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35)
너희들은 변호됐다-535화(535/641)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것저것 냄새를 맡고 다니는 것만은 확실해. 천사의 집만 해도…….”
“천사의 집이요? 그 복지 재단 산하에 있는 보육원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찬영의 물음에, 고상준은 말없이 반쯤 녹은 얼음 위에 위스키를 부었다.
고상준은 지금까지 김찬영에게 천사의 집에서 벌이는 인신매매 건은 공유하지 않았다.
아직 김찬영을 그만큼 믿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김찬영이 그 장기 매매의 수혜자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천사의 집 이야기가 나오는 건 처음이니, 어쩌면…….
“그래. 그때 KDL 컴퍼니가 남수단에 폐광을 갖고 있고, 그 부지에 학교를 짓는다는 이야기를 터트렸을 무렵부터 천사의 집을 주시하더구나. 남수단에 학교를 짓는 일은 천사의 집의 사업으로 분류되니까.”
“KDL 컴퍼니 건은 마무리된 것 아닙니까. 폐업 처리 하셨잖아요.”
“그래. 천사의 집에 있는 건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전부가 아니라면…….”
“천사의 집 애들 이름으로 잠깐 차명 계좌를 썼거든. 이미 정리는 끝났다. 아주 예전의 일이야.”
천사의 집 아이들 이름으로 차명 계좌가 있었다고?
차주한에게 이런 얘기는 들은 적 없다.
혹시 그도 모르는 걸까.
“얼마나 예전의 일입니까?”
“몇 년 전이니 신경 쓸 건 없다.”
고상준이 말하는 걸 들으니, 차명 계좌로 운용했던 건 뒤탈 없이 잘 묻은 것 같다.
혹시, 인신매매로 일본에 넘긴 아이들의 계좌를 이용한 뒤 사망 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처리한 건 아닐까.
차주한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학생 비자를 받아 일본으로 넘긴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자 갱신에도 한계가 올 거라고.
그땐 사망 처리해서 한국에 돌아올 수 없도록 주민 등록 자체를 말소시킬 수도 있다고.
“아무튼, 그놈이 조용한 건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야. 그것만은 확실하다.”
고상준은 아무래도 김찬영에게 장기 매매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차주한이 천사의 집을 주시하는 게 부담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장기 매매 때문 아닌가.
이야기를 끌어내 볼까 싶었지만, 그의 빈축을 사지 않으면서 유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김찬영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고상준이 인신매매 사업 정보를 공유하는 자식은 고윤수가 유일한 듯하다.
아무리 자신이 본처 자식들을 제치고 신뢰를 얻는다고 해도, 고윤수의 아성을 넘보기는 어렵겠지.
“게다가 최근에 큰 사고가 있었어.”
고상준은 화제를 돌렸다.
“큰 사고요?”
“차주한을 죽일 생각이었다. 어차피 나머지 떨거지들은 차주한을 구심점으로 뭉친 거라, 그놈 하나만 사라져도 일이 쉬워질 것 같았거든. 그런데 일이 잘못됐어.”
“일이 잘못됐다면…….”
“차주한을 죽이기 위해 보냈던 덤프트럭이 강관웅 손자놈을 들이받았다.”
“강관웅 손자면, 차주한과 같은 로펌에 있는 그 변호사 말씀이세요? 생김새가 꽤 다르지 않나요. 착각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강관웅 손자가 중간에 덤프트럭을 들이받았어.”
“……사고를 막으려고요?”
“그랬겠지.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차주한은 분명히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런데도 기사 한 줄 나지 않았다. 넌 이게 무슨 뜻 같니.”
며칠 전 차주한과 만났을 때, 강민재의 사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 차주한은 사주를 받은 덤프트럭 운전자인 천종남, 그리고 천종남을 죽이기 위해 파견된 이들까지 전부 확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기사가 난다면 아마 그들을 경찰에 넘긴 다음이겠지.
고상준도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증거가 없어서 기사를 안 낸 게 아니라면, 뭔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 같긴 합니다.”
“게다가 강관웅은 살해당했으니, 그 손자까지 살해당할 뻔했다고 이야깃거리를 잘 만들면 대중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하지. 그 기회를 그냥 넘기진 않을 거다.”
강관웅을 살해한 게 본인이면서, 시치미를 떼는 걸 보니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상황이 아주 나빠. 그 덤프트럭 운전자 놈도 사라졌고, 그 기사를 죽이기 위해 보낸 놈들도연락 두절이거든.”
“……차주한이 데려간 걸까요.”
“그렇겠지. 대체 일을……. 일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고상준은 목소리를 낮추며 크게 숨을 골랐다.
오노데라에게 왜 차주한을 얕보았냐며 화를 내진 못하겠으니, 그는 분명 고윤수에게 화풀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충분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아직도 분노한 상태였다.
“아버지가 하신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김찬영의 말에, 고상준이 조금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김찬영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하신 일이라면 이렇게 난장판이 되었을 리는 없으니까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여러 사정이 있었지. 이런 상황에 만일 네 엄마와 차주한이 연락하고 있다면, 네 엄마처럼 귀가 얇은 사람을 설득하는 건 일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가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많이 괜찮아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평생 놓지 못했던…… 톱스타 김화영의 이미지를 버리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엄마는 아무리 연을 끊었다고 해도, 저를 버릴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버지와 불륜 관계라는 게 드러나면, 필연적으로 저도 물 위로 떠오르게 될 겁니다. 법적으로야 저는 큰외삼촌 자식인 것으로 되어 있지만, 엄마가 여태 숨어 살기만 한 건 아니잖습니까. 제 이야기가 어떻게든 나오겠죠. 엄마는 저를 궁지로 몰진 못합니다. 그러니 엄마 걱정은 마십시오. 원하신다면, 제가 엄마한테 연락해 보겠습니다.”
“네가?”
“처음엔 화를 내겠지만, 결국 저를 받아 줄 겁니다. 그러면 떠볼 순 있죠.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저는 엄마를 아주 잘 압니다. 거짓말도 잘 못해서, 번번이 저한테 걸렸잖아요.”
고상준이 여기에 넘어오면, 김찬영은 그의 의심을 사지 않으면서 김화영과 연락할 수 있게 된다.
김찬영도 우신이 망할 때까지 김화영과 연락하지 않을 작정은 아니었다.
연락을 끊은 것처럼 굴었던 건, 자신이 엄마가 아닌 그를 선택했음을 보여 주기 위한 액션일 뿐이었다.
애초에 고상준도 김찬영이 영영 김화영과 보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고.
“그래, 한번 떠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엄마는 저한테 맡기시고, 하나라도 걱정을 더시는 게 좋겠습니다. 차주한만 생각해도 복잡하실 텐데……. 음, 아까 말씀하신 그 덤프트럭 운전자 말입니다.”
“그놈이 왜.”
“어차피 아버지가 하신 일이 아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덤프트럭 운전자를 죽이려던 놈들도 그쪽에서 보낸 겁니까?”
“하아, 그건 윤수가……. 난 이제 윤수 그놈도 못 믿겠다.”
고상준은 혀를 찼다.
그의 자식 중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게 고윤수다.
덤프트럭 운전자를 살해하기 위해 보낸 놈들도 따지고 보면, 고윤수의 실책이라기보다는 운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차주한이 처음부터 그렇게 감시하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덤프트럭 운전자와 사고 직후부터 쭉 연락했던 건 오노데라가 섭외한 야쿠자 쪽이었으니, 잘못한 건 그들이다.
“그럼 덤프트럭 운전자가 누가 본인을 사주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냐는 뜻입니다.”
“모르지.”
“그럼 윤수 형님 쪽 놈들만 입 다물면 끝나는 일입니다. 윤수 형님도 입 무거운 놈들을 골랐을 거고요. 윤수 형님 안목 믿으시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나는 도대체……. 도대체가 일이 이따위로 흘러가는 이유를 모르겠어!”
고상준은 연거푸 술을 들이켜고는 소파에 깊이 기댔다.
취한 것 같진 않았지만, 알코올의 영향으로 감정이 격앙된 것 같았다.
고상준에게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본가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김찬영에게는 늘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으니까.
김찬영은 그런 고상준의 빈 잔에 위스키를 채웠다.
그가 취하면 조금 더 정보를 빼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같이 멍청한 놈들뿐이야.”
고상준은 김찬영이 술잔을 채우기가 무섭게 다시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일이 이따위로 돌아가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뻔하지 않은가.
제가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만한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타인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거치적거리는 놈은 없애면 그만이라는 논리 전개가 가능할 리 없다.
자신 역시도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씨발, 사소한 법은 못 지키더라도 그래도 최소한의 법은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이렇게 일이 흘러가진 않았을 것이다.
고상준의 눈짓 한 번에 목숨이 날아갔던 사람도, 그의 배를 불리기 위해 희생당한 사람도 없었을 터다.
자연스럽게 차주한 같은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겠지.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게 분명하다.
너 같은 놈을 이 사회에서 솎아내기 위해 법이 있는 것이고, 법이 제 기능을 하게 만들기 위해 기꺼이 인생을 걸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법과 사회가 드디어 제대로 역할하는데, 대체 뭐가 억울해서.
“…….”
차주한의 목적이 뭔지 잘 모르겠다.
자신이야 고상준의 몰락 하나를 보고 달리지만, 차주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고지식한 사람이니, 법이 고상준을 교화할 수 있다고 믿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믿음은 어리석다고 말해 주고 싶다.
고상준은 죽었다 깨어나도 반성하지 않을 것이다.
교도소에 갇힌대도 이를 득득 갈며 차주한에게 보복할 날만을 기다릴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럴 바엔, 그냥 돼지우리에 던져 놓고 포를 뜨든, 사지를 잘라 버리든,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삶을 살게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후우.”
김찬영은 어느덧 격해졌던 감정을 다스렸다.
아주 어릴 땐 고상준이 아버지 노릇을 해 주면, 그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대단히 아버지 노릇을 해 주진 않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김찬영을 아들처럼 생각하고는 있는 듯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조금도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는다.
“찬영아.”
“네.”
“……네 작은아버지 호적에 들어가라고 하면, 그렇게 할래?”
고상준은 소파에 늘어트렸던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며 김찬영을 바라보았다.
이건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마음 같아선 내 호적에 넣고 싶다. 하지만 그건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아. 너도, 나도 괜한 스캔들에 휘말리게 될 거다. 네 작은아버지는 나만큼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는 사람이 아니다. 욕심이 없고, 평판도 나쁘지 않아. 적당히 스토리를 만들면 사람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너도 괜한 눈총을 받을 필요 없을 테고. 그리고 네가 고씨 집안 사람이 되면, 내가 너를 가까이 두는 걸 이상하게 여길 사람도 없겠지.”
고상준의 계획은 예상보다 더 자세했다.
충동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고민해 온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네가 네 작은아버지 자식이 되면, 나중에 내가 너를 입양하는 형태로 내 밑으로 넣어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사람 없을 거다. 너는 그만큼 우수하니까, 그래서 그렇다고 생각하겠지.”
“아버지, 저는 전혀……. 전혀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눈물을 보여야 하는 타이밍 같다.
김찬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물 연기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상준은 기쁨의 눈물이라 여기겠지만, 김찬영에게는 의미가 달랐다.
“당장 그렇게 하라는 건 아니다.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하자는 거야. 네 작은아버지도 좋다고 했으니, 부담 갖지 말고 생각해 봐.”
“……제가 싫다고 할 리가 없잖아요.”
김찬영은 고개를 떨구었다.
무릎 위로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나를 그렇게나 믿는단 말이지.’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고상준은 흐뭇하게 아들을 바라보았지만, 김찬영은 마치 흐느끼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