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75)
너희들은 변호됐다-575화(575/641)
“이게 오카시마 병원 설계 도면이고, 이건 리본 의료원 거예요. 관공서 제출용도 같이 있길래 비교해 봤거든요. 여기 노랗게 표시해 둔 데가 다른 지점들이에요.”
국정원은 모니터 화면에 나란히 설계 도면을 띄우며 말했다.
비밀 통로와 숨겨진 공간으로 짐작되는 곳들이 한눈에 보였다.
“제일 개꿀인 점은 전기 배선 도면도 있다는 거죠. 전기 배선까지는 제가 잘 몰라서 믿을 만한 사람한테 좀 물어봤거든요. 대충 어디 건드리면 될지 견적이 딱딱 나오데요.”
“그래? 잘됐네.”
나는 그 자리에서 키리하라 기자 측에 오카시마 병원 설계 도면과 전기 배선 도면을 보내 주었다.
설계 도면을 손에 넣었다는 소식을 미리 전해서 그런지, 그녀는 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보내기가 무섭게 읽었고, 답장도 칼같이 돌아왔다.
[확인했습니다. 혹시 모르니 티 나지 않는 선에서 미리 답사 좀 해 둘게요.]리본 의료원 설계 도면은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되면 압수 수색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 하드 안에 고상준 집도 있었어?”
“네. 그 새끼도 집에 이상한 거 해 놨던데요.”
“좋은데. 그것도 따로 백업해 놔야겠다.”
고상준 집 설계 도면도 압수 수색 때를 위해 일단 갖고 있기로 하고.
“고생했어요.”
강민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국정원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하지만 태식은 뭔가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다.
“이 새끼가 고생은 뭘요. 다 돈 받고 하는 건데. 그것도 과도하게 많이.”
태식은 국정원이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비타 오천 상자를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과도하다니, 개새끼야. 우리처럼 은밀하게 작업하는 사람들은 원래 비싸. 뒤탈이 없거든. 그리고 나 같은 고급 인력이 너처럼 몸으로 대충 때우는 놈들이랑 페이가 같은 줄 알아? 너야말로 느그 직원 월급까지 변호사님한테 다 털어 가면서, 어디서 나한테 비벼?”
“지랄. 우리는 변호사님한테 인수된 거나 마찬가지거든? 이제 다른 일 안 하고 변호사님이 시키는 일만 하거든? 그리고 몸으로 대충 때우는 거 아니고 목숨을 걸어 가면서 한다. 지야말로 대충 하는 거면서.”
태식은 모니터 앞으로 걸어가 도면 위에 노랗게 칠해진 부분들을 가리켰다.
“씨바, 이거 그냥 대충 겹쳐 보면서 다른 부분 노랗게 표시나 찍 하면 끝나는 거잖아. 나도 하겠다. 그림판으로 칠하면 끝인데. 하드도 뭐, 비밀번호 찍 푸는 거 일도 아니면서. 컴퓨터에 뭐 꽂고 키보드 잠깐 두드리면 끝나잖아?”
“그렇게 쉬워 보이면 네가 해 봐, 이 새끼야. 어디서 고급 인력의 신성한 노동을 평가절하해?”
“내가 언제 너한테 절했냐? 절은 네가 나한테 해야지. 변호사님 소개해 준 것도 나잖아! 돈 많은 호구 물어 주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돈 많은 호구는 설마 나인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은인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절한 게 아니라, 평가절하……. 됐다, 무식한 새끼야. 너랑 무슨 얘기를 하겠냐. 너랑 대화하면 나도 같이 멍청해지는 기분이야. 언제부터 멍청한 게 옮는 병이 됐는지 모르겠다.”
국정원과 태식은 아직도 서로가 얼마나 나를 등쳐 먹는지 폭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만 싸워요. 둘 다 우리한테 엄청 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니까.”
“강 변이 할 말이에요? 이제 의뢰인도 안 받아서 로펌 수입도 없지 않아요? 그럼 차 변호사님이 사비로 저 새끼한테 돈 주는 거잖아요. 저 새끼한테 주는 돈은 좀 아까워해도 된다고요.”
태식이 씩씩대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강민재의 예민한 어딘가를 건드려 버린 듯하다.
“저, 저도 사무실 임대 비용 같이 내거든요?! 사무장님 월급도 같이 드리거든요? 변호사님이 내지 말라고 했는데도 그러는 거거든요?”
강민재가 꽥 소리쳤다.
나는 강민재가 태식이나 국정원에게 지급하는 돈을 함께 부담하지 않아서 불만이었던 적은 없었다.
여태까지 벌어 놓은 수임료도 있고, 부동산 수익도 있고, 주식도 넉넉하게 있기 때문이다.
주식 배당금만으로도 충분해서 아직 모아 놓은 돈을 깰 정도의 지출이 발생한 적은 없다.
그리고 그 돈을 전부 소진한다고 해도 비트 코인이 남아 있어서 나중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는 너무 많이 캔 것 같아서 이제 그만 해야 하지 않나 싶기까지 한데.
“변호사님! 저 앞으로 더 많이 부담할게요!”
“굳이?”
코 묻은 돈까지 뺏고 싶진 않다.
* * *
─접니다.
“네, 변호사님.”
─지금 통화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네, 그럼요.”
늦은 밤이었다.
차주한에게서 오늘 통화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은 그녀는, 저녁 내내 긴장 상태였다.
오다 사토시가 틈을 주어야 그와 통화하기 위해 정원에 나갈 수 있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오다 사토시가 목욕을 하겠다며 들어가기 전까지 초조하게 시계만 쳐다보고 있던 김미자는 4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차주한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비자 절차가 완료된 것으로 확인했는데, 출국은 언제 가능하겠습니까?
차주한이 무슨 마법을 부린지는 알 수 없으나, 김미자에게 미국에서 꽤 오랜 시간 체류할 수 있는 비자가 나왔다.
대사관에 인터뷰하러 갈 때까지만 해도 이게 될까 싶었는데.
이제 떠나는 것만 남았다.
“티켓은 이번 주 일요일로 예약했어요.”
─날짜를 당길 수는 없습니까?
“글쎄요, 그건 왜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가급적 빠르게 나오는 게 좋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수술이 얼마 안 남은 만큼 여기 있으면서 좀 더 알아낼 게 있을 것 같아서요.”
김미자의 말에 휴대폰 너머의 차주한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짧게 한숨을 쉬었다.
─김미자 씨, 이미 충분히 도움을 주셨습니다. 무리하게 뭔가를 더 알아내려고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손자의 수술 날짜는 모르시는 거 아닌가요?”
─수술 날짜를 특정할 순 없지만 이미 감시 체계가 잡혀 있어서 늦지 않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요. 그리고 남편 성격상 수술이 다가오면 저한테 어느 정도 이야기를 흘릴 거예요. 여태까지 항상 그랬거든요. 이번에는 나름대로 조심하려고 아직까지는 입 다물고 있는 모양인데, 지금도 조금씩 암시하듯이 말을 흘리고 있어요. 중요한 일이 있다느니, 우신이 잘해야 오노데라가 자기를 잘 밀어 줄 거라느니.”
─오다 사토시 입에서 추가 정보가 나올지 안 나올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 아닙니까. 저희는 이제 수술 날짜 이외의 정보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무리하지 마십시오.
“변호사님도 저 무시하시는 거 아니에요? 제가 아무리 학력 위조를 했다지만 나름대로 명문대 교수예요.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구요. 30년 동안 살았던 곳을 떠나는 거잖아요.”
김미자는 장난스레 말을 던졌지만, 차주한은 조금 난처해진 듯했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곧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김미자 씨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셔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김미자 씨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김미자 씨는 가장 중요한 증인입니다. 김미자 씨가 위험에 처하면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이미 전달드렸지만, 만일의 경우가 발생하면 키리하라 기자에게 연락하시고요.
“네.”
─변동 사항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네, 그럴게요. 들어가세요.”
김미자는 전화를 끊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누구보다 차가워 보이는 외모와 말투를 지녔으면서, 의외로 세심하게 주변 사람들을 챙긴다.
다른 사람들이 희생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희생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는 자각도 없는지도 모르겠다.
김미자는 씁쓸히 웃었다.
자신 역시 여기서 잘못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죽더라도 오다 토미코가 아니라 김미자로서 살아는 봐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일을 그르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눈칫밥만 30년을 먹지 않았던가.
특히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 캐치하는 능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의심받지 않을 정도로만 떠볼 생각이다.
“여보, 저 전에 미국으로 출장 간다고 했던 거 기억하죠?”
전화를 끊고 올라가니 어느덧 오다 사토시가 목욕을 끝내고 침실에 앉아 있었다.
“출장? 아, 뭐……. 그랬던 것 같네.”
처음 김미자가 미국 출장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코웃음을 쳤다.
고등학교도 안 나온 네가 무슨 미국에 출장을 가느냐면서.
기분은 나빴지만, 안 된다고 하거나 의심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잊고 있었다면 그새 생각이 바뀌었을지 모른다.
“얼마나 있다 오는지 안 물어봐요? 당신은 내가 안 보고 싶을 모양이에요.”
김미자가 투정 부리듯 말하자, 오다 사토시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보고 싶겠지. 얼마나 있다 오는데?”
“글쎄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거라 그래도 한 달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한 달이나? 개강은 언젠데. 당신 강의는 어쩌려고.”
“개강은 9월 중순이잖아요. 아직 한 달 정도 남았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갈 수 있는 거죠.”
한 달은커녕 일 년이 지나도 오다 사토시에게 돌아올 일은 없다.
하지만 김미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당신 영어도 못하는데 괜히 갔다가 못 배운 거 들키는 거 아니야? 위험하게 미국은 왜 간다고 했어. 그냥 거절하지.”
“처음 미국 출장 얘기 꺼냈을 땐 그런 말 없었잖아요.”
“그땐 제대로 못 들었어. 기껏해야 놀러 가는 것처럼 가는 줄 알았지.”
“이미 하겠다고 말해 놓기도 했고, 티켓도 나왔어요. 어차피 미국 회사에 일본인 직원이 몇 있어요. 여태까지 소통도 일본인 직원과 했고요. 문제없을 거예요. 그리고 저 나름대로 영어 공부도 해서 듣고 읽는 건 그래도 할 수 있어요.”
“공부 좀 했다고 실력이 금방 늘겠어? 아무튼 괜히 실수해서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잘해.”
오다 사토시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김미자는 애써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나저나 당신을 혼자 놔 두고 한 달이나 있으려니까 마음이 놓이지 않네요. 총리님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잖아요. 도움은 안 되어도 옆에서 응원이라도 해 드려야 하는데.”
김미자의 말에 오다 사토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오노데라 영감 지랄은 내가 받아 준다지만, 나는 누가 위로해 줘? 당신, 그냥 가지 마.”
“어떻게 그래요. 그래도 짬이 날 때마다 전화할게요. 총리님은 요즘 어떠신데요? 요즘에도 당신한테 짜증을 많이 내요? 당선도 됐고, 원하는 대로 되어 가는데 뭐 때문에 그러는 걸까요? 정말, 속상하게. 짜증낼 거면 본인 부하들도 많잖아요.”
김미자는 오노데라의 손을 잡고 손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부하들한테도 말을 못 하니까 나한테 그러는 거겠지. 그래도 수술만 끝나면 나도 그 영감 지랄 받아 줄 일 없어.”
“총리님 어디 편찮으세요? 수술이라니요?”
“아.”
오다 사토시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뭐, 앞으로 당신도 오노데라 영감과 자주 만나게 될 테니 알아도 상관없겠지. 안 그래도 오노데라 영감이 당신한테까지 숨기는 거냐고 묻던데.”
오다 사토시는 김미자를 제 옆으로 끌어당겨 앉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오다 사토시가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그 영감 막냇손자가 심장 안 좋은 건 알지?”
“막냇손자라면, 막내 따님 아들 말하는 거죠?”
“그래. 귀엽게 생긴.”
“네.”
“손자 심장 이식 수술을 우신에서 해 주기로 했거든. 그런데 그간 고상준이 계속 어떤 변호사 놈 무섭다고 차일피일 미뤄서 오노데라가 머리끝까지 화났었어. 그래서 고윤수가 왔던 거고. 기억하지?”
“아, 네. 고윤수가 요정에 왔었죠.”
“그때 고윤수한테 도게자까지 시키면서 얼마나 난리를 피우던지. 결과적으로는 수술 날짜가 정해졌고, 오노데라 영감도 기분은 좀 나아졌는데. 그래도 손자가 심장 이식을 받는다고 하니 걱정이 큰 모양이야. 그리고 그 영감 그 손자 일에는 오버가 심하잖아.”
“……그렇군요. 확실히 걱정되죠. 엄청 아끼시잖아요. 수술은 언제인가요? 맞춰서 꽃이라도 좀 보낼까 싶네요.”
“언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정해졌다고만 들어서. 이번 주에 만나면 물어봐야지.”
“우신이 집도의도 실력 있는 사람으로 잘 붙여 줬겠죠?”
임현일이 집도할 거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도청하는 내내 그들의 입에서 임현일이라는 인물을 지칭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 빼도 박도 못하게 증거로 만들어 놓으면 좋을 것 같아 일부러 물었다.
“재일 놈이던데. 지금은 우신 병원 과장이야. 신가쿠 의대에도 있었고, 오카시마에서 노부오 밑에 있었어. 노부오도 실력 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다던데.”
신가쿠 의대와 오카시마 병원에 있었던 우신 병원 과장인 재일 교포.
이 정도면 임현일을 충분히 특정할 수 있을 듯하다.
“아무리 실력 좋은 의사여도 꽤 큰 수술인데, 염려가 크시겠네요. 제가 수술 전에 전화라도 드려 볼까요? 아, 당신도 아니고 제가 수술 얘기를 꺼내면 좀 불편하시려나요.”
“뭐 어때. 그 영감이 먼저 당신한테는 왜 비밀로 하냐고 물었는데. 그 영감, 당신을 꽤 좋아하잖아. 재수 없게.”
오다 사토시가 짓씹듯 말했다.
그러자 김미자가 괜히 오다 사토시에게 팔짱을 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럼 수술 날짜가 나오면 꼭 말해 주세요. 선물도 보내고, 잘 말해 볼게요. 총리님이 절 좋아한다면, 당신한테 좋게 작용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분위기를 보니, 어쩌면 수술 날짜를 알아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렇긴 한데……. 왠지 불안해. 그 영감 당신 보는 눈빛이……. 혹시라도 그 영감 수작질에 넘어갈 생각하지 마.”
“무슨 그런 말을 해요. 나한테 당신 말고 누가 더 있다고. 그런 늙은이는 남자로 보이지도 않아요.”
“나도 늙었잖아.”
“당신은 멋있잖아요.”
김미자의 말에 오다 사토시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감정을 숨기지 않고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아직도 내가 멋져 보여?”
“그럼요.”
그런데 죄수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더 멋있을 것 같아서, 곧 입혀 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