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45)
너희들은 변호됐다-545화(545/641)
성윤이 만남을 요구하고 나서, 원장은 눈에 띄게 너그러워졌다.
본래는 틈만 나면 김영지를 불러 ‘애를 어떻게 관리했으면 이 사달이 나느냐’며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화풀이를 해 댔지만, IP 주소를 바탕으로 강남역을 수색하러 간 인원들이 허탕을 치고 돌아왔을 때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어차피 원하는 바가 강력한 엄성윤은 약속 장소로 나오게 되어 있고, 거기서 엄성윤을 잡지 못할 확률 따위는 없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성윤의 조건이 단지 손정민의 안전뿐이었다면 조금 더 긴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천사의 집의 지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게임 끝난 것 아니겠는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여기야?”
“네. 커피 주문할까요?”
“그래. 나는 캐러멜 마키아토. 우리 성윤이는 뭘 좋아하려나? 애들 좋아하는 거 아무거나 대충 주문해. 우리 성윤이, 마지막으로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지.”
그리고 약속된 날짜에, 원장은 몸소 김영지를 대동하고 강남역 12번 출구 앞의 카페로 갔다.
물론 김영지뿐만이 아니었다.
우신 측에서 지원받은 직원 여럿을 평범한 카페 이용객처럼 보이도록 미리 보내 두기까지 했다.
약속 장소인 카페를 미리 답사했고, 출구는 건물 외부를 향해 뚫려 있는 곳 하나뿐이었다.
화장실은 카페 내부에 있고 따로 창문은 없었다.
혹시 몰라 직원들이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는지도 확인해 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없었다.
출구로 도망치는 것만 막는다면 카페에 있는 이상 엄성윤은 독 안에 든 쥐다.
“5분 남았는데 안 보이네요.”
“딱 맞춰서 나타나겠지.”
출입문을 바라보던 김영지가 말하자, 원장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들은 카페 안쪽에 자리 잡았다.
출구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으면 돌발 상황에 미리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부러 다른 테이블이 장애물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선정했다.
“손정민은?”
“지금 차 안에서 대기 중이에요.”
손정민을 엄성윤에게 굳이 노출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에, 데리고 들어오진 않았다.
하지만 엄성윤이 카페 통창을 통해 손정민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니, 혹시 몰라 바깥에 대기시켜 두었다.
엄성윤이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카페는 바깥에서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니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이 정말로 손정민을 데리고 왔는지 미리 확인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6시 정각이 되었을까.
“…….”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여보세요.”
─저 성윤인데요.
엄성윤의 목소리였다.
원장은 동시에 자신의 휴대폰으로 걸려 온 전화번호를 김영지에게 보여 주었다.
김영지는 그 번호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누구의 휴대폰인지, 현재 위치는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6시인데 왜 아직 안 오니?”
─정민이가 없는데요. 제가 뭐라고 했어요? 약속 안 지키시면 바로 경찰서 가겠다고 했잖아요. 그럼 저는 원장님이 협상 거부한 걸로 알게요.
“아니야, 성윤아. 정민이 있어.”
─없잖아요. 이상한 구라 치지 말고요.
“너 어디 있니?”
─원장님이 알아서 뭐 하시게요.
원장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함께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김영지도 카페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성윤이 근처에 있는 것 같으니 찾아보라는 내용이었다.
“정민이는 잠깐 편의점 갔어. 다시 올 거야.”
─5분 내로 오라고 하세요.
“알았으니까 들어와서 기다려. 덥잖아.”
─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요. 5분 뒤에도 정민이 없으면 바로 경찰서 갈게요. 그리고 이 번호로 연락하지 마세요. 지나가던 분한테 잠깐 빌린 거고, 이번에는 5분 지나면 정말 얄짤 없어요.
6시에 정민이 보이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로 가겠다더니, 5분의 유예를 주는 것을 보면 역시 애는 애다.
단호하지 못한 데다, 천사의 집 측에 시간을 벌어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천사의 집 직원들은 밖에서도 원장과 김영지가 앉아 있는 테이블이 보일 만한 곳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체 어디 숨어 있는 건지 보이지 않는다.
6시 4분까지 이제 10초 정도 남았을까.
아직까지 직원들에게서 엄성윤 비슷한 거라도 봤다는 소식이 없다.
시간을 조금 더 끌어 볼까 싶어, 원장은 다시 아까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빌렸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낯선 목소리다.
“아, 네. 혹시 아까 전에 전화 빌려 주셨던 학생하고 아직 같이 계신가 해서요.”
─저는 지나쳐 왔는데요.
“그 학생 어디에서 만나셨나요?”
─저기요. 그쪽 뭡니까? 아까 그 학생이 부르는 걸 보면 어디 원장인가 본데. 경찰 운운하는데, 그 학생하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이런.
괜한 사람까지 끼어들기 전에 대화는 그만하는 게 좋겠다.
“아닙니다. 그 학생이 친구들하고 조금 싸웠는데, 부모님들이 중재를 부탁하셔서 제가 만나기로 한 거예요. 지나쳐 오셨다니 이만 끊겠습니다.”
원장은 전화를 끊으며 김영지에게 눈짓했다.
정민을 데리고 오라는 뜻이었다.
“괜찮으시겠어요?”
김영지의 물음에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정민을 대기시켜 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엄성윤이 천사의 집으로부터의 지원을 포기하고 단순히 손정민의 구출만을 목적으로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이를 위해 대학생들과 연통해서 차주한과 만났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성윤은 이곳에 올 때 대학생들이나 차주한을 대동하고 나타날지도 모른다.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대비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그 상황의 플랜도 준비해 두었다.
원장이 신호만 하면, 정민은 경찰에게 발각된 수배범처럼 도망칠 것이다.
돈 없이 마약을 주는 것은 천사의 집뿐이고, 그 사실을 아는 손정민은 지극히 순종적이고 착한 아이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기 위해 마약을 주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어차피 적당히 따돌려졌을 때 대기 중인 차량에 태워서 다시 데려가면 된다.
차주한이 이를 문제 삼는다고 해도 천사의 집에서는 ‘아이가 갑자기 돌발 행동을 보인 것이고, 우리도 찾고 싶다’고 말하면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은가.
물론 그런 경우 엄성윤이 모든 것을 차주한에게 털어놓았을 테니, 어느 정도 소란은 감수해야겠지만…….
그건 이미 엎어진 물이라 생각하고 잘 처리할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
김영지가 연락을 하기가 무섭게, 한 남자가 카페 안으로 정민과 함께 들어왔다.
김영지와는 달리, 원장은 마약에 중독된 정민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확실히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사전 지식이 없다면 되게 아파 보이는 정도.
원장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정민을 바라보며 김영지에게 물었다.
“저번에 엄성윤하고 만나게 해 줬을 때도 저런 상태였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때도 컨디션 제일 좋을 때로 맞춘 거라.”
“흠, 그래?”
남자의 손에 이끌린 정민이 원장과 김영지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정민은 멍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성윤이 형은요……?”
그리고 물었다.
참 나,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듯한 대단한 우정이었다.
“서, 성윤이 형도 이거 하려나? 근데 저는 쫌, 크응, 그게, 좋기는 한데요, 그게 그 뭐냐, 기분은요. 근데, 아, 그런데 저는 성윤이 형은 이거를, 쓰읍, 안 하는, 그게 낫지 않을까, 그런 느낌인데……. 크응, 이게 좋은 건, 저기, 아니잖아요.”
뭐라고 떠드는지도 모르겠다.
원장은 한숨을 쉬며 통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성윤이 카페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대동하지 않고 홀로 왔다.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지, 성윤은 들어오자마자 그들이 있는 테이블을 향해 직선으로 걸어왔다.
물론 오면서도 이상한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긴 했지만, 아마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평범한 회사원처럼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통화를 하는 것처럼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도록 지시해 뒀으니.
“성윤아, 대체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니. 선생님 너무 걱정 많이 했다.”
김영지가 테이블 앞에 서 있는 성윤을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성윤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손정민에게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조건 기억하시죠. 저랑 정민이랑 둘이서만 얘기하게 해 주세요.”
“너희들을 단둘이 여기 두라는 소리니? 성윤아,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 입장에선 가출 청소년인 너를 보호해야 해. 그러니까…….”
“그냥 얘기만 할 거라고요. 걱정되면 출입구 막고 계시든가요.”
여기서 성윤이 보일 수 있는 돌발 행동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갑자기 정민을 데리고 출구로 도망치는 것.
2. 본인의 휴대폰이든, 카페 직원에게 부탁하든 해서 경찰에 연락하는 것.
출구는 막았고, 카페 직원에게 부탁하는 것은 카운터에 가기 전에 막으면 되고.
경찰이야, 미리 고윤수의 비서실장에게 언질해 두었으니 설령 성윤의 신고로 들이닥친다고 해도 해결은 된다.
그래도 소란이 일지 않게 하는 게 좋겠지.
“핸드폰 있지?”
원장은 성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성윤은 이를 갈며 그 손 위에 자신의 휴대폰을 올려놓았다.
원장과 김영지는 각자 일어나 한 테이블 떨어진 곳으로 가 자리했다.
그러자 엄성윤이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거기 계시면 저희가 하는 말이 다 들리잖아요. 제가 단둘이 얘기하고 싶다고 했는데요.”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원장과 김영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나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가 앉았다.
어차피 손정민의 몸에 마이크를 달아 놓았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엿들을 수 있다.
“정민아, 괜찮아?”
성윤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손정민이 불안하게 시선을 굴리다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어! 진짜 괜찮아.”
“아직도 좀 안 좋아 보이는데…….”
“그런가아…….”
최대한 대답은 간결하게 하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정민은 짧게 말했다.
그러자 성윤이 한숨을 쉬며 품 안에서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을 꺼내 정민의 앞에 내밀었다.
“이거 내 전화번호야. 혹시 필요하면 여기로 연락해 줘.”
성윤이 건넨 포스트잇에는 전화번호 따위는 없었다.
[정민아. 아는 형이 마약을 하는데 그 형한테 네 얘기를 했더니 돈 없어도 편한 방법으로 마약을 구할 방법이 있대. 그냥 잔심부름 조금 해 주면 된다고… 너 지금 마약 때문에 천사의 집에 붙잡혀 있는 것 같은데… 이 사람한테 받으면 되지 않을까? 그 사람이 잔심부름만 잘해 주면 돈도 주겠대. 천사의 집에서 나오자. 그 사람 지금 화장실에서 너 기다리고 있어.알겠으면, 화장실 어디야?
싫으면, 형은 어떻게 지냈어?
이렇게 대답해 줘.]
빠르게 내용을 확인한 정민은 떨리는 눈으로 성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포스트잇을 찢어발겨 주머니에 넣었다.
성윤은 그 행동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역시 싫은 건가…….
“형, 여기 화장실 어디야? 나 쉬 마려운데.”
정민의 물음에, 성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성윤은 말없이 가까이에 보이는 화장실 팻말을 가리켰다.
“나 얼른 싸고 올게.”
정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김영지와 원장이 반응했다.
김영지가 가까이 다가오자, 정민이 화장실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장실, 크응, 좀요.”
김영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화장실 바로 앞에는 직원들이 앉아 있다.
화장실에 창문이 없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마찬가지로 돌발 행동에 대비한 것이다.
“…….”
정민은 천천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그는 천천히 세면대로 다가가 물을 틀었다.
그러자 안쪽 칸 안에서 낯선 남자가 나왔다.
남자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는 천천히 정민의 옆 세면대 앞에 섰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입력하더니, 정민에게 보여 주었다.
[네가 손정민이야?]정민은 놀랐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적어 정민의 앞에 들이밀었다.
[네가 찾는 게 뭐야? 송아지?]송아지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마약 준대서 온 건데 송아지는 무슨 놈의 송아지?
정민이 갸웃거리자, 남자가 다시 글자를 입력했다.
[코카인]글자를 보기가 무섭게, 정민이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 역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메시지를 적어 보여 주었다.
[내가 시키는 일은 단순해. 그냥 뭐 주면 그거 놓고 오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때마다 10회분 줄게. 일은 꽤 자주 있을 거야. 돈 갖고 싶으면 너 할 만큼 하고 남은 건 팔아. 아님 나한테 돈으로 달라고 하든가ㅇㅋ?]정민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의 집에서는 한 번에 1회 분밖에 주지 않는다.
게다가 달란다고 주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들이 정해 놓은 주기가 있는 건지 아무리 졸라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한 번에 10회분을 준다고?
이 이상 남는 장사가 없다.
[일단 이건 선금조로 1회분.]남자가 주머니 안에서 백색 가루가 들어 있는 작은 지퍼백을 꺼냈다.
정민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남자의 손에서 지퍼백을 낚아챘다.
그는 지퍼백을 열어 손가락 끝으로 찍어 맛을 보더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남자는 말없이 주머니 안에서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그러자 정민은 지체 없이 종이를 돌돌 말더니, 세면대 옆에 있는 페이퍼 타월을 뜯어 세면대 위에 두껍게 깔았다.
그 위에 가루를 쏟아 내고는 자세를 낮춰 돌돌 만 종이를 가루 위에 가져다 대고 그 끝에 한쪽 콧구멍을 맞췄다.
그리고 검지로 반대편 콧구멍을 막고, 그대로 세게 숨을 들이켰다.
“악!”
그러나, 제대로 흡입하기도 전이었다.
순식간에 팔을 거세게 붙잡혔다.
이게 뭔가 싶어 남자를 쳐다보았더니,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 팔을 등 뒤로 꺾으며 손정민을 제압했다.
“손정민 씨. 당신을 2012년 7월 26일 오후 6시 34분 부로 마약 소지 및 투약 혐의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당신의 진술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