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3)
너희들은 변호됐다-53화(53/641)
나는 며칠에 걸쳐 학교 폭력에 관한 기사를 찾아 보았다.
유사 사건의 발생 양상과 판례를 찾아 보기 위함이었지만, 대부분의 기사는 학교나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보도 자료가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마트폰이 보급화되면서 학생들은 정제되지 않은 미디어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수법도 보다 치밀하고 교묘해지며, 더욱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해 간다.
물론 2018년 당시, 나는 학부모도 아니었고 그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보지는 않았으나 이따금 기사로 접하면 혀를 찼던 것을 기억한다.
진철의 부모는 결정을 내렸을까.
그때 이후로 벌써 일주일 가까이 지났다.
“오라이, 오라이!”
사무실 1층 야외 주차장에 진입하며 상념에 잠겨 있던 나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창문을 열었다.
“아, 사장님.”
건물주이자, 단골 카페 사장이었다.
“오라이야, 오라이.”
때아닌 파킹 도우미라니.
나는 그의 말대로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요즘에는 왜 카페 잘 안와?”
“꼬붕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갑자기 끼어든 난데없는 목소리는 강민재의 것이었다.
그는 한 손에 커피 두 개가 담긴 캐리어를 들고 서글서글 웃고 있었다.
“변호사님, 굿모닝입니다.”
“그래.”
“이야, 차 변호사. 활약 대단해. 그 드라마, 그거 차 변호사 사건 맞지?”
“네, 그렇게 됐습니다.”
“연준이 때만 봐도 알지, 뭐. 차 변호사 만나면 뭐, 재판 이기는 건 당연한 거고. 흐흐.”
“그럼요, 우리 변호사님 만나면 재판 무조건 이기죠! 그래서 말입니다, 사장님……. 혹시 주변에 도움 필요하신 분 어디 없을까요?”
강민재가 은근히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또다시 영업 사원 기질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가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볼 심산으로 팔짱을 끼었다.
안 그래도 어제 그는, 한 건 더 들어온 프로보노 사건을 검토해 보라고 했더니 죽상을 지었다.
“글쎄, 없는데. 왜, 요즘 일 없어?”
“……네. 이러다가 저희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변호사님은 만날천날 무료 변론만 하실 건지, 무료 변론 검토만 시키시고. 봉사하실 거면 NGO를 차리셨어야 하는데. 그럼 아주 잘하실 텐데 말입니다.”
강민재가 축 처진 목소리로 중얼중얼 거렸다.
어디까지 밑천 드러낼 생각인지 알 수 없다.
이쯤에서 잘라 줘야지.
“강 변, 이만 들어가.”
“……사장님, 정말정말 사소한 건이라도 좋습니다. 그런 거라도 없을까요? 예?”
“강 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사장님, 생각을 잘 해 보시면 한 분쯤은…….”
“강 변. 세 번 말했다.”
강민재는 그대로 말을 끊고 돌아서서 건물 입구로 걸어갔다.
나는 사장에게 까딱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그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섰다.
“강 변. 돈 급해?”
“예? 그럴 리가요.”
강민재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었다.
“돈 급한 거 아닌데 왜 그렇게 사건에 목을 매. 나은성 씨 건 끝난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오래되진 않았지만, 김연준 씨 사건 이후로는 바로바로 들어 왔는데 이번에는 좀 텀이 길어지는 느낌이니까 그렇죠. 홍보가 덜 되었나 싶기도 하고.”
“홍보가 덜 되었을 리가 없잖아.”
나는 사무실에 들어서며 벽에 대문짝만하게 걸린 신문 스크랩 액자들을 턱끝으로 가리켰다.
강민재가 우리가 언급된 모든 신문을 스크랩해서 자랑삼아 벽에 걸어둔 것들이었다.
이렇게 해야 상담만 받으러 왔다가도 솔깃해서 의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할 거라는 말과 함께.
“아니, 저렇게 기사가 많이 났는데, 대체 왜 파리만 날리냐는 겁니다. 저는 변호사님, 억울해 죽겠습니다.”
“이제 개업한 지 일 년도 안된 사무실에 저정도 스케일 사건이 두 개나 들어왔던 게 대단한 거라곤 생각 안 해?”
“그러니까 세 번째 행진을 이어 가자…… 뭐 그런 말이죠, 저는.”
강민재는 풀이 죽은 채 책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나에게 주지 않은 커피가 생각났는지 캐리어에 담긴 컵 하나를 빼어 들고서는 내 책상에도 하나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태식이네 사건 기다려 보든가.”
“그 진철 군 사건이요?”
내가 서류를 넘기며 고개를 끄덕이자, 강민재는 손사래를 쳤다.
“학교 폭력을 재판으로 끌고 가겠다는 변호사님의 패기에는 존경을 표하는 바지만, 저는 좀 걱정됩니다.”
“왜, 태식이네 사무실에서 바로 영업하던 건 강 변 아니었나?”
“아, 그건 그런 문제인지 몰라서 그랬죠. 아무리 그래도 학교 폭력은 좀…….”
그때였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어떤 여자와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반색을 하며 뛰어나가던 강민재는 깜짝 놀란 듯 나를 돌아보았다.
진철의 어머니와 태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진철의 모친이 나를 향해 인사했고,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상담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녀를 데리고 온 태식은 전에 없이 진지한 분위기였다.
거기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존재감을 없애고 있었다.
그가 대단히 잘못했을 때나, 무언가 실수했을 때 하는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진철 군 아버님과는 상의 잘 해 보셨습니까.”
“어제, 애가 학교에 안 갔었대요.”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태식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땅 밑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장 대표. 진철 군 통학 시간 내내 직원 붙여 둔 거 아니었나?”
“……마, 맞습니다. ”
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불쌍한 척 해 봤자 소용없어. 솔직하게 말해 봐.”
“이미 어머님께는 말씀드렸습니다. 저희 직원은 진철이가 학교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퇴근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애 담임은 왜 학교 안 왔다고 전화를 하느냐고요!”
오전에 담임에게 결석 전화를 받은 모친이 바로 진철을 담당하던 직원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직원 역시 진철이 교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어리둥절해했고, 그때부터 두 사람은 진철에게 계속 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진철은 전화를 꺼 놓은 상태였고, 그대로 방과 후 학원까지 결석한 채로 밤 11시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진철 군한테는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 안 해 보셨습니까?”
“끝까지 물어봤는데 대답은 안 하고, 자기 가만히 좀 내버려 두라며 욕을 하더라고요. 하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마음이 안 찢어지고 배겨요? 우리 진철이, 그런 애 아니었어요. 부모한테 욕하고 그런 애 아닌데…….”
모친은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한숨만 쉬었다.
본래 그러지 않던 아이가 부모에게 폭력성을 내비쳤다면, 그 분노를 발산할 곳이 가정뿐이라는 방증이기도하다.
이미 다칠 만큼 다친 자존심은 부모의 걱정마저도 모욕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님, 어떻게든 조치를 해야할 것 같아요. 이대로 두다간 멀쩡한 아들내미 어떻게 될지 걱정돼서 가만히는 못 있겠다구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이대로 계속 해결하는 것 없이 방치했다가는 진철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학교 폭력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거나, 마음의 병을 얻은 사례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애들끼리 놀다 마음 상하는 것 정도로 보이겠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아직 청소년이라고 하지만, 18세라면 알 것은 다 안다.
진철이 당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폭력일 뿐이다.
“법적 조치는 뭐든 해 주세요. 저 우리 진철이 이렇게 만든 놈 가만 못 둬요! 법적으로든 뭐로든 안 되면 내가……. 내가……. 어흐흑.”
그녀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태식은 손수건을 그녀에게 건넸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실, ‘문신 삼촌’ 솔루션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그것은 진철의 뒤에 조직 폭력배 같은 삼촌이 있고, 자신들이 진철을 괴롭히면 그 삼촌이 보복할 거라는 공포심을 이용한 방법이다.
하지만 진철을 괴롭히는 학생들이 그 문신 삼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괴롭힘은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태식의 직원들이라면 하나같이 흉악범처럼 생겨서, 제법 무서워할 만도 한데…….
“장 대표.”
“예, 변호사님.”
“혹시 진철 군한테 붙여 준 직원, 진철 군 괴롭히던 학생들과 대화한 적 있나?”
“아, 예. 한번 방과 후에 진철이를 데리고 가려고 해서, 저희 직원이 주의를 준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냥 적당히 잘 말해서 보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진철이 이제 학원가야 해서 안 된다고 말했고요.”
“처음엔? 대화가 이어진 게 한두번이 아니라는 소리네. 그다음은?”
“그다음은 잠깐만 얘기하려고 그런다고 해서, 또 안 된다고 했는데……. 그때는 실실 웃으면서 진철이한테 삼촌한테 잘 말해 달라고 했답니다.”
아무래도 문신 삼촌이 진짜 삼촌이 아닌 것을 파악한 것 같다.
2008년에는 그리 흔한 케어 방법도 아닌데,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 학생들은 두 사람 사이의 역학 관계도 파악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랬기에 직원보다는 진철을 공략했을 것이고.
“그래서 진철이가 삼촌 말이 정말이다, 가 봐야한다…… 이렇게 말하고 함께 오긴 했다는데.”
“그다음 날이 그날이에요. 애가 맞고 들어온 날.”
모친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확실한 것은, ‘문신 삼촌’은 정말로 진철을 괴롭히는 학생들을 흠씬 패줄 수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성년자 폭행이기 때문에 겁을 주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마 진철을 괴롭히던 학생들도 그 사실을 파악했을 것이고,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진철을 폭행했을 터였다.
게다가 이제 이번 일주일 동안 그 학생들은 정말로 그 문신 삼촌이 자신들에게 보복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오히려 놀림거리가 됐으면 됐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님, 진철 군 다리 부러진 건 그때 병원에 갔다고 하셨으니 진단서 준비하실 수 있으시겠죠.”
“아, 네. 그렇죠.”
“가장 최근에 폭행 당했을 때도 증거로 남겨 두셔야 합니다. 지금쯤 멍이 사라지진 않았을지 조금 걱정이긴 합니다마는, ”
“변호사님하고 상담하고 온 날, 진철이 잘 때……. 멍 자국이나 그런거 찍었어요.”
그녀는 가방 안에서 사진을 몇 장 꺼내 테이블에 펼쳐 보였다.
사진 속 마른 듯한 몸에는 멍이 가득했다.
멍뿐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긁힌 상처와 찢어진 자국, 어딘가에 찍힌 듯한 흔적도 있었다.
“내가 속상해서 정말…….”
울음을 그쳐 가던 모친은 말끝을 흐리며 다시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갔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새로 든 멍도 있었지만, 사라져 가는 멍도 있었다.
폭행이 꽤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증거였다.
발톱과 손톱이 더러는 부러져 있기까지 했다.
진철을 괴롭히는 학생이 영민하게 구는 만큼, 눈에 보이는 곳은 많이 다치게 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옷에 가려지는 부위에 흉이 많았다.
“저걸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저 정도인 줄 몰랐어요, 저는, 정말…….”
더듬더듬 말을 잇는 그녀를 보며, 강민재는 한숨을 쉬었다.
“학폭위 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민재가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만일 가해자가 이혁민이라는 학생이 맞다면, 이혁민은 지금 전교 부회장인 데다 그 어머니가 학부모회에서 한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학폭위 개최 자체가 어렵거나, 열리더라도 흐지부지 될 공산이 컸다.
게다가 학폭위는 학생들의 진술서가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만일 이혁민이 모친의 말대로 인기가 많은 학생이라면 더욱 안 좋게 작용할 수있다.
학폭위가 아예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열린다 하더라도 결과가 경미하면 형사, 민사 고소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일단은……. 어머님께서는 민형사상의 고소를 진행할 생각이 있으시다고 하셨습니다.”
“……네.”
“고소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립니다. 즉각적인 대처는 여기 강 변의 말대로 학폭위가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폭위에서 마땅한 조치가 내려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 혁민이라 애, 아버지가 어디 공공 기관장이라고 들었어요. 애 엄마도 학교에서 치맛바람 좀 날리는 여자고요. 게다가 교사들도 문제없다고 하는거 보면……. 애가 이렇게 맞고 오는데 학교에서 문제없을 리가 없잖아요.”
“맞습니다. 일단, 고소를 위해서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한데……. 조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다 보니 그동안 진철 군이 학교에서 계속 폭력을 당할 것이 걱정되는군요.”
그때였다.
모친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휴대폰을 들어 올렸고, 그러자마자 바로 사색이 되었다.
그녀의 휴대폰 액정에 떠 있는 번호 저장명이 ‘진철이 담임’이었기때문이었다.
“네, 선생님. 네, 네…… 네? 진철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