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5)
너희들은 변호됐다-55화(55/641)
급한 환자들을 모두 확인한 뒤에야, 의사들이 진철의 정밀 검사를 시작했다.
떨어질 때 바닥에 처음으로 떨어진 곳이 오른팔이었기에, 그 팔은 골절을 면치 못하였고 왼쪽 팔에도 금이 가 있었다.
다리 역시 일전에 부러졌던 적이 있는 곳이라 또 그 자리가 골절되었고, 다른 다리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갈비뼈 한 군데도 금이 간 상태였다.
그 외에 떨어지며 생긴 타박상과 찰과상이 있었다.
추락 사고가 일어난 것치고는 그렇게 크게 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했다.
이에 따라, 진철의 모친 역시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는지 알겠다고 답했다.
내가 법적 조치를 취하는 동안 학교에 다니며 또다시 학교 폭력에 노출될까 걱정된다 했던 말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어차피 병결 처리 될 것이고, 총 수업 일수의 3분의 1 미만이라 유급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확인이 끝나고, 지방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여하던 부친이 다급하게 병원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진철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하, 정말 속상해서…….”
부친에게 잠든 진철을 잠시 맡겨두고, 모친과 우리는 휴게실로 나왔다.
그녀는 고민이 많은 듯했다.
그간 진철이 맞고 들어온 일이 많기는 했지만, 이렇게 입원 치료를 장기간 받아야 할 정도로 다친 것은 처음이지 않은가.
담임 교사는 물건을 잡다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애 아빠하고 아까 잠깐 얘기했는데, 정말 혁민이가 진철이를 저렇게 만든 거라면……. 학폭위 열어도 소용없을 거라는 말에 동의하더라고요.”
그녀는 피곤한 듯 이마를 짚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인지, 그녀는 반나절 만에 핼쑥해져 있었다.
“애 아빠가 좀 알아봤다나 봐요. 이 상황에선 학교에서도 학폭위를 열어 주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많이 있었다고……. 열려도 징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했대요. 변호사님 말씀이 다 맞았어요.”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면, 진철은 남은 학창 생활을 고통받으며 보낼 것이다.
학창 생활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버텨 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아까 다녀간 담임 교사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자세히는 모르고요, 학교가 사립이다 보니 이 학교에서 첫 교사 생활 시작해서 이제 6년 차라고 하더라고요. 나이는 서른이고요.”
“처음 진철 군 일로 면담 가셨을 때는 어떤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친절했어요. 갑자기 찾아갔는데도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었고요.”
아까 처음 마주했을 때 나 역시 교사에 대해 크게 나쁜 인상은 받지 않았다.
그녀 역시 갑작스러운 사고에 당황했을 법했는데도, 크게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사과도 때맞추어 했고, 욕설을 내뱉는 진철을 타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진철의 학교생활에 문제가 없다 단언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진철이 저런 폭력까지 당했다면, 무리에서 소외당한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무리에서 소외당하면, 단순한 고립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교사 앞에서도 묘하게 조롱한다거나, 괜히 무안을 주고 저들끼리 키득거린다거나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교사 생활을 6년 정도 했다면 그 정도 미묘함을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숨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혁민이라는 학생이 조금도 티 나지 않게 주도면밀하게 진철을 괴롭혔던 것일까.
“변호사님.”
“네.”
“오늘 일, 단순히 담임 말대로 물건 잡다가 생긴 일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 그거 제가 이상한 건 아니겠죠?”
“제 사견을 말씀드리자면, 의심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아직 상황이 명확히 파악된 게 아니니 지금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확실한 점은 진철의 주장대로 별거 아닌 일은 아니라는 것 하나다.
누군가 진철을 밀었을 수도 있고, 다른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우선 교사가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하는지, 그리고 진철이 뭐라고 하는지 확인한 다음에 의견을 개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이 일 있기 전에도 저 우리 진철이 저렇게 만든 놈들어 떻게든 처벌받게 할 거라고 다짐했어요. 민사, 형사 다 걸 수 있다고 했죠? 저, 그거 다 해서라도 우리 진철이 학교생활 잘하게 해 주고싶어요.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상관없이 저희 법적 조치할 거예요.”
모친은 수납증을 세게 움켜쥐며 말했다.
의뢰인이 바란다면, 변호사인 우리는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돌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회의해 보겠습니다. 담임 교사에게 전화 오면,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만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웬만하면 피해자인 진철의 입에서 모든 정황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은 힘들어 보였다.
욕하며 소리 지르는 진철을 부모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변호사님, 어디로 가실 거예요?”
“집으로. 사무실 앞에 내려 줘.”
“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요기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나는 차근차근 머릿속에 정리해 보았다.
여태까지 맡았던 사건처럼 의뢰인이 성인이라면, 바쁘게 뛰어다니기만 해도 어느 정도 성과는 건질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학생인 이 상황은 난이도가 올라간다.
진술을 받아 내야 하는 대상은 교사나 같은 반 학생들.
하지만 그들은 법적 조치보다는 당장 자신의 직장, 자신이 매일같이 다녀야 하는 학교가 더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무언가를 알고 있더라도 발설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능력을 쓴다고 해도, 그건 나만 알 수 있는 일이니 지표로 삼을 뿐 대단한 법적 효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경찰에 바로 신고하면?’
잠시 떠오른 생각이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부터 경찰이 개입하면 조사 가능한 범위가 넓어지니 보다 쉬울지는 몰라도, 그 밖의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은 학교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너무나도 부족한 시기라, 경찰 역시 상황을 가볍게 여길 가능성이 컸다.
경찰이 조심스럽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교실로 와서 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평소 진철이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식으로 수사를 시작할 터.
학생들에게는 경찰보다 당장 학교에서 마주칠 선생님이나 그 반 짱이 더 무서운 법이다.
수사 끝에도 강력한 처벌이 확정되지 않는 한, 학생들은 계속 혁민과 함께 지내며 후폭풍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더욱 입을 닫을 것이고, 그 사이에 혁민의 부모는 아이들과 학교가 허튼소리를 하지 않도록 처리할 것이다.
그렇기에 경찰이 개입하기 전 완전 증거를 입수한 후, 고소장을 넘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죄 판결이 나오면, 이에따라 민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대응이다.
* * *
이튿날, 나는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판례와 기사 따위를 더 찾아보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학교 폭력이 법적 대응으로 이어진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작게 난 기사를 찾아보니, 그때도 학폭위와 경찰 신고를 생략하고 부모가 로펌으로 바로 찾아갔다고 한다.
변호사를 통해 법적 효력이 있는 증거들을 모으고, 형사 고소를 진행하면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혁민이라는 학생 아버지가 공공기관장이라는 게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증거를 잘 모아서 형사 고소를 한다고 해도…… 경찰이 검찰에 넘기지 않을 수도 있고, 검찰 선에서 잘릴 수도 있고요.”
“증거가 확실하면 경찰도 어쩔 수 없이 검찰에 넘길 수밖에 없어. 검찰이 문제지.”
혁민의 아버지가 검찰 쪽에 연이 닿아 있다면, 재판에서 사태를 축소시킬 가능성이 컸다.
형사 재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건 지금 단계에서 걱정할 일이 아냐. 일단 증거 확보가 먼저야.”
나는 강민재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혁민의 아버지가 공공기관장이라는 점은 나도 마음에 걸리지만, 어느 기관장이냐 따라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지금 해야하는 일을 그런 걱정 때문에 못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네, 차주한 변호사 사무실입니다.”
그때, 전화가 울리기가 무섭게 수화기를 든 강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예. 진철이 어머님.”
내가 고개를 들자, 강민재는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네, 차주한 변호사님도 듣고 계십니다.”
-방금 담임한테 연락 왔어요. 그냥 장난치다가 진철이 실내화가 창문 밖으로 날아갔는데, 그걸 잡겠다고 진철이가 달려가다가 떨어졌다고 하네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진철에게 정말 소중한 물건이라면, 말마따나 그랬을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하지만 고작 실내화라면 믿기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진철 군하고는 얘기해 보셨습니까?”
-애가 말을 안 해요. 정말……. 입을 꽉 닫고 아무 말도 안 해요. 정말로 애들하고 실내화 가지고 장난치다가 그랬느냐고 몇 번을 물어도, 그냥…….
“어머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지금 병실로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차라리 진철이 그때처럼 과격하게 반응하며 무슨 대답이라도 한다면, 능력을 이용해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하나 주어진 것이 없는 지금, 피해자마저 입을 닫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되는 일은 없었다.
-네, 알겠어요.
우선 전화를 끊은 뒤,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진철의 마음이 불안한 상황에서,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이유로 억지로 입을 열게 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문득 일었다.
내가 잠시 주저하자, 재킷을 입고나갈 준비를 하던 강민재가 나를 바라보았다.
“변호사님, 뭐 문제 있으세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뭘 해야하는지는 알겠는데, 내가 그걸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강민재는 알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뭘 하시려는 건데요?”
“진철이 입을 열게 하고 싶은데. 뭐든 알아내야 하니까.”
“……진철이가 입을 열까요. 연다고 해도, 폭력적인 반응만 나올 텐데.”
“그래서. 그게 진철이한테 더 안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아서. 심리치료를 진행해 보라고 할까 싶기도 하고. 심리 치료하다 보면, 천천히 입을 열지도 모르니까.”
내 말을 가만 듣고 있던 강민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심리 치료 안 받으려고 할 겁니다. 진철이 입장에선 그게 더 기분 나쁠 거예요. 자기가 뭐가 문제라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하냐,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강민재의 말은 제법 단호했다.
나는 내 앞에선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근거로?”
“…….”
강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짧게 덧붙였다.
“일단 가시죠. 뭐든 알아내야 하니까요.”
그는 묘하게 내 말을 따라하며 옷걸이에 걸린 내 재킷을 꺼내 건넸다.
그런 강민재는,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