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29)
너희들은 변호됐다-529화(529/641)
강민재를 들이받았던 트럭 운전자를 감시한 지도 벌써 20일째에 접어들고 있다.
“하, 경찰은 저 새끼 언제 구속하냐.”
호영이 옆에 드러누워 있던 우철에게 속삭였다.
“몰라.”
우철도 마찬가지로 속삭였다.
방 안에 있는데도 그들은 속삭이며 대화해야 했다.
그 때문에 목구멍도 아프고, 자꾸 건조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여관은 방음 수준이 처참해서, 옆방에서 방귀 뀌는 소리까지 다 들리니까.
공기 100% 소리 0%로 말하지 않으면, 그들이 트럭 운전자의 목소리를 엿듣듯이 놈도 그들의 대화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뭐냐, 언젠가 친구 중에 공부 좀 했다는 놈 하나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나를 들여다본다고.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대충 맞는 것 같은데.
아님 말고.
“태식이 형님이 저 새끼 계속 경찰 조사 거절하면 구속된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그 계속이 언제냐고. 아, 나 술 마시고 싶다. 금주를 20일이나 했더니 지금 손이 덜덜 떨린다. 저 새끼가 구속되든, 뭐가 되든 해야 하는데.”
태식은 트럭 운전자 감시 팀을 총 다섯 명 붙여 주었는데, 그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문역에 머무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철을 팀장 삼아 파견된 팀이었는데, 대철에게 중요한 업무가 할당되면서 호영이 빈자리를 메우게 되었다.
그땐 몰랐다.
교대로 감시한다기에 맥주 한 캔쯤은 마셔도 될 줄 알았는데.
“이번 기회에 갓 태어난 수준의 간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라.”
호영이 과장되게 손을 떠는 모습을 보던 우철이 나름대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우철은 대철이 떠나면서 새롭게 이 팀을 통솔하게 되었는데, 호영과는 입사 동기다.
“넌 술 안 마시고 싶냐?”
“너 알코올 중독이냐. 그냥 좀 참아.”
“그래서 참고 있잖아, 이 자식아.”
이 팀의 업무는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는데, 하나는 여관 출입구와 운전자의 방에 난 창문 근처를 감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방에서 운전자의 전화 통화를 엿듣는 일이다.
그러다 돌발 상황이 생기면 바로 차를 타고 운전자를 추격해야 했으므로, 그들은 결코 술을 마실 수 없는 처지였다.
“저 새끼는 심심하지도 않나. 어떻게 방 밖을 나가지도 않냐.”
이곳에 머무는 20일 동안, 운전자는 딱 세 번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나갈 때마다 근처 슈퍼에서 담배 한 보루와 상당한 양의 술, 그리고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서 들어왔다.
식사는 배달 음식이나 라면으로 때우는 모양이었다.
방문 너머에서 철가방 소리가 빈번하게 났고, 철가방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는 벽 너머에서 후루룩거리는 소리가 꽤 자주 들렸기에 알 수 있었다.
“저 새끼한테 일 맡긴 놈들도 진짜 어지간하지 않냐.”
호영이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그사이 우철은 새벽 내내 차 안에 앉아 여관 출입구를 감시하느라 지쳐 잠들었지만, 등지고 누워 있어서 호영은 알지 못했다.
“얘기 들어보니까 일이 실패로 돌아가도 돈 주기로 했다던데. 양아치 아니야?”
“…….”
“다 알아서 해 준다고 해 놓고 말 바꾸는 거 요즘 삼류 건달들도 안 하는 짓인데.”
운전자는 지난주까지는 꽤 자주 통화했다.
가끔은 스피커폰을 쓰기도 해서, 운이 좋으면 상대방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상대방, 그러니까 저 자식에게 차주한을 차로 받아 버리라고 사주한 쪽은 상당히 뻔뻔하게 나왔다.
실패 수당은 차주한을 죽이지 못했을 경우를 가정한 것인데, 운전자는 오히려 전 대통령 손자를 받아 버렸기 때문에 전혀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생겨 버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건이 복잡해져서 보상을 어떻게 할지는 두고 봐야 안다고 했다.
“저 새끼들 저렇게 시간 끌다가 운전자 새끼 죽이려는 거 뻔한데……. 저 운전자 놈도 띨띨하다, 띨띨해.”
차주한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우신 측에서 조만간 사람을 보내 운전자를 일본으로 넘길 거라고 했다.
그럼 일본 놈들이 운전자를 알아서 처리할 거라는데.
태식은 수배가 떨어지면 출국 정지되니, 아마 그전에 운전자의 신병을 확보하려고 할 게 분명하다며 긴장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물론 태식의 머리에서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차주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똑같이 전달해 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태식을 존경하지만, 태식은 그런 사법 절차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아, 아닌가?
본인도 수배 떨어져서 도망 다니던 시절이 있었으니, 오히려 잘 알지도 모르겠다.
“우신 놈들이 저 새끼 데려가기 전에 얼른 수배가 떨어져야 하는데.”
“…….”
우신이 운전자를 데려가기 전에 수배가 떨어지면, 그때는 바로 경찰에게 운전자의 위치를 제보한 뒤 구속당하는 것을 확인하고 철수하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대화를 엿들으면 운전자 역시도 경찰이 자신을 구속하려 들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이따금 다른 벨 소리가 울려 전화를 받을 때는 주로 가족과 통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땐 ‘집에 무슨 서류가 와도 그냥 무시해라’,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해라’, ‘사정이 있어 그러니 일단 기다려라’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경찰은 지속적으로 운전자의 등본상 주소지로 출석 요구서를 보내고 있고, 가족들에게도 행방을 묻는 모양이다.
“대철 형님은 강 실장님이 경찰하고 계속 얘기 중이니까 수배 떨어지면 소식이 들어올 거라고 하긴 하던데…….”
물론 그간 먹여 주고 재워 준 태식 형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얼른 서울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혼자 뭐라고 씨부렁거리냐…….”
결국 호영의 독백(안타깝게도 호영은 대화 중이라고 생각했다)에 지친 우철이 눈을 뜨고 그를 돌아보았다.
“뭐야. 잤어?”
“네가 혼자 하도 씨부렁거려서 못 잤다. 뒤지고 싶냐.”
“아, 빨리 저 새끼가 구속돼야 우리도 안전하게 일이 끝나잖아.”
“구속되기 전에 그놈들이 먼저 저 새끼 조지려고 하겠지. 뻔하잖아.”
“근데 왜 아직도 저 방에 처박혀 있냐고. 그럼 그쪽에서 저 운전자 놈한테 어디서 접선을 하자고 연락하든지, 여기로 쳐들어와야 할 거 아니야.”
“저 운전자한테 일 맡긴 건 야쿠자들이라며. 그런데 일이 실패로 돌아가서 상황이 이상해지니까 우신 놈들이 저 새끼를 일본으로 운반해 주기로 한 거고. 그러면 야쿠자 놈들이 일본에서 죽인다고 하지 않았냐.”
“그렇지.”
“그럼 일 맡긴 놈이 아니라 우신 놈들이 쟤를 끌고 가야 하는데, 그거 조율하느라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지이이이잉!
우철이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옆방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우철은 순식간에 호영의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벽에 귀를 붙였다.
─대체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요?
운전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요 며칠간 혼자 욕만 할 뿐, 통화는 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거였던가.
─해외요? 그럼 언제 들어올 수 있는데요. 계속 불출석하다가 해외로 튀기까지 하면 빼도 박도 못하는 거잖아요, 이 사람아. 그럼 나는 한국에 다신 발 못 붙일 수도 있는데, 그럼 처자식은 어쩌고! 그냥 돈 주면 그냥 졸음운전이었다고 하고 그쪽에 합의금 주고, 벌금 내고, 살아야 하면 잠깐 살다가 나온다니까? 아니, 간단한 일을 왜 이렇게 꼬는 거예요? 예?
운전자의 언성이 높아졌다.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운전자는 내켜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씩씩거리는 소리가 벽 너머까지 들려왔다.
─아니, 나는 해외 안 나갈 거라니까요? 해외 나가면 상황이 더 좆같이 되는데, 내가 왜 나갑니까? 당신 바보야? 어차피 성공하면 3억, 못 죽여도 2억이었잖아. 그러니까 2억 주라고. 그러면 보험 처리해서 그쪽에 보상하고, 벌금 내고, 살다 오겠다고! 씨발, 살인 미수로 안 걸리게 하면 되잖아요. 어차피 보험에 변호사비도 포함되어 있는데, 변호사하고 잘 얘기해서 그냥 과실치상으로…….
알아들을 순 없지만, 상대방이 운전자의 말을 자르고 또 무어라 말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입 다물겠다고! 그렇게 못 믿겠으면, 전 대통령 손자가 변호사든 뭐든, 그쪽에서도 비싼 변호사 써 주면 되잖아요. 어차피 내가 그 변호사 죽이면 태광 붙여 준다고 한 거 기억 안 나요? 또이또이잖아. 내가 입 열게 걱정되면 태광 붙여 줘요. 아니, 변호사비를 나한테 줄 돈에서 까면 안 되지, 이 사람아.
보아하니, 운전자가 차주한을 죽이는 데에 성공하면 태광 변호사 써서 형량을 최대한 줄여 주겠다고도 했나 보다.
거기다가 3억까지 추가로 얹어 주고.
그러면 운전자는 도박 빚도 갚고, 적당히 살다 나오면 그만이니 남는 장사라고 판단했겠지.
─이 사람아. 지금 누가 불리한지 몰라요? 내가 당신 사주로 들이받은 거라고 물귀신 하면 당신도 좆되는 거 아니야? 왜 당신이 갑인 줄 알고 지껄이는 거야, 대체? 당신 뒤에 누구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없다고? 없긴, 지랄하네. 없긴 뭐가 없어. 씨발, 당신이 나한테 죽이라고 한 사람, 이정찬 살인범이라고 누명 썼던 변호사잖아. 사고 현장에서 다 봤는데, 시치미를 떼고 있어. 그때 범인들한테 이정찬 죽이라고 시킨 게 고윤수 비서실장 아니었어? 뉴스에 다 나왔는데, 씨발 모른 척해 주니까 사람을 진짜 병신으로 아네?
운전자는 쉬지 않고 쏘아붙였다.
─사람들이 바보인 줄 알아? 누가 그걸 그 비서실장 단독 행동이라고 생각해? 고윤수가 죽이라고 시킨 거 비서실장이 뒤집어쓴 거잖아. 사람들 다 알아! 그러니까 그 변호사 새끼 죽여 달라고 돈 댈 사람 누군지 뻔하지. 우신이잖아. 느그 뒤에 우신 있지? 그래서 지금 계속 내가 다 불어 버릴까 봐 이 좆지랄을……. 그래, 씨발, 돈도 많으면서 대체 돈 몇억 쓰는 게 뭐가 아깝다고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끄냐고! 경찰에 갖고 가서 다 불까? 같이 죽을래? 나 당신이랑 통화한 거 싹 다 녹음해 놨어.
여태 운전자가 상대방에게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신 이야기는커녕, ‘언제까지 숨어 있어야 해요’, ‘고민 많은 거 이해하니까, 얼른 정산하고 우리 서로 마음 편해집시다’ 같은 말로 상대방을 어르고 달래기에 바빴다.
사고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하필이면 본인이 받은 사람이 전 대통령 손자여서 겁을 먹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벌써 3주씩이나 질질 끌고 있으니 운전자도 화딱지가 나서 세게 나가기로 한 것 같고.
─씨발, 이제야 말이 통하네. 진작 그럴 것이지……. 그럼 현금 2억에 태광 변호사까지 붙여 주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예? 나중 가서 딴소리하면 나 진짜 자수합니다. 네. ……그쵸, 계좌로 받으면 안 되지.
태광 변호사를 붙여 운전자의 형량을 최대치로 낮춘 뒤 2억까지 주는 걸로 합의가 된 것 같다.
─문역에, 방진 시장이라고 있어요. 거기 입구 쪽에 있는 삼일 여관 109호. 몇 시라고요? 1시? 새벽이요, 낮이요. 새벽? 이제 돌아오는 새벽, 아니면 내일 밤 지나고 새벽? ……아니, 날짜가 12시 지나면 바뀌는 건 나도 아는데 혹시 모르니까 묻는 거잖아요.
돌아오는 새벽 1시.
그쪽에서 돈을 들고 여기로 오려는 듯하다.
─알았어요. 돈 세야 하니까 계수기도 들고 와요. 위조지폐 이딴 거 아니겠죠? ……아니, 나도 믿고 싶지. 근데 여태 그쪽에서 시간도 질질 끌고 일주일이나 연락도 안 되는데 걱정을 안 하겠어요? 알았습니다. 네. 그럼 출발할 때 연락해요. 짐 싸게.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아오, 개새끼들, 진작 이럴 것이지. 역시 세게 나가야 말을 알아듣는다니까. 누굴 호구 등신으로 아나.
운전자는 혼잣말하더니 갑자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녹음했냐?”
조용히 있던 우철이 호영을 향해 속삭였다.
호영은 녹음 중인 휴대폰 화면을 우철에게 보여 주었다.
“빨리 형님한테 보내. 당장 새벽 1시에 그 새끼들 올 모양인데.”
“근데 저 새끼들이 합의 잘 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저 새끼는 그냥 풀려나는 거잖아.”
“……너 뇌 없냐?”
우철이 호영을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호영이 눈을 끔뻑거리자, 우철이 그에게서 휴대폰을 빼앗아 녹음 파일을 태식에게 전송하며 말했다.
“운전자 새끼 저렇게 달래서 일단 만난 다음에 납치하려는 거잖아. 우신 소리 나왔다고, 좀 세게 말한다고 쫄아서 바로 저 새끼가 해 달라는 대로 해 줄 거였으면 이렇게 질질 끌지도 않았겠지! 형님한테 애들 보내 달라고 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