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33)
너희들은 변호됐다-533화(533/641)
“어때, 마음이 좀 풀려?”
천종남의 영상 편지를 본 강민재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계속 팔짱을 낀 채, ‘흐음’ 하며 갸웃거릴 뿐이었다.
“왜요. 마음에 안 들어요? 무릎이라도 꿇으라고 할 걸 그랬나.”
태식도 강민재의 떨떠름한 반응에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자 강민재는 노트북을 덮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야 뭐, 제가 갖다 박은 거니까 마음 풀리고 말고 할 건 없죠. 저 새끼는 변호사님을 죽이려고 한 거니까, 변호사님 마음이 풀렸는지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어차피 제가 저 새끼한테 열받은 이유는 이렇게 병원 신세 지게 되어서가 아니라, 변호사님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요.”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진실]이라는 글자를 보고 있으니 더욱 기가 막혔다.
나는 근육이 조금 놀란 것 외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정작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수술한 건 강민재 아닌가.
“변호사님한테는 죄송하다고 하던가요?”
“그러긴 했지.”
천종남이 죄송할 일이 너무 많아서 사과를 난사했기 때문에,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것까지 사과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충 다 포함해서 사과한 거겠지.
“그럼 변호사님 마음은 풀리셨어요?”
강민재가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 천종남이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라면, 이 부분에 대한 화는 풀렸다.
아니, 애초에 화가 났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이미 저런 놈들을 수도 없이 만나 왔고, 그럴 때마다 내 분노는 주로 그놈들을 사주했던 우신을 향해 있었다.
이런 피라미들에게 할애할 감정적 여유는 없다.
“풀리셨을걸요. 천종남 잡아 왔을 때, 변호사님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야, 진짜 말도 마요. 나 옛날에 있던 조직에 진짜 무서운 사람 있었는데, 그 인간보다 더해.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저러니까 더 무서워.”
태식이 팔을 쓸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변호사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와, 나 진짜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을 것 같아요. 사람 협박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것 같던데. 겁주는 걸로 무슨 박사 학위 받았나 싶더라니까요. 하긴, 검사 시절 때도 무섭긴 했지…….”
“어떻게 협박하고 겁줬는데요?”
“죽인다고 하던데요.”
“내가 언제 그랬어.”
“죽인다고 했잖아요! 쥐도 새도 모르게 묻는다고 했잖아요!”
“그러고 싶어질 것 같다고 했지, 한다고는 안 했어.”
그렇지 않은가.
마음속으로 사람을 난도질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으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다.
나는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해서 그걸 실제로 저지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고상준의 숨이 붙어 있는 것이다.
“법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면 변호사님을 보여 줘야 한다고 봐요. 변호사님이 법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니었으면, 어우…….”
“그건 저도 동의해요.”
나를 존경한다면서, 왜 동의하는 거지?
저들이 평소에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궁금하다.
“변호사님 기분이 나아지셨으면 전 됐어요.”
“나아지고 말고 할 것도 없지.”
“기분이 안 나아진다고요? 그렇게 듣는 사람 스스로가 그 뭐냐……. 그, 있잖아요. 천민. 그, 천민인데 존나 천한 천민.”
“불가촉천민이요?”
“아, 네. 불가촉천민처럼 느껴지도록 말로 그냥 자근자근 밟아 버리던데. 그 정도 했으면 기분이 나아져야죠.”
“대체 어떻게 하셨길래 태식 씨가 이런 말을 하는 건지 궁금해졌어요.”
강민재는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썰을 풀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닌 체하지만, 나 역시 감정이 격해졌던 상황이었기에 제3자의 입으로 이야기를 들으면 민망할 것 같다.
하지만 강민재의 집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만일 그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있었다면 국정원에게 해킹이라도 부탁해서 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곡 창고에 가둬 놓은 놈들 얘기나 해 봐.”
나는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어차피 필요한 대화 내용이기도 했다.
어제 놈들을 만곡 창고에 잡아 뒀다는 보고만 받은 상태라, 나도 아직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천종남 경찰에 넘길 때 같이 넘기실 거잖아요.”
“그렇지.”
“일단 한 방에 한 놈 씩 가둬 놨어요. 밥 넣어 주고 있긴 한데, 안 처먹는대요. 그래서 존나 배고파지라고 일부러 라면 냄새 풍기고 있어요. 숨구멍 뚫어 놔서 그 안으로 라면 냄새 오지게 퍼질걸요.”
“그래. 굶기면 안 되니까. 뭐, 다른 말은 없어?”
“없죠. 이것저것 물어봤는데도 그냥 무시해요. 근데 그중 한 놈……. 걔가 책임자 같은데, 얘는 좀 멘탈이 깨진 것 같더라고요? 우리한텐 안 불더라도, 경찰한텐 불지도 모르겠어요.”
“걔는 멘탈이 왜 깨졌대요, 갑자기.”
강민재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나 역시 궁금하다.
우철의 말로는 전기 충격기로 지지거나, 빠루로 차 창문을 깨고 끄집어내서 팬 거 말고는 별짓 안 했다고 하던데.
“모르겠는데, 우철이 말로는 자기가 현실을 알려 줘서 그럴 거래요. 우철이는 좀 혓바닥이 독사 같은 놈이라서, 가능성이 있어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중 한 놈이라도 입을 열어 준다면 문제없다.
사실 처음 그놈들을 잡았을 땐, 현장에 바로 경찰을 불러서 넘기는 방향으로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면 경찰이 천종남이 어디 있는지 물을 게 뻔해서, 어쩔 수 없이 일단은 만곡 창고에 넣어 뒀다.
놈들이 경찰에 넘어가면, 처음에는 천종남을 기절시킨 적도 없고, 납치할 생각도 없었다며 잡아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현장 사진도 찍어 두었고, 그의 지문과 약품이 잔뜩 묻은 손수건과 위조지폐들을 다 경찰에 넘길 예정이라 언제까지 아니라고 할 순 없을 터다.
그러면 결국 그들은 우리까지 같이 물고 늘어질 생각으로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겠지.
우철을 포함한 직원들이 자신들을 전기 충격기로 지진 뒤 납치 및 감금했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만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할 작정이었다.
만곡 창고를 타인에게 노출할 수는 없으니, 천종남이 구속되면 바로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 뒤 경찰에 그곳으로 가면 놈들을 잡을 수 있다고 익명 제보할 예정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천종남을 납치하려 했다는 증거들도 익명으로 넘길 것이다.
물론 경찰도 누가 그들을 납치 및 감금했는지 찾아내려고 하겠지.
그러나 문역 여관에는, 허름한 여관들이 다 그렇듯 CCTV가 없었다.
우리는 공공 CCTV를 통한 추적을 피하기 위해, 중간에 잠깐 빠져서 번호판을 갈았다.
추적 회피 방법을 알려 준 우신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
“중간중간 회유해 볼까요, 어쩔까요.”
“애들 노출 안 되는 선에서 말은 몇 번 걸어 봐.”
“안에서는 밖이 안 보여요. 주차장에서 잡힌 두 놈은 우철이네 팀 애들 몇 명 봤을 건데, 어차피 어두워서 얼굴 기억도 안 날걸요.”
“나중에 옮길 때도 얼굴 안 보이게 해. 혹시 모르잖아.”
“그땐 타이거 마스크라도 쓰고 있으라고 할까 봐요.”
“그냥 평범한 마스크랑 선글라스로도 충분해.”
이제 필요한 대화는 끝났으니, 이만 가 봐야겠다.
아무리 강민재가 괜찮아 보여도 환자인데,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면 귀찮을 것이다.
“이만 가 볼게. 강 변도 곧 퇴원한다면서.”
“네. 사실 저번 주에 퇴원하라고 했는데, 아지트로 쓰자는 형님들 말 때문에 일단 눌러앉은 거거든요. 근데 진짜 좀이 쑤셔서 안 되겠어요. 그래도 VIP 병실이라 대기자가 없는 게 참 다행이죠?”
“……저번 주에 퇴원하라고 했어?”
“네. 수술 부위도 잘 아물고 있고, 입원한 김에 여기저기 다 검사해 봤는데 나머지도 다 괜찮다고 퇴원하라던데요.”
주변에 경막하 출혈로 수술한 사람이 없어서, 많이 다친 만큼 입원 기간도 긴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눌러앉은 거였어?”
“네. 모르셨어요?”
강민재가 3주나 입원했다는 점 역시 천종남을 향한 분노에 영향을 미쳤는데.
“강 변이 말을 안 하면 나는 모르지.”
“뭐든지 다 아셔서 이것도 아실 줄 알았어요. 동진 형님이 말해 주셨을 것 같기도 했고.”
“그럼 그때, 동진이한테 퇴원시켜 달라고 조른다고 했을 땐?”
“아, 그땐 퇴원하면 안 되는 때였죠. 아니, 저 진짜 아팠던 건 맞아요! 여기 땜빵도 생겼는데!”
강민재는 자신의 머리칼을 젖히고 수술 자국을 보여 주었다.
시간이 흘러 머리카락이 조금 자라긴 했지만, 그래도 땜빵은 땜빵이다.
머리가 더 자랄 때까지는 좀 비어 있을 것이다.
“와, 이런 땜통이 있었네. 강 변 머리숱 되게 많네요. 이게 가려지네.”
“안 가려질 정도로 크진 않잖아요.”
“그럼 빨리 퇴원해. 병원 멀어서 오가기 귀찮아.”
“태세 전환 너무하시네…….”
“아무튼 간다.”
“아, 왜요.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찬영이 만나기로 했어.”
김찬영에게 부탁할 것도 있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동기화하는 대상은 아니기 때문에, 여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기도 해야 한다.
찬영은 우리 중에 유일하게 고상준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사람이다.
그가 고상준 앞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또 고상준과의 대화에서 필요한 정보를 빼낼 수 있도록 배경지식은 남겨 줘야지.
* * *
“오카시마 병원하고 리본 의료원 설계도면이요?”
김찬영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기울였다.
말은 꺼냈지만, 어려울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RND의 지분을 가진 페이퍼 컴퍼니를 받았다고 해도, 일반적인 회사처럼 체계가 잡혀 있어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하지만 설계도면을 얻을 방법은 김찬영 하나뿐이다.
“오카시마 병원은 오노데라 손자 잡으러 들어갈 때 임현일이 튈 곳을 미리 알아 두려면 필요하긴 하겠네요. 그런데 거기는 그냥 일반 병원이라 공개된 설계도면이랑 동일하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처음 지어질 때부터 오다 사토시 동생한테 운영을 맡긴 걸 보면 만일에 대비해 놨을 것 같거든.”
“하긴……. 그럼 리본 의료원은요?”
“거긴 어차피 용도가 다른 건물이라 일이 터지고 나면 수색 영장이 나오긴 할 거야. 그런데 거기도 뭔가를 감춰 놨을 수도 있잖아. 근데 기껏 영장 받아서 들어갔는데, 어디에 뭐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빈손으로 나오게 되면 아쉬우니까.”
“그럼 반드시, 꼭, 무조건! 있어야 하는 것들은 아닌 거죠?”
나는 선선히 끄덕였다.
여태 부탁하면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뒤탈 생길 것 같으면 포기해도 돼.”
“흠, 분위기를 좀 봐야겠어요. 요즘 고상준이 저한테 연락을 좀 자주 하긴 하거든요.”
“그래?”
“네. 원래는 용건이 있거나, 너무 등한시한 것 같다 싶을 때만 연락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좀 달라요. 저를 전략실에 넣고 나서는 정말 애비 행세라도 하려는 건지, 자주 부르더라고요.”
“뭐, 중요한 얘기 흘린 건 없고?”
“요즘 마음 둘 곳이 없다는 이야기 위주예요. 가장 큰 비밀은 말하지 않지만, 저를 감정 해소하는 대나무 숲 정도로 쓰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건 그것대로 받아 주기 힘들겠는데.”
“고상준 멘탈 깎인 게 보여서 생각보다 즐거워요. 그리고 중요한 얘기가 있으면 진작 말씀드렸겠죠.”
그건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우신 조지려는 의지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김찬영을 보고 있으면 나는 한 수 접어 줘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니까.
“아. 사실, 변호사님한테 말씀 안 드린 것도 있어요.”
“뭔데.”
“……고상준이 얼마나 변호사님을 죽이고 싶어 하는지?”
그건 이미 충분히 느껴지기 때문에 듣지 않아도 된다.
“예전엔 거슬린다는 수준에서만 말했는데, 요즘엔 부쩍 본심을 드러내요. 더 크기 전에 없애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말도 하고.”
“그만큼 네가 믿음직스러운가 보네.”
“그러게요. 파트장이 제가 일을 잘한다고 했나 봐요.”
전략실은 김찬영 같은 평사원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과장급 이상은 되어야 전략실로 발령이 나고, 전략실에서 한동안 구르면 그 후에는 최소 계열사 임원으로 보내 주기 때문이다.
그런 베테랑들 사이에서 일 잘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김찬영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뜻이다.
“쌔빠지게 일한 보람이 있죠. 하, 근데 설계도면을 어떻게 열람할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제가 조회할 수 있는 자료들은 다 보고 있는데도 RND와 관련된 건 전혀 없어요.”
“없겠지. 가장 큰 약점인데 그걸 아무리 전략실이라고 해도 열람하게 두진 않을 테니까. 애초에 기업 차원의 사업이 아니잖아.”
“그럼 설계도면을 무슨 수로……. 고상준한테 대놓고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저한텐 RND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 알려 주지도 않는데.”
김찬영은 한숨을 쉬며 소파 위에 늘어졌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추측이긴 한데, 이 추측이 맞다면 이 방법으로 설계도면 건질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