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53)
너희들은 변호됐다-553화(553/641)
허민우가 전해 온 소식은 우리를 몹시 불쾌하게 만들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엮을지 전부 맞히진 못했지만, 그들이 이런 방식을 취할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흠, 태광이 소설을 잘 만들었네. 증거가 나오기 어려운 사건에서 아예 주어진 요소로 새로운 내용을 짜 버렸어. 어차피 이것저것 조사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게 드러날 것 같긴 하지만, 시간이 질질 끌리겠는데. 이대로 두면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을 초반에 대학생들이 욕받이가 될 게 뻔하잖아.”
최종현이 수염이 자란 까슬까슬한 턱을 쓰다듬으며 침음했다.
“그러게요. 대학생들이 제일 걱정입니다. 하는 짓 보면 조만간 기사를 낼 것 같죠?”
오 사무장의 물음에 최종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티즌들이 동아리를 특정할 수 있도록 힌트가 많이 섞인 기사를 낼 겁니다. 대외 활동이 많은 동아리라, 학생들 얼굴이 담긴 보도 자료가 많이 나갔던데……. 학생들이 엄청 난처해지겠어요.”
특히 동아리 회장과 직접 소통해 왔던 최종현은 근심이 커 보였다.
“우리 부탁으로 봉사 나갔던 것뿐인데, 괜히 이런 누명까지 쓰게 해서 어떡하죠. 사건이 질질 끌릴수록 그 동아리가 볼 피해는 커질 텐데.”
강민재 역시 한마디 보탰다.
모두가 우리 때문에 피해를 볼 대학생들을 걱정했다.
“그게 우신이 노리는 겁니다.”
내가 입을 열자, 강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겠죠. 사건이 공개되면 누구 하나는 욕을 먹어야 하는데, 그걸 대학생들로 만들면 대학생들도 가만히 있진 않을 테니까요. 분명 파견한 배후가 우리라는 것도 공개할 테고, 그럼 우리도…….”
“아니, 그 말이 아니야.”
“그럼요?”
“이거 성동격서야.”
천사의 집에서 아무리 대비를 해 놓았다고 해도, 공공 CCTV를 전부 뒤지면 그들이 정민과 어떤 방식으로 접촉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의 말대로 정민이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가출 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했다면, 그 공사장이 어디인지 특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사장은 정민이 직접 지목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공사장에서 일한 적이 없으니 불가능하다.
설령 어떤 방법으로든 정민을 고용했다는 공사장을 섭외한다고 해도, 공공 CCTV에 정민이 그 공사장에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없을 것 아닌가.
심지어 어르고 달래야 겨우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그들이 접촉했을 장소가 어디라고 할지는 몰라도 쩔쩔매는 모습이 하나라도 찍혀 있어야 한다.
이 또한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정민을 그렇게 찾아 헤매서 겨우 잡는 데에 성공했다면, 적어도 천사의 집 직원 중 하나는 지속적으로 정민의 휴대폰에 연락을 취한 내역이 있어야 한다.
그게 과연 있을까?
증거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피해자인 정민과 성윤이 진술할 내용과 그들의 주장은 상충된다.
이 모든 정황들은 천사의 집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가 대중에게 욕먹는 대학생들과 비행 청소년들을 구하기 위해 정신없이 사건 키울 걸 노리는 거겠지. 여태까지 우리 행보를 보면, 그 대학생들과 아이들의 무고함을 밝히면서 동시에 천사의 집의 과실을 입증하려고 전력투구할 게 뻔하잖아.”
“엥. 그럼 전력투구 안 할 거예요? 대학생들이 당하는 걸 그냥 방관하겠다고요?”
내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강민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홱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여기에 정신 팔려서 소은이 심장 오노데라 손자한테 넘겨줄래?”
김미자의 말에 따르면, 오노데라는 알레르기 때문에 상당히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체질을 물려받은 것인지, 손자 역시 상당히 많은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다고.
오노데라가 우신에 천문학적인 돈을 지급하면서, 심지어는 여러 가지 이득을 보게 해 줄 것을 약속하면서까지 손자의 수술을 맡긴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고윤수를 일본까지 불러서 수술을 재촉한 것치고는 아직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것도, 준비에 상당히 공을 들이기 위함이었을 터다.
물론 그사이에 오노데라가 총리로 당선되었고, 나를 죽이는 데에 실패하기도 했으며, 대학생들을 몰아내는 데에 성공은 했어도 여러 위험 요소들이 남아 버려서 부담을 느낀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분명히 그들은 내가 한국에서 이 일에 신경 쓰는 동안 오카시마 병원에서 얼른 수술해 버릴 생각일 것이다.
“차 변 말이 맞네. 물론 총리가 되고 나서 아직 바쁠 시기긴 하지만, 오노데라도 이제 슬슬 수술에 들어가지 않으면 개지랄을 떨 것 같은 느낌이야.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키리하라 기자가 오노데라가 생각보다 오래 참아 준다는 말을 했거든.”
오노데라를 잘 아는 기자도 그런 말을 했을 정도라면, 내 추측이 맞는 모양이다.
“그리고 조금 신경 쓰이는 점이 있습니다.”
“신경 쓰이는 점?”
“성윤이를 잡기 위해 카페로 정민이를 데리고 나왔을 때는 정민이가 현행범 체포될 거란 생각을 못 했을 테니 무마시키는 게 어렵지 않을 줄 알았겠지만, 이젠 아니잖습니까. 그러니 그들도 지금 상황에서 온전히 빠져나가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하에 일단 거짓 진술을 한 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일차원적인 판단입니다. 어차피 수사하다 보면 들킬 거짓말이니까요. 경위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말입니다.”
허민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냈다.
“네, 안 그래도……. 천사의 집 직원 전원의 통화, 문자 내역은 물론이고 차량 번호로 CCTV 확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천사의 집이 딱히 정민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게 보이지 않습니다.”
“네. 그리고 정민이는 그들의 지시로 일본 유학에 보내질 위기에 처했다고 정도 대표 메일로 연락을 취해 오기도 했잖습니까. 그리고 자백은 못 받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천종남을 데리고 있다는 것도 알 거고요.”
“그러네요. 이미 우리에게 거짓말을 밝힐 카드가 있다는 걸 알고도 이랬다는 뜻인데…….”
허민우가 송곳니로 입술 한쪽을 깨물며 말끝을 흐렸다.
“겸사겸사, 우리한테 무슨 카드가 있는지 까 보고 싶었겠죠. 여태 우리가 조용했던 것도 그 카드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테고. 불완전한 카드라면 오히려 완전해지기 전에 까게 만드는 편이 대응하기 쉬우니까요.”
“오노데라의 손자를 수술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한다고요? 그게 성공한다고 해도 천사의 집에 타격이 엄청 클 텐데요.”
이야기를 듣던 오 사무장이 찝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신경이 쓰인다는 겁니다. 우신은 천사의 집을 살릴 생각이 없어 보여서요.”
내 말에 모두 동의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특히 오랫동안 천사의 집 건에 매달려 온 최종현은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눈치였다.
“그냥 원래 하던 대로 원장하고 김영지 개인의 문제라고 하면서 꼬리 자르고 끝낼 수도 있지 않나? 어차피 판결 나올 즈음이 되면 사람들도 많이 잊을 테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거짓말을 조직적으로 해 대며 천사의 집 전체가 책임을 회피했으니 결과적으로는 폐쇄 명령이 떨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신 복지 재단에 큰 불명예가 될 테니, 상황을 보다가 명령이 나오기 전에 먼저 폐쇄하려고 하겠죠.”
“으음, 결과적으로 폐쇄는 폐쇄네. 그러니까 천사의 집은 시간을 질질 끄는 용으로 쓰다가 버릴 패다?”
“네. 게다가 우리가 동아리를 통해 자신들을 감시하는 걸 알고 계속 불안했을 겁니다. 뭘 알고 이러는 건 아닌지. 그러니까 아예 약점을 날리기로 한 게 아닐까요.”
천사의 집을 폐쇄하고, 인신매매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러면 적어도 일본에 성 상납이나 장기 매매를 위해 보내지는 아이들은 사라질 테니까.
하지만 천사의 집이 이런 방식으로 사라지는 건 곤란하다.
“개새끼들, 늦었다. 이미 증거 모을 만큼 모았는데 이제 와서 없애면 어쩔 건데. 막차 타서 다행이네. 이거 우리가 일 년만 늦게 움직였어도 증거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할 뻔했잖아.”
조봉준이 낄낄댔다.
오히려 나는 특검이 시작되기 전에 천사의 집이 다 정리돼 버릴 수도 있겠다 싶어 초조했는데, 조봉준의 말대로 생각하니 천만다행이다 싶어진다.
역시 같은 상황이어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나 보다.
하긴, 허민우가 마약 수사에서 시간을 벌어 주면, 그전에 천사의 집이 폐쇄되진 않겠지.
우신이 천사의 집을 정리할 타이밍은 과거에 몇 번이나 있었을 것이다.
그때 정리했다면 나에게 들킬 일도 없었을 테고.
우신은 쉽게 얻는 이득에 눈이 멀어 그 기회를 잡지 못한 셈이다.
고상준은 또 애먼 사람들을 탓하며 시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부정하고만 있으려나.
“어차피 지금 이 사건에서 우리가 가장 목표로 한 건 성윤이와 정민이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알아서 자멸할 집단에 굳이 에너지 쏟을 필요는 없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허민우가 조금은 긴장이 풀린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변호사 입에서 대학생들 이야기 나왔을 때 걱정 많이 했는데, 방법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의 대응 방식으로 말미암아 알아낸 것도 있고요.”
“수술이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거…….”
강민재가 중얼거렸다.
“그 새끼들, 오히려 이 상황에 일이 터져서 잘됐다 싶겠어요.”
“그렇겠지. 그럼 우리도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대학생들 구명에 정신 팔린 척, 이 사건 키워서 우신 조질 생각에 신난 척해 보자고.”
이런 수에 당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니, 나를 그렇게 과소평가한 건가 싶어 이제는 자존심이 상하려고 한다.
하지만 과소평가 당한 김에, 과소평가 당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을 써 줘야지.
어차피 나중에는 재평가하고 싶지 않아도 재평가하게 될 텐데.
* * *
“천종남 씨, 어째 좀 살이 찐 것 같네요.”
텔레비전을 보며 옆구리를 긁는 천종남의 뒷모습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천종남은 마치 사망 선고라도 들은 것처럼 펄쩍 뛰더니, 벌떡 일어나 내 앞으로 달려왔다.
“오, 오, 오셨습니까, 변호사님!”
천종남이 내 앞으로 달려와 90도로 허리를 접었다.
그의 훤한 정수리가 눈앞에 드러나는 게 썩 유쾌하진 않아서, 나는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간 변호사님이 잘 돌봐 주신 덕분에 살이 좀……. 그리고 마음을 좀 비웠더니 스트레스도 좀 사라져서 그런가…….”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안 되죠. 사람을 죽이려고 했잖아요?”
“…….”
“잊은 건 아니겠죠. 강 변이 천종남 씨 때문에 두개골에 구멍이 뚫렸었다는 거.”
“아, 그럼요……. 당연히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강 변은 괜찮은지 안 묻습니까?”
“강 변호사님은 괜찮으신지…….”
“수술을 받느라 머리에 땜통이 생겨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천종남 씨가 그 고통을 아주 잘 알 것 같은데.”
나는 아까 그가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훤히 봐 버렸던 그의 빈 정수리를 떠올리며 말했다.
사실 내가 천종남보다 한 뼘가량 키가 컸고, 처음 잡아 왔을 때도 그는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머리카락 사정을 못 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다른 데에 신경 쓰느라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빈 머리를 보고 있으니 강민재가 틈틈이 거울 앞에 서서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얼마나 모발이 자랐는지 확인하던 모습이 떠올라 짜증이 치밀었다.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화풀이를 해 댈 순 없지.
“뭐, 사설은 됐고. 오랜만에 나타났으니 이제 눈치를 챘을 것 같네요.”
“…….”
“천종남 씨는 내일 자수하러 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