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599)
너희들은 변호됐다-599화(599/641)
서울 우신 병원 기조실장 오준홍은 리본 의료원 급습 당시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날 그는 임현일과 함께 리본 의료원으로 와서 세 시간가량 머문 뒤 먼저 병원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재훈이 ‘임현일, 오준홍’이라는 이름의 폴더를 남겨 둔 것을 보면, 오준홍이 장기 매매 사업에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나올 것 같다.
“그래서, 성수용 씨는 이걸 들어 보셨어요?”
조봉준의 물음에 정지민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몰라보게 어두워졌다.
“저희도 한번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정지민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조봉준은 바로 USB를 컴퓨터에 연결한 뒤 파일들을 확인했다.
정지민은 ‘임현일, 오준홍’ 폴더 전체를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외에도 휴대폰에 처음 저장됐을 때의 파일명 그대로인 녹음 파일도 있었다.
다른 파일들은 증거 1부터 12까지 넘버링해 놓은 것에 비해 대조적이었다.
“이건 뭐예요?”
조봉준 역시 의문이 생긴 듯 물었고, 정지민이 대답했다.
“쭉 보니까 형은 주기적으로 킵데이터에 업로드된 파일들을 싹 정리했어요. 특히 음성이나 문서 파일 같은 것들은 본인이 확인하기 편하게 제목을 바꿔 놨고요. 형이 마지막으로 킵데이터 폴더를 정리하면서 제목을 바꿔 놓은 게 사고 전날이었거든요. 그렇다면 그 외에 제목이 바뀌지 않은 파일들은 자동으로 연동되어서 킵데이터에 올라간 건데, 형이 정리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잖아요.”
정지민의 말에 조봉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래서 그것도 좀 들어 봤어요. 왜냐면 형은 자동 녹음 기능을 안 쓰거든요.”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자동 녹음 기능을 썼으면 저랑 통화한 내역이 많을 거 아니에요. 평소에 통화를 자주 했으니까. 그런데 킵데이터에 저랑 통화했던 시간에 저장된 파일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킵데이터 폴더 안에 있는 파일들은 형이 의도적으로 녹음한 거란 뜻이죠.”
“맞는 말씀이네요.”
“그리고 보통 통화 녹음 파일은 제목이 이런 식이잖아요. 날짜, 시간,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 이렇게 쭉 나열되는 식.”
“그렇죠.”
“근데 그 파일 제목들 보시면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으로 보이는 단어가 하나도 없거든요? 그냥 날짜랑 시간만 있지. 그렇다는 건, 그게 통화 녹음이 아니라는 뜻이잖아요. 우리가 의도적으로 대화를 녹음하는 일은 그렇게 흔치 않고요. 뭔가 상대방이 말을 바꾸면 안 되는 상황이라든가, 그럴 때나 녹음하지 않나요? 특히 사고 당일에 저장된 거라면 뭔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었고요.”
나에게 선수금만 받고 쨀 예정이었다던 정지민은 이 작업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상당히 결의에 찬 상태였던 것 같다.
최재훈에게 빌려주었던 킵데이터 계정을 살펴보면서 오랫동안 고민한 티가 났다.
저 파일 안에 든 내용을 지금은 유추할 수밖에 없지만, 뭐가 됐든 상당히 충격적인 정보가 들어 있지 않을까 싶다.
어두워진 표정도 그렇고.
“지금 여기서 재생해도 되겠습니까? 저야 아직 뭐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최재훈 씨와 가깝게 지냈던 성수용 씨에게 질문해야 하는 내용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만일 성수용 씨에게 트라우마가 될 만한 이야기가 있다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아…….”
정지민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파일들이 그렇게 길지도 않고……. 저도 여러 번 들었던 내용이라 괜찮아요.”
정지민의 허락이 떨어지자, 조봉준은 주저하지 않고 ‘증거 1’이라는 이름의 첫 번째 파일을 열었다.
파일 최초 생성일은 4월 9일 오후 6시 13분.
최재훈이 임현일에게 장기 적출을 지시받았던 날부터의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다.
<4월 8일>
밤, 최재훈은 임현일에게 장기 적출을 지시받았으나 거절하고 돌아왔다.
심야 추정 시각, 최재훈은 정지민에게 “내가 쓰레기여도 곁에 있어 줄 거냐”고 물었고, 정지민은 “사람을 죽이는 것만 아니면 괜찮다”고 대답했다.
<4월 9일>
오후 2시경, 최재훈은 임현일과 통화하면서 “어떻게 나에게 그런 수술을 시킬 수 있냐”며 따졌다. 통화가 끝난 후 그는 블로그 비밀 일기장에 임현일이 장기 매매를 하는 것 같다고 기록했다.
미상 시간, 최재훈은 정지민에게 “내가 너 때문에 뭘 포기한 줄 아느냐”고 물었다.
<4월 12일>
오후 3시경, 최재훈의 집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위 타임라인을 고려했을 때, 지금 이 녹음 파일 속 대화는 최재훈이 임현일에게 장기 적출을 지시받은 일에 대하여 통화로 항의한 이후에 있었다.
─어, 최 선생. 오늘 오프 아니었어?
─예, 그렇긴 한데 과장님 뵈려고 잠깐 나왔습니다.
─왜? 나한테 화가 많이 난 줄 알았는데.
─아뇨……. 아까는 제가 실례했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시간 잠깐 괜찮으십니까?
─지금?
─예.
─흐음, 할 말이 길어?
─과장님 시간 너무 오래 뺏지 않도록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재훈과 임현일의 대화가 흘러나왔다.
차 문을 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닫히는 소리가 났다.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지금까지의 목소리가 묘하게 울리는 걸 보면 주차장에서 대화하다 차에 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시동 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할 말이라는 게 뭔데?─어제 저한테 답을 달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 선생이 불같이 화를 내길래 이미 답을 정한 줄 알았는데?
─아뇨, 어제도 제가 좀 더 고민을 해 보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런데 아까 낮에 나한테 엄청 화내지 않았던가?
─……그건 죄송합니다. 혼란스러워서 이성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아직 답을 못 정했다는 뜻이야?
─답을 드리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 다만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잠깐 말씀 나눌 수 있을지 여쭙는 겁니다.]
최재훈이 몹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임현일이 전날 최재훈에게 답을 달라고 한 것은 장기 매매 계획에 동참할지의 여부라고 추측할 수 있다.
최재훈이 임현일에게 진실만을 말한다는 가정하에, 그는 아직 답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지민에게 ‘너 때문에 뭘 포기했는지 아느냐’고 말하기 전일 터였다.
[─말해 봐.─어제 그 환자요. ……누굽니까?]
최재훈이 몹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언급한 환자는 최재훈을 테스트하기 위해 쓰였던, 천사의 집 소속의 고등학생 유종은이다.
[─그게 중요해?─중요합니다. 제가 아까도 통화로 말씀드린 부분인데, 그 환자 뇌사 상태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미성년자처럼 보였는데…….
─써전한테 환자 개인 정보가 왜 중요해.
─제가 여쭤보는 건 개인 정보가 아니라 의료 정보입니다. 과장님은 저한테 장기 적출을 지시하셨고, 저는 사전에 환자 정보에 대해 들은 게 없었습니다. 그러니 장기 적출을 해도 되는 상태인지 확인했어야 하는…….
─물어볼 건 그게 다야?
─아뇨. 그 병원이요. 미성에 있는 병원. 아무리 검색해 봐도 그 위치에 병원이 있다는 정보가 하나도 없던데요. 지하까지 포함하면 7층 규모 병원이고 시설이나 장비 면에서도 상당히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 병원이 생긴다면 보도 자료가 있을 법한데 그런 것도 없었고……. 정식 병원도 아닌 곳에서, 심지어는 저는 그 병원 소속이 아닌데도 과장님은 저한테 장기 적출을 지시하신 겁니다. 거긴 대체…….]
최재훈의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
그러자 임현일이 한숨을 푹 쉬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 못 해 줄 건 없지. 하지만 내가 이걸 최 선생한테 대답해 주면, 최 선생은 바로 예스라고 해야 해. 내가 어제 한 질문에 대해 고민을 길게 할 수 없게 된단 소리야. 대답은 무조건 예스여야 해.─…….
─그렇게 할 수 있어?
─과장님, 저는…….
─못 하겠으면 대답 듣지 마. 아, 그리고 내가 어제 경고했듯, 고민은 최 선생 내면에서만 이루어져야 할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임현일이 묻자, 최재훈 역시 한숨을 내쉬며 작게 대답했다.
[─그런 얘기를 대체 누구한테 합니까…….─그래. 내가 어제 한 말 명심하고. 어떻게, 고민 일주일 더 할 거야? 아니면 지금 당장 궁금한 거 풀 거야?
─……조금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시간 오래 뺏어서 죄송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
─최 선생.
─예.
─최 선생이 실수로라도, 그 누구에게라도 말을 흘리면 무조건 내가 알게 되어 있어. 그걸 잊지 마.
─예, 알겠습니다.]
다시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발소리가 조금 울리는가 싶더니 녹음이 끝났다.
조봉준은 바로 증거 2 파일을 재생했다.
파일 생성일은 4월 10일 오후 5시 3분.
증거 1의 다음 날에 녹음한 내용이다.
[─과장님, 시간 괜찮으십니까?─어, 최 선생. 들어와. 아무튼 김석중 환자한테는 그렇게 안내해 드려.
─네, 알겠습니다.]
제3자의 목소리가 잠깐 섞여 들었지만, 중요한 인물은 아닌 듯하다.
임현일은 업무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발소리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 최재훈이 말문을 열었다.
[─과장님. 저,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내 대답은 어제랑 같을 텐데. 대답은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어. 단지 내 대답을 듣고 나면 최 선생은 무조건 예스라고 해야 해.
─아뇨, 그……. 음, 그런 질문은 아닙니다.]
최재훈이 몹시 삼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나 해 봐.─과장님은 그제 저한테 예스라고 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받을 지원이나, 그런 내용에 대해서만……. 그런데 노라고 대답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최재훈은 전날인 9일, 정지민에게 이미 임현일의 제안을 거절한 것처럼 말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 걱정이 되었던 걸까.
[─최 선생.─네.
─최 선생도 생각을 해 봤을 거 아니야. 내 제안을 거절하면 어떤 상황이 생길지.
─……그렇습니다.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임현일은 본인의 지위를 이용해서 최재훈을 효과적으로 압박했다.
제대로 대답해 주는 건 없으면서 그가 가진 공포를 자극할 뿐이었다.
[─과장님…….─거절하고 싶은가 봐?
─예?
─예스 쪽으로 기울었으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거잖아. 거절했을 경우에 최 선생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그건 아닙니다. 아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조금 더 상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저도 바보는 아니잖습니까. 과장님의 제안이 뭘 뜻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설도……. 제가 개원하지 않고도 개원의보다 더 큰돈 만지면서 살 수 있게 될 거라고 하신 말씀만 들어도, 대충은…….
─그래? 알고 있다니 다행이야. 내가 이런 제안을 하필이면 최 선생한테 한 이유도 생각해 봐. 내가 이런 일을 어중이떠중이한테 시킬 것 같아?
─아뇨…….
─최 선생한테 기대를 거는 분들이 많아. 최 선생을 선택한 보람을 느끼게 해 줬으면 좋겠어.
─……왜 하필 저입니까. 저보다 뛰어난 선생님들도 많고, 왜 저한테 이런 어려운 문제를…….
─최 선생 욕심 많잖아. 난 스승으로서 최 선생이 가진 그 욕심, 다 현실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안한 건데. 내가 최 선생을 난감하게 만든 건가? 난 솔직히 최 선생이 나한테 그렇게 전화로 따졌을 때도 많이 당황했어. 당연히 나한테 고마워할 줄 알았거든.]
임현일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자꾸 고상준이 떠오른다.
저 뻔뻔함과 세상 사람들이 다 자신처럼 양심이나 도덕관을 내려놓고 살 거라고 확신하는 태도까지 빼다 박았다.
고상준이 임현일을 신뢰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죄송할 건 아니지. 그냥 내가 최 선생을 잘못 본 건가 싶을 뿐이지.
─…….
─더 물어볼 게 있어?
─아뇨, 없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최 선생, 너무 생각 깊게 하지 마. 뭘 걱정하는지 알아. 바로 오케이를 하고 싶어도 무서운 게 많겠지. 그런데, 그런 걱정들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없어. 0.1, 0.01도 없어. 그냥 0이라고.]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어도 무서운 게 있을 거란 말은, 아마도 장기 매매 범죄 사실이 드러났을 때 최재훈이 져야 할 책임에 대해 말하는 거겠지.
그런데 0.1도, 0.01도 없다는 오만함은 참으로 놀랍다.
임현일을 실제로 만나 능력을 써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최재훈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톤을 생각했을 때, 진실로 고상준의 그늘 아래서는 그 어떤 일을 저질러도 아무 탈이 없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아니겠는가.
전 대통령을 죽였음에도 지금 이렇게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있는데.
강관웅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기사는 많았지만, 그건 모두 칼 든 괴한에 대한 이야기였다.
임현일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임현일이 90대 고령이었던 강관웅의 수술을 맡아 얼마나 긴장했을지 걱정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증거 3부터 11까지는 임현일하고 주고받은 대화들이 대부분이에요.”
증거 2 파일 재생이 끝나자 정지민이 말했다.
“그냥 임현일하고 병원에서 만나면 반사적으로 녹음을 켰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다 싶으면 골라서 따로 저장해 놓은 느낌이어서, 오늘 대화랑 크게 다른 내용은 없었어요.”
[진실]“그럼 증거 12부터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어차피 증거 3부터 11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오늘 밤 방송 전까지만 들어 보면 된다.
“거기부터 사고 직전에 저장된 내용이 좀 충격적이어서요. 거기 먼저 들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지민이 우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