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37)
너희들은 변호됐다-537화(537/641)
“…….”
김찬영은 고상준에게서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자, 조마조마해졌다.
이렇게 말을 꺼내는 건 차주한의 아이디어였다.
분명 고상준은 오카시마 병원이나 리본 의료원 외에도 본인의 자택이나 다른 건축물에도 비밀 공간을 만들어 뒀을 것이고, 그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도 단 한 명일 거라고.
자신의 약점을 여러 명에게 분산시켜 놓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건축사가 어디인지 알면, 그다음 단계는 좀 더 쉬워질 거라고 했다.
김찬영은 우신 물산 내부 인력이 동원되지 않았겠느냐고 물었지만, 차주한은 매우 단호하게 아닐 거라고 말했다.
우신 물산 내부 인력을 쓰면 결국 회사에 소문이 퍼지기 마련이고, 고상준이 이를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차주한이 말한 대로 하긴 했는데…….
과연 고상준이 알려 줄지, 더 나아가 의심을 사지 않을지 확신이 없다.
“그런 일을 해 줄 건축사를 찾는 것도 일이고, 설령 해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정말 끝까지 비밀로 해 줄지 의문이에요. 아버지께서 그럴 일 없게 해 주시겠지만, 정말 언젠가는……. 저는 먼 미래에라도 제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누구 자식인지 밝혀질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타깃이 된다는 건, 언제 아버지한테 공격이 넘어갈지 모른다는 뜻이잖아요. 저한테서 아버지의 흔적, 예를 들면 이번에 주시기로 한 페이퍼 컴퍼니 같은 게 드러난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져요.”
김찬영은 고상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로 했다.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며 그의 머릿속에 새로운 정보 값을 입력했다.
물론 마음이 급해서 혓바닥이 길어지는 거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말투와 목소리를 극도로 신경 썼다.
“만일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 선에서 끊을 수 있게……. 그래서 우신의 이름에 흙탕물이 튀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동시에 저도 같이 구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은행과 사설 금고를 믿을 수 없다는 거예요. 거긴 수색 영장이 나오면 열어 줘야만 하는 곳들이잖아요. 하지만 제 집에, 아무도 모르는 공간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그러면 경찰이 제 집을 뒤진다고 해도,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꽤 멀리까지 생각하고 있구나.”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 아버지의 큰 약점이라는 거 알고 있어요. 제가 끼워 주시라고 애교를 부리긴 했지만, 아버지도 그냥 끼워 주신 게 아닐 테고요. 저도 그만큼 신경 써야 하는 거고,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 거잖아요.”
딱딱하게 굳어 있던 고상준의 얼굴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김찬영으로서는 고상준이 어떤 점이 걸려 그렇게 표정을 굳혔는지 알 수 없다.
어렴풋이 자신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래도, 설마 오카시마 병원과 리본 의료원을 알고 있다는 걸 알아채진 못하겠지.
아무리 고상준이어도 말이다.
“그리고 사실, 왠지 아버지도 본가에 이런 장치를 해 놓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어요.”
김찬영은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하지 않아도 됐을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고상준에게 ‘나와 가장 닮은 자식’이 되겠다는 생각이었고, 그 점이 꽤나 유효하게 작용했다고 느낀다.
어쩌면 고상준이 김찬영을 조금 더 깊은 내면까지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별것도 아닌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아버지는 당연히 이것저것 고려하셨을 것 같아서요. 물론 다른 사람 명의로 된 공간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저라면 내 집 안에 두고 싶을 것 같거든요. 접근성 문제가 있잖아요. 괜히 다른 데 뒀다가 그곳에 오가는 모습이 찍히기라도 하면, 일이 나쁘게 돌아가는 경우에는 거기도 압수수색을 면치 못할 테니까요.”
고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찬영에게 자신 역시 그런 방식으로 비밀 장소를 만들어 뒀다고 시인하는 뜻인지, 아니면 김찬영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왜 필요한지는 알겠다. 네가 원하는 일을 해 줄 사람을 알고 있어. 그 건축사에 네 연락처를 넘겨주마. 곧 그쪽에서 너에게 연락할 거다.”
결국 고상준은 내면 깊은 곳의 생각은 말하지 않았다.
그건 아직 김찬영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는 뜻이겠지만, 크게 상관없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고씨 집안으로의 입적이라는 예상 밖의 수확을 거두지 않았는가.
게다가 최초의 목적은 고상준의 일을 하는 건축사를 소개받는 것이었다.
이 역시 성공했으니, 충분히 만족스럽다.
“내가 너한테 버진 아일랜드 페이퍼 컴퍼니를 넘겨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고상준은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이런 각오도 없이 끼워 주시라고 졸랐을까 봐요.”
김찬영이 눈을 찡긋하며 대답하자, 고상준도 함께 웃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이 일로 고상준에게 의심을 산 것은 아닌지 염려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특검이 시작되면 고상준과도 끝이다.
아직 차주한에게 마음을 굳혔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김찬영은 장렬하게 자폭할 작정이었다.
세인들의 시선이라는 것은 고상준의 말처럼 잠깐만 견디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 시선을 받는 대가로 고상준의 형기가 하루라도 더 길어진다면, 김찬영은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 * *
“와, 이게 뭐예요?”
“퇴원 축하 케이크.”
강민재가 명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우리는 근처 레스토랑에 모였다.
퇴원 턱을 쏘겠다는 강민재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보통은 환자가 퇴원 기념 선물을 받는 게 일반적인데, 퇴원 턱을 내겠다는 건 처음 본다.
그래서 이렇게 모인 것부터 오버라고 생각했지만, 최종현과 조봉준도 전혀 그에게 뒤처지지 않는 오버를 했다.
“아니, 무슨 케이크씩이나!”
언제부터 초코파이 탑을 케이크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가장 꼭대기에 초까지 꽂고 불을 붙였다.
강민재는 매우 행복한 표정으로 초를 불었다.
“원래 케이크를 사려고 했는데, 알다시피 내가 요즘 차 변한테 카드를 반납하는 바람에 돈이 없다. 봉준이도 방송 준비에 돈 쓰느라 아끼고 있고.”
“야, 말도 마라. 주식에 다 묶어 놔서 생활비도 간당간당해. 얼마 전에 배당금 받은 것도 벌써 10만 원밖에 안 남았어. 돈이 줄줄 샌다.”
평소라면 조봉준이 엄살을 피운다고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기존 인터넷 방송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송출 플랫폼을 옮기기로 하면서, 동시에 스튜디오도 손을 보게 되었다.
시각적으로도 달라져야 시청자들도 다른 방송이라고 인식할 거라면서, 카메라에 보이는 부분만이라도 인테리어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어디까지 카메라에 노출시키는 게 좋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보통 두 명이서 방송을 진행하고, 나와 강민재가 나간다고 쳐도 총 서너 명 정도만 출연했기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방송에서 다룰 내용이 심각하고 방대한 만큼, 언제 어떤 게스트를 부르게 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소규모로 진행하려던 인테리어 공사는 꽤 커지고 말았다.
“그렇게 자금 부족하시면 그냥 변호사님 카드를 쭉 쓰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오 사무장이 물었다.
하지만 최종현과 조봉준은 몹시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제 가능한 선까지는 저희 돈으로 할 거예요. 물론 차 변 돈으로 거의 다 만들어 놓은 거라 할 말 없긴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차 변 혼자만의 것은 아니잖아요. 받아먹기만 하는 것 같아서 좀 그래요.”
처음에 최종현이 카드 유효 기간이 지난 후, 갱신된 카드를 거절했을 때부터 웬만해선 내 돈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보긴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그들은 완고했다.
모두가 이 일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마운 한편,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세상에 100%는 없지 않은가.
만일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나 혼자만 손해를 입는다면 마음은 편할 것이다.
목숨이나 커리어 같은 중요한 영역이 아니더라도, 금전적 손해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만약의 경우에는 모두 함께 손해를 입어야 하지 않은가.
자연스레 마음이 복잡해진다.
김미자도, 태식도, 강민재도 모두 내가 과도한 중압감과 부채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생겨 먹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무튼 인테리어 끝나면 놀러 오세요. 시뮬레이션도 해 봐야 하니까.”
“좋습니다. 아, 그럼 화분이라도 하나 사 들고 가야겠네요.”
“개업한 것도 아닌데요, 뭐. 편하게 오세요.”
“아무튼, 민재가 몸 성히 퇴원하게 돼서 이 형님은 정말로 기쁘다. 머리에 땜통은 생긴 게 좀 슬프긴 하지만, 가려지니까 괜찮고.”
“아니, 형님. 영원한 땜통도 아니고, 머리 자라고 있거든요? 조금만 더 지나면 티도 안 날 거라고요.”
“알았어. 누가 뭐래? 근데 아무튼 지금은 땜통이 있는 거잖아.”
그리고 그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놀릴 거리를 찾아냈다.
“하, 천종남한테 화난 거 풀렸는데, 땜통 때문에 다시 열받으려고 하네…….”
“손해 배상 청구해. 땜통 때문에 변호사 위신 깎였다고.”
“형님들이 안 놀리면 위신 안 깎이거든요!”
레스토랑을 룸 자리로 예약해서 다행이었다.
술도 안 마셨는데 이렇게까지 시끄러울 일인가.
조용히 요리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뻔했다.
“퇴원했다고 설치고 다니지 말고, 집에서 푹 쉬어.”
정혁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려는 강민재를 향해 최종현이 한마디 던졌다.
퇴원 전부터 좀이 쑤셔서 못 참겠다는 말을 워낙 많이 했던지라, 그의 말마따나 설치고 다니진 않을지 걱정이 되긴 했다.
“제가 애인 줄 아세요? 저도 이제 제 몸이 엄청 소중해졌다고요. 그럼 먼저 갈게요!”
강민재는 툴툴대며 강수일과 함께 평창동으로 떠났고, 우리도 각각 헤어졌다.
본래 퇴원해야 하는 때보다 더 늦게 퇴원했다고 하더라도, 쉴 시간은 주는 게 맞겠지.
출근은 다음 주부터 하라고 해야겠다.
그러잖아도 입원 기간 내내 병실에 모여서 회의하느라 편히 쉬지도 못했을 것이다.
“변호사님, 배달 책자 어디 있어요?”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나왔더니, 태식이 분주하게 거실 곳곳을 뒤지고 있었다.
“왜, 또 뭐 먹으려고.”
“또라니요. 변호사님은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고기 썰었지만, 저는 변호사님 지키느라 굶었거든요?”
“그러네. 배달 책자 거기 근처에 없어?”
“네. 상길이 새끼가 버렸나? 제가 쓰레기 좀 버리라고 했거든요. 진짜 버렸나? 뒤질라고, 내가 얼마나 열심히 모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태식은 배달 책자 컬렉션이라도 만들 기세였다.
배달 책자가 새로 생기면, 기존에 갖고 있는 책자와 달라진 게 없는지 체크한 뒤 하나라도 못 보던 가게가 있으면 함께 모아 두었다.
나는 언제나 그 컬렉션을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보관하라고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배달 책자가 으레 그렇듯이, 디자인이 요란해서 눈이 아플 지경이라 내 집에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상길이 새끼가 진짜 버렸나 봐요. 진짜 죽고 싶나. 간만에 얼차려 좀 시켜야겠네.”
“그냥 검색해서 아무 데서나 시켜.”
“저는 지금 끝내주게 맛있는 걸 먹고 싶은 기분이라고요. 아무거나로 배를 채우고 싶지 않…….”
그때였다.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우리 집에 비밀번호를 쳐서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상길은 아침에 태식과 교대한 후,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퇴근했다.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아서, 그는 아직 잘 시간이다.
“변호사님은 일단 여기 계세요!”
태식은 순식간에 경계 태세를 갖추고 현관으로 뛰어갔다.
침입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진짜 침입자라면 내가 집에 있다는 걸 알면서 태연자약하게 비밀번호를 누르진 못하지 않을까.
어차피 방검, 방탄조끼도 입고 있고, 태식이 앞장섰으니 적당히 거리 유지하면서 확인할 생각으로 나 역시 현관 쪽으로 갔다.
“변호사님, 저 왔습니다!”
그리고 강민재가 한 손에는 무언가 잔뜩 든 것 같은 비닐봉지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쭈뼛쭈뼛 정혁이 따라 들어온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