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50)
너희들은 변호됐다-550화(550/641)
성윤이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메시지를 뿌리는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유경이라는 학생을 통해 원장의 반응을 들으니, 아이 앞에서 일부러 티를 내지 않은 것을 감안했을 때도 꽤 기뻐 보였다고.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걱정하던 성윤의 소식을 알게 되어 기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성윤을 다시 잡아 가두고 설욕할 생각에 흥분한 것일 터다.
“어,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며칠 만에 보는 성윤은 그사이 꽤 살이 오른 것 같았다.
전에는 마른 축에 속했는데, 지금은 정상 체중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그간 큰 스트레스를 받아서 수척해졌던 게 아닐까 싶다.
눈빛도 꽤나 부드러워졌다.
직원들 말로는 잘 웃고, 잘 먹고, 잘 잔다고 하더니 이제야 좀 제 나이로 보인다.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어쩐 일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슬슬 천사의 집에서 연락이 올 때가 된 것 같아서.”
“천사의 집에서 연락이 와요?”
“네가 혼자 움직이는 척도 했고, 따로 연락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도 알잖아. 그쪽도 계속 기약 없이 기다리려고 하진 않을 거고, 슬슬 너한테 접촉하고 싶어질 때가 됐어.”
나는 다시 데스크톱에 전원 코드를 꽂는 직원을 눈으로 좇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변호사님 지금 유경이가 원장실로 불려갔대요]마침 3분 전에 대학생에게서 메시지도 도착해 있었다.
타이밍이 아주 좋았다.
“아마 유경이를 시켜서 너한테 연락하려는 것 같은데. 이제 우리도 슬슬 정민이 만날 준비를 해야지.”
“정민이요? 드디어…….”
성윤의 얼굴에 순식간에 화색이 돌았지만, 동시에 긴장감이 어렸다.
“그래. 메모장 켜 봐. 지금부터 불러 주는 거 네 말투로 바꿔서 적어.”
“네. 준비됐어요.”
“7월 26일 오후 6시에 강남역 12번 출구 앞 카페로 정민이를 데리고 나올 것.”
내 말에 따라 타이핑을 이어 가던 성윤이 다 됐다는 듯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넘버링. 1번.”
“네, 1번.”
“그 카페에서 정민이와 단둘이 10분간 대화하게 해 줄 것.”
“단둘이…… 얘기하게…… 해 줄 것. 네, 적었어요.”
“2번.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정민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할 것.”
“검사할…… 것. 여기까지는 제 말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 편한 대로 해. 그리고 3번. 자취방을 일주일 안으로 섭외해서 천사의 집에서 내보내 줄 것. 계속 서류 문제로 못 내보내 준다고 했지만, 필요 서류는 너희가 준비하는 것이고, 만일 당사자가 필요하더라도 날 잡고 하루에 몰아서 처리하면 되는 것을 알고 있음.”
“어……. 근데 저는 2번까지만 들어줘도 상관없는데, 요구 조건이 늘어나면 거기서도 기분 나빠서라도 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을까요?”
타이핑을 하던 성윤이 물었다.
물론 성윤의 말이 맞다.
하지만 성윤에게 아무런 뒷배가 없다고 믿게 할 만한 떡밥을 계속해서 뿌려야 한다.
만일 우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성윤은 금전적 지원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천사의 집에서는 성윤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무시해 왔다고 하니, 성윤이 천지분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좋다.
이 글을 보면, 그들은 자신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요구 조건만 줄줄이 말하며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성윤을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지적해 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할 터다.
나는 성윤에게 이를 설명하려다 그만두었다.
괜히 기분 망칠 필요는 없지.
“어차피 너를 다시 데려가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들인데, 조건이 많더라도 나타날 거야. 걱정하지 마.”
“아, 네. 일단 적었어요. 이제 끝이에요?”
“아니, 4번. 기존에 약속한 생활비를 지급할 것.”
“네, 썼어요.”
“마지막으로, 만일 이 조건 중에 한 가지라도 맞춰 주지 않으면 바로 경찰에 연락할 것임. 26일 오후 6시에 해당 장소에 아무도 없으면 마찬가지로 경찰서로 갈 것임. 지금부터 천사의 집 아이들의 연락은 일절 받지 않을 것이며, 이 메일 계정에 접속하지 않을 것임.”
성윤은 타이핑이 끝난 뒤, 나에게 메모장을 보여 주었다.
나는 내용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스북 메신저 들어가 봐. 아마 유경이한테 연락 와 있을 거야.”
“뭐라고 왔을까요…….”
“뻔하지. 원장이 만나자고 구워삶는 내용이지.”
메신저에 접속하자, 과연 예상대로 유경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유경 : 오빠… 선생님들이 우리 중에 누구라도 오빠랑 연락되는 사람 있으면 말 좀 전해 달라면서 한 말인데… 오빠가 원하는게 뭐든 다 들어줄테니까 일단 한번만 보자구…ㅠ 오빠한테 말하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오빠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오빠 진짜 안돌아올거야?]유경이라는 학생도 텍스트지만 연기를 참 잘하네.
원하는 게 뭐든 다 들어줄 테니까 한 번만 보자는 내용이야 예상했지만, 그 앞에 덧붙인 부분은 꽤 머리를 쓴 느낌이 났다.
천사의 집에서 유일하게 성윤과 연락이 되는 유경을 계속 이용하기 위해, 유경이 원장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여 줬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숨기지 않았던가.
“지금 메일 보내요?”
“아니, 메일은 다른 형이 대신 보내 줄 거야. 메일로 IP주소를 확인할 수 있거든. 여기서 보내면 네가 어디 있는지 알려지잖아.”
“헉, 그런 기능도 있어요?”
“네가 쓰는 메일 중에서 준수 형이 로그인해도 상관없는 거 아이디랑 비밀번호 적어 줄래? 그리고 지금 메모장에 쓴 건 준수 형한테 보내. 준수 형이 대신 보내 줄 거야.”
* * *
“여기 사진 중에서 파란 옷 입은 아저씨, 회색 옷 입은 형, 야구 점퍼 입은 형. 이 셋은 경찰이야. 그리고 나머지 일곱은 다 아는 형들이지?”
허민우가 성윤에게 사진을 보여 주며 말했다.
사진 여러 장을 찬찬히 확인하던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의 상황이 생기면 이 중 아무한테나 달려가. 열 명이나 너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겁먹을 거 없어. 알았지?”
“네…….”
“그리고 천사의 집에서 정민이를 안 데리고 나왔을 수도 있거든.”
“네?! 그럼 어떡해요?”
“그땐 그냥 데리고 나올 때까지 네가 안 나타나면 돼. 형들이 확인해 보고 정민이가 왔는지, 안 왔는지 알려줄 거야.”
“근데 그러면 카페 안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원장이 알아차리지 않을까요…….”
“통창으로 내부가 다 보이는 카페라서 괜찮아. 변호사님이 장소를 잘 고르셨던데요?”
허민우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사이, 성윤은 카페 전경을 찍은 사진을 다시 확인해 보고는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민이가 안 왔으면, 준수 형이 준 휴대폰으로 원장한테 전화를 걸어야 해. 정민이 왜 안 데리고 왔냐, 경찰에 간다고 하지 않았냐, 5분 내로 데리고 와라. 뭐 이런 식으로 말해.”
“준수 형 휴대폰으로요? 그러다가 준수 형이 들키면…….”
“어차피 대포폰이라 상관없고, 혹시 원장이 이 번호 뭐냐고 물으면 지나가던 사람한테 빌린 거라고 해.”
“대포폰이요……?”
경찰의 입에서 대포폰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일까.
성윤은 허민우를 흘긋 돌아보았다.
새삼스럽게 허민우를 편법, 아니, 불법이 판치는 세계로 끌어들인 것 같아 미안해졌다.
“수사상의 이유로 쓰는 거라 괜찮아. 그렇게 통화하고 나서 정민이가 나타나면 형들이 알려 줄 거야. 그럼 카페로 들어가서 원장하고 만나면 돼. 나머지는 말했던 대로야. 정민이하고 단둘이 얘기하게 해 달라고 하고, 미리 적어 놨던 포스트잇을 정민이한테 보여 주고 화장실로 유도해. 천사의 집 사람들이 자꾸 가까운 데 앉으려고 하면, 좀 세게 나가. 어차피 출구가 하나밖에 없는 카페라서 네가 난동을 피울 것 같으면 적당히 거리 벌려서 앉을 거야. 안전 장치도 있을 거고.”
“장치요?”
“아마 원장이 정민이하고 네 대화를 다 듣고 있을 거야. 그런 데다 카페에 사람도 심어 놨으니까 자리 조금 벌려서 앉는 것쯤은 해 주겠지. 그러니까 일상적인 대화만 해. 잘 지냈어? 이런 정도로만. 그리고 포스트잇을 내밀 땐, 천사의 집 사람들 눈에 잘 안 보이게 잘 가리고 네 전화번호라면서 보여 줘.”
“제가 정민이 마약 의심했는데, 잘 지냈냐고만 하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지. 뭐, 괜찮냐라거나, 이런 정도 이야기도 좋고. 대화는 짧게 하고 포스트잇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유도하기. 알겠지?”
성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 넣어놓았던 포스트잇을 꺼냈다.
정민에게 마약을 주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화장실로 가 보라는 내용이 담긴,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다.
그러자 허민우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여차하면 꼭 아저씨들 찾아가. 네가 카페로 들어가면 파란 옷 아저씨도 곧 들어갈 거야. 그 아저씨 유도 3단이야. 일부러 너희랑 가까운 자리에 앉을 거니까, 긴장하지 말고. 또, 화장실에서 큰 소리가 나면 바로 그 아저씨 옆자리로 이동해. 큰 소리가 났다는 건 아저씨가 정민이를 체포했다는 뜻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최선을 다해 볼게요.”
아직 약속 시간보다 8시간이나 앞선 시각.
천사의 집 쪽에서도 이 카페에 미리 직원들을 보내 두겠지만, 아직 오지 않았는지 내부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카페에 수사 내용을 알릴 수가 없어서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할 듯하여, 나는 미안한 마음에 70명분의 커피를 주문했다.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메뉴로.
우리가 미리 선별해 뒀던 경찰 인력 명단 속 인물들이 이번 작전에 도움을 주기로 했으므로, 그들에게 우선 돌렸다.
남은 것은 태식의 직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주문을 받은 카페 직원은 이 갑작스러운 대량 주문에 절망한 눈치였다지만, 이 정도면 업주에게는 영업을 방해한 데에 충분한 대가가 아닐까 싶다.
한 시간 정도면 끝날 것 같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원장하고 김영지 나타남 정민이 없음]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오후 5시 55분.
직원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하지만 성윤에게는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다.
아직 6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불안하게 할 이유는 없잖은가.
[정민이 안옴]그러나 6시에 도착한 메시지에는 유쾌하지 않은 소식이 담겨 있었다.
“성윤아. 정민이 안 데리고 온 것 같다. 준수 형이 준 휴대폰으로 전화 걸어 봐.”
“정민이가 안 왔다고요?”
“근처 어디에 있을 거야. 원장은 정민이 안 보여 주고 널 데리고 갈 수 있는지 간 보려고 하는 거고.”
성윤은 내 말에 침을 꿀꺽 삼키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성윤인데요.”
스피커폰으로 전환한 상태라 나 역시 원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원장의 날카롭고 예의 없는 말투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의 통화 내내 들려오는 가식적인 톤에 속이 안 좋아졌다.
“……5분 뒤에도 정민이 없으면 바로 경찰서 갈게요. 그리고 이 번호로 연락하지 마세요. 지나가던 분한테 잠깐 빌린 거고, 이번에는 5분 지나면 정말 얄짤 없어요.”
성윤은 전화를 끊은 뒤 등받이에 기대 숨을 골랐다.
미리 연습을 하긴 했지만, 성윤은 꽤나 연기를 잘해 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정민이 왔대요?”
1분에 한 번씩 성윤이 나를 재촉했다.
하지만 아직 나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나타나는 즉시 메시지가 왔을 텐데.
설마 정민을 아예 안 데리고 온 건 아니겠지.
지이이잉.
그렇게 6시 4분이 되었을까.
성윤의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원장이었다.
역시 지나가는 사람한테 빌렸다는 말을 믿지 않은 듯하다.
나는 성윤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곁에 있던 직원에게 건넸다.
“여보세요?”
직원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원장이 예의 그 가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네. 혹시 아까 전에 전화 빌려주셨던 학생하고 아직 같이 계신가 해서요.
“저는 지나쳐 왔는데요.”
─그 학생 어디에서 만나셨나요?
원장이 추궁하는 것처럼 물었다.
아직도 이렇게 주제를 모르나.
나는 휴대폰에 메시지를 적어 직원에게 보여 주었다.
[겁 좀 줘]그러자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인상을 구기며 원장을 다그쳤다.
“저기요. 그쪽 뭡니까? 아까 그 학생이 부르는 걸 보면 어디 원장인가 본데. 경찰 운운하는데, 그 학생하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 학생이 친구들하고 조금 싸웠는데, 부모님들이 중재를 부탁하셔서 제가 만나기로 한 거예요. 지나쳐 오셨다니 이만 끊겠습니다.
거짓말이 아주 술술 나오는구나.
임기응변에 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칭찬하고 싶은 대상은 아니니 거짓말쟁이로 치부하기로 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시점.
[정민이 도착]카페 내부에 있던 직원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성윤아. 정민이 왔대.”
“정민이요?! 그, 그럼 저 지금 나가요?”
“그래. 나는 혹시 그쪽 눈에 띌 수도 있어서 미리 철수할 거야. 화장실에서 큰 소리 나면 바로 파란 옷 아저씨한테 가는 거 잊지 말고. 정민이 체포되고 나면 허 경위님이 널 다시 집으로 데려다줄 거야. 이따 집에서 보자.”
성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처음 천사의 집을 나왔을 때 입고 있던 꼬질꼬질한 교복 차림의 뒷모습이, 천천히 카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