밀감 느끼고 있었는데.”
천사의 집 교육 봉사 팀장이 한마디 보탰다.
회장이 최종현에게 SOS를 치고, 최종현이 차주한을 연결해 준 모양이었다.
“얘들아!”
그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동아리 회장이었다.
“어, 회장 형이다!”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 오래 기다렸어?”
“아니야. 별로 안 기다렸어. 형 숨넘어가겠다.”
그는 놀이터 앞에 모여 있는 봉사자들을 향해 달려왔다.
“현종아, 많이 놀랐지? 괜찮아?”
그리고 현종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어, 괜찮아. 괜히 나 때문에 이상하게 일이 터진 것 같아서 미안하네.”
“그게 왜 너 때문이야. 너 괜찮으면 같이 들어가자. 당사자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불편하면 안 들어가도 돼. 그럼 그냥 팀장이랑 갔다 오면 되니까 부담 갖지 마.”
“아니야. 당사자 빼고 얘기하는 것도 불편하지.”
여태까지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작은 트러블은 여러 번 겪어 봤지만, 이렇게까지 사이즈가 큰 일은 처음이다.
회장 역시도 꽤 긴장했으나,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차주한 변호사가 이것저것 얘기해 준 것도 있고 하니 정말 상황이 안 좋아지면…….
그땐 도와주지 않을까?
믿는 구석이 있고 없고는 꽤 중요한 문제다.
물론 최종현 기자에게 워낙 크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도움을 청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