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71)
너희들은 변호됐다-571화(571/641)
이세화를 만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아직까지도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 멈춰 있었다.
그것은 내 옆에 있던 태식도 마찬가지였다.
“아, 이 친구가 차 변 경호원이죠?”
내가 인사하는 것도 잊고 입을 다물고 있었더니, 이세화가 먼저 물었다.
그녀는 내 옆에 선 태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태식은 나보다 더 얼어 있었다.
자신을 향해 시선이 쏠리자, 그는 갑자기 고장 난 장난감처럼 굴더니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머리를 땅에 박을 기세로 허리를 접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대, 대통, 윽!”
태식이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다 튀어나오기 직전에, 나는 그의 허리를 팔꿈치로 세게 쳤다.
그 바람에 태식은 고꾸라질 뻔했지만, 벽을 짚으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다른 객실에 들리면 어떡하려고.”
“아, 헐…….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이 층 객실 다 비어 있어서. 일단 들어와요. 태식 씨? 태식 군? 뭐라고 불러야 하죠? 아무튼, 같이 들어와요.”
이세화는 객실 안으로 몸을 돌리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대통령 경호 매뉴얼은 잘 모르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객실 앞까지는 경호원이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대통령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게 맞겠으나, 대통령이 외부에 나왔는데 복도를 통제하지 않은 건 의외였다.
심지어 그녀가 직접 문을 열어 주지 않았는가.
물론 이세화의 양옆에 경호원들이 서 있긴 했지만 혹시라도 내가 괴한이면 어쩌려고.
게다가 태식은 생긴 것만 봐도 괴한인데.
“왜 이렇게 무방비하게 있나 생각했죠?”
스위트룸 안쪽의 회의실 앞에 도착하자, 이세화가 다 알고 있다는 듯 미소 지으며 물었다.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내가 차 변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거든. 대신 이 층에 올라온 사람이 차 변 일행 외에 다른 사람은 없는지 계속 통제실에서 모니터링했죠. 세상이 참 좋아졌잖아요.”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경호 매뉴얼도 달라진다고 들은 적은 있다.
이세화는 느슨한 경호를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스위트룸 내부로 좀 더 깊이 들어가자, 확실히 경호 인력이 더 있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였더니, 어느덧 문 앞에 도착했다.
이세화는 문고리를 잡으며 경호원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태식도 함께 물러섰다.
“아직 어린 친구인데 눈치가 좋네?”
이세화가 태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태식이 매우 황송해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건지 갑자기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지, 진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장태식이라고 합니다. 아까는 변호사님이 인사를 못 하게 해서 다시 인사드립니다. 저 선거 때도 대통령님 찍었어요. 그날 일이 있었는데, 대통령님 찍으려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어라, 정말? 왜 찍었어요? 내 공약이 좋아서?”
태식에게 그런 기준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는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약은 잘 모르고 그냥 변호사님 도와주셨다고 하길래 감사해서 찍었는데요…….”
태식이 멋쩍게 대답하자 이세화가 큰소리로 웃었다.
“그래요? 내가 좋은 일을 해서 표를 하나 더 벌었네. 고마워요.”
“아닙니다!”
태식이 나를 본격적으로 경호하기 시작했던 건 내가 납치당한 직후.
그러니까 이세화는 태식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태식이 이름을 말하기 전부터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는 즉, 이세화가 그동안 나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차 변한테 관심 끈 줄 알았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이세화가 빙글 웃으며 말했다.
원래도 이세화가 대하기 쉬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더 어려워졌다.
그녀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건 둘째 치더라도,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끝난 듯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가.
“차장님 기다리시겠네. 얼른 들어가요.”
회의실 문이 열리고, 동시에 앉아 있던 박영기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나를 향해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에게 언질도 주지 않고 무작정 이세화와의 만남을 진행시킨 데에 죄책감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차장님, 차 변 진짜 많이 놀랐나 봐요. 차 변이 이정찬 살인 용의자 됐다는 소식 들었을 때 내가 같이 있었잖아요. 그때도 안 놀라던데, 방금 내가 문 열어 주니까 어찌나 놀라던지. 아직도 진정이 안 됐나 봐요. 아까 까먹은 인사를 아직까지도 안 한다니까요.”
그녀는 농담을 던진 것이지만, 내가 태식도 한 인사를 잊었다는 것에 약간의 수치심이 느껴졌다.
나는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통령님.”
“엎드려 절 받기네요.”
“…….”
“농담인 거 알죠? 얼른 앉아요.”
내가 좌정하자, 계속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영기가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대통령님하고 통화하다가 차 변하고 곧 만날 거라고 했더니 같이 보고 싶다고 하셔서. 차 변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하지 말라고 하시는 거야. 이해해 줘. 어차피 곧 뵈어야 했잖아.”
“참 나, 나는 대통령인데 차 변이 만나기 싫어할까 봐 비밀 작전까지 펼쳐야 하네요. 사람들이 알면 정말 어이없을 거예요.”
그건 맞는 말이다.
다들 만날 기회만 된다면 만나고 싶어서 안달인 사람 아닌가.
아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세화를 만나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사사롭게 연락하는 걸 피하려고 했을 뿐이지.
그녀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특별검사가 되고 싶으면 당연히 나부터 만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차장님 통해서 말만 전해요. 나 정말 서운했어요.”
이세화가 넉살 좋게 말했지만,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숱한 러브콜을 거절했고, 전화도 몇 통이나 받지 않은 전적이 있다.
심지어는 동진의 일로 그녀와 거래했을 때도 나는 받기만 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가 법무법인을 개설할 때도 화환을 보내 줬다.
법조계의 까마득한 선배이자, 한때는 거대 정당 대표, 지금은 대통령이 된 그녀의 사회적 입지와 연배를 생각하면 꽤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사사롭게 연락드리는 건 어떻게 보면 대통령님께 줄을 대려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신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어서 저를 부르신다고 해도 청와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겠죠. 내가 아무리 취임 전에 차 변을 탐냈다는 게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라고 해도 차 변이 진짜로 청와대에 드나드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이해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만나러 온 거잖아요?”
심지어는 직접 만나러 오게 만드냐는 질책이 기저에 옅게 깔려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하지 않았어도 때가 되면 박영기를 통해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직접 청와대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녀에게 나를 특별검사로 선정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채로.
하지만 오늘은 뜻밖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박영기에게는 그나마 진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알려 왔지만, 이세화에게는 그러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가 계속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은 했지만, 당사자에게 듣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터였다.
“차 변이 대변인도 싫다, 선거 캠프 자문은 해도 입당은 안 하겠다, 정치에 관심 없다,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다, 하면서 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차 변이 하고 싶은 게 이거였군요. 특별검사. 그래서 당적을 절대 가지면 안 되는 거였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 그림을 그린 지 꽤 오래됐다는 뜻이네요.”
특검은 내가 2018년에 죽고 다시 2008년에 뚝 떨어졌을 때부터 목표하던 바였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긴 했지만, 지금 현직 대통령 앞에서 특검을 위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사실에 상당한 희열을 느낀다.
“언제부터예요?”
“우신의 비리를 캐고 다닐 땐 막연한 목표였는데, 인신매매를 알게 된 이후에 확실해졌습니다. 가능성이 커졌으니까요.”
“정말 너무 아깝네. 대변인으로 딱인데. 말도 참 잘하고, 비주얼도 좋고, 커리어도 좋고……. 이미지 쇄신에 정말 필요한 인재인데…….”
이세화는 턱을 괸 채 나를 보며 한숨 쉬듯 웃음을 흘렸다.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이 말을 안 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가 내가 목표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만큼 앞으로는 대변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아, 특검이 끝난 이후에는 당적을 가져도 상관없어지니 다시 시도하려나.
“아, 너무하네. 그렇게 싫은 표정 짓지 말아요. 나한테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야 내가 꼬장꼬장한 노인네들 사이에서 차 변이 특별검사로 적절하다고 우길 동력이 생기지. 안 그래도 법조 경력도 짧고 선배들한테 아부도 안 하는 차 변 싫다는 사람 많을 텐데. 특검팀이 꾸려진 다음도 문제라고요. 차 변 윗 기수들은 특검팀 안 들어가려고 할 게 뻔하잖아요. 그렇다고 차 변 아랫 기수로만 꾸리자니 경력이 너무 아쉽고.”
“인선에 그런 사감을 반영하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검팀은 말씀하신 문제가 있겠지만, 그래도 기수에 연연하지 않고 합류해 줄 선배들이 있을 겁니다.”
내 대답에 이세화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이전에 이세화에게 이미 ‘맹랑한 젊은이’임에도 점수를 딴 전적이 있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삼가는 모습을 보이거나, 특별검사 임명장이 탐나서 태도를 바꾸면 오히려 실망할 것이다.
물론 내 성격상 그렇게 할 수도 없고.
“방송 봤어요. 보수적인 사람들은 인터넷 방송이 품위 없다고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인터넷 방송을 이용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봐요. 사회에 관심 없는 젊은 층을 움직일 최선의 방법이었으니까. 그쪽에서 검찰 조사를 감수하고 일을 치지 않는 이상 우신 특검을 시작하긴 어렵잖아요. 그리고 요즘 최 기자 인터넷 방송이 잘 돼서 그런가, 시사나 경제 쪽 인터넷 방송도 많아졌다고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죽음까지 불사하고 달려드는 모습을 작고하신 선생님이 봤다면 어떤 기분이셨을까요.”
이세화의 눈빛에 문득 그리움이 스쳤다.
나와 이세화가 매우 오랜만에 만났기에 일부러 대화에 끼어들지 않은 것 같았던 박영기도 감상에 잠긴 듯 웃었다.
“염려는 하셨겠지만, 그래도 좋아하셨을 겁니다. 강 변이 처음 선생님께 우신의 성매매 사실을 알렸을 때, 선생님께서 공녀 사건 파일을 넘겨줄 준비를 하시면서 저한테 전화를 주셨어요. 그때 강 변에게 파일을 물려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비서실장님이 계신 묘소에 가신 것도 그분께 좋은 소식을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셨고요. 물론 강 변이나 차 변이 위험해질까 봐 걱정도 하셨지만 말입니다.”
이세화는 박영기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실 만하죠. 선생님께서도 임기 당시에 실패하신 일이니까. 내가 아주 예전에 조심스럽게 언젠가는 대권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그때 얘기를 하셨거든요.”
“공녀 사건에 대해서요?”
“네. 그리고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우신이 돈으로 환심 사려고 할 때 흔들리지 말라고. 우신은 자기들이 내 밑인 척 살살거리겠지만, 결국 내 목에 목줄 거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이세화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강관웅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우신이 대통령님 환심 사는 데에는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내 물음에 이세화가 씨익 웃었다.
“왜, 내가 그새 마음이 바뀌어서 우신한테서 자금이라도 받았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