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74)
너희들은 변호됐다-574화(574/641)
“차 좋네.”
1층 옥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린 김찬영은 바로 옆에 주차된 스포츠카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친구가 드림 카라며 사진을 여러 번 보여 주었던 차량과 동일한 모델이었기에, 바로 그 복잡한 이름까지 떠올랐다.
앞으로 숨만 쉬고 살며 열심히 회사 다니면 향후 20년 뒤에나 살 수 있다고 말했던가.
대충 10억 정도 했던 것 같다.
“…….”
차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섰더니, 문 옆에 작은 나무 현판이 걸려 있었다.
[송현섭 건축사 사무소]고급 주택이 모여 있는 지대 높은 동네에 고상준이 소개해 준 건축사 사무실이 있었다.
대형 건축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건축가 본인이 꽤나 명망 높아 업계에서는 크게 인정받는 모양이었다.
검색했을 때 정보가 꽤 많이 떴다.
대표는 젊은 나이부터 굵직굵직한 건축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그의 손길을 거쳐 간 건물이 국내 핫플레이스라고 일컬어지는 지역 곳곳에 자리했다.
건축가의 이름은 몰라도 건물 이름을 대면 ‘아, 거기?’ 하는 반응은 나올 법한 유명세.
처음 건축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땐, 이런 사람이 고상준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일해 왔다는 사실에 퍽 놀랐다.
아쉬울 거 없는 사람이 왜 그런 일을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김찬영 님 맞으시죠?”
그때 1층에 앉아 있던 직원이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태블릿을 두드리더니 그를 엘리베이터 쪽으로 안내했다.
김찬영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벽에 전시된 건축사의 포트폴리오들을 살펴보았다.
이미 건축사 홈페이지에서 공개된 포트폴리오를 확인한 다음이었지만, 혹시나 오카시마 병원이나 리본 의료원, 고상준의 자택은 없을까 싶어서였다.
물론 없었다.
“포트폴리오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십니까?”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 직원이 물었다.
김찬영은 슬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다 마음에 드는데요?”
“다행입니다. 저희 대표님이 고객님 드릴 시안을 상당히 공들여서 준비하셨는데, 그것도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고상준 조카라는데, 당연히 공들였겠지.
그들의 거래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몰라도, 입막음 비용을 상당히 치르고 있을 터였다.
“대표님, 김찬영 고객님 오셨습니다.”
안내받은 회의실로 들어가자, 대표는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김찬영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악수를 청했다.
“통화로는 여러 번 말씀 나눴는데, 직접 뵙기는 처음이네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아, 네. 저는 명함을 준비 못 했는데 어떡하죠.”
“하하. 괜찮습니다. 앉으시죠.”
회의실에는 김찬영과 대표 두 사람만 남았다.
“잠깐 준비 좀 하겠습니다. 미리 해 뒀어야 했는데, 클라이언트 전화가 길어져서요.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 시간 많아요. 천천히 하세요.”
회의실에는 노트북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와 마우스 달깍이는 소리만이 감돌았다.
김찬영은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입을 다문 채 회의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일단 컨셉 자료부터 보시면서 말씀 나눌까요.”
“네.”
대표는 노트북을 켜고 고급스러운 소재로 만들어진 파우치에 들어 있던 외장 하드를 연결했다.
얼마나 소중한 외장 하드면 저런 파우치에 넣고 다니시나.
김찬영은 팔짱을 낀 채 그가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기 있다.”
외장 하드 안에는 수많은 폴더가 있었다.
이름이 전부 단어가 아닌 알파벳 조합으로 되어 있어서 무엇이 담긴 폴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김찬영의 것을 찾기 위해 그가 들어간 폴더 이름은 W.
김찬영은 대표가 여러 개의 폴더를 찾아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저 알파벳이 무엇의 약자일지 추측해 보았다.
W…….
우신?
“자, 됐습니다. 앞에 스크린 한번 봐 주시겠습니까?”
대표가 스크린 앞으로 다가가자, 김찬영은 박수를 쳤다.
그러자 대표는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실력이 좋긴 하네.’
그는 앞서 직원이 말한 대로 김찬영이 보내 준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상당히 공들여 여러 자료를 준비했다.
건물 외형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고, 저마다 담긴 의미도 달랐다.
심지어는 출입구에서 집 내부로 이르는 동선까지 다양하게 짜 두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작업해 주는 건가 싶어 순수한 의미의 감탄까지 나왔다.
쿵!
그때, 건물 밖에서 충돌음이 들려 왔다.
방음이 잘 돼서 안쪽에 들리는 소리는 작았지만, 바깥에서는 꽤나 컸을 듯하다.
대표도 그 소리에 조금 놀란 듯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별다른 걸 발견하진 못했는지 다시 스크린 앞으로 돌아왔다.
“밖에서 뭐 접촉 사고가 있었나 봅니다.”
“그런가 보네요. 아, 그런데 저기 1안에 2층 있잖아요. 정원 방향으로 통창을 내는 건 어떨까요? 중정 때문에 너무 다 뚫린 느낌이려나요.”
“그래도 방법이 있지요. 왠지 그렇게 하자고 하실 것 같아서 그 버전도 함께 만들어 두었습니다.”
김찬영이 묻자,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통창으로 낼 경우 시간대별 조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시뮬레이션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대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하며 문을 반쯤 열었다.
직원이 온 것 같았다.
그들은 잠시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대표가 크게 소리쳤다.
“얼마나?!”
그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는 자각이 들었는지, 잠시 김찬영을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고는 다시 표정을 굳히며 아예 회의실 바깥으로 나갔다.
김찬영은 그사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박았는데 생각보다 좀 많이 찌그러진듯여]김찬영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은 채 문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숨을 푹 내쉬는 소리와 함께, 다시 문이 열리고 대표가 안으로 들어왔다.
김찬영의 시선은 그의 노트북에 연결된 외장 하드에 고정돼 있었다.
저게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혹시라도 대표가 저걸 챙겨서 들고 나가면 곤란해진다.
“고객님. 누가 주차해 놓은 제 차를 받았나 봅니다. 잠깐만 확인하고 와야 할 것 같은데…….”
“아니, 누가 그런 짓을……. 당연히 가 보셔야죠.”
“얼른 갔다 오겠습니다.”
“천천히 하고 오셔도 됩니다.”
“네, 죄송합니다.”
다행히 차를 수집하는 데에 전 재산을 쏟아붓고 있다던 건축사 대표는 외장 하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소중한 슈퍼 카가 얼마나 상했는지 봐야겠다는 일념뿐인 듯했다.
어차피 고상준 조카라고 하니 조금 방심한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가 부리나케 달려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김찬영은 그때까지도 잠자코 있었다.
[이제 나오는 듯여? 최대한 붙잡고 있겠음여. 제가 전화하면 그땐 다시 올라가는 거라고 생각하세여]문자가 도착했다.
김찬영은 조용히 가방 안에서 작은 기계 두 개를 꺼냈다.
전파 수신 장치 탐지기와 카메라 렌즈에 반응하는 기기였다.
회의실 곳곳을 확인해 보니 도청 장치나 CCTV는 없었다.
만일 감시 장치가 있다면 깨끗하게 포기하기로 했는데 다행이었다.
김찬영은 천천히 블라인드가 쳐진 회의실 유리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블라인드 사이를 작게 벌린 채 바깥을 살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찬영은 전화를 걸며 노트북 앞으로 다가갔다.
“국정원 형님, 준비되셨죠?”
─아까부터 스탠바이였죠. USB 꽂으셨어요?
“지금 꽂으려고요. 그런데 컴퓨터보다는 외장 하드가 더 볼 게 많을 것 같아요. 제가 의뢰한 파일도 외장 하드에 있었거든요. 폴더도 엄청 많았고.”
김찬영은 노트북에 USB를 꽂고 국정원이 설명했던 대로 USB 내부에 있던 설치 파일을 노트북에 옮긴 뒤 설치했다.
잠깐 노트북 전면이 까맣게 점멸하는가 싶더니, 곧 마우스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외장 하드 먼저 털어야겠네. 용량이 좀 크네요.
“그러면 도면 파일 위주로 먼저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죠. 누가 설계한 건지 프로그램 진짜 잘 돌아가네. 흐으음. 어디 보자. 그래도 외장 하드 파일 다 옮기는 데는 한 20분이면 될 것 같고. 노트북 SSD는 3분이면 될 것 같은데요. 별로 든 게 없네.
“그럼 총 23분이요?”
─네. 기다리는 동안 웹하드에도 뭐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쪽도 좀 털어 볼게요. 찬영 씨는 그냥 원래 있던 자리에 앉아 있어요.
“작업 끝나시면 프로그램 지워야 하지 않을까요?”
─노노. 제가 알아서 흔적 지울 거예요. 끝나면 전화나 문자 드릴게요.
국정원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김찬영은 도로 자리로 돌아가 초조히 기다렸다.
그러다, 창문 너머로 지금 바깥 상황을 구경하는 것 정도는 자연스러울 듯해서 창가로 다가갔다.
아까 대표가 이쪽에서 봤을 때는 접촉 사고가 있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으니, 반대편 창가로 가면 보이려나.
‘보인다. 꽤 많이 찌그러졌는데?’
아까 김찬영이 주차하면서 봤던 보라색 스포츠카와 검은색 승용차가 맞닿아 있었다.
그래도 비싼 값을 하는지, 검은색 승용차는 앞 범퍼가 완전히 찌그러진 데 반해 스포츠카는 그나마 상태가 나았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좋다고 할 순 없었다.
검은색, 보라색 파편은 물론이고 유리 조각까지 바닥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방음이 잘 되어서인지 대표가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화를 내다가, 플래시로 사고 난 부분을 비춰 보다가, 사진도 찍다가.
정신이 없었다.
‘저 사람 컬렉션 중에선 제일 좋은 차였는데, 안됐네.’
건축사 대표는 총 8대의 슈퍼 카와 5대의 외제 차를 가지고 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몇 시간이고 차를 관리하고, 슈퍼 카 동호회 활동도 활발하게 하는 편이다.
같은 슈퍼 카 소유자들끼리 만나 트랙을 도는 게 그의 취미였다.
사실 김찬영은 건축사 대표가 자동차 수집광이라는 건 그리 쓸 만한 소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주한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명쾌하게 말했다.
─쉽잖아. 차 받아 버리면 눈물 줄줄 흘리면서 차 상태 보러 나올 거 아니야. 그사이에 네가 컴퓨터에 USB 꽂으면 국정원이 알아서 해 줄 거야.
차주한은 평소에도 이렇게 일을 하는 걸까?
그에게 협조하고 있긴 하지만, 첩자 신분이라 자주 연락하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볼 일도 별로 없었다.
나중에 압축적으로 결과만 들으니, 그냥 그가 유능하다고만 생각했다.
‘변호사님도 가만 보면 약간 또라이 기질이 있어.’
설정해 둔 대물 배상 한도가 높아서 상관없다며 어깨를 으쓱이던 그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라 김찬영은 저도 모르게 큭큭 웃었다.
[끝. 흔적도 없앴어요. USB만 잘 수거하면 돼요 ㅅㄱㅅㄱ~]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23분이 지났나 보다.
국정원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찬영은 노트북에 꽂혀 있던 USB를 뽑아 주머니에 넣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도로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그렇게 5분이 더 흘렀을 무렵, 전화가 왔다.
김찬영이 거절 버튼을 누르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마무리되는 분위기예여 국정원 형님한테 끝났다고 연락 받았는데 맞나여?] [네. 끝났어요. 고생하셨어요.]김찬영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
똑똑.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와 함께 다시 대표가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정말 죄송합니다. 가해자가 너무 뻔뻔하게 나와서 얘기가 길어졌네요.”
“아닙니다. 그, 아까 주차하면서 보니까 멋진 보라색 차 한 대 있던데. 혹시 그 차가 대표님 차예요?”
“아, 보셨구나. 네. 큰맘 먹고 뽑은 차인데 사고가 크게 나서……. 저도 정신이 없었네요. 이렇게 고객님 모셔 놓고 오랫동안 자리 비워 보기는 처음입니다. 실례했습니다.”
“저 같아도 화나죠. 남의 차를 받아 놓고 뻔뻔하게 나오면……. 그래서, 얘기는 잘 되셨어요?”
“뭐, 주차해 놓은 차에 자기가 혼자 갖다 박은 거니까요. 보험사에 전화했으니까 알아서 해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 멀쩡히 서 있는 차를 왜 갑자기 와서 받았대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본인 말로는 앞 건물에 주차하려고 했는데 공간이 좁아서 저희 주차장으로 좀 들어왔다가 후진하려고 했나 봅니다. 그런데 저희 주차장이 경사가 좀 있다 보니 액셀을 밟았나 보더라고요. 그런데 너무 세게 밟아서 훅 나가 버린 모양인데…….”
“이래서 운전면허 시험이 어려워져야 한다니까요.”
김찬영이 혀를 쯧쯧 차자, 대표가 허허 웃었다.
“고객님 시간 너무 많이 잡아먹네요. 이제 마저 말씀 나누실까요?”
얼마나 대단한 설계를 해 놨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지을 생각은 없는데.
하지만 김찬영은 기대된다는 듯 스크린을 향해 몸을 돌렸다.
혼자 실컷 떠들게 두고 얼른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