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48)
너희들은 변호됐다-548화(548/641)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강민재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성윤이가 위험에 처하기 전에 데려올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진술도 하겠다고 하고.”
“그러게.”
사실 성윤의 자해 행위가 담긴 동영상을 공개하는 시점으로 고민이 많았다.
처음에는 조금 더 시간을 끌어서 성윤으로부터 원장이 시켰다는 자백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 볼까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성윤에게 자백을 받을 때까지 김현종이 누명을 온전히 벗지 못하게 되기에, 그건 그에게 짐을 지우는 일이었다.
천사의 집에선 김현종이 성윤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을 게 뻔하지만, 이를 뚫고 어떻게든 접촉해서 해당 동영상을 들이민다고 해도, 성윤이 원장의 보상을 믿고 입을 다물어 버리면 방법이 없지 않은가.
설득을 한다고 쳐도 성윤이 언제 입을 열지 알 수 없는데, 그때까지 김현종은 불안에 떨어야 한다.
아무리 동영상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또 내가 천사의 집 측에서 신고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더라도 임용고시를 목표로 하는 입장에선 그 상황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 왔을 터.
처음 나와 연락했을 때도, 동영상 증거를 갖고 있었음에도 두려움에 떨었던 것을 보면 당연한 일이다.
천사의 집에 대학생들을 파견했던 건, 그들과 우리가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욕심 때문에 대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었다.
어차피 천사의 집은 그 자체로도 시한폭탄이었기 때문에, 원장의 사주를 받았다는 성윤의 자백이 없더라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리라 생각하기도 했고.
그래서 성윤에게서 자백을 받는 것은 본격적인 폭로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제 손정민 구하고 나면 이 사건으로 신경 쓸 건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차에 오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지금 민우 형한테 연락 왔는데, 회사에서 다른 형님들이랑 같이 우리 기다리고 있대요.”
강민재가 메신저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가만, 민우 형?
“언제부터 허 경위가 민우 형이야?”
“얼마 전부터 그냥 형, 동생 하기로 했어요.”
“……강 변은 선이라는 게 없어?”
“에이, 선은 지키죠. 제가 선을 모를까 봐요?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더 도전할게요. 변호사님도 형 하실래요?”
“이래서 강 변이 선이 없냐고 물어본 거야.”
* * *
“아, 변호사님들 오셨네요.”
회사에 복귀해 회의실로 들어가자, 강민재가 말했던 대로 모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우 형, 바쁘실 줄 알았는데 오셨네요?”
“아, 중요한 상황인데 안 돼도 와야지. 그런데…….”
허민우는 나를 아주 잠깐 바라보더니, 강민재에게 이상하게 눈짓했다.
아무래도 내 앞에서 호형호제해도 되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허민우는 내가 그와 거리를 두려 했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 완전히 마음을 놓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내려놓기도 했고, 허 경위가 우리와 협력 중이라는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모르는 데다, 이미 우신은 여러 번의 실패를 겪은지라 쉽사리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지는 못할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신호를 못 본 체하며 착석했다.
“잘하고 왔어?”
오랜만에 최종현의 모습이 보였다.
며칠간 워싱턴에 사는 사람처럼 지내더니,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오늘은 화상 미팅 없습니까?”
“아직은 연락이 없네. 그리고 어차피 그 양반들 이제야 일어났을걸. 보통 나한테 연락 오는 건 우리 시간으로 10시 이후부터거든.”
지금 시각은 오후 7시.
그럼 최종현도 평범한 직장인처럼 일어난 셈이다.
“성윤이는?”
“자백 받았습니다. 녹음해 두긴 했지만, 나중에 증언도 해 주겠다고 했고요.”
“잘됐네.”
조봉준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남은 건 정민인가…….우신 새끼들은 점점 늪에 빠지고 있는 것 같아.”
최종현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쓰레기 짓을 덮으려고 계속 쓰레기 짓을 하고 있는 거잖아. 누군가는 제동을 걸어야 끝나는데, 여태까지는 제동을 걸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그러니까 계속 더 좆같은 짓을 저질러서 입을 막고, 사람을 없애는 방식으로 덮어 보려고 하는 거지. 언젠가는 벽을 만나서 폭발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 하는 것 같아.”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처럼요.”
강민재가 끼어들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악인의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이런 광경을 자주 접한다.
범죄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최초에 저지른 범죄의 단죄를 피하기 위해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그 범죄의 단죄를 피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에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처벌받기를 감수하는 사람뿐이다.
하지만 고상준은 아직 그럴 생각이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가 우신의 주인이 되었을 때, 이미 사법기관은 우신의 발아래 있었는데.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좆같이 될 때까지 아무도 말리지 않았을까. 고상준이야 정신 나간 새끼라고 쳐도. 그 새끼 주변에 똑똑한 놈들 많잖아. 왜 안 말렸을까?”
“말린 놈들은 쳐 냈을 테니까요. 자기들이 벌이는 범죄의 부역자를 골랐는데, 그 사람들이 협조적이지 않으면 바로 없앴잖아요. 그러니까 남은 놈들은 똑똑해 봤자 언젠가는 우신이 좆될 거라는 계산은 못 하는 애매한 똑똑이들만 남은 거죠.”
마치 최재훈이 장기 매매 사업의 부역자가 되기를 거절하자 바로 죽였던 것처럼.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혼자 생각해 본 적은 있다.
고상준이 경영권을 잡기 전, 우신의 창업주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대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았다.
정권의 비위를 거스른 기업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들을 생각하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공녀 사건을 조사하던 강관웅 역시, 비서 실장을 잃는 선에서 끝난 것이 아니겠는가.
강관웅이 집권했던 80년대 말엽, 그보다 더 전부터 우신은 일본에 어린 여성들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 여성들이 도착한 곳은, 일본 정재계 인사들이 품은 욕망의 원초였다.
나는 그따위 사업을 시작한 우신 창업주와 대화를 나눠 본 바가 없어 추측만 할 뿐이지만, 아마도 그때부터 우신은 20세기 대한민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일본의 힘을 빌려 정부가 휘두르는 철퇴를 피해 보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일본 정재계 인사들이 만들어 준 그늘에 피신한 채, 우신은 돈을 뿌려 사람 농사를 지은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 지도층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들을 그 더러운 돈으로 키웠고, 그들은 결국 기대에 부응하여 각계각층에 뻗어나갔다.
그들을 통제하에 둔 이상, 대한민국이 우신 공화국이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공고하게 쌓인 우신을 위한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됐던 고상준은, 더더욱 거칠 게 없었을 것이다.
사법기관에도, 입법기관에도, 정부에도, 구태여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우신의 영달을 위해 일해 줄 사람들이 가득했을 테니까.
그런 면을 생각했을 땐, 그의 준법정신을 강제해야 하는 양심이 깎여 나가다 못해 사라진 것도 이해가 되긴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참작은 되지 않는다.
“고상준도 존나 당황스럽겠지. 여태까지는 돈으로 입을 막으면 되고, 그게 여의치 않을 땐 죽이면 그만인 놈들 상대하다가 우리 같은 새끼들이 나타났으니까.”
나는 고상준을 이 지경까지 끌고 온 데에는 그 끝 모르는 자존심이 꽤 지대한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오노데라가 그깟 변호사가 뭐가 무섭냐며 우스운 수법으로 나를 없애려고 했듯이, 고상준도 처음엔 내가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세무조사나 불법 투기 따위로 나를 담가 보려 했겠지.
하지만 여기서 실패하니 ‘어라?’ 싶었을 거고.
그다음 선택한 건 살인자로 만드는 것이었으나, 그조차 여의치 않으니 그의 인생에서 이렇게 밟아도 계속 일어나는 놈은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다 한복판에서 배를 쑤셨을 때도 죽지 않는 나를 봤을 땐, 어쩌면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자존심 때문에 그 공포라는 것도 결국 약을 아무리 뿌려도 죽지 않고 달려드는 벌레를 보는 수준이었겠지만.
“고상준, 그 새끼도 나이가 많잖아.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쌓인 경험치라는 걸 무시 못 한다고. 그 경험상, 돈을 바르든 사람을 죽이든 해서 입을 막으면 모든 게 끝났거든.”
“그렇죠.”
“지금 그 새끼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도, 지 눈에는 뭣도 아닌 우리 때문에 위기에 봉착할 거라는 생각 자체가 안 되는 거지. 자존심도 상할 거고. 그러니까 계속 현실 부인하면서, 여태까지 먹힌 방식들이 안 먹히는 건지 부하들이 띨띨한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현실 도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찬영이한테 고윤수를 못 믿겠다느니,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느니 하는 소리나 해 대지.”
최종현도 나와 비슷하게 고상준을 분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를 자신의 적수로 생각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잃지 않고도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것 아니겠는가.
계속 범죄를 반복하며 업보를 쌓아 가고 있는 이 상황도, 여태까지 10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우신이라는 기업이 유지되는 동안 써 왔던 방법이 먹히지 않을 리 없다는 오만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어쩌면 자신들이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돈 벌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큰 규모로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자신들의 카르텔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미 재물이 썩어 넘쳐 나서 돈으로는 환심을 살 수 없는 극히 일부의 VIP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쯤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미성년자 성매매, 설령 상대가 도중에 사망하더라도 후환이 없는 가학적인 성폭행 따위는 아무리 돈이 썩어 넘치고 사회적 지위가 높더라도 큰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 선뜻 손대기 어렵다.
그런데 그 음습한 욕망을 채워 주고 꼬리 밟힐 일 없게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과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다면, 우신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남는 장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게 장사라는 자각조차 없었을 듯하다.
‘극히 일부 몇몇하고만 즐기는 은밀한 취미인데 이게 뭐?’ 하는 마인드가 아닐까.
특히 인면수심의 정점을 찍은 장기 매매 사업의 경우, 그 횟수가 몇 번이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열 번도 되지 않는 적은 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이든 열 번이든, 이미 시작한 이상 인신매매범이 되는 건 매한가지다.
그러나 고상준은 본인이 대한민국의 왕족쯤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자신들은 질 낮은 범죄 조직과는 다르다고 굳게 믿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나중에 모든 사실이 드러나면, 누구 하나쯤은 고상준의 정신 상태를 가지고 논문을 써 줬으면 좋겠다.
그 연구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연구 자금을 댈 용의도 있다.
“그놈들이 제 무덤 파는 걸 막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생기는 건 막아야죠. 이제 정민이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