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24)
너희들은 변호됐다-524화(524/641)
“와, 나는 종현이 형이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줄은 몰랐잖아. 듣고 읽는 건 뭐 기본 소양이라고 치더라도, 말도 존나 잘해. 심지어 조크까지 하더라니까?”
최종현의 ICIJ 가입이 최종적으로 승인되었다.
화상 인터뷰를 하는 동안 조봉준도 곁에 있었는데, 그는 최종현의 영어 실력에 꽤나 감동을 받은 듯했다.
강민재의 병실에 모여 앉아 식사하는 내내 최종현이 얼마나 영어를 잘했는지 찬양했다.
“야. 그만해라. 쪽팔려.”
“뭐가 쪽팔려. 잘하는 걸 잘한다고 하는데.”
“아니, 쟤는 미국에서 고등학교 다녔고, 얘는……. 도대체 왜 잘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존나 잘하잖아. 나는 발음도 구리고 인토네이션도 완전 코리안이야.”
“와, 영어를 잘하니까 억양이라고 하면 되는 걸 인토네이션이라고 하네. 역시 영어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
최종현이 말하는 ‘쟤’는 강민재고, ‘얘’는 나다.
그의 말대로 강민재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당연히 잘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앞에서 영어를 구사한 적이 없는데, 왜 나까지 포함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강 변이야 다 잘하겠지만, 저는 스피킹 쪽은 그냥 그럽니다.”
“제가 좀 잘하긴 하죠.”
강민재는 바쁘게 음식을 입안에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그는 한동안 병원에서 나오는 음식만 먹다가, MSG 가득한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니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음식을 가득 넣고 씹느라 바빴다.
“근데 변호사님도 스피킹 잘하실걸요. 그때 리히텐슈타인 갔을 때도 독일어 엄청 잘하시던데.”
그새 음식을 전부 삼킨 강민재가 앞접시에 무슨 음식을 덜지 고민하는 듯 젓가락을 허공에 휘휘 움직이며 말했다.
“그것도 그냥 비행기에서 회화 책을 조금 봐서 몇 마디 한 거라니까.”
“회화 책 조금 봤는데 그 정도 하신 거면, 10년도 넘게 배운 영어는 진짜 원어민 수준이겠네요.”
“용비어천가 하지 말랬다.”
“용비어천가가 아니라 팩트인데. 게다가 독일어는 발음도 독특한데 대화도 무리 없이 하셨잖아요. 다들 되묻지도 않고 바로 잘만 알아듣던데요. 택시에서도, 호텔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막힘없이 하고 싶은 말 다 하시고.”
“독일어가 영어랑 비슷해. 그래서 참고가 된 거야.”
“그니까요. 영어를 잘하시니까 독일어도 잘하신 거잖아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 내가 한 말은 별것도 아니었다.
“이것 봐. 얘네가 더 잘하는데 나 띄우지 마라. 나중에 얘네 앞에서 영어 쓸 일 생겼을 때, 얘네 귀에 내 영어가 무지 구리면 나 쪽팔려지잖아.”
최종현은 진심으로 난처해 보였다.
강민재와 한데 묶여 원어민 취급 당하는 나야말로 난처하다.
“어찌 됐든, 존나 자랑스러운 건 그대로야. ICIJ 회원 중에 우리나라 사람은 형뿐이라며.”
하지만 조봉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긴 한데, 뭐…….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도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은 꽤 있을걸. 근데 굳이 하지 않은 거지. 어떤 단체에 소속된다는 것 자체가 좀 부담스러운 일이고, 기자는 특히 그렇거든. 나야 뭐 앞으로 탐사 외길 인생을 걸을 거라 상관없긴 한데, 차 변이 얘기하지 않았으면 나도 가입 안 했을 거야.”
“우신 건이 인권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잖아. 이런 이슈 ICIJ에서 꽤 관심 크게 가질 것 같은데. 거기에 일본인 기자도 있겠다, 우리 거 같이할 생각은 없으려나. 전 세계적으로 스케일을 키우기엔 딱일 텐데.”
“일단 말은 좀 흘려볼까 싶긴 한데. 다음 주에 핵심 멤버들하고 또 화상 회의를 하기로 했거든. 차 변은 어떻게 생각해?”
내가 이전 삶에서 ICIJ의 활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진 않아서 전부 알진 못하지만, 그들은 전 세계의 이슈를 탐사 보도해 왔다.
각국의 비리는 물론이고, 스위스 은행에 거치된 독재자, 무기 거래상, 탈세자 등의 검은돈에 대해서도 다뤘으며, 시신을 빼돌려 거래하는 세계 곳곳의 조직을 조사한 적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신이 벌이는 인신매매는 그들이 매우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저도 ICIJ에서 이 일을 프로젝트화한다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쪽에서 새로운 자료를 받아오긴 어렵겠지만, 아무리 못해도 일을 키우는 데에는 효과적이겠죠.”
“일본 기자와 협력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지.”
“맞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일본 기자 때문에 좀 고민해 봐야 합니다.”
“찾아보니까 쿄쿠토 신문 기자던데. 경력이 25년 됐다더라고. 지금은 저널리즘 대학교에 출강도 하는 것 같고.”
“저도 쿄쿠토 신문 들어 본 것 같아요. 한자로 극동이라고 쓰는 데 아니에요?”
“맞아. 일본 4대 언론사 중 하나야. 우리나라로 치면…….”
“일중일보 느낌은 아니죠? 그럼 재벌하고 민우당 같은 데 찬양하느라 바쁠 테니까.”
강민재의 질문에 최종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일중일보랑은 좀 달라. 뭐, 모든 신문사에 기본적으로 정치권을 바라보는 자체적인 기조는 있는 법인데, 쿄쿠토 신문은 일본 내에선 꽤 혁신 계열로 취급되거든. 물론 국제적인 기준으로 봤을 땐, 막 혁신! 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긴 하지만. 한일 관계에 대해서 지들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보도한 적도 있어.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 쪽에선 되게 별일이라 그 자체는 높이 살 만해.”
“저번에 찾아보니 오다 사토시랑 오노데라가 적을 둔 지금 여당 말이에요. 거기가 근래 우경화되고 있다는 말이 많던데. 그럼 쿄쿠토 신문에서 비판도 하고 그래요?”
“엉. 그래서 극우 단체한테 테러도 당한 적 있을걸. 애초에 일중일보 같은 성향이었으면 ICIJ 가입을 안 했겠지.”
“그럼 딱이네. 우리 일 터트리면 오노데라하고 오다 사토시가 집중 포격 당할 텐데, 엄청 잘 씹어 줄 거 아니에요.”
나는 최종현이 말하는 동안 ICIJ 공식 사이트에 접속해서 그가 말한 일본인 기자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키리하라 사치코.
기자 경력은 25년이다.
우선 이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본 뒤에 프로젝트를 ICIJ 내부에 공유할지 말지 정하는 게 좋겠다.
혹시 모르잖은가.
ICIJ에서 취급하는 프로젝트가 되면 당연히 일본인 멤버인 그녀에게도 공유할 텐데, 오노데라 쪽에 말을 흘려 일을 그르칠 사람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내가 최종현을 ICIJ에 가입하라고 한 까닭은, 그 단체와 소속된 기자 전원을 완벽하게 믿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차명 계좌 목록을 제일 먼저 받아 보기 위해 ICIJ를 끌어들인 것뿐이다.
“최 기자님이 말씀하신 기자가 키리하라 사치코라는 사람이죠?”
“어, 맞아. 사이트 들어갔어?”
“네. 일단 이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보겠습니다.”
김미자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오다 사토시는 쿄쿠토 신문이 유서 깊게 비판해 온 여당 소속 의원이고, 10선 의원이 넘쳐 나는 일본 국회의원 가운데 고작 5선 의원이면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 사람이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쿄쿠토 신문의 비판도 상당히 강하게 받았겠지.
그런 사람이 키리하라 사치코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말한다면, 그녀는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사이트 들어갔으면 내 사진도 올라왔나 봐 봐.”
“기자님 사진도 있습니다.”
저널리스트 탭에는 본래 한국이 없었는데, 최종현이 가입하면서 생겨났다.
그리고 원형의 프레임 안에 하얀 벽지를 배경 삼아 서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최종현의 모습이 보였다.
“어때. 사진관에서 찍은 것 같지?”
하지만 최종현은 벽지 앞에서 찍은 티가 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자신만은 행복할 수 있도록 비밀로 해 줘야겠다.
“아뇨. 형님 방에서 찍은 거 아니에요?”
강민재는 눈치가 없다.
* * *
“여보.”
화장대 앞에서 스킨을 바르던 김미자는, 욕실에서 나오는 오다 사토시를 거울을 통해 바라보았다.
“왜.”
“물어볼 게 있어서요.”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물어봐. 나 피곤해. 오노데라 영감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고.”
“총재 선거 때문에요?”
“그래. 사이토가 애송이 의원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잖아. 일본의 미래를 짊어질 역군들을 독려하기 위한 자리였다는데, 누굴 바보로 아나. 뻔하잖아. 코바야시 놈을 찍으라고 했겠지.”
“코바야시 의원님은…….”
“그냥 코바야시라고 해.”
오다 사토시는 김미자가 그에게 존칭을 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침대에 걸터앉으며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아, 네. 코바야시는 오노데라 의원님에 비해 지지자가 부족하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같잖다는 거야. 주제도 모르고.”
“잘될 거예요. 제 주변 사람들도 오노데라 의원님이 되실 거라고 생각하던걸요.”
“당신 주변 사람들이야 수준 뻔한데, 뭐. 하긴, 그런 사람들마저 오노데라 영감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코바야시가 깝죽거리는 것도 웃기네. 헛발질도 수준급이야. 그냥 무시하고 그 영감 뒤나 잘 따라다녀야겠어.”
그는 툭하면 김미자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오다 사토시가 강요한 탓에 김미자는 유수의 예술 대학교에서 교수로 있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주변 사람들 역시 일본 사회에서 존경받는 이들이다.
자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변 사람들까지 싸잡아서 무시하는 건 참기 어렵다.
본인은 뭐가 그렇게 고매하셔서…….
“그나저나. 뭘 물어본다는 거야?”
“기분이 안 좋으신 거면 다음에 물어볼게요.”
“됐어. 이미 잡쳤으니까. 뭔데.”
“혹시 키리하라 사치코라는 기자 아세요?”
“키리하라 사치코?”
오다 사토시는 그 이름을 듣기가 무섭게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년은 왜?”
김미자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릴 뻔했다.
차주한은 키리하라 사치코와 협력해도 될지 고민하는 중이라,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오다 사토시가 그녀를 어떻게 말하는지 은근슬쩍 물어봐 달라며, 나쁘게 말할수록 좋다고 했는데…….
이렇게 표현이 거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차주한이 원하는 결과를 전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별건 아니고……. 저한테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제 미술관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것처럼 연락이 왔는데, 그 사람 정치부 기자더라고요. 정치부 기자가 제 미술관에 대해 알고 싶을 이유가 없잖아요. 당연히 당신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인터뷰? 웃기는 소리. 절대 만나지 마. 연락이 오면 무시해.”
“쿄쿠토 신문 기자라고 하길래, 저도 느낌이 안 좋아서 아직 답장하진 않았어요.”
“그딴 쓰레기 신문 기자 나부랭이하고는 말도 섞을 필요 없어. 당신, 그년이 나에 대해 무슨 기사를 썼는지 알아?”
침대에 축 늘어져 있던 오다 사토시는, 키리하라 사치코를 떠올리기만 해도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는 기분인 모양이다.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오다 사토시는 30분 동안 키리하라 사치코가 썼던 기사들을 줄줄이 읊어 주었다.
물론 전부 그가 욕먹을 짓을 해서 욕먹은 일들이었다.
거기에 더해, 사소하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오다 사토시는 젊은 층에 어필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자주 사용하는 편인데, 한번은 어떤 사안에 대해 꽤나 장문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는 그 글을 올리기 위해 열 번도 넘게 퇴고하고, 비서진들에게도 보여 주며 자신의 논리가 빈약하진 않은지 검토한 뒤 업로드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키리하라 사치코가 매우 짧은 댓글을 달았다.
[약한 개일수록 크게 짖는 법.]그리고 그 댓글에 ‘좋아요’가 무려 2만 개나 박히는 바람에, 개망신을 당했단다.
그러고 보니 김미자도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 큰일이긴 했다.
덕분에 한동안 그의 별명은 ‘약한 개’가 됐고, 심지어는 아직도 종종 그렇게 불린다.
그 일로 오다 사토시는 열흘 동안 키리하라 사치코를 욕하며 씩씩댔다.
그땐 관심이 없어서 기자의 이름까지 기억해 두진 않았는데, 그 사람이었구나.
“인터뷰 절대 해 주지 마!”
“알겠어요. 거절할게요. 저 화분에 물 주는 걸 잊어버려서, 얼른 물 주고 올게요.”
김미자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차주한과 연락할 때 사용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방금의 대화를 녹음한 파일을 그에게 전송했다.
빨리 결론부터 전하는 게 나을 터라, 번역본 없이 보내기로 했다.
어차피 일본어를 잘하는 강수일이 있으니, 그에게 내용을 전해 들으면 될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에 짧게 코멘트를 덧붙였다.
[키리하라 사치코 기자는 변호사님의 단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