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21)
너희들은 변호됐다-521화(521/641)
“제가 동아리 회장하고 얘기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요?”
행정실 앞까지 도착하기가 무섭게 원장이 문을 열고 나왔다.
혹시 지켜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빠른 반응이었다.
원장의 말투도 그러하거니와, 비언어적 표현에서도 적대감이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팔짱을 낀 건 특히 방어적이라, 그걸 보면 여전히 김현종을 탓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곳에 있다가 허겁지겁 여기까지 온 건데, 혹시 저하고 둘이서만 얘기하셔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상황이 이러니 회장도 말이 곱게 나가진 않았다.
최종현으로부터 원장이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첫 봉사 날 이곳에 와서 인사를 했을 때도 별로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 이상으로 별로였다.
이미 천사의 집 아이가 거짓말로 김현종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게 다 밝혀진 마당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회장하고 얘기하고 싶다고 한 건 책임자와 둘이서 상의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김현종 씨하고 더 할 말 없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나요? 김현종 씨, 기억 안 나요?”
“당사자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문제잖습니까. 그리고 현종이 옆에 이 친구는 천사의 집 교육 봉사 팀 대표입니다. 제가 동아리 회장이라고 해도 이 친구가 저보다 사정을 더 잘 압니다. 그래서 함께 온 거고요. 저희 모두가 대화에 참여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
원장은 허리 위에 손을 올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뭐, 상관없어요. 들어와요.”
세 사람은 원장을 따라 원장실로 들어갔고, 곧이어 김영지 간사도 도착했다.
김현종은 그녀가 아까 성윤과 이야기를 해 보겠다며 함께 사라졌으니, 대체 왜 그랬는지 해명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회장이 끼고 있는 그 안경에도 카메라가 달렸나요? 내가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네.”
원장은 회장의 은테 안경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카메라 아니고, 따로 촬영도 안 하고 있긴 한데요. 영상 촬영이 무서워서 못 할 말씀이면 아예 하지 마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을 정도의 폭언을 하실 거라면, 저희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회장은 전에 없이 강경하게 말했다.
듣고 있던 김현종도 조금 놀랐을 정도였다.
물론 이렇게까지 문제가 커진 적은 없었지만, 크고 작은 트러블로 인해 회장이 직접 관계사와 언쟁을 벌인 일은 많았다.
그때 회장은 혹시라도 동아리원 전체에 불이익이 생기진 않을까, 동아리의 이미지가 나빠지진 않을까 염려하며 언제나 조심스럽게 말하곤 했는데.
“뭐라고요?”
“그렇지 않나요? 저희는 처음 봉사 나왔던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된다고 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언제나 예의를 갖췄고, 아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저희가 완벽했다는 게 아닙니다. 물론 부족한 게 있었겠죠. 그래도, 천사의 집 직원분들이 지적해 주시면 항상 개선했습니다.”
“…….”
“하지만 원장님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저희 동아리원에게 신고를 한다느니, 교사 자격이 없다느니, 멍청하다느니 갖은 막말을 하셨고, 동아리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 이후에도 사과하지 않고 내쫓지 않으셨나요.”
“하, 물론 오해한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해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이런 일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아이를 보호해야 합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우리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예요. 문제가 생기면 신고를 고려하는 게 당연하고, 특히나 우리 시설에서 받아들인 봉사자가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원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말씀하신 수준에서, 예민하게 반응하신 정도였다면 저희도 불쾌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 동아리원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 보지도 않으시고 무작정 폭언부터 하신 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인 대처였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죠.”
“이 학생도 참 재밌네……. 이런 생각은 안 해 봤어요? 성윤이가 왜 김현종 씨를 그렇게 몰아가야만 했는지. 교육을 하겠다는 사람이, 아이의 심리상태는 생각 안 하나요? 나라면 기분 나쁜 것보다 먼저 마음이 아팠을 것 같아. 오죽하면 애가 그랬을까, 내가 뭔가 잘못했나 싶어서.”
이건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회장은 김영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성윤이가 그렇게 말했나요?”
그러자 김영지는 당황한 기색으로 원장을 힐긋댔지만, 곧 본인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깨달은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원장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이런 문제 없었던 아이가 갑자기 돌발 행동을 보였다면, 문제를 성윤이 내부에서만 찾을 일은 아니죠.”
김영지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하긴, 일이 터지자마자 원장은 그녀를 콕 집어 호출하지 않았던가.
이유가 있었겠지.
“아무리 성윤이가 미성년자라고 해도 18살이에요. 원래 안 그러던 애가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김현종 씨가 오해받게 만들었다는 건, 차마 말할 수는 없지만 김현종 씨와 분리되고 싶은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원장 선생님. 지금 현종이가 성윤이를 그간 정서적으로 학대라도 했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팀장이 입을 열었지만, 원장은 끝까지 듣지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그건 알 수 없죠. 성윤이는 입을 다물었고, 사실대로 털어놓기까지는 아마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김현종 씨가 평소 성윤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어요?”
“원장님,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지금 원장님은 추측만으로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우시면 다른 학생들도 같이 모아놓고 물어보세요. 하다못해, 성윤이한테 제가 기분 나쁘게 했다는 식의 말을 들은 아이가 있는지라도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에요. 아무튼 김현종 씨가 오늘 폭행을 하지 않았다는 건 알겠어요. 그래도 이유야 어쨌든 우리 원생과 트러블이 있는 상황이고, 우리는 보호자로서 원생과 김현종 씨를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분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분리하기 위해서 성윤이를 내보낼 수는 없잖아요. 당연히 외부인인 봉사자분들이 그만 오시는 수밖에 없죠. 안 그래요?”
이제는 회장도 원장의 태도에 질려 버렸다.
무슨 말을 해도 어쨌든 김현종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니, 여기서 계속 봉사를 하겠다고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봉사가 아닌가.
천사의 집에서 페이를 주는 것도 아니고, 팀 전원이 시간을 쪼개 가며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그렇게 김현종이 신경 쓰인다니 그를 제외하고 봉사를 이어가는 방향을 제시해 볼 순 있겠지만, 이런 취급을 받아 가면서까지 이곳에 올 이유는 없다.
게다가 손정민의 행방을 물은 일로 예민하게 구는 모양이라,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최종현 기자의 후원과 부탁 때문에 노력했지만,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천사의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아리의 명예까지 실추된 마당에, 만일 이 일로 최종현이 후원을 끊겠다고 하더라도 여기 더 있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앞으로 저희도 천사의 집에 더는 오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추후에 법적 근거 없이 저희 동아리원이 학생을 학대했다고 주장하신다면,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
“누가 누구한테 학대 운운이야? 지는 인신매매에 일조하면서, 교육자 같은 소리 한다. 아, 진짜 열 받네. 아! 씨발!”
음성 파일을 듣고 있던 최종현이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병상에 기대앉아 있던 강민재 역시 어이가 없는지 웃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오 사무장도, 조봉준도 아무 말 없이 찬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영상 찍냐고 빈정거릴 땐 몰랐겠지. 영상촬영만 물어볼 게 아니라 녹음은 안 하는지도 확인했어야 했는데. 뭐, 그랬어도 아니라고 했겠지만.”
이제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화 참여자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대화 내용을 녹음해도 불법이 아니다.
“일단 동아리 회장도 천사의 집 원장 태도가 너무 불쾌해서 그만두고 싶은 모양이야. 아이들은 마음에 걸리지만, 개인적으로 연락 오는 아이가 있으면 받아 줄 거라고 하더라. 이 정도 됐으면 아무리 후원을 많이 했어도 천사의 집에 어떻게든 붙어 있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어.”
사실 나는 이 정도로 끝나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긴다.
김미자에게서 전달받은 도청 파일에 따르면, 그들은 대학생에게 성추행 혐의를 씌우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폭행보다는 성추행 쪽이 앞길을 막기에는 제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겁을 주면 동아리도 꼬리를 말고 도망칠 게 분명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고윤수는 노망난 늙은이 두 명과 대화하던 도중 폭행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성추행으로 가면 천사의 집에서는 반드시 봉사자를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이 커지면 당연히 외부에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는 공개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면 또 내가 물어뜯을 여지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물밑에서 겁만 주고 멈춰 버리면, 원생이 성추행을 당했다는데도 가만히 있는다며 또 내가 천사의 집을 물고 늘어질 거라나.
게다가 성적 문제로 엮여 이 일이 재판까지 가게 되면, 봉사자 역시도 어떻게든 반격하려 들 테니 골이 아프다는 것이다.
역시 고윤수는 나에 대해 꽤 많이 공부했나 보다.
내가 어떻게 나올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러므로 천사의 집에서는 일을 키우지 않는 편이 무조건 이득이다.
특히 어린이의 장기 매매를 속행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내쫓는 것이니 주목받을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하는 처지 아니던가.
그래서 나 역시도 그들이 김현종을 신고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대학생들을 내가 보냈다는 걸 아는데, 있지도 않은 사실로 누명 씌우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그들이 더 잘 알 것 아닌가.
나는 우신이 만든 구라 증거, 구라 상황을 파훼하는 데에 있어서는 누가 뭐래도 전문가다.
“잘하셨습니다. 그곳에 계속 있어 달라고 말했다고 해도, 그래서 그 학생들이 그렇게 했다고 해도, 괜히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될 테니 이쯤에서 물러서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 진짜 카메라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아찔하다. 그 동아리 애들은 우리 부탁 받고 천사의 집 들어간 건데, 날벼락이잖아. 현종이만 앞길 망칠 뻔했어. 회장이랑 얘기해 보니까 현종이가 정말 착하고 애들 생각 많이 한다던데…….”
“동아리 후원은 당분간 조금 더 유지하죠. 김현종 학생한테 혹시라도 이상한 회유나 협박이 있을지 모르니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바로 우리한테 연락할 수 있도록 창구를 열어 두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겠네. 아, 동아리 회장이 차 변한테 고맙다고 전해 달라더라. 그땐 상황이 너무 긴박해서 인사를 못 했다네. 차 변이 이것저것 코치해 줘서 원장이랑 얘기 잘 끝낼 수 있었대. 애들한테는 기분도 꿀꿀할 테니 맛있는 거나 먹고 기운 내라고 회식비 보내줬어.”
녹음된 대화를 들으니, 내가 미리 코치하지 않았더라도 회장은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 동아리에 교육계로 진로를 잡은 학생들이 많은 만큼 혹시라도 불이익이 따르지 않도록 관리해 줘야겠다.
사실 천사의 집이 김현종을 고소했더라도, 나는 그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줄 자신이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만일 정말 법적 조치를 취했다면 천사의 집은 특검으로 가기 위한 발판을 하나 더 스스로 마련하는 셈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작당 모의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훌륭한 표본이었을 테니.
게다가 원생들의 교육 복지를 위해 노력한 봉사자에게 오히려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으니, 배은망덕한 집단으로 낙인찍을 수도 있다.
물론 그들 역시 일을 키우려고 마음먹으면 실제 아동학대 사례들을 끊임없이 흘리며 똑같은 놈이라는 식으로 싸잡으려 했겠지만, 그런 식의 연출은 그들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다.
“아무튼 천사의 집에서 실시간으로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걸 체크할 수 없게 된 점이 좀 아쉽네. 우리가 늦지 않게 바로바로 캐치할 수 있을지 걱정이야.”
“괜찮습니다. 천사의 집 근처하고 경기도 리본 의료원 각종 진입로, 그리고 오카시마 병원 근처까지 감시 인원을 두면 캐치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정도 시간 끌었으면 많이 끈 겁니다.”
수술을 언제 감행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다수의 인원을 분산시켜 놓는 건 우리에게도 부담이라, 어느 정도 날이 가까워질 때까지는 보류해 두었던 방법이다.
오노데라가 고윤수를 불러 무릎까지 꿇리면서까지 난동을 부렸으니, 고상준도 오노데라와의 관계를 생각해 일을 서두르고 있다.
길게 봐야 한 달 안일 것이다.
“하긴, 준비물도 있으니까 놓치진 않을 거야.”
“맞습니다.”
“아, 근데 일본 총재 선거 언제라고 했지?”
“이번 달 말일이니까, 얼마 안 남았어요.”
휴대폰으로 검색해 본 건지, 강민재가 금세 대답했다.
“오노데라도 미친놈이네. 총재 선거면 유세하느라 바쁘고, 이목도 엄청나게 집중됐을 때인데 손자 수술 빨리 해 달라는 것도 참……. 선거철에는 사소한 몸가짐 하나 조심하는 게 일반적인데, 얘네도 참 답이 없다. 사람들을 등신으로 아는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마음이 많이 급한 모양이죠.”
“근데 오노데라가 당선되려나? 여당 총재로 뽑히면 총리 자리는 자동으로 따라오니까 사실상 총리 선거라고 봐야 하는 건데. 이게, 되기를 응원해야 할지 안 되기를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어. 총리가 됐다 쳐. 그럼 한국 1위 대기업하고 일본 총리가 미친 짓을 벌인 거잖아. 잘만 만들면 전 세계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야. 인신매매가 엮여 있으니 의료계랑 인권 단체까지 같이 난리일 거고. 근데 다른 한편으로는 한 나라 대빵인데, 어떻게든 묻으려고 들면 또 그건 그것대로 곤란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결론만 말하자면, 오노데라는 총리가 된다.
그것도 꽤 오래 해 먹는다.
하지만 총리든 뭐든, 이 정도 이슈 앞에서 버틸 장사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히려 오노데라가 당선되면 좋겠다.
지금 총리인 이시다의 아들이 저 요정을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심 쾌재를 불렀는데, 이제는 아예 총리가 내 통발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이정찬에 이어 오노데라까지 성공한다면, 나는 미래의 정부 수반들을 갈아치우는 데에도 전문가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