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42)
너희들은 변호됐다-542화(542/641)
“먹고 싶은 거 주문해.”
손정민의 이야기를 꺼낸 게 주효했다.
엄성윤은 내 말을 듣자마자 심하게 동요했고, 결국 우리를 따라 룸으로 들어왔다.
나는 메뉴판을 펼쳐 엄성윤의 앞에 놓아 주었다.
그러자 엄성윤은 한 번 훑어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아, 왜 메뉴판을 이탈리아어로 적어 놓고 난리래. 한국에서 말이야. 아저씨가 대신 주문해 줄게. 파스타 좋아해?”
“네.”
“크림? 토마토? 아니면 오일?”
“토마토요.”
“그럼 고기는……. 퍽퍽한 게 좋아? 아니면 부들부들한 거? 기름진 느낌 있잖아.”
“부들부들한 거요.”
“굽기는?”
강민재는 레스토랑 직원이 된 것처럼 엄성윤의 기호성을 파악하더니, 순식간에 벨을 누르고 주문을 마쳤다.
틱틱대는 말투로 일관하고 있지만, 엄성윤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엄성윤이 원장에게 매수당해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어린아이고 일종의 피해자다.
그런 그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즐길 생각은 없다.
나는 품 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 그의 앞에 놓아 주었다.
“……변호사예요?”
명함을 살펴본 엄성윤이 생각지도 못한 듯 눈을 끔뻑였다.
강민재도 마찬가지로 명함을 건네주었다.
엄성윤은 우리가 그런 직업을 가졌을 거라곤 예상도 못 한 것 같았다.
그렇겠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직업을 나열할 때 보통 변호사도 그 안에 들어가고, 그런 사람들이 손정민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고 하니.
“변호사님이라고 부를게요.”
“편한 대로 해.”
“정민이 때문에 변호사님들이 죽을 뻔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엄성윤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물잔을 매만지며 엄성윤과 눈을 맞췄다.
“이렇게 하자. 서로 질문을 교환하는 거야. 대답은 반드시 해야 해.”
“……좋아요.”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제가 먼저 질문했는데요.”
“너한테 우리 둘 다 명함을 줬잖아. 우리가 서로 의견이 안 맞았을 때 누가 더 손해일 것 같아?”
내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강민재가 조용히 옆구리를 쿡 찔렀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의 공격이라 강민재를 홱 돌아보았더니, 그는 나를 무시하고 웃으며 엄성윤에게 말했다.
“성윤아. 우리의 목적부터 명확하게 할게. 우리는 너하고 정민이를 도와주려고 온 거야. 명함을 준 것도, 너희들이 만일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연락하라는 뜻이고. 지금 당장 네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테니까, 우리가 선택지가 되고 싶어서.”
엄성윤은 테이블에 올려진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이쪽 변호사님 말씀처럼, 우리가 너하고 정민이를 도와주려면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 있어. 하지만 너도 우리를 처음 보니까, 그냥 믿을 수는 없겠지. 그래서 알려 주지 않을 수도 있잖아. 거짓말을 할 지도 모르고. 그러면 우리는 너희를 도와줄 수가 없어. 그래서 네가 알고 싶은 것과 우리가 알고 싶은 걸 교환하는 형태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럼 공평하잖아.”
나도 그런 비슷한 의미로 말했던 것이다.
정확히는, 이 대화에서만큼은 우리가 엄성윤보다 불리하다는 걸 알려 주어 대화에 임하게 할 생각이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변호사님들은 왜 저희를 도와주려고 하시는데요. 아직 말 안 해 주셨지만, 정민이는 변호사님들을 죽이려고 했다면서요.”
“음, 정확히는 직접 죽이려고 한 게 아니야. 우리를 불러내는 미끼로 쓰였어. 우리가 정민이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용한 거지.”
“누가요?”
엄성윤이 나와 강민재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누구 같은데.”
“아, 좀!”
내가 입을 열기가 무섭게 강민재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엄성윤이 초등학생이었다면 이렇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
강민재만큼은 못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말해 보려고 노력했겠지.
하지만 엄성윤은 18살이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어린아이 다루듯 굴면 기분 나빠하는 나이란 말이다.
“모르겠는데요.”
[거짓]아직은 원장의 사주를 받았다는 걸 토설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원장이 엄성윤에게 뭘 약속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손정민을 조건으로 걸었는지, 아니면 다른 것을 주겠다고 했는지.
그러나 엄성윤은 아직도 원장에게서 그 대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 모양이다.
손정민과 직접 만나게 해 줬으니,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거래를 시도할 수도 있을 텐데.
“정민이 만났지?”
“……정민이 경찰에 넘기려고 그래요? 변호사님들이니까 아시잖아요. 정민이는 변호사님들을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면서요. 정민이가 미끼였다면서요. 그럼 이용당한 건데, 그것도 죄예요?”
“음,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강민재는 엄성윤을 계속 어르고 달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시종일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지만, 나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엄성윤의 경계심이 심해서 부드럽게 말한다고 해서 오늘 당장 경계심이 허물어질 것도 아닌데, 서로 목적을 확실히 하는 편이 낫다.
“네 말 대로 정민이를 처벌할 방법은 없어. 만일 이 모든 게 드러나더라도 정민이는 본인이 한 일이 우리를 죽게 만들 뻔했다는 것도 몰랐을 테니까.”
내 말에, 엄성윤이 한결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정민이는 왜요.”
“정민이가 위험해. 물론, 너도 안전하진 않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도 봤잖아. 정민이 상태 어땠는지.”
우리야 봉고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모습만 봤지만, 엄성윤은 차에 타서 손정민과 1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게다가 엄성윤은 평소의 손정민이 어땠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몸살이 났다고 했어요. 원래는 더 쉬어야 하는데, 제가 하도 성화라서 잠깐 나온 거라고요.”
손정민을 만나고 싶어 하는 엄성윤에게 오히려 죄책감을 씌우려고 했던가.
천사의 집의 얄팍한 수가 가소롭기만 하다.
“너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
“……아니면 뭔데요?”
“몸살 걸린다고 그렇게 반쪽이 되나. 게다가 왜 말을 그렇게 조리 있게 못 해? 너도 몸살 걸린 적 있을 거 아니야.”
“변호사님들은 정민이를 직접 봤어요? 정민이하고 만난 적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아직 내 말 안 끝났는데.”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냐는 데서 끝난 거 아니에요? 그것도 물음표로 끝나잖아요.”
엄성윤은 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성윤아. 네가 경계하는 건 이해하는데, 불필요하게 싸우려고 하지 마. 네가 궁금해하는 것 중에서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전부 말해 줄 거야. 그러려고 온 거야.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만 얻고 입 닦을 생각도 없어.”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그간 천사의 집에서 만났던 어른들을 보며 키워 왔던 불신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인간들과 다르다고 백번 말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적어도 말은 해야 하지 않은가.
“너와 달리 우린 잃을 게 많아. 만일 우리가 일방적으로 나오면, 인터넷에 글이라도 올려. 미성년자인 네 위치를 이용해서 더 자극적으로 말해. 명함에 적힌 회사 이름도 들먹이고. 우리가 고등학생인 너를 압박하고 무섭게 굴었다고 해.”
“그래 봤자 묻히면 그만인데…….”
엄성윤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래도 자신이 마냥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조금은 사그라진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들은 정민이가 어떻다고 생각하시는 건데요. 그냥 아픈 게 아니라고요?”
“휴대폰으로 검색해 봐. 마약 중독자 증상. 내가 말해 줄 수도 있지만, 믿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직접 확인해.”
“……마약이요? 정민이가 마약을 한다고요?”
엄성윤은 경악에 물든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도, 강민재도 대답하지 않자 엄성윤은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한숨을 쉬며 작게 말했다.
“여기 와이파이 있나요…….”
마침 식전 빵을 가지고 온 직원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은 성윤은, 내 말대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손은 점점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필요하다면 의사 소견도 가져다줄 수 있어. 물론 보기만 한 거라 확신할 순 없겠지만,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대답은 돌아올 거야.”
“저, 정민이가 왜……. 정민이가 그럴 리가 없어요. 좀 놀기 좋아하는 애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나도 정민이가 마약을 하고 싶어서 했다고 생각하진 않아. 정민이를 데리고 있는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내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엄성윤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는 믿지 못하겠는 눈치였다.
아무리 천사의 집 어른들과 갈등 중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예상 밖이었을 테고.
애초에 천사의 집이라는 단체가 표면적으로는 복지 기관이니 아무리 타락해도 그 영역까지 뻗치는 건 현실성이 없다 싶을 것이다.
“거짓말이죠? 정민이 때문에 변호사님들 죽을 뻔했다는 것도, 그냥 다 거짓말이잖아요. 거기까진 믿으려고 했는데 마약까지는 솔직히 오버 같네요.”
엄성윤은 나름대로 그렇게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눈에 가득했던 궁금증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결국 그에게 증거를 들이밀 수밖에 없었다.
내가 손정민에게 받았던 메일, 사고 현장 블랙박스, 강민재가 얼마나 다쳤는지까지.
증거는 더 많지만, 우리에게 협조할 거라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데다 험한 꼴을 들이밀기엔 아직 어린 엄성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전부였다.
“…….”
“정 의심되면 확인해 봐.”
“어떻게 확인해요. 제가 무슨 수로……. 대놓고 물어봐요? 그런다고 알려 줄 리가 없잖아요.”
“우회적으로 물어서 확인해야지. 몇 가지 질문만 하면 그 사람들이 정민이를 정말 안전하게 보호할 생각이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 * *
김영지는 성윤을 만나러 그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정민을 만나게 해 주려고 한 번 갔더니, 어린 게 겁도 없이 어른을 오라 가라 하는 것이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불쾌하더라도 성윤에게 맞춰 줘야 한다.
원장도 지금은 절대 잡음을 만들면 안 되는 시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어린애 하나 주무르지 못하냐는 타박도 함께 돌아왔다.
말이 쉽지, 어린애들을 효과적으로 옥죌 수 있는 수단을 어느 하나 쓸 수도 없는 상황이고 오히려 모든 걸 공개하겠다며 날뛰는 걸 막느라 죽을 맛인데…….
김영지는 한숨을 쉬며 성윤을 만나기로 한 학교 앞 카페에 도착했다.
“성윤아.”
굳었던 표정을 가다듬으며, 그녀는 성윤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얘기길래 굳이 밖에서 얘기하자고 해? 들어와서 얘기할 수도 있잖아.”
“정민이요.”
“또 정민이니. 그때 만나게 해 줬잖아. 네 요구 조건은 그게 다 아니었어? 또 뭐가 더 생겼니? 성윤아.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사람이 한번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으면…….”
“정민이 상태가 왜 그런 거예요?”
“무슨 소리야, 그건 또……. 몸살이라고 했잖아. 정민이가 직접 말했잖니?”
김영지는 날카롭지 않게 말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었지만, 짜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자 성윤이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그게 어떻게 멀쩡한 거예요. 완전히 맛탱이가 갔는데. 선생님도 몸살 걸리면 그래요? 몸살 걸린 지 3일 됐다는데. 선생님은 3일 만에 한 15kg는 빠진 것처럼 마르고,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말도 이상하게 하고 그래요? 제가 검색해 봤는데 그거 마약하는 사람 특징이래요.”
“뭐?”
김영지가 날카롭게 성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