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8)
너희들은 변호됐다-58화(58/641)
진철은 내 물음에 깁스가 덧대어진 자신의 팔다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학교 2층에서 떨어진 사고는 진철을 두 달 동안이나 세상에서 격리시켰다.
팔과 다리가 부러져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걸을 수도, 심지어는 식사할 수도 없다.
그의 몸에 남아 있는 상처는 곧 사라지겠지만, 마음에 흉은 남을 것이다.
2층에서 떨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진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추락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알면, 그가 했을 생각을 조금이라도 빨리 떨칠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있다.
“혁민이 새끼가…….”
밀었을까.
나는 그의 입 모양까지 외울 정도로 유심히 그를 바라보았다.
“제 실내화를 긴 꼬챙이에 매달았어요.”
“그게 무슨 뜻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어 물었다.
그러자 진철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마치 베란다에 국기 게양하듯 긴 꼬챙이에 신발을 매달아 창문에 걸어 놓았다는 의미 같았다.
“그리고 저한테 그걸 가져오라고 했어요. ……솔직히 그까짓 실내화 없어도 그만인데, 자꾸 그 새끼하고 그 새끼 무리가 저를 도발했어요. 저것도 못 가져오냐, 해 봐라. 그것도 못하냐. 역시 찐따라서 그러냐.”
[진실]“반 애들이 다 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무리 무시해도 진짜 제가 찐따라도 되는 기분이었어요. 그 새끼들이 다 저를 쳐다보면서 저 찐따 새끼 저것도 못 하나, 하고 비웃었어요.”
[진실]“그걸 못 참겠어서,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일단 창틀로 올라갔어요. 자세를 낮추고 팔을 뻗으면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창틀에 쭈그리고 앉았는데, 앉자마자…… 교복 바지가 터진 거예요.”
[진실]“씨발, 쪽팔려서…… 쪽팔려서 그대로 죽어 버리고 싶었어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떨어지려던 건 아니었는데……. 바지가 찢어지고 팬티가 보이니까, 혁민이 새끼가, 하, 샤프로 팬티를 쿡쿡 찌르면서……. 저를 비웃었어요.”
[진실]“저는, 으흑,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몸을 틀었는데, 그 새끼 무리들이 자꾸 찢어진 교복 바지 사이로 팬티를 잡아당기면서 팬티 색깔이 어떻고, 하면서 계속 찌르고, 흑, 저는 하지 말라고, 계속 병신처럼 엉덩이 들썩거리고, 그러다가…… 중심을 잃고 떨어졌어요.”
[진실]말을 마친 진철은 고개를 푹 숙이며 흐느꼈다.
“제가 얼마나 병신 같았을까요……. 실내화 주우란다고 진짜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주우려는 그 뒷모습이 개네들 눈에 진짜 찐따 같았을 것 같고, 흑, 그게 계속 생각나서 쪽팔리고, 미쳐 버릴 것 같고, 흑…….”
진철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강민재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화를 주체할 수 없다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리고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 진짜 할 말이 없네. 변호사님, 어떻게 애들이 그렇게 잔인할 수 있어요?”
나 역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나는 그가 추락한 까닭을 설명하는 내내 능력을 썼고, 단 한 번도 [거짓] 글자가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애들이라 그런 거겠지.”
때로는 애들이 더 잔인한 법이다.
나는 어렵게 입을 떼며 진철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낭자해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며, 그는 또다시 한참을 울었다.
우리는 그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아저씨.”
오랜 시간이 지나 후에야 울음을 그친 진철이 나를 바라보았다.
“혁민이 새끼는 신발을 주워 오라고 했지, 저를 민 건 아니잖아요. 근데, 그게 처벌이 될까요?”
진철이 코를 들이마시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미필적 고의라는 법적 용어가 있어. 혁민이라는 학생이 너를 추락시킬 목적으로 실내화를 꼬챙이에 걸어 놓은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행동을 하면서 분명히 네가 떨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을 거야. 그러면서도 네가 떨어지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겠지. 그런 경우, 너를 고의적으로 추락시킨 것과 같은 처벌을 받아.”
“만약에 설마 떨어지겠어? 이런 생각으로 그런 거면요?”
“그런 경우 과실 치상으로 넘어가서 형이 가벼워지기는 하는데, 입증이 굉장히 어려워.”
혁민이 굉장히 용의주도하고 영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전에 아저씨가 미필적 고의였다는 걸 입증해 내야지. 그게 아저씨들이 하는 일이니까.”
확정적으로 미필적 고의였음을 입증하기 위한 최선의 증거는 혁민과 함께 그 사건을 주동한 무리의 증언이다.
하지만 오로지 그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좋은 판단은 아니다.
혁민이 진철을 괴롭혔다는 증언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 생각한다.
“우선 아저씨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알았고, 그다음은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할 거야.”
“……네.”
전학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혁민이와 관계가 왜 그렇게 된 건지 설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할 수 있겠니? 솔직하게, 전부 다 말해 줘야 해. 숨기는 거 없이.”
혁민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괴로운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좀 쪽팔린 얘기지만……. 학교에 노는 애가 있고, 그냥 그런 애가 있고, 찌질한 애들이 있잖아요.”
오래전부터 유구하게 학생들을 나누는 일종의 계급 체계였다.
“전 학교에서 저는 평범한 애였던 것 같아요. 노는 애 중에 같은 학원다녀서 학교 끝나고 가끔 어울리는 애가 있긴 있었는데, 뭐랄까……. 제가 걔 앞에서 좀 쫄았다고 해야 하나요. 좀 무서웠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웃기긴 한지만…… 그게 멋있어 보였어요.”
진철은 그래서 새로 전학 갈 학교에서는 ‘노는 애’ 무리에 들어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래 보일 법한 옷도 사고, 세 보이는 표정을 연습하고, 피우지 못하는 담배도 아버지 것을 몰래 훔쳐서 연습해 보았다고 말이다.
그렇게 진철은 전학을 갔고, 진철의 수법이 잘 통했는지 혁민의 무리가 그에게 접근했다.
이 지역으로 전학 오면서 진철이 조금 다르다고 느꼈던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이곳의 ‘잘 나가는 애’는 공부도 제법 하는 애들이 꽤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혁민이었다.
진철은 그래서 혁민에게 주눅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와 같은 무리가 된 것에 만족했다고 했다.
문제는, 혁민이 진철이 이전에 다니던 학교 학생과 이 지역의 유명한 학원에서 만나 알게 되면서 벌어졌다.
혁민은 자연스럽게 진철의 이름을 대며 그 학교 학생에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걔 내 밥이었는데?’였다.
공교롭게도 그 학생이 일전에 진철이 무서워하면서도 어울리던 그 학생이었던 것이다.
혁민은 진철이 이전 학교에서의 생활을 숨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진철을 은근히 따돌리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점점 악화되어, 지금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어요. 엄마한테도, 그 누구한테도. 저는 이미 노는 척하다가 구라친 거 걸린 애였고, 더 같잖아진 거죠. 어떻게 보면. 찌질한 애들보다 더 찌질하게 보였을 거고…….”
훗날 사회 생활하다 보면, ‘노는 애’, ‘평범한 애’, ‘찌질한 애, 따위의 구분이 다 부질없다는 사실을 알겠지만, 어쨌든 이 나이의 학생들에게는 대단한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미성숙한 사고를 지닌 아이들이 진철을 같잖게 보았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설령 내가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철이 거짓말을 한 것은 잘못일지 몰라도, 그 거짓말을 한 대가를 너무 과도하게 치렸다.
그 누구도 치러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혁민이라는 학생이 전교 1등이고, 전교 부회장이라는 말은 어머니에게 들었어.”
“……네.”
“학교에서도 많이 인정받겠네, 선생님들한테.”
“그렇죠. 아무래도…….”
“그럼, 선생님한테 도움을 청한 적은 있니?”
내 물음에 진철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저도 자세히 말하진 않았고요, 그냥 개인 면담 때 혁민이랑 틀어져서 힘들다고, 왕따 당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그냥 혁민이가 성숙한 애니까, 대화로 잘 풀어 보라고만 했어요.”
남고에서 6년 동안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에게서 이 정도의 시그널이 나왔는데도 아무 문제 없다고 단정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남학생 특유의 자존심으로 둘러 둘러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대놓고 혁민을 옹호하지 않고, 진철을 적당히 달래며 상황을 외면한 것이다.
그때 응급실에서 진철의 부모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자신이 혁민을 옹호한다는 것을 숨기며 적당한 처세술로 사태를 면피하는 것 같은데.
“진철아, 그 밖에 아저씨들이 알아야 하는 건 없니?”
내 물음에 진철은 한참 동안 침음을 흘렸다.
한번 솔직하게 털어놓고 나니, 진철 스스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 같았다.
이 사건을 진행하며 의뢰인 진술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저 협박하면서 하는 말이었는데……. 경찰에 신고하거나 학폭위 열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했어요. 자기는 CCTV 없는 곳에서만 사람 팬다고요.”
그 말에 강민재가 경악한 듯 입을 벌렸다.
이혁민이 치밀하다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이 정도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말 듣고 그 새끼들한테 맞은 곳에 CCTV 있나 확인했었는데, 진짜 없더라고요. 그래서 더 엄마한테 말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말해 봤자 증거 없을 거란 생각 때문에.”
진철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작년에도 혁민이 새끼가 마음에 안 드는 놈 전학 보낸 적이 있다고 했었어요.”
“전학을 보냈다고?”
“저한테 학교에 찔러서 학폭위 열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혁민이 새끼가 지 마음에 안 드는 애 있었는데, 그때도 개가 그렇게 학폭위 열려다가 실패하고 제 풀에 꺾여서 포기했다고 했어요. 사생 대회, 백일장 이런 거 열려서 애들 다 놀러다닐 때 걔 혼자 질질 짜면서 전학갔다고…….”
혁민에게 괴롭힘당하던 학생이 학폭위를 열어 처벌받게 하려다 실패한 정황이 이미 있었다.
학폭위가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는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혁민은 스스로 자신의 부모가, 혹은 학교가 자신을 비호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아무리 학교에서 나서서 혁민을 감싸더라도, 그의 비행을 많은 아이들이 제보하면 아무리 학교라도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일로 혁민은 같은 반 아이들도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마저 갖게 된 것이다.
이미 그 학교는 혁민의 왕국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