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26)
너희들은 변호됐다-526화(526/641)
“한국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잠시 짐 풀고 쉬신 뒤에 대화 나눌까요? 피곤하실 것 같아서요.”
“아뇨. 비행기도 비즈니스석으로 잡아 주시고, 차도 좋은 차 보내 주시고, 호텔도 이렇게 좋은 데를 예약해 주셨는데 제가 피곤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바로 말씀 나눠도 됩니다. 무엇보다 너무 궁금해서요.”
최종현은 우리의 합의가 끝난 직후, 키리하라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있는 그대로 말할 순 없어서 약간의 변주를 주기는 했다.
한국 정치인의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치인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했는데, 이에 대하여 도움을 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메일을 받은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만남을 수락하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다.
같은 단체 소속이라 거부감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일본 정치인과 관련한 새로운 정보를 건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흔쾌히 언제 어디서 보면 되냐고 물었다고 한다.
뭐가 됐든,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다면 그녀는 상상한 것 이상의 소스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터다.
“아, 이쪽은…….”
“차주한 변호사님이시죠?”
그녀는 어색하게 내 이름을 발음했다.
“어라.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도 여기 오기 전에 최 기자님에 대해 알아봤거든요. 정말 인상 깊은 활동이 많았는데, 차주한 변호사님이 심심찮게 검색 결과에 같이 걸려 나와서요. 최 기자님도 저에 대해 알아보셨을 테니, 무례한 거 아니죠?”
“아, 그럼요. 전혀 무례하지 않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키리하라 사치코예요.”
“차주한입니다.”
“실물이 훨씬 미남이신데요?”
키리하라는 나와 악수한 뒤, 옆에 서 있던 강수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분은……. 아, 낯이 익어요. 분명히 사진으로 뵀던 것 같은데.”
“강수일입니다. 혹시 통역이 필요할지도 몰라서 통역사로 왔습니다.”
“그냥 통역사 아니신 것 같은데요?”
“그냥 통역사입니다.”
그간 영어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갑자기 강수일이 유창한 일본어로 대답하자 키리하라가 웃음을 흘렸다.
“두 분 다 영어를 워낙 잘하셔서, 저만 잘하면 되겠는데요?”
겸손하게 말하긴 하지만, 키리하라 역시도 상당히 영어를 잘했다.
최종현이 ICIJ에 가입할 때 토플을 준비했던 게 오버는 아니었나 보다.
ICIJ에 가입된 비영어권 국가 출신 기자는 처음 만나지만, 키리하라가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걸 보면 알 만하지 않은가.
혹시라도 최종현이 영어를 못했다면 가입을 반려당할 수도 있었겠는데.
그가 영어를 잘해 새삼 다행이었다.
“차 변호사님도 함께 오신 것을 보면, 최 기자님이 저한테 말씀하시려는 주제가 차 변호사님하고 합작품인가 봐요. 그간 탐사 보도 활동을 많이 하셨던데. 특히 우신에 대해서요.”
세상이 참 좋아졌다.
인터넷 페이지를 번역해 주는 기능이 없었더라면, 우리도 그녀도 정보를 찾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그렇습니다. 기자님하고 처음 뵙는 자리인데 미리 차 변호사가 동석해도 되는지 동의를 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보안이 중요한 문제여서요.”
“이해해요. 음, 그렇다면 최 기자님과 차 변호사님은 아직 저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시는 거겠네요?”
키리하라가 빙글빙글 웃으며 물었다.
그녀를 얕본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영민한 사람인 것 같다.
“제가 미리 차 변호사님도 함께 오신다는 걸 알면, 어디에 이야기가 새어 나갈지도 모르니까 말씀을 못 하신 거잖아요.”
“이 점도 무례하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전혀.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우리 둘 다 기자잖아요. 보안에 신경 쓰는 건 너무 당연해요. 두 분이 취급하시는 사안은 언제나 한국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더군요. 저한테까지 연락하셨을 정도라면 이번 사안은 사이즈가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맞나요? 제가 두 분의 마음에 들어서 꼭 정보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키리하라는 생수병을 까서 목을 축였다.
베테랑 기자답게 그녀는 여유가 넘쳤다.
주제에 매우 흥미를 느끼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만들지는 않는다.
대화를 이어 나가는 기술이 꽤 좋다.
“기자님께 무례한 질문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최종현은 나를 흘긋 보며 덧붙였다.
“차 변호사님이 좀 직설적인 편이거든요.”
“벌써 무서운데요. 하지만 전 직설적인 분들하고 대개 잘 맞아요. 저도 꽤 직설적인 편이거든요.”
[진실]영어로 대화하고 있는데도 진실과 거짓은 한국어로 출력되는구나.
이런 말에는 능력을 쓸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궁금해서 한번 해 봤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으십니까?”
“일본에서요?”
“네.”
“음, 개인적으로는 있어요.”
키리하라의 대답에 이번에는 강수일이 꽤 놀란 듯했다.
강수일은 그녀가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는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그런데 기자로선 없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은 소수당이고, 의석수도 한 손에 꼽을……. 아니다, 한 손으로 꼽아도 심지어 남을 정도라서요. 그 정당에 대한 기사를 낸 적도 거의 없고, 개인적인 교류도 전혀 없어요.”
[진실]키리하라가 대답하기가 무섭게, 강수일은 휴대폰을 꺼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하는 소수 정당이 어떤 느낌인지 파악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는 잠시 검색하다가, 나를 향해 고개를 낮추며 조용히 속삭였다.
“한 손에 꼽아도 남을 정도라면 의석수가 5개 미만이라는 건데, 그런 정당이 몇 군데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자세히 살펴볼 순 없지만, 집권 여당하고는 견해 차이가 큰 곳들이 대부분입니다. 정신머리 빠진 것 같은 정당도 있긴 하지만, 키리하라 기자의 성향상 그쪽을 지지하진 않을 것 같고요.”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저한테 물어보셔도 되는데.”
키리하라는 강수일을 보며 살며시 웃었다.
그러자 강수일은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키리하라 기자가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결격 사유가 될 것 같은 정당이 어딥니까? 일본어로 적어 주십시오.”
나는 강수일에게 물었다.
그러자 강수일이 수첩에 당명을 적어 나에게 넘겼다.
“기자님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시든 상관은 없지만, 이 두 곳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내가 수첩을 그대로 키리하라에게 보여 주자, 그녀는 수첩을 받아 들기가 무섭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무례하시네요. 이건 진짜 무례해요. 이 두 곳 지지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뇌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구요.”
[진실]그녀가 지지하는 정당은 소수 정당이고, 입김이 센 기자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해당 정당을 밀어주지도 않았다.
개인적인 교류도 없다고 하니, 단지 시민으로서 지지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현 여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사해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일본은 한 정당이 아주 긴 시간 내각을 장악해 왔어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기에 집권 중이었죠. 게다가 일본은 한국처럼 여야 교체가 잦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당장의 현실적인 최선은 집권당 교체는 아니에요.”
현실적인 수준의 최선이라고 하니, 키리하라에 대해 처음 접했을 때 다른 이들이 했던 우려 섞인 말들이 떠오른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최종현을 포함해서, 그들은 키리하라가 이상론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진 않을지 걱정하지 않았던가.
“지금 일본은 여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있어요. 일본 내에서는 오노데라 마사오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 점에 대해서는 정말 참을 수 없이 유감입니다. 오노데라 마사오는 여당 내에서 경민회라는 파벌의 수장인데, 지금의 경민회는 상당히 질이 나빠요. 오노데라 마사오부터가 수준 미달이니 말 다했죠.”
[진실]오노데라는 일본 내에서도 유서 깊은 정치 명문가 출신이라고 들었다.
집안이 전부를 말해 주진 않지만, 그만큼 이미지 관리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안이나 출신 대학교가 좋으면 뭐 해요. 그 사람은 정치인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 인간 아버지가 총리였고, 그때 이것저것 때가 맞아서 운 좋게 일본이 호황을 누렸는데, 그것 때문에 오노데라 마사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들이니까 똑같이 잘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키리하라는 오노데라에 대해 상당히 반감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플러스 요인이다.
“게다가 15년 전에 오노데라 가문 스캔들이 있었는데, 그걸 의식해서인지 가정적인 이미지를 자꾸 어필하더라고요. 귀엽게 생긴 외손자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다정한 할아버지 행세를 하는 건 정말 토가 나올 지경이에요.”
[진실]게다가 그녀가 말하는 외손자는 이번에 심장 이식을 받을 그 아이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을 짚었다는 점에서 또다시 플러스 요인이다.
“아, 제가 너무 흥분했나요. 하지만 정말 싫은 사람이라서 저도 모르게…….”
“그러면 만일, 저희가 드리는 정보가 오노데라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 질문에 키리하라는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물론 내가 들고 있는 건 오노데라에게 유리하기는커녕, 오노데라를 조질 만한 정보지만, 그녀가 개인의 사상과 반대편에 있는 사안을 어떻게 취급할지 확인하기에 적당한 질문이다.
“정말 고민이 많이 되네요. 사실 저는 오노데라 마사오가 정계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사람이라, 그 사람한테 유리한 정보라고 하면……. 뭐, 오노데라의 단순한 미담은 아닐 거고, 아마 경쟁자나 그 관련자에게 불리한 내용이겠죠. 그래서 오노데라가 반사이익을 보는 느낌일 것 같은데…….”
키리하라는 팔짱을 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고개를 젖힌 뒤 한참을 생각하다, 곧 튕기듯 자세를 바르게 하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있는 그대로 내보내야죠.”
[진실]“오노데라가 반사이익을 볼까 봐 다른 부정을 묻을 생각은 없거든요.”
[진실]사견과는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게 기자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하는 사람 같다.
“그럼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만일 기자님이 작성하신 기사 때문에, 혹은 작성하실 기사 정보가 새는 바람에 위협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위협이면 어느 수준이요? 습격?”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면요. 어쩌면 가족까지도.”
“일단 저는 가족이 없어요. 부모님은 안 계시고, 미혼이거든요. 언니가 있긴 한데, 지금 스위스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 한 명만 놓고 봐야겠네요.”
“네.”
“음……. 아, 뭐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놀라지 마세요.”
키리하라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바지 안에 넣어 입었던 셔츠를 밖으로 뺐다.
그녀가 경고하긴 했지만, 최종현은 꽤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키리하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셔츠를 배꼽 위까지 끌어올렸다.
“여기 흉터 보이세요?”
그녀는 왼쪽 옆구리 부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많이 옅어졌지만, 갈색으로 변해 본래 피부색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흉이 있었다.
“10년 전에 극우 단체가 쿄쿠토 신문을 테러한 적 있어요. 사실 그거, 절 노린 거였어요. 제가 그때 계속 극우 단체와 일본 재벌, 그리고 정치인들의 상관관계를 조사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칼에 찔렸는데, 아……. 정말 아팠어요. 다행히 쿄쿠토 신문에서 저를 보호하려고 제 신원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해 줬고, 그래서 피해자가 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진실]이쯤 되면 더는 검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녀와 나는 비슷한 경험이 있다.
배가 뚫리는 건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럽다.
사실 고통은 부차적인 문제다.
한번 이런 일을 겪으면, 이후에도 같은 일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두려워지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고 구조다.
내가 어딜 가든 태식과 동행하고, 방탄과 방검 기능이 있는 조끼를 입고 다니듯이.
키리하라는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자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만일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입을 열 가능성은 현저히 낮을 것 같다.
“상당히 힘든 일이 있으셨네요. 크게 다치신 겁니까?”
최종현이 도로 셔츠를 바지에 넣고 좌정하는 키리하라를 향해 걱정스레 물었다.
“그땐 그랬죠. 10년 전인데요, 뭐.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요.”
“이 일 그만하고 싶단 생각은 안 하셨어요?”
“아예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근데 저는 입 닫고는 못 살아요. 사회의 병균 같은 존재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심지어 그걸 제가 너무 잘 아는데어떻게 가만히 있나요. 아직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 줘야죠. 불 난 건물에 있으면서 조용히 있을 순 없잖아요? 대피하라고 소리쳐야죠. 그래도 좀 무서워서 ICIJ에 가입한 건 사실이에요.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진 않을까 싶어서.”
[진실]이제 충분하다.
“기자님. 노트북 꺼내세요. 사건 설명 드리게.”
나는 한국어로 최종현에게 말했다.
그러자 최종현이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드나 보네?”
“꽤 마음에 듭니다.”
“근데 저 사람이 하는 말 다 믿을 수 있어? 거짓말이면 어떡하려고.”
“거짓말 아닙니다. 저분이 쿄쿠토 신문 테러 사건 피해자 맞거든요.”
사실 다른 말들도 다 진실 판정이었기 때문에 더욱 신뢰했지만, 최종현을 납득시킬 수 있는 말만 하기로 했다.
“아는 사람 별로 없다는데, 어떻게 알았어?”
“김미자 씨한테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일단 김미자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는 건 나밖에 없으니, 지금 당장 들킬 일은 없겠지.
나중에 혹시라도 들키게 된다면, 그땐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아, 이래서 범죄자들이 그렇게 모르쇠로 일관하나 보다.
무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