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9)
너희들은 변호됐다-59화(59/641)
진철에게 그간의 이야기들을 듣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혁민이 전 학교의 학생을 만난 후, 진철은 아주 천천히 무리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묘하게 진철을 갈취했다.
진철이 입고 오는 옷을 빌려 달라고 하고는 돌려주지 않고, 함께 밥을 먹은 뒤 진철에게 계산하게 하고는 돈을 주지 않는 식으로 상황은 악화됐다.
그러다 진철이 조금씩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네가 우리를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며 본격적으로 따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 아이들도 혁민의 무리를 선망하면서도 무서워해서, 아무도 진철을 도와주지 않고 방관했다.
교실에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혁민의 무리 중 꼭 한 명이 ‘아, 진철아!’하고 비웃으며 묘하게 진철의 탓으로 몰아가기 일쑤였다.
정신적 폭력 역시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진철의 모친이 알아차린 것은, 너무나도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이었다.
나와 강민재는 다음 날 바로 태식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변호사님, 오셨습니까. 저기, 이야기는 어떻게…… 잘됐습니까?”
태식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어제 우리가 병원을 방문하기 전, 진철을 담당하던 직원과 함께 병실에 찾아갔었다고 한다.
그때는 우리에게 입을 열기 전이었으니, 두 사람이 찾아갔을 때 반응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잘됐습니다. 진철이도 저희에게 여태까지 상황 다 말해 줬고요.”
강민재의 말에, 태식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파에 늘어졌다.
“아, 다행입니다, 진짜.”
“어쨌든, 네 방법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거니까 이번 일에는 제대로 협조해 줘야겠다.”
내 말에, 태식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당연하죠! 무조건 협조할 겁니다. 무조건! 그런 깡패 같은 새끼들이 벌써부터 친구를 따돌리고 말이야. 진짜 그런 놈들 혼내 줘야 합니다. 말씀만 하십쇼. 가서 조질까요?”
태식이 조질까요? 라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사무실에 포진해 있던 직원들이 일어나려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아직 깡패 버릇 못 버렸냐. 조지긴 누굴 조져.”
“당연히 그 따돌린 새끼들이죠. 아주 어른의 매운맛을…….”
“안 되겠다. 너한테 일 맡기면 일을 그르칠 것 같아.”
내가 일어서자, 태식이 내 쪽으로 다급하게 달려왔다.
“아, 뭔데요. 말씀을 해 주세요. 뭘 하면 됩니까! 안 조지면 되잖아요!”
“네가 말할 틈을 안 줬던 것 같은데. 그렇지, 강 변?”
“네. 웬만하면 사장님 편을 들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왠지 변호사님의 편을 들게 되네요.”
태식은 강민재를 향해 입술을 삐죽이며 다시 좌정했다.
나 역시 다시 소파에 앉으며 이마를 짚었다.
“일단……. 이혁민, 그 학생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겠어. 아무래도 그렇게 대담하게 구는 걸 보면 전적이 더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같이 알아보고.”
“애들 붙일까요?”
“붙여.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까지 어딜 다니는지, 뭘 하는지, 전부 다 알아봐야 해.”
어차피 진철은 병원에 있으니 괜찮겠지만, 그런 아이들은 진철이 없는 틈을 타 새로운 먹이를 만들 수도 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저지할 수도 있고, 증거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집안 배경도 좀 알아보고. 아버지가 어디 공공기관장이라는데, 어딘지는 모르더라고.”
“네, 그것도 알아보겠습니다.”
“변호사님, 그 진철이가 말한 것 중에서 다른 학생 있잖아요. 혁민이가 전학 보냈다던. 그 친구도 한번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강민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부터 지속적으로 같은 반 친구를 괴롭혀 온 정황은 분명 재판에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진철이가 전학 오기 전 일이라, 누군지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찬찬히 그때 진철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진철은 그 학생이 학폭위를 열려했지만, 학교 측에서 열어 주지 않아 포기했다고 했다.
그리고, 사생 대회, 백일장이 열려 다들 놀러 다닐 때 혼자 울며 전학 갔다고 했다.
그렇다면…….
“노트북 좀 가져와.”
태식은 사무실 한쪽에 놓여 있던 노트북을 가지고 달려왔다.
중간에 줄이 엉켜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며 픽 진지하게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인터넷을 켜고 진철의 학교 사이트에 접속했다.
떠오르는 팝업들을 지우며 학사 일정표를 볼 수 있는 게시판에 들어갔다.
“사생 대회나 백일장이 보통 봄에 열리지?”
“네,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4월이나 5월쯤 열릴 겁니다.”
학사 일정표에는 5월로 나와 있었다.
학교에 그 전학 간 학생에 대해서 대놓고 물어보면 알려 주지 않을 테고.
“이 학교에서 5월에 전학 간 학생 찾아볼 수 있나?”
내가 묻자, 태식이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미적지근하게 대답했다.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반 학생 중에 증언을 들을 수 있는 학생 한 명은 포섭해야 하는데…….”
내 말에 강민재가 한숨을 쉬었다.
“같은 반 학생을 포섭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 그 반은 이혁민이 꽉 잡고 있어서 자세히 증언을 해줄 것 같진 않은데…….”
“우선 담임 교사가 어떤 방식으로 그날의 정황을 파악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문제가 있다면 이의를 제기하고. 그다음에 접근할 수 있는 학생이 있는지 확인해야겠어.”
섣불리 학생들에게 먼저 접근했다가는, 우리의 방법이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질 여지가 있었다.
학교에서도 우리의 문제 제기를 완전히 무시하진 않을 것이다.
이 지역은 학군 좋은 동네로 유명하다.
당연히, 학부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대놓고 학교가 사고를 은폐한다는 이야기가 돌면, 학교로서도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충분히 노력했지만, 다른 소득이 없었다는 식으로 어필할 것이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담임과 면담하면, 그 반에 우리에게 협조할 학생이 있을지 확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네? 어떻게요?”
강민재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민재도 덩달아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엉겁결에 우리를 배웅할 준비를 하는 태식을 향해 말했다.
“그 전학 간 학생하고 접촉할 수 있도록 조사하고, 이혁민 뒤 잡고. 전학 간 학생 알아보는 건 최대한 빨리. 할 수 있지, 장 대표?”
내 물음에 태식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주십쇼.”
* * *
“어머님, 힘드시면 조금 이따가 가도 됩니다. 아직 담임과 약속한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나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진철의 모친은 내 말에 따라, 오늘 담임과 면담을 잡았다.
병원에서 담임에게는 내가 진철의 삼촌이라고 해 두었으니, 어머니가 너무 놀란 상태라 바쁜 아버지 대신 동행했다고 할 작정이었다.
학교에 직접 오기로 결심한 것은 담임 교사가 어떤 방식으로 그날의 상황을 확인했는지 알아보기 위함도 있었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학교의 분위기를 보고 싶었다.
나의 예상대로 학교가 나서서 혁민을 비호한다면, 이 면담에도 대단히 신경 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변호사님도 이렇게 고생해 주시는데, 제가 이러면 안 되죠.”
모친은 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2시의 학교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운동장에는 체육 시간을 맞아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학교 본관을 바라보았다.
진철은 2층에 있는 교실에서 떨어져 화단으로 추락했다.
학교 건물은 층고가 높은 편인데, 그것은 이 학교도 다르지 않았다.
화단에 가지가 뻣뻣한 꽃나무들이 가득 심겨 있는 것으로 보아, 만일 진철이 조금이라도 잘못 떨어졌다면 더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철의 모친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화단을 보며 숨을 삼키고 있었다.
“우선은 제가 진철이 삼촌이라는 신분으로 동행한 것이니, 어머님도 담임 앞에서는 호칭 주의해 주십시오.”
“네, 알겠어요.”
1층 중앙 현관에 다다르자, 미리 나와 있던 담임이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진철 어머님,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어요. 아, 함께 오셨군요. 진철이 삼촌이시라고 하셨죠?”
교사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인사했다.
“진철 아빠가 일 때문에 바빠서, 삼촌이 대신 왔어요. 진철 아빠가 제가 혼자 간다고 하니까 걱정됐나봐요.”
“네, 어머님. 진철이가 큰 사고를 겪었는데 그럴 만도 하시죠. 이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우리는 담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안내된 곳은 교무실이나 빈 교실이 아닌, 교장실이었다.
진철의 모친이 조금 놀란 듯 담임을 바라보자, 담임이 짧게 말을 보탰다.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도 어머님을 만나 뵙고 말씀 나누고 싶어 하셔서요.”
교장이라.
사과하면서 학교 측에서도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화를 풀게 해 보겠다는 것인가.
역시 예상대로였다.
사건이 커지지 않도록 책임자가 나서서 학부모를 달래려는 것이다.
담임이 문을 열자, 책상 앞에 앉아있던 교장이 튕기듯 일어나 모친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아! 진철 어머님, 오셨습니까. 장명 고등학교 교장 한경철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모친과 인사를 나누던 교장은, 나를 발견하고는 당황한 듯 담임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몹시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저 실례지만, 혹시 이분은…….”
“안녕하십니까, 교장 선생님. 진철이 삼촌 되는 사람입니다.”
담임은 교장에게 다가가 대충 내가 함께 오게 된 이유를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제야 교장이 조금 풀어진 얼굴로 우리를 소파로 안내했다.
“진철 어머님, 우리 장명 고등학교에서 이런 사고가 일어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정말로 죄송합니다. 얼마나 걱정이 크십니까. 저희는 더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창문에 추락 방지용 바를 시공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사고가 없도록 안전 교육도 제대로 시켰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함께 말하는 것은 좋은 사과법이다.
진철의 모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어머님, 저 역시 담임으로서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진철이가 두 달 정도 입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당연히 병결로 처리할 거예요. 그리고 진철이가 교과 과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교과 자료는 전부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도 병문안을 가고 싶어 하는데, 괜찮으실 때 말씀 부탁드려요. 모두 진철이를 걱정하고 있어요.”
마치 미리 준비해 놓은 듯한 사과를 일목요연하게 늘어놓은 두 사람은, 모친의 말을 잠자코 기다렸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학교에서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사고가 일어난 그 날의 상황을 말씀해 주셔서 듣긴 했는데……. 어떤 방법으로 상황 파악을 하셨는지 알고 싶어요.”
그리고 진철의 모친 역시, 미리 준비된 질문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