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
너희들은 변호됐다-6화(6/641)
이튿날 오후, 나는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공장으로 향했다.
“차영호 과장님 계십니까?”
“누구시죠?”
“차영호 과장님 아들입니다.”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에서 증기를 된 다음에야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생산 설비들과 가까운 곳에, 얇은 칸막이 하나로 만들어진 작은 방.
“주한이, 네가 웬일이냐?”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아버지는 나를 보며 활짝 웃으셨다.
이렇게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마주한 것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잠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2년 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다.
“웬일은요. 아버지 뵙고 싶어서 왔죠.”
“생전 한 번도 그런 말 않던 녀석이. 뭐 잘못 먹었냐?”
툴툴대시지만, 기분 좋으신 게 분명하다.
“주말인데 집에서 쉬지, 뭐하러 여기까지 왔어?”
“아닙니다. 쉬다가 왔어요. 바쁘신 거 아니면 자리 옮겨요, 아버지. 드릴 말씀도 있고.”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노동자로 일하셨고,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이후부터는 관리직이 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이따금 손이 바쁘면 직접 생산 라인에서는 일이 많았다.
자식뻘인 노동자들이 고생하는 걸 그냥은 두고 보지 못하겠어서 그러셨다고.
하지만 그 때문인지 아버지는 관절염에 2년간 고통받으셨다.
그 당시 관절염 환자들의 희망은 우신 그룹 계열사인 명화제약의 안트로졸뿐이었다.
안트로졸은 국내 출시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약품이었지만, 그 이듬해 엄청난 효과를 드러내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안트로졸을 출시하면서 명화제약은 상장에 성공했고,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안트로졸을 맞은 환자들이 부작용인 심장마비로 픽픽 쓰러져 나갔다.
“할 말이라는 게 뭐냐?”
본가로 아버지와 함께 돌아왔다.
어머니는 콧노래를 부르며 과일을 깎으셨다.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싱글벙글 어깨까지 들썩거리신다.
내가 얼마나 뜸했으면 이러실까.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나 역시 평생을 그 생각을 하며 살았으니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신 후, 어머니도 곧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그러니, 두 분과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 것도 무려 7년 만의 일이었다.
“아버지, 이제 일 그만하시고 쉬세요.”
“또 그 소리냐?”
검사가 된 후, 나는 아버지에게 공장을 그만두시라고 권유했다.
연세도 있으신 데다가, 이제 온전히 내 몫을 할 수 있으니 두 분이 쉬시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늘 정년까지는 어림도 없다고 하셨다.
“그러다 정말 건강 상하세요.”
“여보, 주한이 말 대로 해요. 의사가 당신 더 무리하면 관절염 온다고 그랬다며.”
“됐다니까 그러네. 너 장가가기 전까지는 어림도 없다, 이놈아.”
아버지는 완고하셨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10년 뒤의 미래에서 돌아왔고, 아버지는 2년 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걸 믿으실 리도 없고.’
“아버지, 더 이상 돈 안 버셔도 됩니다. 저도 이제 돈 많이 벌 거예요.”
“네가? 검사 봉급이 얼마나 된다고? 너 혹시 뒷돈 받고 그러는 거냐?”
아버지가 정색하며 물었다.
“아뇨. 저 사실, 대형 로펌에서 스카우트 제의받았어요. 로펌 들어가려고요.”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아버지의 반발은 예상한 대로였다.
무엇보다 ‘검사’ 아들을 뒀다는 자부심이 있으셨으니까.
“전부터 생각했던 거예요. 이미 계약도 했어요. 아시죠? 태광.”
“어머, 태광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거야?”
“네. 지금 버는 거 10배 가까이 받아요. 그러니까 생각해 봐 주세요.”
금전적인 걱정을 내려놓지 않으시고는 절대 일을 그만두실 분이 아니었다.
사무실 개업했다고 말하면 역효과가 날 게 분명해서,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태광 정도면 부모님도 이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곳이다.
이 정도면 걱정 내려놓으시겠지.
어머니는 좋아하셨지만, 아버지는 고민에 잠겼다.
“사표는 아직 안 낸 거냐?”
“냈습니다. 로펌하고도 계약했고요.”
“그런 중요한 일을 아비하고 상의도 안 하고…….”
“아. 됐어요, 여보. 잘됐지 뭘. 태광이면 돈도 엄청 많이 준다는데. 주한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엄마는 우리 아들 응원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화를 내실까 걱정했는지,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아버지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돈이 중요해, 당신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한이가 그렇게 하고 싶다잖아요.”
“너, 돈 때문에 그런 선택한 거냐? 애비 일 그만두게 하려고? 우리가 넉넉하진 않았어도, 없이 살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돈 때문에 그런 거면 사표 철회해 달라고 해라!”
“아뇨. 검사가 저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적성 문제예요.”
“끄응.”
아버지도 내 적성 문제라고 하니 할 말이 없으신 듯했다.
“그것 봐요. 당신도 적당히 해요. 애가 적성에 안 맞는다는데, 당신이 왜 그래.”
“네, 그러니까 아버지도 일 그만두세요. 저 장가보내려고 계속 돈 모으시는 거 알아요. 이제 안 그러셔도 돼요.”
“…….”
“전에 저 결혼하면 이 집 팔고 귀농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하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좀 보태드릴게요.”
“됐다, 이놈아. 아비도 돈 모아 둔 거 있어. 너한테 돈 한 푼도 안 받는다.”
됐다. 생각이 좀 기우신 듯하다.
“주한아, 걱정 마라. 네 아버지가 너 장가보내려고 일하시는 거지, 다른 이유 없었어. 안 그래도 관절 아프다고 죽는 소리 하셨는데 잘됐지, 뭐. 그건 그렇고, 저녁은 먹었니? 먹고 싶은 거 없어?”
“된장찌개요.”
어머니가 해 준 음식.
얼마 만에 먹는 건지 모르겠다.
“고작 된장찌개? 다른 거 더 없어? 다 해 줄게, 우리 아들.”
“……네. 없어요.”
다시 어머니와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 *
본가에서의 시간은 꿈처럼 빠르게 흘렀다.
내 밥그릇 위에 생선을 발라 놓아주는 어머니, 고기반찬이 맛있다며 내게 그릇을 슬쩍 밀어 주는 아버지.
이 행복이 영원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한아, 김치 좀 가지고 가라. 응? 낙지젓갈도 잘 먹던데. 그것도 좀 싸 줄까?”
“괜찮아요. 집에서 밥도 거의 못 먹어요.”
“그건 검사 때 그랬고. 이제 로펌 다니면 시간도 널널해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변호사 돼도 바쁜 건 마찬가지예요.”
“그래? 그래도 좀 가져가지…….”
자꾸 종이 가방에 이것저것 담아주시는 걸 더는 거절할 수 없어서, 그대로 받아 들었다.
두 분 모두, 내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것까지 계속 지켜보셨다.
“갈게요.”
“그래, 주한아. 또 와. 이렇게 가족끼리 밥 먹고 그러면 얼마나 좋니?”
“네.”
“어서 가라. 그리고 일도……. 그래, 네 말대로 하마.”
그래도 고집을 피우시며 며칠은 애타게 하실 줄 알았더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하기는.”
“이제 정말 가 볼게요. 그리고 건강 검진 예약해 놓을 테니까, 꼭 받으시고요.”
아버지가 관절염에 시달리시게 된 것은 몇 달 뒤의 일이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아마 지금쯤이면 조금 진행되어 있을 확률도 높다.
그 전에 치료받으시면서, 안트로졸을 맞지 않으시게 해야 한다.
“알았다니까, 몇 번을 말하냐. 난 괜찮지만, 네 엄마한테 전화 자주 해라.”
“두 분한테 자주 드릴게요. 얼른 주무세요.”
“너 가는 것만 보고.”
어머니가 양손 가득 들려 준 종이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어머니가 끈질기게 손을 흔들었다.
“후우.”
문이 닫히자마자 복잡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부모님을 뵙고 나니 나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일들이 더욱 피부에 와닿았다.
두 분을 뵙고 나면 마음이 약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착오였다.
오히려 이런 행복을 나, 아니, 그들의 횡포에 고통받은 모든 약자들에게서 빼앗아 간 우신에의 투지가 더 불타오른다.
10년 동안 벌어질 일들도, 내가 그간 조사해 왔던 우 신 그룹의 핵심 정보들도 모두 알고 있다.
심지어는, 말도 안 되는 능력까지 손에 넣었다.
‘이번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손에 넣어야 할 것.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할 모든 것.
나는 2008년에 뚝 떨어진 이래로 치열하게 세웠던 모든 계획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