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72)
너희들은 변호됐다-572화(572/641)
“그런 의도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의도였다.
그녀의 대답에 능력을 써서 한 번 더 체크해 볼 생각이었다.
“우신이 내 환심 샀으면, 내가 지금 차 변하고 이런 얘기 하고 있겠어요?”
[진실]예전에도 한 차례 이세화의 가치관을 확인하기 위해 능력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도 대기업에게서 뇌물을 받은 전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대선 전이었으니,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의심보다는 확실하게 해 두자는 생각이었다.
“선생님한테 그런 말씀까지 들어 놓고 우신한테 돈 받았으면, 선생님 함자 입에 올리면 안 되죠. 선생님이 친우였던 비서실장님을 잃고 얼마나 상심하셨는지 잘 알고 있는데.”
강관웅에 대한 존경심도 작용했겠지만, 나는 우신의 돈을 받으면 제 목에 목줄을 거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그녀에게 크게 와닿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강관웅의 표현이 정확하다.
만일 그랬다면, 이세화는 지금 열과 성을 다해 나를 방해하고 우신의 부정을 눈감아 주어야 했을 테니까.
“차 변이 알지는 모르겠는데, 선생님은 비서실장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어떻게든 공녀 사건을 파헤치려고 우신 그룹 세무 조사까지 착수하려고 하셨어요.”
나는 그때 강관웅의 비서실장이 살해당한 뒤 의욕을 꺾은 줄 알았다.
내가 공녀 사건의 사건 파일을 받았을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등진 다음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강수일의 입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고, 그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강관웅의 임기 당시라면 강수일도 어렸고, 강관웅과 접점이 생기기 전이니 잘 몰랐을 법도 하다.
“그때 세무 조사로 탈탈 털어서 고상준의 아버지인 우신 창업주……. 너무 싫어서 이름을 입에 올리기도 싫네요. 그 인간 무릎을 꿇렸다면 가능했을지도 몰라요. 크게 터트리는 건 어려웠어도 더는 그런 짓 못 하게 막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겠죠. 그 당시는 대통령 권력이 훨씬 막강했으니까. 그런데 제대로 세무 조사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왜인 줄 알아요?”
“일본의 개입 때문입니까?”
“맞아요. 그 인간이 일본하고 아주 끈끈한 관계였거든요. 뭐, 그 인간이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조선총독부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돈 갖다 바치면서 든든하게 뒷배로 뒀는데, 그 관계가 어디 가겠어요?”
이세화는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쯧쯧 찼다.
“아무튼 선생님께서 우신을 털어 보겠다 결심하셨을 때, 작고하신 한영그룹 설 회장님이 선생님한테 그런 말씀을 드렸다고 해요. 우신은 일본을 뒷배로 두고 있으니 건드리려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그럼 그 당시 한영에서는 이미 우신이 일본에 사람을 갖다 바치고 있다는 걸 알았다는 뜻입니까?”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일화를 하나 들은 게 있어요. 그땐 일본이 우리나라와 격차도 크고 아주 막강할 때였잖아요. 그 이후 설정준 회장님이 경영권을 물려받으신 뒤에, 꽤나 오랫동안 거래를 유지해 오던 일본 기업에 기술을 좀 전수 받고 싶다는 말을 흘렸다고 해요. 엄청난 핵심 기술도 아니었는데, 완전히 칼로 벤 듯이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신에서 그 기술을 이용한 제품을 내놨어요.”
이세화는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연결고리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우신이 그런 까닭에서 인신매매 사업을 시작했을 거라고 추측해 왔고,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기업이 기술을 전수해 준다는 건 아무리 핵심 기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밑천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럼에도 기술 전수를 해 줬다는 건, 일본 정계의 압력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때 우신은 일본에 단지 사람만 갖다 바치진 않았을 것이다.
유력 정치인들에게 정치 자금도 대 주고, 여러 지저분한 일을 대신 해 줬을 테지.
“경제인 모임에서는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아야 하고, 우리 국민의 저력을 보여 줘야 한다고 큰소리를 쳤다고는 하는데. 그 시절 대기업 회장들은 일본에 경쟁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으니 그 자리에서 자기 혼자 입 다물고 있으면 이상할까 봐 동조한 게 분명해요. 오히려 찔리는 게 있으니까 더 큰소리를 친 게 아니겠어요?”
결과적으로 고상준에게 인신매매 사업을 물려준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은 1945년 이전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차장님을 뵙고 말씀드리려던 게 있습니다.”
어느덧 강관웅의 이야기로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입을 열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가 이번에 방송에서 터트린 사안들과 관련하여 새롭게 파악한 사실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이세화와 박영기는 고윤수가 천사의 집을 정리하려고 한다는 점에 몹시 놀란 것 같았다.
고상준이 얼마 전에 리본 의료원을 설립한 것은 앞으로의 사업을 보다 더 확실히 이끌어 나가기 위함이었다.
즉, 천사의 집 정리는 고상준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이고, 이는 곧 아버지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식들 중 선택지가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는 자신감이 아니라면 취할 수 없는 행동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만간 오노데라의 손자가 수술을 할 것 같습니다. 학교에 3개월간의 장기 병결을 신청했습니다. 또, 며칠간 집을 비운 모습이 관찰되었고요. 다만 아직 입원 전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얼마 안 남았네요.”
“저희는 천사의 집에서 심장 공여자로 선택된 아이, 혹은 집도의로 선정된 의사가 출국하는 순간을 덮칠 계획입니다. 앞으로 2주 안에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수사 기관도 아닌 차 변이 이 정도로 감시 체계를 구축했다는 건 정말 놀랍네요. 차 변이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던 이유를 알겠어요. 차 변 자금력이야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왜 여태까지 도와 달란 말을 안 했던 거예요?”
특검에 이세화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사 단계부터 그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이세화가 개입하면 주도권을 뺏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세화가 나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녀 역시 내가 그녀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이 일에 자신의 사람을 심으려 할 테고, 내가 원치 않는 사람과 함께해야 할 수도 있다.
특검이 시작된 후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이전 단계까지는 내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같이 움직이기 어렵다.
신경 써야 할 게 늘어나고, 정보 유출 확률도 높아지니까.
“괜한 잡음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대통령님과 제가 친분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은데, 공권력이 개입했다는 게 꼬투리 잡히면 곤란하잖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아직 법조 경력도, 나이도 어린 저를 특별검사로 선정해 주시겠다는 점에서 이미 큰 도움을 받는 겁니다. 대통령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그것도 차 변이 그렇게 만든 거 아닌가요? 이정찬이 낙오되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지금 대통령이 아니었을 테니까. 이정찬을 그렇게 만든 건 차 변이잖아요.”
그녀의 발언은 꽤 의외였다.
당시 그녀를 만나 민우당의 분열을 계획하고, 또 다른 대선 주자인 강종명에게 이정찬의 콘크리트 층이 이동하는 것을 막을 방법을 알려 준 게 나인 건 맞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녀의 당선에 내 공헌이 컸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거물 정치인인 그녀의 입장에서는, 새파랗게 어린 나를 그렇게까지 평가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차 변이 선거 캠프에 들어오기로 해 놓고 그러지 못했던 거, 나 기억하고 있어요.”
“그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차 변의 목표가 특검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입당하지 않았어도 차 변이 내 캠프의 자문을 해 줬다면 특별검사 임명에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내가 너무 눈치가 없었네. 차 변한테 너무 어려운 요구를 했던 거였어.”
이세화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커피로 잠시 목을 축였다.
“우신 특검이 시작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차 변의 공이에요. 하지만 그 특검 결과는 결국 내 정권이 이룬 성과로 남겠죠. 그러니까 내가 고작 한영 그룹에 다리를 놔 준 것치고는 너무 큰 대가를 받는 거예요.”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내가 좀 더 일찍 신경 써 주지 못해서 미안할 지경이에요. 너무 큰 선물을 받게 됐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순 없죠. 대놓고 공권력을 움직일 순 없지만, 사소한 도움을 줄 순 있을 것 같네요. 임현일의 출국을 감시를 통해서 확인하고 있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는지의 여부는 제가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임현일을 포함해서 천사의 집에 소속된 그 누구라도 일본행 티켓을 예약한 사실이 확인되면 내가 알려 줄게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거기에 더해서, 혹시라도 국내에서 필요한 일이 생기면 경찰이 차 변에게 빠르게 협조할 수 있도록 조치할게요.”
우리 쪽에 인력이 많다고 해도 경찰이 움직이는 것과는 그 파급력에 차이가 있다.
아무리 허민우가 함께한다고 해도 그는 경위 신분이라 가능한 범위에 제한이 있고.
특히 공항에서 임현일의 출국을 막을 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후에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님이 이 일에 도움을 주셨다는 게 밝혀지면 저도 대통령님도 곤란해질 겁니다.”
“티 안 나게 해야죠. 내가 설마 그것도 모를까 봐?”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더 많았을 텐데. 차 변이 정말 외로운 싸움을 해 왔겠군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요.”
“아닙니다. 이 자리에는 저 혼자 있지만, 같이 고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계보로 따지면 나는 선생님의 후계자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도 선생님의 숙원 사업을 이뤄드리기는커녕, 후배들이 고군분투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제라도 안전하게 일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야죠. 그래야 나중에 현충원에서 선생님 만나면 할 말이 생기지.”
이세화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아니어도 후배들을 돕는 게 선배의 일 아니겠어요? 차 변 입장에서는 숟가락 얹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빼곡히 글자를 적어 내렸던 종이 귀퉁이를 찢었다.
그리고 그 위에 전화번호를 적어 내 앞으로 밀어 주었다.
“내 번호예요. 전에 쓰던 번호는 이제 안 써. 차변은 내가 청와대 들어간 이후로 나한테 전화를 한 번도 안 해 봤을 테니 몰랐겠지만. 필요한 일이 있으면 굳이 차장님 거칠 것 없이 여기로 연락해요.”
“감사합니다.”
이세화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테이블에 바짝 붙이고 있던 몸을 멀찍이 떼었다.
“밥 먹자고 하고 싶은데, 차 변은 싫겠지? 벌써 저녁때가 다 됐네요. 얼른 가서 저녁 먹어요.”
“그럼 일어나 보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세화가 웃음을 터트렸다.
“끝까지 아니라고는 안 하네.”
“차 변 성격 아시잖습니까. 귀여운 구석이 없는 친구입니다.”
박영기도 함께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났으면 안 되는 거였나.
생각해 보니, 강민재라면 ‘얼른 저녁 먹고 마저 말씀 나누시죠. 저는 설마 밥도 안 주시는 건가 싶어서 걱정했습니다.’ 하며 능청을 떨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좀 더 에둘러 상대방의 웃음을 유발하면서 거절했거나.
하지만 나는 강민재가 아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강민재를 달고 다닌 지 벌써 4년이 넘었는데 그냥 보고 들은 걸로는 실력이 늘진 않은 모양이다.
밥은 집에서 편하게 먹고 싶은 걸 어쩌겠는가.
“오늘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불러 주시면 가겠습니다.”
“우신 미행 때문에 못 온다면서요.”
“일 다 터진 다음에 불러 달란 소리잖습니까. 차 변이 그래도 사회 스킬이 늘었어. 이제 돌려 말할 줄도 알고.”
……그래도 늘긴 늘었나 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