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01)
너희들은 변호됐다-601화(601/641)
“아니, 왜 대답이 없냐고요!”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 우리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정지민의 모습은 오늘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처음 그가 최재훈이 살해당한 거라는 사람들의 주장은 말이 안 되지 않냐고 물었을 땐, 이 녹음 파일에 이렇게까지 상세한 내용이 들어 있는 줄은 몰랐다.
아마도 정지민은 최선을 다해서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던 듯하다.
사람들의 말이 맞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정지민 씨.”
강민재는 곁에 놓여 있던 카메라를 정지시킨 뒤 조봉준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가스 폭발 사고가 인위적으로 일어난 사고라고 하더라도, 정지민 씨가 잘못한 건 없어요.”
“…….”
“사고가 정지민 씨 때문에 일어난 건 아니잖아요.”
“제가……. 제가 사람 죽이면 떠날 거라고 해서 최재훈이 거절한 걸 수도 있잖아요. 마, 마, 마지막 파일에서 최재훈이 혼자 중얼거리는 거 못 들으셨어요? 그냥 한다고 할 걸 그랬나, 그러잖아요. 저 때문에 거절해서 그 새끼들이 최재훈 죽인 걸 수도 있잖아요!”
녹음 파일을 들은 직후부터 좀 전까지 이어 오던 현실 부정도 더는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정지민은 자신 때문에 최재훈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는 카메라를 흘긋 보더니 떨리는 손으로 강민재의 재킷을 벗었다.
그러자 강민재가 말했다.
“그 뒤에 한 말은 못 들으셨어요? 최재훈 씨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런 걸 하냐고 했잖아요. 정지민 씨가 아니었더라도 최재훈 씨는 거절하셨을 겁니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아요. 그리고 기조실장, 그 씹새끼 하는 말 좀 봐요. 제가 최재훈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헤어지라잖아요. 그럼 최재훈은 마지막 순간에 제가 개새끼라는 걸 알고 죽었겠죠? 그러니까……. 하, 마지막이 너무 좆같잖아요. 그 기조실장 새끼가 최재훈이 저를 존나 패고 그랬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래서 그것 때문에 최재훈이 헐레벌떡 택시 잡아서 집으로 달려간 거잖아요. 그러니까 죽은 거잖아요.”
정지민이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강민재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그 역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그 대상이 정지민 씨가 아니었더라도 최재훈 씨는 그렇게 했을 겁니다. 평범한 애인과 건전한 관계에 있었다고 해도, 오준홍이 도청 장치를 설치해서 사생활을 침해한 거잖아요. 놀라는 게 당연하고, 확인하고 싶은 게 당연합니다. 심지어 동성애자라는 건 우리 사회에서는 큰 약점이잖아요. 당연한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정지민 씨가 사람 죽이는 것만 아니면 안 떠나겠다고 한 것도, 너무 당연한 말이에요. 최재훈 씨가 먼저 물었잖아요.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물었어요. 그 상황에서 누가 사람 죽여도 곁에 남겠다고 합니까.”
조봉준도 한마디 보탰다.
같은 인간으로서 충분히 죄책감을 가질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지지 않아도 될 짐을 지려고 한다는 것만은 명확했다.
“자책하지 마세요. 정 죄책감이 떨쳐지지 않는다면 최재훈 씨의 사고가 인위적으로 일어났고, 그 배후에 우신이 있었다는 게 세상에 드러나서 최재훈 씨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기를 바라기로 해요.”
강민재의 말에 정지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마음의 심연으로 들어가고 나면 이런 말들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정지민은 축축해진 눈가를 닦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촬영은 다 하셨죠?”
“아, 네. 혹시라도 걱정되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박수 치면서 편집점 잡은 곳 외에도 최재훈 씨와 정지민 씨의 개인 정보나 사생활이 드러날 만한 내용들은 전부 자를 겁니다. 특히 오준홍이 정지민 씨에 대해서 말한 곳도 음소거 처리할 거고요. 오준홍이 최재훈 씨 집에 도청기를 설치해서 사생활을 확인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네. 알아서 잘해 주시겠죠.”
“정지민 씨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오준홍이나 임현일 쪽에서도 먼저 최재훈 씨 사생활 언급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면 그쪽은 정말 파국이라서.”
조봉준의 설명에 정지민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민재의 셔츠까지 벗어 놓고 일어났다.
“그럼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지민이 떠난 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진술한 내용을 들으며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최재훈이 임현일에게 전화로 ‘어떻게 그런 수술을 시킬 수 있냐’며 따진 것은 9일이었고, 그가 사망한 날짜는 12일이다.
그가 최초로 거절 의사를 밝혔을 때로부터 3일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최재훈을 죽인 것이다.
우신이 그 3일 동안 최재훈이 다른 데에 발설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기에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 내용을 들으니, 최재훈이 진짜로 거절 의사를 밝힌 것은 11일이었고 우신은 도청을 통해 철저하게 발설에 대비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 새끼들 최재훈 씨한테 장기 적출 수술을 지시했던 날부터, 아니……. 그 전부터 최재훈 씨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 같지 않아요?”
강민재가 입을 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고, 조봉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자, 강민재가 눈썹을 팍 찌푸리며 말했다.
“살해 방법을 결정한 후부터는 언제 빌라 거주자들이 가장 많이 자리를 비우는지도 꾸준히 체크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시간에 맞춰 최재훈한테 그딴 소리를 한 거죠. 집에 가 볼 수밖에 없게 만들려고.”
“아주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인 줄 알아, 이 개새끼들은.”
조봉준이 이를 갈았다.
* * *
[MOONBUCKS : 와……아기다람쥐종현 : 할말을 잃음
cownew : 돌았나…
아폴론신봉자 : 이새끼들 존나 본격적이었네
lee min young : cownew 1주일째 입장 안내고 있는데 진짜 핵폭탄이라서 어떻게 빠져나가야할지 재느라 못하는거구나
ㅗ명화제약ㅗ : 와… 걍 평범한 의사한테 장기매매ㄱㄱ? 한다음에 싫다하면 죽여버린거잖아;
최소영 : 저 친한 동생분 멘탈 걱정되네요… 녹음파일 듣고 엄청 놀라셨을 것 같은데..]
성수용이라는 가명을 쓴 정지민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건넨 녹음 파일 재생이 끝나자, 전처럼 ‘ㅋ’을 연사하거나 장난을 치는 시청자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간 우리가 보도한 내용 중에 실제로 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도 그렇고, 소은도 그렇고 죽을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멀쩡히 살아 있지 않은가.
실제로 우신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을 주제로 다룬 건 이정찬 한 명이었다.
그마저도 온갖 비리를 저지른 것이 탄로 난 직후였기 때문에 채팅창 분위기가 엄숙해지지는 않았다.
최재훈이 정지민에게 휘두른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가 우신의 야욕에 희생된 사람임에는 변함없다.
“여러분, 저 녹음 파일은 12일 오후 2시 11분부터 시작되었고, 18분 정도 녹음됐습니다. 녹음이 끝난 시점은 최 씨가 택시에 탄 직후예요. 그리고 병원에서 최 씨의 집까지는 차로 15분 내외 걸립니다. 교통 상황에 따라 플러스 마이너스는 있겠지만, 여기까지 더해도 2시 44분이죠? 그리고 피해자가 집 앞에서 내려서 3층까지 올라가는 데 한 3분 걸린다 칩시다. 그럼 2시 47분이죠. 사고 시간 언제예요?”
최종현은 가스 폭발 사고를 보도한 기사에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정확히 2시 56분에 사고가 났습니다. 그럼 피해자가 집에 간 지 10분도 안 돼서 폭발한 겁니다. 당시 가스 폭발 사고 현장과 관련된 기사 몇 개 같이 볼까요.”
최종현은 기사 캡처본 몇 개를 열었다.
가스 냄새를 맡았다는 사람이 없고, 현장 가스 농도가 매우 높았다는 내용이었다.
“현장 감식 결과 가스 배관이 인위적으로 훼손된 흔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뭐 어디서 샜다든가, 그런 게 있어야겠죠. 근데 가스 배관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도 없어요. 저희도 가스 폭발 사고의 구체적인 원인을 담은 기사는 없는지 열심히 찾아봤거든요?”
최종현은 기사 캡처본의 글자들을 확대해서 보여 주었다.
“그냥 가스 배관에서 좀 샌 것으로 추정되고, 집 안에서 담배꽁초가 다수 발견됐다는 말밖에 없더라고요. 빌라 내부에 CCTV는 없었고, 확인할 수 있는 건 공공 CCTV뿐이었는데요. 수상한 정황이 포착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별다른 얘기가 없어요. 폭발 때문에 사망자 휴대폰도 완전히 죽었답니다. 가스가 샌 집 안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서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두루뭉술하게 추정하고 있어요. 그래서 정확한 원인을 모릅니다. 그냥 추정 수준에서 수사가 종결됐어요. 경찰이 재수사한다고 했으니 조만간 얘기를 들을 수는 있겠죠? 근데 문제는 이겁니다.”
기사 캡처본 위에 노란색 형광펜이 그어졌다.
“냄새를 맡은 사람이 아무도 없답니다. 여기 도시가스 써 본 사람이 엄청 많을 텐데. 가스 냄새 다들 아시죠? 원래 가스라는 게, 무색무취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부취제라는 걸 첨가해서 냄새를 넣는 거예요. 가스가 새면 인지할 수 있도록. 물론 부취제를 안 넣는 가스도 있죠. 근데 그건 우리 일상생활 반경에선 안 쓰입니다.”
[ㅗ명화제약ㅗ : 그럼 일부러 냄새를 못 맡게 하려고 부취제 안 넣은 가스를 썼다는거임?테디베어 : ㄷㄷㄷㄷㄷㄷㄷㄷ
차주한 : 소름돋네 진짜
잘생긴변호사재출연시켜.. : 하긴 그렇게 큰 폭발이 일 만큼 집에 가스가 많이 샜으면 그 사망한 의사 그분도 냄새가 나니까 이상하다고 느꼈겠죠
최종현의가발 : 그니까 냄새가 안나게 해서 인지 못하게 한다음에 폭발시켰다?]
정지민에게서 받은 파일은 어디까지나 정황이었다.
최재훈의 사망 전후에 이런 일이 있었고, 사망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실마리 정도.
이 파일 가지고는 가스 폭발 사고가 우신의 장기 매매 계획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작이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걸 방송에서 공개하는 까닭은, 경찰에게 턴을 넘기기 위해서다.
첫째로는 그들이 그간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장기 매매를 준비해 왔는지 세상에 알려서 국민이 경찰을 압박하게 만드는 것.
둘째로는 광수대로 옮겼다고 하더라도 수사 범위가 넓어 필연적으로 좌고우면할 경찰을 위해 수사 범위를 제시해 주는 것.
이 두 가지 목적이다.
“거기에 더해서. 폭발이 일고 나서 사고 현장 가스 농도를 재 보니까 가스 농도가 높았답니다. 그러니까 불이 붙어서 폭발이 일었는데도 불구하고 가스가 남았다는 뜻이죠? 그렇다는 건, 그만큼 가스가 많이 샜다는 뜻이고요. 근데 어떻게 냄새 맡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까?”
“기사에서 담배꽁초가 사고 원인인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죠? 그럼 최 씨가 집에서 도청기 찾고 나서 열받아서 담배를 피우기로 했다고 치자고요. 근데 가스 냄새가 났으면 담배를 피웠을까? 안 났으니까 피운 거 아니겠어요?”
“그쵸. 부취제는 역한 냄새가 나도록 만듭니다.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게 해서 가스가 새면 알아채도록 하는 게 목적이니까. 그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럼 가스 냄새가 집에서 안 났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리고 냄새가 안 났다는 건, 일상생활에서 구할 수 없는 가스를 누군가가 그 집에 넣어 놨단 소리 아닙니까?”
[최종현의가발 : 그 집에 가스가 가득 있었다 = 사실최종현의가발 : 냄새가 안 났음 = 부취제 안 넣은 가스 일상생활에서 어케 구함? 누군가가 넣어 놓은 거임
최종현의가발 : 냄새가 났음 = 근데 담배에 불을 왜 붙임? 담배가 아니더라도 불을 왜 씀?
최종현의가발 : 이거네ㅋㅋㅋㅋㅋ]
채팅을 지켜보던 최종현이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최종현의 가발, 정답. 물론 저는 가발이 아니고 다 제 머리입니다만, 어쨌든! 이래도 타살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