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41)
너희들은 변호됐다-541화(541/641)
남의 눈에도 그래 보였다니, 내가 필요 이상으로 예민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게다가 마약을 하는 게 맞다면, 대마초 같은 입문 마약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손정민이 종적을 감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사이에 저 정도의 변화가 있었다면 상당히 강력한 마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손정민이 그 마약에 노출된 건, 매우 높은 확률로 그를 감금하고 있는 이들의 소행이겠지.
─자기들한테 의존하게 만들려고 그랬을까요. 그런 식으로 마약과 상관없는 사람을 중독시켜서 남의 인생 조지는 새끼들 많이 봤어요.
대철의 말은 지극히 타당했다.
나 역시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묶어 두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게다가 2012년의 대한민국은 대외적으로는 마약 청정국이 아닌가.
내가 경험했던 2018년까지만 해도 대마초보다 강력한 마약을 구하는 건 일반인들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손정민은 돈이 많은 것도 아닐뿐더러 미성년자다.
그런 손정민이 마약에 중독되었다면,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천사의 집에서 그에게 마약을 준 데에는 선명한 의도가 있을 것이다.
예상해 볼 수 있는 건 첫째로, 대철이 말한 것처럼 마약을 구하기 어려운 손정민이 유일한 마약 공급책인 자신들에게 순종적으로 굴게 만들기 위해서.
둘째로는 만일 손정민이 자신들의 컨트롤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증언하게 되었을 때, 심신미약자라는 이유로 발언의 신빙성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둘 다일 수도 있고.
만일 내가 손정민의 안위를 물고 늘어지면, 마약은 손정민 개인의 일탈이었고 자신들도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한시라도 빠르게 찾아야겠는데. 더 위험해지기 전에.”
─그러게요…….
“봉고차는 쫓았어?”
─네, 그런데…….
대철은 자신 없게 말끝을 흐렸다.
“놓쳤어?”
─죄송합니다. 변명해도 되면, 해도 될까요.
“할 거면 짧게.”
─너무 흔한 차여서 그놈들이 훼이크 치면서 운전하니까 구별이 안 됐어요. 저희도 차 한 대로만 움직일 수 있어서 안 들키는 선에서는 바짝 붙을 수가 없었고…….
“훼이크 치면서 운전했다는 건, 미행을 들켰다는 소리야?”
─모르겠어요, 그걸. 근데 몰랐을 것 같거든요. 왜냐면 그런 것치고는 김영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원장한테 전화로 보고하면서 천사의 집으로 복귀했고, 그 이후에도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었어요. 만일 우리가 미행 중인 걸 알았다면 김영지도 그렇게 하진 않았을 것 같아서요. 우리도 미행하는 놈들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도 훼이크 치면서 움직이잖아요. 혹시 모르니까. 그놈들도 그럴 수도 있죠. 특히 손정민은 우리한테 노출됐으니까 더 신경 쓸 테고…….
겨우 잡은 기회를 놓쳤다는 건 뼈아프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일단 알았어. 천사의 집 잘 지켜봐. 성윤이한테 일 생길 수도 있으니까.”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해당 위치의 관할서에 제보하든, 허민우에게 부탁하든,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살펴볼 수 있었을 텐데.
“아, 성윤이는 어쩌다가 정민이하고 만나게 된 것 같아?”
─음, 얘기를 전부 다 선명하게 들은 건 아닌데요. 뭔가 성윤이가 천사의 집 인간들하고 갈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정민이를 만나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모양이에요.
“그래?”
─네. 그래서 천사의 집 쪽에서도 그 요청을 무시할 수 없어서 정민이를 만나게 해 준 게 아닐까 싶어요. 분위기를 봐선 그래요.
천사의 집에 봉사를 나갔던 대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손정민과 엄성윤은 꽤 친밀한 사이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천사의 집에서는 그 둘을 이용했다.
엄성윤은 손정민의 상황을 알고 있었나.
그래서 손정민을 구하기 위해 누명 계획에 동원되었던가.
지금 단계에서는 정보가 많지 않아서 확신할 순 없지만, 엄성윤을 이 상황으로 끌어들인 미끼가 손정민이라는 건 확실한 듯하다.
그리고, 천사의 집과 갈등이 있다는 걸 보면 엄성윤도 위험해질지도 모르겠다.
“알았어.”
─넵. 들어가십쇼.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조봉준이 기가 막힌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다방면으로 지랄 염병을 하는구나.”
이런 탄식도 이제는 지겨울 때가 됐다.
우리는 우신의 조사를 시작하면서 언제나 이런 감상을 남기곤 했으므로.
“성윤이 위험해질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도 접촉해야겠는데요.”
강민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지체 없이 연락처를 뒤져 봉사 동아리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전화 주셨어요?
천사의 집에는 안 좋은 기억만 남았을 터라, 내 연락을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반가운 기색이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아유,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변호사님 부탁이면 들어드려야죠.
“아직도 천사의 집 아이들과 연락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 중고등학생 아이들과 연락하는 학생이 있으면 만나 보고 싶습니다.”
─음,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중고등학생들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확인해 보고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우두커니 서서 생각을 정리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수술이 시작될 낌새가 보이기 전에 많은 것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우리 앞에 산적한 과제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나는 모든 사람들이 알맞게 안전하길 바란다.
이 일에 도움을 주는 사람은 물론이고, 설령 나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이라고 해도, 법이 아닌 우신에 희생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우신이 도처에 깔아 둔 함정들을 전부 피하면서, 그들이 난사하듯 생성해 놓은 비정상적인 상황들까지 원상 복구시키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우신에 피해 입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시작한 일이니, 나는 ‘이 사람들까지는 내가 구하지 않아도 돼’라는 생각으로 못 본 척하고 지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상황이 숨 가쁘게 느껴진다.
아무리 급해도 숨도 고르면서, 준비한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변호사님.”
가만히 서 있는 나를 강민재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찮으신 거죠?”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졌던 모양이다.
가슴팍이 눈에 띄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위에 손을 얹으며 길게 숨을 쉬었다.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강민재의 물음에 나는 다시 테이블 앞에 돌아가 앉으며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괜히 마음 급하게 먹고 실수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차근차근 하면 다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정확히는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 * *
“오빠.”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삼삼오오 모여 운동장을 산책하는 아이들을 무감한 눈으로 보고 있던 성윤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느샌가 옆에 유경이 앉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입소했던 여자아이로, 천사의 집 내부에 친한 사람이 별로 없는 성윤에게는 몇 안 되는 또래 친구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오빠 요즘 고민 많은 것 같은데.”
“왜. 너까지 왜 그랬냐고 물어보려고?”
성윤이 유경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자 유경이 입술을 삐죽였다.
“나 그런 거 안 궁금해.”
“근데 왜 이상하게 운을 떼? 사람 떠보려는 것처럼.”
성윤이 날카롭게 반응하자, 유경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냥 오빠 요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서 내일 학교 끝나고 같이 햄버거나 먹으러 가자고 할랬는데, 됐다. 오빠한테 힘들게 모은 용돈 쓰려고 한 내가 바보지.”
말을 마친 유경이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자, 성윤이 잠시 망설이다 그녀의 소매 끝을 잡았다.
“아니, 난 그런 게 아니라……. 미안해. 내가 요즘 예민해졌나 봐.”
“됐어. 오빠한테 삐쳤어. 진짜 사람 성의를 이렇게 무시하냐.”
“아, 진짜 미안. 내일 학교 끝나고랬지? 가자. 내가 사 줄게.”
“오빠가?”
“……응. 진짜 미안.”
“그럼 내가 노래방 쏠게. 학교 앞에 1시간에 5천 원 하는 데 있어. 알아?”
“아니, 몰랐는데……. 근데 나 노래 못하는데.”
“몰라, 내가 가고 싶어. 그럼 내일 학교 끝나고 만나. 종례 끝나자마자 바로 갈 테니까, 오빠도 바로 와. 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특히 쌤들한테. 쌤들 요즘 학교 끝나고 바로바로 오라고 잔소리하잖아.”
유경은 제 할 말만 끝내고 다시 운동장을 걷고 있는 아이들에게 섞여 들었다.
사실 퇴소하게 되면, 그 전에 유경을 포함한 몇몇에게는 따로 선물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는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갑자기 나가게 되면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르니 미리 해 두는 게 좋겠지.
* * *
교문 앞에서 유경과 만난 것까지는 계획과 동일했다.
하지만 유경은 잠시 들를 데가 있다며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가려는 성윤을 끌고 처음 보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이면 모를까, 이런 데는 와 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패밀리 레스토랑도 중학교 때 친구가 없는 짝꿍 생일에 얼결에 초대 받아서 가 본 게 전부였고,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 기함하기까지 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그런데, 이런 곳은 대체 얼마나 비쌀까.
성윤은 당황한 얼굴로 유경을 바라보았다.
“야씨, 나 햄버거 사 줄 돈밖에 없어…….”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 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여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안으로 이끌었다.
“괜찮아. 오빠가 돈 안 내도 돼.”
“야, 너 여기 얼만지는 알아? 딱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데…….”
“아, 걱정하지 말라고. 빨리 와.”
유경은 그렇게 말하며 성윤을 안으로 끌어당겼다.
계산하는 곳을 지나치자 이제는 도로 나가기도 민망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대체 얘가 뭘 어쩌려고 이러나 싶었지만, 유경이 소매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가는 통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이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무엇보다 유경은 자신에게 이상한 짓을 할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성윤은 의아해하면서도 잠자코 따라갔다.
“유경아!”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쳤다.
평소 유경과 친하게 지내던 천사의 집 아이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장 충격적인 건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는 어른의 모습이었다.
천사의 집에 봉사 나왔던 대학생 중 한 명이었다.
다행히 성윤이 누명을 씌우려 했던 김현종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크게 반감이 생겼다.
정확히는 반감이라기보다는 민망함과 죄책감이었다.
그 역시도 자신이 김현종을 학대범으로 몰아갔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 동아리 학생을 보고 싶지 않았다.
“뭐냐?”
“오빠, 미안.”
“뭐냐고.”
“쌤이 너무 부탁을 해서……. 그리고 오빠도 고민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 나 오빠가 절대 그럴 사람 아닌 거 알아. 이상한 오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고…….”
“너는 그런 의도 없었다며. 그냥 내 기분 안 좋아 보여서 풀어 주려는 거였다며. 씨발, 너도 똑같네.”
좀처럼 욕설을 내뱉는 일이 없는 성윤이 거칠게 나오자, 유경은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어쩔 줄을 모르고 대학생과 친구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대학생이 일어나 성윤에게 다가왔다.
“성윤아, 너 불편할까 봐 현종 쌤한테는 얘기 안 했어. 걱정하지 말고, 쌤하고 얘기하자는 건 아니니까 그것도 염려하지 말고…….”
“쌤하고 얘기하는 거 아닌데 여기 쌤이 왜 있는데요. 됐어요. 어차피 갈 거니까.”
성윤은 이를 뿌득 갈며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러기가 무섭게, 등 뒤에 서 있던 낯선 두 명의 남자와 부딪힐 뻔했다.
“아, 진짜 뭔데…….”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성윤은 신경질적으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안녕.”
둘 중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가 성윤을 향해 인사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대체 뭔가 싶어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대학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쌤하고 안 봐도 되는데, 거기 두 분하고는 잠깐만 얘기 나눌 수 있을까?”
“이 사람들은 누군데요. 아니, 안 궁금해요. 어차피 갈 거니까.”
성윤은 두 사람을 지나쳐 레스토랑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 성윤을 대학생이 붙잡으려던 순간, 성윤에게 인사를 건넸던 남자가 말했다.
“우리 이상한 사람들 아니고, 너 도와주려고 하는 건데……. 혹시 아저씨 얼굴 몰라?”
그의 말에 성윤은 저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잘생긴 사람이라 연예인인가 싶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유명하진 않은가 보다.
완전히 초면이었다.
“모르는데요. 아, 됐으니까 비켜요.”
성윤이 걸음을 재촉하기가 무섭게, 조용히 있던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몰라도 되지만 적어도 궁금해하긴 해야 하는데.”
뜬금없는 소리에 성윤이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제가 왜 궁금해해야 하는데요?”
“우리 둘 다 손정민 때문에 죽을 뻔한 사람들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