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22)
너희들은 변호됐다-522화(522/641)
천사의 집에 파견했던 대학생들이 철수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간 천사의 집에서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다.
마침 방학이라 아이들이 시설 밖으로 나가는 일도 별로 없었고, 드나든 외부인이라고는 천사의 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제공하는 업체와 택배 기사, 봉사자들뿐이라고 했다.
“어제까지는 쭉 차를 대 놓고 감시했었는데요, 좀 불편해서요.”
강민재의 병실에서 회의를 하기로 한 날이라 모두 모여 있었는데, 이번에는 태식의 직원들도 왔다.
이제는 체계적으로 감시하게 되었으니 조별로 상황 보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중 감시조 책임자인 대철이 앓는 소리를 냈다.
“계속 위치를 옮겨 가면서 지켜봐야 하는데, 골목길이라 그런가 자리도 마땅치 않고요. 뻑하면 차 빼 달라고 하고, 여기 주차하지 말라고 그러고…….”
“그래? 그럼 차라리 거점이 필요하겠는데.”
“네. 그래서 오늘 천사의 집 출입구 바로 맞은편 빌라를 임대했습니다. 이건 계약서고요.”
테이블 위에 계약 서류들이 담긴 홀더를 내려놓았다.
“빌라면 창문으로 출입구를 지켜보겠다는 뜻 같은데. 앞에다가 차 세워 놓고 대기하는 것보다야 눈에 안 띄겠지만, 수상한 걸 발견하자마자 뛰쳐나가야 하는데 그러면 좀 늦지 않겠어?”
내 물음에 대철이 기다렸다는 듯이 사진 몇 장을 추가로 보여 주었다.
“맞은편 빌라 모습입니다. 1층은 상가로 쓰이는 곳이에요. 1층 상가를 대충 사무실처럼 꾸민 다음에 그 앞에 차를 대 놓고 지켜보려 합니다. 주차 공간도 두 대나 주더라고요. 그리고 사업장 보안 때문인 것처럼 CCTV를 설치해 두면 변호사님도 상황을 확인하시기 좋을 것 같아요.”
괜찮은 방법이다.
대철은 이번 삶에서 내가 태식을 처음 찾아갔던 때보다 훨씬 이전부터 흥신소에 있던 직원이다.
직원 중에는 상당히 고참이라 그런지, 일머리가 좋았다.
나에게 묻지 않고 덜컥 계약부터 했다기에 걱정했는데, 매우 적절한 판단이었다.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한다면, 임의로 진행해도 좋다.
게다가 부동산 계약서에 적힌 임대료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5만 원.
매우 경제적이지 않은가?
아무리 그 동네가 저렴한 지역이라고 해도 이 정도 가격으로 이런 크기의, 심지어 주차 공간이 두 대씩이나 할당되는 임대가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다.
꼭 필요한 일에 들이는 돈이라 아깝진 않지만, 이 정도면 허위 매물은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아, 월세가 좀 많이 싸죠?”
“그러네.”
“사실 이 자리에서 장사하던 사람이 상당히 큰 빚을 졌는데, 계속 안 갚았나 봅니다. 그랬더니 열 받은 채무자가 쳐들어와서 그 사람을 여기서 푹! 해 가지고, 예……. 아무튼 그렇게 먼 길 떠나셨답니다. 그래서 여기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었대요. 리모델링까지 싹 하고 엄청 싸게 다시 임대 놨는데도 거의 8개월 동안 공실이었다고 하니까요. 게다가 옆에도 옷 수선집이 있었는데 무섭다면서 빼 버렸답니다. 덕분에 주차를 두 대나 할 수 있어요.”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우리에겐 잘된 일이다.
우리는 오노데라 손자의 수술을 막기 위해 임대한 것이지만, 어차피 사건이 터지고 나면 또 천사의 집에서 어떤 개수작을 벌일지 모르니 감시를 계속해야 하지 않는가.
아지트가 있으면 그 작업도 수월하다.
임대 기간이 1년이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예전에 한림 상사 기억하십니까. 검침원이랑 어깨동무 새끼 아지트였던 데요. 그냥 그런 느낌으로 간판 하나 걸고 쇼윈도에 시트지도 다 붙여서 안 보이게 한 다음에 외근 중 팻말 걸어 놓으면 될 것 같은데, 어떠세요?”
“괜찮네. 근데 아직 무슨 업종으로 할지도 안 정하고 계약부터 한 거야? 임대인이 안 물어봐?”
“하나도 안 물어보고 그냥 들어와 줘서 고맙다고 하던데요. 뭘 하든 상관없고 사람만 안 죽으면 된대요.”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상가 세놓으면서 업종도 안 물어보는 임대인은 처음 본다.
“혹시 모르니까 사업자 등록 하나 해 놔. 우신이 의심하고 조사해 봤는데 구멍 있으면 문제 생기니까.”
“넵.”
“야, 상근이도 거기 무슨 사연 있는지 아냐.”
이야기를 듣던 태식이 물었다.
상근은 천사의 집 감시조에 속한 직원이다.
총 6명을 두 팀으로 나누어 미행 조와 상주 조로 편성했는데, 상근은 그중에 상주 조에 포함되어 있었다.
“상근이요? 모르죠.”
“걔한텐 말하지 마라.”
“왜요?”
“걔 귀신 존나 무서워해. 2년 전에 엄청 싼 옥탑방 들어갔었는데, 거기도 사연 있는 집이어서 귀신 보고 악몽 꾸고……. 그 일 때문에 집 버리고 도망 나와 가지고 한동안 사무실에서 지냈잖아.”
“아, 그래서 그때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한 거였어요? 상길 형님이 상근이 힘드니까 말 걸지 말라고 하셔서 안 물어봤는데.”
“그래. 야, 씨. 귀신이 매일 밤 꿈에 나와서 내 집이니까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단다. 잠만 잤다 하면 가위가 눌리고, 심지어는 불을 끄고 나왔는데도 불 켜져 있고, 계속 이상한 소리 들리고. 난리도 아니었대. 걔 그래서 공포 영화 마니아였는데 이젠 무서운 얘기도 안 들으려고 하잖아. 귀신의 기역만 나와도 오줌 지릴걸.”
“에이, 형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요. 상근이 이제 봤더니 쫄보였네. 해병대 부심 오지게 부리더니만. 상근이는 귀신 잡는 해병이 아니라 귀신 보면 1빠로 도망가는 해병이겠네요.”
“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상근이가 그렇게 오들오들 떠니까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강민재 근처에 서 있던 정혁도 이들의 이야기가 꽤 흥미로웠는지, 천천히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강민재의 머리맡에 있었는데, 벌써 발밑까지 왔다.
“아무튼 천사의 집 감시는 그렇게 해결하고. 그럼 리본 의료원은 어떻게 감시하려고?”
최종현의 물음에 대철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형식이 입을 열었다.
“송주산 인근을 쭉 훑어봤는데요. 일단 리본 의료원이 있는 쪽은 산이라고 불리기엔 애매한……. 그냥 동산 수준이라서 진입로가 별로 없더라고요.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두 개밖에 없어요. 정문 쪽 하나, 후문 쪽 하나. 뭐, 산악 오토바이 같은 거 있으면 숲으로 해서 들어갈 순 있겠죠. 근데 그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차는 도저히 들어갈 각이 안 보여요.”
“겉만 봐서는 안 보이는 샛길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 네. 그렇긴 한데 정문하고 후문 제외한 곳은 산 밑이 바로 고속도로라서 왕따시만 한 차음벽이 있어요. 그래서 어차피 차를 탈 수 있는 곳들이 정해져 있더라고요.”
“이 새끼들 혹시 땅굴 판 건 아닐까? 비밀 통로 같은 게 있을지 어떻게 알아.”
조봉준이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위성 사진을 확인하며 한마디 던졌다.
가능성이 없진 않다.
하지만 허민우가 확인한 CCTV 내용에 따르면, 임현일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모두 차량을 이용했다.
그곳에서는 아직 구역질 나는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밀 통로가 있다 한들 벌써부터 불편하게 그런 곳을 이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터다.
게다가 오노데라의 손자는 오카시마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 지금 당장 리본 의료원에 철통 감시가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일단 산 밑에 진입로 시작 부분 근처에 화훼농원이 몇 개 있길래 저희도 진입로 바로 앞에 자리를 빌려서 차 대 놓고 감시 중입니다. 예전에 있던 사람이 쓰던 비닐하우스도 그대로고, 짐 잔뜩 쌓아 놓은 것도 안 치워서 연막 치기 좋더라고요.”
“그건 다행이네.”
“필요하시면 비밀 통로는 없는지 찾아볼까요? 좀 어려울 것 같긴 한데……. 다른 화훼 농원 사장님들한테 물어보니까, 거기 돈 엄청 많은 사람이 저택 짓는다는 소문이 이미 쫙 퍼졌더라고요. 공사 때부터 사유지니까 들어오면 안 된다면서 재수 없게 굴었나 봐요. 근데 화훼 농원 조금 뒤쪽까지는 지들 땅도 아닌데 왜 저러냐고, 대체 저 저택 주인은 누구냐고 욕하던데요.”
“진입로부터 쭉 CCTV 깔아 놨으려나.”
“도로에는 있는데, 도로 외에는 없는 것 같아요. 왜냐면 저희가 그 울타리 쳐진 부분 밑까지 어슬렁거렸는데 모르더라고요.”
“그리고 지들 땅 아니면 어차피 CCTV 설치해 놨어도 불법이잖아.”
형식과 최종현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니,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 그들의 사유지는 펜스가 쳐진 부분부터일 것이다.
재작년 위성 사진상으로는 지금의 진입로 위치에 이미 비포장 도로가 뚫려 있었다.
우신 측에서 그 도로를 편하게 사용하려고 일부러 동의를 구해 조금 더 넓고 튼튼하게 닦았겠지.
그들이 필요해서 남의 땅에 있던 도로를 손봤을 뿐, 진입로까지 그들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애초에 진입로까지 그들의 것이었다면, 진작 차단기를 달아 놓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 근처를 수색한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리본 의료원을 감시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사고 예방과 정보 수집이다.
그들이 장기를 유통하는 경로는 천사의 집이니, 그곳에서 출발한 차량이 리본 의료원에 들어가진 않는지 교차 검증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추가로 임현일 외에도 이 사업에 연관된 놈들이 드나들 테니, 그 목록을 확보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당연히 비밀 통로까지 전부 감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유지도 아닌 곳을 사유지라면서 근처 사람들에게 겁을 줬던 놈들이다.
비밀 통로를 찾으려고 얼씬대면 CCTV를 설치하지 않았더라도 곧 알아챌 것이다.
괜히 리본 의료원이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이 눈치채면 그게 더 큰 문제다.
“무리해서 비밀 통로를 찾을 것까진 없어. 우리는 천사의 집하고 임현일을 집중적으로 감시해야 하니까. 리본 의료원은 보험이야.”
“임현일 감시는 뭐, 식은 죽 먹기죠.”
태식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사람 감시가 저희 전문이잖아요. 게다가 현범이 말 들으니까 그 새끼는 지가 감시당할 거라는 생각도 안 하는 것 같더라고요.”
대개 사람들은 이런 짓을 자행하는 놈들이 24시간 내내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다.
물론 당연히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고, 대화 내용이 유출될 것을 항상 걱정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는 데다, 심지어 수사 기관에 스파이까지 심어 놓았으니 자신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면 자연히 보고가 들어오겠거니 생각하곤 한다.
보안 장치를 여러 겹으로 마련한 데다, 이를 위해 큰돈을 들였으니 그만큼 강하게 신뢰하는 것이다.
또, 범죄를 저지를 때도 일상생활의 연장선인 척 눈속임만 잘해 놓으면 된다고 여기기도 한다.
오히려 숨기려고 용쓰는 게 더 수상해 보일 것을 염려하여 대놓고 활보하는 식이다.
임현일도 그런 상태겠지.
그러니 리본 의료원에 갈 때만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그 밖의 일상생활 중엔 주의하지 않은 게 아닐까.
“안녕하세요!”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허민우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거대한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강민재가 입원하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와 볼 수 있게 되었다며 감격스러워하긴 했는데, 저렇게 거대한 과일 바구니를 들고 올 줄은 몰랐다.
“아니, 경위님. 과일이……. 너무 많은데요?”
강민재도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강수일 역시 허민우가 들고 있던 과일 바구니를 받아 들면서도 이런 건 처음 본다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큰가요? 그냥 이것저것 맛있는 게 많아 보여서…….”
허민우는 우리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과일 바구니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인지한 것 같았다.
“강 변호사님 되게 빨리 깨어나시고 예후도 좋다고 들어서 걱정은 안 했지만, 이렇게 쌩쌩하실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뇌 수술인데.”
“그러게요. 가끔 어지러울 때도 있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그러지도 않네요.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서 빨리 내보내 줬으면 좋겠어요. 어제는 시험 삼아서 PT 체조 6번도 해 봤는데 골 울리는 것도 없었어요. 동진 형님한테 퇴원시켜 달라고 졸라 보려고요.”
동진이 한동안 가벼운 산책 정도만 하라고 했다는데, PT 체조 6번이라니.
그래, 차라리 6번이라 다행이긴 한데…….
“퇴원이라니. 그간 이 병실이 아지트가 되어 줘서 얼마나 편했는데……. 민재야, 안 아파도 한동안 눌러앉아라. 어차피 돈 많잖아.”
조봉준이 낄낄대며 말했다.
사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명운대 병원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병원이고, 하루에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감시를 피하기에 제격이다.
우리 사무실이었다면 태식의 직원들을 직접 불러서 일일이 보고를 받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 부른 직원들은 각자 할당된 임무의 책임자들인데, 이들의 얼굴이 우신에 노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그냥 서면이나 통화 정도로 보고를 받고 끝냈을 테니.
“병실이 대궐 같아서 하루 입원비도 엄청날 것 같은데. 계속 계시면 좀 부담이지 않을까요?”
“허 경위, 쟤 강민재야. 돈이 썩어 넘친다고.”
“그래도요. 강 변호사님, 손가락 한 번 움직여 보세요.”
허민우는 강민재에게 다가가 손가락뿐만이 아니라 팔, 다리, 발가락까지 전부 움직여 보라고 주문했다.
심지어는 눈앞에 손가락도 흔들어 보이면서 시력에 문제는 없는지도 확인했다.
처음 강민재가 깨어났을 때 내가 했던 행동 아닌가.
역시 내가 오버한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반응인데, 최종현과 조봉준이 너무 안일했던 것이다.
“아무튼, 경위님도 오셨으니 본격적으로 얘기해 보죠. 모두 오시라고 한 건 전체적인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초반부는 경위님하고 상의해서 그림을 맞췄고, 그 외에 미비한 부분들에 대해서 함께 의견을 내서 청사진을 짜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