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87)
너희들은 변호됐다-587화(587/641)
지혈이 끝났을 무렵, 진입로로 구급차 한 대가 올라왔다.
“강 변, 경위님하고 같이 병원에 가 있어. 나도 정리하고 갈 테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으니까 얼른 가.”
사실 이번 현장은 오로지 경찰의 소관이었기 때문에 내가 나서서 정리할 건 따로 없다.
다만 갑작스러운 호출과 일개 변호사의 월권에도 반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준 경찰들에게 적어도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민우야, 나도 검거한 놈들 정리해야 해서 같이 못 간다. 변호사님이 같이 가 주셔서 다행이네.”
형사 역시 구급차 앞에 선 허민우를 향해 말했다.
“근데 저 그냥 차 아무거나 타고 가도 되는데 굳이 구급차씩이나 타야 할까요? 어차피 부상자들이 꽤 있을 거라 그 사람들 싣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 남은 부상자 중에 네가 제일 심해. 얼른 타, 이 자식아.”
형사는 꾸역꾸역 허민우를 구급차로 밀어 넣었고, 강민재와 허민우를 실은 구급차는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변호사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구급차가 떠나고 나니 그곳에는 나와 형사만 남았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그가 머쓱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여기까지 오셔서 도움 주신 형사님이 더 고생 많으셨죠.”
“저야, 뭐. 전에 민우한테 빚진 것도 있고 해서요.”
“빚이요?”
“그러고 보니 전에 중앙지검 차장님 장남이 마약 누명 썼을 때 그쪽 변호 맡으신 게 변호사님이셨죠?”
“그렇습니다.”
“딱 그때까지 민우가 마수대 팀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일이 좀 있어서 나가게 됐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저 때문이기도 해서요. 다행히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빚은 빚이죠.”
그러고 보니 원래는 마약수사대에 있던 허민우가 갑자기 최재훈의 가스 폭발 사고 사건 처리를 맡고 있었던 게 생각난다.
그때가 약 1년 전이고, 올봄에서 여름 사이에 다시 마약수사대로 돌아간 것 같으니 일반적인 인사이동 주기라기엔 너무 짧았다.
나는 그래서 그 당시에는 허민우가 자원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놓고 다시 마약수사대로 돌아간 건 의아했지만.
형사의 말을 들으니 이제 의문이 풀린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어 보여서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변호사님도 참 대단하시네요.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애쓰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형사와 함께 정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그는 나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는지 이것저것 물었다.
질문에 전부 대답하진 못했지만, 나 역시 그에게 빚을 졌으니 나름대로 열심히 대답해 주었다.
“서로 가나 본데요.”
그렇게 조금 더 올라가니, 검거된 경비 인력들이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얼굴이 알려진 상태라 그들에게 모습을 보여 좋을 것이 없으므로,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2차 수색 끝났습니다. 추가로 발견된 점 없습니다. 과수대 언제 오는지 확인 바랍니다.
버스가 떠난 뒤 진입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리본 의료원 건물 앞에 도착했을 무렵, 이진우의 무전과 그의 육성이 겹쳐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현관 근처에 서 있는 이진우와 눈이 마주쳤다.
“변호사님.”
“팀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저희야 변호사님이 준비해 주신 대로 움직였을 뿐인데요. 변호사님이야말로 정말 고생 많으셨죠. 보여 주신 도면들도 현장하고 비교해 보니까 공개된 도면처럼 보이진 않던데요. 그건 또 어떻게 찾으셨는지 궁금해집니다.”
“비밀로 하겠습니다.”
“아하. 대충 내막이 그려집니다. 도면도 그렇고 작전에 동원한 온갖 불……. 아니, 편법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습니다.”
이진우가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좀 전까지는 긴박하게 흘러가는 작전 상황이었기에 시종일관 딱딱한 모습이었는데, 이제 긴장이 조금 풀어진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과학수사대는 언제 옵니까?”
“곧 올 겁니다. 앞으로 10분 내외면 도착하겠네요.”
이진우는 내가 대답한 내용 그대로 무전을 보냈다.
이제는 다시 음어를 쓰기 시작했기에 내용을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과학수사대가 오면 일부 경력을 남겨 두고 철수할 모양이었다.
“아, 변호사님하고 소통하느라 저희 음어 하나도 안 썼는데, 그것도 대통령님이 커버 쳐 주십니까?”
“그것까진 얘기 안 해 봤습니다.”
“아, 곤란한데요.”
“커버 안 쳐 주시면 청와대 앞에 드러눕겠습니다.”
“하하.”
이진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허민우 경위님은 좀 어떠십니까? 부상이 얕진 않은 것 같았는데요.”
“간단한 지혈은 했고, 지금쯤이면 병원에 도착했을 겁니다.”
“그렇군요. 오랜만에 뵀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눴네요. 혹시 만나시면 안부 전해 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이진우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대원들이 있는 쪽을 잠시 넘겨다보았다.
“애들 상태 체크하고 저희도 철수할 준비 좀 하겠습니다. 기동대 팀장님들도 지금 애들 살피느라 바쁘신 것 같네요.”
“아, 네. 그러시죠.”
“사건 사이즈가 꽤 클 것 같은데,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경찰로서 관심 잃지 않고 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는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하는 말을 들으니 이진우도 내가 나왔던 방송을 본 적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방송 말미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달라 호소했으니까.
“감사합니다.”
나는 그가 건넨 손을 맞잡아 가볍게 악수했다.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에 가볍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 * *
오노데라 모자와 임현일을 포함한 주요 관계자들은 강남 경찰서로 향하는 차에 태워졌다.
나는 그들에게 모습을 보일 수 없어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았는데, 오노데라의 막내딸은 화가 난 듯 계속해서 일본어로 언성을 높여 떠들어대었다.
추측이지만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고 싶고, 변호사를 부르겠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변호사님!”
비닐하우스로 돌아가자, 태식과 직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이미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건 눈치로 알고 있었겠지만, 내가 확언하기 전까지는 긴장을 유지할 모양이었다.
모두의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잘 마무리됐어. 다들 고생 많았다.”
“와아아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원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대체 왜 이러지, 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들은 순식간에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허공에 마구 던져 대기 시작했다.
헹가래였다.
“차주한! 차주한! 차주한!”
이것들이 돌았나.
나는 키가 187cm나 되는데도, 저 근육 돼지들에게는 종잇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나를 던질 때마다 비닐하우스 천장에 달린 조명이 가까워졌다.
아주 잠깐 보았는데도 조명에 낀 엄청난 먼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빛을 받아 날아다니는 먼지들이 너무나 잘 보여서 더 괴로웠다.
나는 숨을 참았다.
계속 숨을 쉬다가는 진폐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야, 국정원도!”
그때 태식이 소리쳤다.
그러자 몇 명이 대열을 이탈해서 구석에 앉아 있던 국정원을 끌고 왔다.
“야, 씨발 놈들아! 내려놔!”
허공에서 팔랑대며 악을 쓰는 국정원을 보니, 나는 종잇장도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 내려놔.”
“넵.”
체감상 1년쯤 날아다녔을 시점에 그들은 나와 국정원을 놓아 주었다.
“오늘은 우리도 철수하자. 그동안 다들 애써 준 덕분에 오늘 좋은 결과 얻을 수 있었다. 국정원도 갑자기 불려 왔는데 잘해 줬고.”
“유능함을 들킨 제 탓이죠. 누굴 탓하겠습니까.”
“청구서에 네가 생각한 것보다 0 하나 더 붙여도 돼.”
“저 1,000억 생각했는데 1조 써도 돼요?”
국정원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무보수로 일하고 싶어?”
“……죄송함다.”
“아, 그리고 오늘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현금을 못 뽑아 왔는데. 자.”
나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내려놓았다.
“다른 놈들도 불러서 오늘 회식하고 집에 들어가서 푹 쉬어. 할 거 있는 놈들은 부르지 마. 걔들은 나중에 내가 따로 챙겨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저 질문 있습니다!”
대철이 손을 번쩍 들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뭔데.”
“얼마까지 써도 됩니까?!”
“그런 거 없어.”
“와아아! 차주한! 차주한!”
그들이 내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가까운 데 놓여 있던 무거운 무언가를 붙잡았다.
또 헹가래 쳐지고 싶진 않았다.
“이제 병원으로 가 봐야죠.”
직원들이 모여서 어디서 회식을 할지 궁리하는데, 태식이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말했다.
정혁 역시 태식을 도와 짐을 챙겼다.
그러자 태식이 그를 흘긋 돌아보며 말했다.
“너도 같이 회식하러 가.”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안 그래도 강 변호사님이 저 놔두고 병원으로 가 버리셔서 당황했습니다.”
정혁은 차로 향하는 우리를 졸졸 따라왔다.
태식이 운전석에 앉았을 때는 얼른 조수석으로 뛰어갔다.
그러자 태식이 조수석 창문을 열며 소리쳤다.
“됐어, 인마! 얼른 가! 나 혼자 커버할 수 있다니까. 안 그래도 경찰들이 경비 새끼들이랑 뜨는 거 보면서 손발이 근질거렸다. 누구 하나 걸리면 형아가 아주 작살을 내버릴 거니까 너는 가서 회식해. 쟤네 소고기 먹는단다.”
“그래, 같이 가.”
나는 정혁을 밀치고 조수석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정혁이 어떻게든 뒷좌석에 타려고 했을 때, 태식은 바로 액셀을 밟았다.
“저 새끼는 순둥순둥한 놈이 고집이 왜 저렇게 센지 모르겠어요.”
벌써 자정을 넘긴 시각.
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고작 몇 시간 긴장한 상태로 있다가 이제야 마음을 놓았기 때문인지, 괜히 온몸이 쑤시는 기분이었다.
“너는 회식 못 가서 어떡하냐.”
“그랬다가 변호사님 변사체로 발견되면 어쩝니까. 상준이가 소식 듣고 얼마나 오들오들 떨고 있겠어요. 제정신이 아닐 텐데,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어요.”
“그건 그렇네.”
“지금쯤 무당의 힘이라도 빌려야겠다 싶어서 어디 용한 무당집 찾아갔을지도 모릅니다.”
“나 저주하려고?”
“그렇죠. 변호사님 사진 걸어 놓고 화살 쏘고, 지푸라기 인형에 못 박고 있을걸요.”
병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소은도 이곳으로 실려 왔다고 했으니, 아이 상태가 어떤지부터 보고 허민우에게 가야겠다.
“형사님.”
커튼이 쳐진 병상 근처에 경찰 몇이 서 있기에 다가갔더니, 예상대로 소은이 있었다.
“아, 변호사님.”
내가 커튼을 걷자, 수사관이 반쯤 일어섰다.
나는 앉으라고 말한 뒤 병상 안쪽으로 들어와 다시 커튼을 쳤다.
“소은이는 좀 어떻습니까?”
“예상대로 수면 마취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마취 약이 좀 세게 들어가서 깨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랍니다.”
“천사의 집에서 데리고 나올 때 마취시킨 모양입니다.”
“네, 의사 선생님 말로는 마취된 지 꽤 오래됐다고 하네요. 그래서 의식도 경미하게 있어요. 흔들면 반응도 하고, 좀 전엔 잠꼬대처럼 말도 했습니다.”
“그럼 깨어나는 데는 문제 없다는 뜻입니까? 다친 곳은요.”
나는 소은의 목덜미에 붙어 있는 거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깨는 데는 문제 없고, 상처도 깊지 않습니다. 타박상도 조금 있는데, 그것도 심하진 않고요.”
“그래도 정밀 검사는 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네, 여기 병원에서는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해서 소은이 회복하는 대로 서울로 데리고 가서 검사해야죠. 팀장님이 소은이 거취는 변호사님이랑 상의하고 정한다고 하셨는데, 말씀 나누셨어요?”
“아뇨, 일단 소은이 먼저 보러 왔습니다.”
“팀장님 저쪽에 계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사관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커튼을 치고 있지 않아서, 강민재와 허민우를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변호사님이다.”
강민재가 나와 태식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경위님, 상처 부위는 좀 어떠십니까.”
“꿰매고 진통제 맞았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깊이 베였더라고요. 진짜 많이 꿰맸어요.”
“그런 팔로 어떻게 총을 쏠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러다 임현일이 맞았으면 어떡할 뻔했습니까.”
도주 중인 사람에게 총을 쏘는 건 규정에 어긋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라도 임현일이 맞았으면 허민우는 크게 곤란해졌을 것이다.
“그럼 나이스죠.”
“…….”
“농담입니다. 사실 저도 이제 와서지만 같이 있던 특공대원한테 부탁할 걸 그랬다 싶어요. 그래도 다행이죠? 세 발 다 바퀴에 맞았으니까요.”
“다행이긴 한데, 앞으로는 무리하지 마십시오.”
“하여튼 변호사님 잔소리는.”
강민재가 허민우 대신 나를 타박했다.
그러자 허민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뻔뻔하게 소리쳤다.
“민재 말이 맞습니다. 칭찬만 해 주셔도 모자랄 판에.”
“칭찬해 드렸잖습니까. 그리고 초등학생도 아니고 왜 그렇게 칭찬에 집착합니까.”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약간 기분의 문제입니다.”
“앞으로는 도장이라도 파서 갖고 다녀야겠네요. 경위님하고 강 변이 그럴 때마다 하나씩 찍어드리게요.”
나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하게 강민재가 눈을 빛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도장 다 모으면 뭐 주시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