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08)
너희들은 변호됐다-608화(608/641)
“아이고, 변호사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방송이 끝나고 대박집으로 갔을 때는 오후 8시 반경.
최종현과 조봉준이 목표했던 때보다 한 시간 이른 시각이었다.
그들은 마무리와 스튜디오 정리를 하고 오겠다고 해서 나와 강민재, 그리고 오 사무장이 먼저 대박집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장이 나를 반겼다.
“안녕하셨습니까.”
“친구분은요? 의사 선생님 있잖아요. 잘 지내시죠?”
“잘 지냅니다.”
“전에는 같이 자주 오시더니. 그래도 오셨으니 마침 잘됐습니다. 오늘은 제가 싹 다 서비스로다가 모시겠습니다. 흐흐.”
“서비스요?”
“네. 그냥 마음껏 드시고 가십쇼. 제가 변호사님한테 안 그래도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만 있었어요.”
내가 대박집 사장에게 언제 은혜를 입혔다는 거지.
“몇 년 전에 저한테 하신 말씀 기억 안 나세요? 자식놈들 너무 믿지 말고 퍼 주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니 기억이 난다.
내가 이번 삶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들들이 말아먹은 사업 메우느라 끝내는 대박집까지 넘겼던 게 떠올라서 지나가듯이 한 말이었다.
“작년인가 자식놈들이 사업한다고 대박 아이템이라고 난리를 피워서 도와줄까 하다가, 변호사님 말씀이 갑자기 확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안 도와줬는데, 그게 알고 보니까 사기였더라고요. 얼마 전에 뉴스도 크게 나고 그랬다니까요.”
“제가 그 사업이 뭔지 알려 드린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듯이 한 말이었습니다. 서비스는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변호사님이 그런 말 안 했으면 솔직히 도와줬을 겁니다. 변호사님이 투자도 잘하시고, 손대는 것마다 오르고, 엄청 똑똑한 분이라고 들어가지고 변호사님 말씀 들어서 나쁠 건 없겠다 해서 들은 거라니까요? 변호사님이 그런 말씀 안 해 주셨으면 돈 몇억은 잃었을 겁니다.”
구체적으로 아들이 무슨 사업을 할 거라고 말해 줬으면 얻어먹을 법도 한데,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 괜히 시선 끄는 것보다는 나중에 몰래 현금을 놓고 나와야 할 것 같다.
“형님들 아직 출발 안 했대요. 정리할 게 많은가 봐요. 민우 형이 먼저 오겠는데요?”
강민재가 휴대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방송 직후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 괜히 목격되고 싶지는 않아서 일부러 룸석을 잡았다.
그러다 보니 허민우도 와도 되지 않을까 싶어 연락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되는 모양인지 오겠다고 했다.
“저 왔습니다.”
그때, 허민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양반은 못 되시네.”
오 사무장이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허민우를 보며 웃었다.
“제 얘기하고 계셨어요?”
“형이 먼저 올 것 같다고 얘기하고 있었죠. 근데 형, 왜 반쪽이 된 것 같아요? 요즘 밥 잘 못 챙기세요? 하루에 두 끼는 드시죠?”
“밥? 요즘 하루의 구분이 모호해져서 내가 하루에 몇 끼를 먹는지도 모르겠어.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는 날도 많고…….”
“그렇게 바쁘신데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시간이 나셨네요.”
“본부장님이 왜 항상 올 때마다 제가 있는 것 같냐고 근무 일지 확인해 보시더니 집에 가라고 등 떠미셔서요.”
“그, 현병주 총경. 그분 맞죠?”
“네.”
“그래도 잘 챙겨 주시나 봐요.”
“예쁘게 봐 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 주문 얼른 하죠? 배고파 죽겠습니다.”
허민우가 메뉴판을 펼치며 말했다.
우리는 오늘 허민우에게 연락하면서도 그가 오지 못할 확률이 높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찰은 브리핑에서 NP와 BB1이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수사 중이라고 했고, 오늘 우리가 방송에서 그게 누구인지 터트렸기 때문이다.
“경위님 공깃밥 하나 하세요. 빈속에 바로 기름 넣긴 좀 그렇잖아요. 곱창전골 하나 같이 해서요.”
오 사무장은 검찰에 있던 시절이 생각났는지, 허민우를 특히 신경 쓰는 기색이었다.
“그럴까요.”
강민재는 능숙하게 주문을 마친 뒤, 직원이 가져다준 술잔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저는 술 안 하겠습니다. 오늘 방송에서 큰 거 터트리셔가지고 내일 엄청 바쁠 것 같거든요. 저는 콜라 하나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방송에서 NP, BB1이 고상준하고 고윤수인 걸 밝혔다고 해도 바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순 없지 않습니까?”
오 사무장이 잔에 맥주를 콸콸 따르며 물었다.
허민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거 가지고 피의자로 부르기엔 좀 모자라고요, 참고인으로 불러야 합니다. 내일 출석요구서 보내지 않을까 싶어요. 의료진들 계좌 추적 작업이 한창인데, 출석요구서 보내기 전에 거기서 고상준하고 고윤수가 걸려 주면 피의자로 바로 부를 수도 있겠죠.”
“아무래도 안 걸리겠죠?”
오 사무장의 물음에 허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임현일하고 오준홍은 배당금 형태로 돈을 받았더라고요. 고상준하고 고윤수 이름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배당금이라면, RND에서요?”
“아뇨. 정확히는 RND의 주식을 갖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입니다. 그 페이퍼 컴퍼니의 주식을 오준홍하고 임현일이 나눠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배당금의 배당금인 거죠. 복잡하죠?”
“그러네요.”
“KDL 때는 지분 구조가 이정찬하고 L&B로 단순하게 나뉘어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복잡하게 꼬아 버렸고요. 저희도 좀 골 아프긴 한데……. 그래도 오준홍 외환 거래 내역에서 뭐가 좀 나와 줘서 다행이었죠.”
“뭐가 나왔습니까?”
“RND 주식을 갖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의 배당금을 해외 계좌로 받았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국내 은행 통해서 한화로 바꾼 뒤에 부동산을 매입했습니다. 무려 건물주더라고요. 어쨌든 RND를 통한 현금 흐름이 확인됐으니 한시름 놨죠.”
한마디로 RND가 리본 의료원의 토지 주인일 뿐만 아니라, 오준홍과 임현일에게 대가를 지급했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그간 RND가 고상준 소유의 회사라는 게 드러난다고 해도, ‘토지만 빌려줬을 뿐이고 거기서 장기 매매를 할 줄은 몰랐다’는 식의 핑계를 댈까 염려하고 있었는데.
적어도 이 방법은 불가능해졌다.
“그래도 RND의 실소유주를 파악해야 한다는 과제는 남아 있긴 한데.”
허민우가 덧붙였다.
고상준과 고윤수가 장기 매매를 직접적으로 지시했다는 증거는 다른 데서도 얻을 수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단지 장기 매매에만 있는 게 아니다.
고상준이 조성한 막대한 비자금을 찾아내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다.
L&B와 KDL컴퍼니만으로도 그의 횡령과 탈세 혐의는 입증되겠지만, 그 두 법인은 현재 폐업 상태 아닌가.
그들이 RND로 옮겨 같은 짓을 아직까지도 반복하고 있음을 입증하려면 RND의 실질적 소유자가 고상준인 걸 밝혀야 한다.
게다가 L&B와 KDL컴퍼니보다 RND에 잠든 돈이 훨씬 많을 테고.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하니, 그 돈 좀 뜯어낸다고 고상준이 곤궁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최대한 많이 뜯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최 기자님이 IAIJ에서 자료 받은 거 파악 중이니까, 거기서 뭐가 나올 겁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오 사무장의 말에 허민우가 한숨을 쉬었다.
“거기서 결정적인 데이터가 나와 주면 고맙지만, 안 나올 수도 있잖습니까. 그것만 믿고 손 놓고 있기가 좀 그렇네요.”
이전 삶에서 IAIJ에서 입수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차명 계좌와 페이퍼 컴퍼니 실소유주 명단에 고상준은 없었다.
그 명단에 고상준의 이름이 들어가게 된 건, 이번 삶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명단 속에 든 데이터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알고 있다.
이전 삶에서 그 안에 고상준 이름이 없을까 싶어 관련 기사를 빠짐없이 보았고, 관계자도 만나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언할 수 있다.
고상준이 RND를 소유했다는 건 분명히 입증된다.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고상준, 우신 복지 재단, 재무 관리자들을 수사하다 보면 RND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신 복지 재단이 KDL로 토지 임대료 수천억 넣은 것도, L&B가 고상준 명의 페이퍼 컴퍼니인 것도 이미 밝혀진 사실이니까요. 최 기자님이 대표로 RND가 KDL컴퍼니 후신이라고 고발도 해 주셨고요.”
“장기 매매 건으로 고상준을 피의자로 만들진 못해도, 비자금 조성, 횡령 건으로는 만들 수 있네요.”
“그렇죠. 그런데 만일 계속 연결고리가 안 나와 주면 수사가 분리될 겁니다. 저희 수사본부는 장기 매매 수사를 위해 발족된 거니까요. 고상준 횡령 및 탈세 수사는 따로 유관 부서로 넘어가겠죠. 그래서 분리되기 전에 얼른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연결고리가 나와 줄까요? L&B하고 KDL을 예전에 방송에서 한 번 다뤘잖습니까. 그래서 우신도 빨리 정리하고 RND로 다 넘긴 거고요. 그때 한 번 싹 정리하지 않았을까요.”
오 사무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RND하고 KDL컴퍼니 연결고리가 안 나올 거라고 확신하니까 입장 발표 때 장기 매매는 재단 차원에서 저지른 게 아니라고 그렇게 큰소리를 쳤겠죠. 그래도 관계자들 털다 보면 뭐 하나는 나오지 않을까요?”
아무리 완벽하게 법적 처벌을 회피할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고 해도, 결국 그 시스템을 다루는 건 인간이다.
그간 대한민국을 스쳐 갔던 수많은 경제 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났던 까닭도 마찬가지다.
시스템 관리에는 성공했어도, 인간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임원 중 몇 명은 해외 계좌 임의 제출하라고 하면 할 겁니다. 특경법이 워낙 무거워서.”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의 대다수는 걸리지 않을 거라는 처벌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막상 처벌의 순간이 다가오면 패닉에 빠진다.
모두 함께 입을 다물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결의해 놓고, 막상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 자신만은 살아남기 위해 입을 여는 상황도 흔하다.
흥미로운 건, 그 상황에서 ‘나만은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니면 변호사님이 수사본부의 수사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힘 좀 써 주셔도 되고요. 대통령님하고 통화한 지 오래되셨죠? 안부 겸 청탁 겸 전화 좀 드려 보는 건 어떨까요.”
허민우가 손으로 수화기 모양을 만들며 귀 옆에서 흔들어 보였다.
내가 잠시 대답하지 않자, 그가 크게 웃으며 덧붙였다.
“하하, 농담입니다.”
[거짓]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수사에서 안 나와도, IAIJ 데이터베이스 안에 있을걸요.”
그때 입을 다물고 있던 강민재가 한 마디 보탰다.
그의 시선이 묘하게 나를 향해 있었다.
“그쵸, 변호사님?”
요즘 조용하다 했더니, 또 강민재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차주한 외계인설에 불이 붙은 모양이다.
하긴, 강민재가 의심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던 내가 최종현에게 어떤 단체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는데, 하필이면 그 단체에서 우리가 원하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으니.
솔직히 나는 최종현이 그날 키리하라 사치코를 만나고 돌아와서 “차 변은 그냥 무당이 아니라 만신이야!”라며 호들갑을 떨 때도 강민재가 입을 다물고 있길래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역시 혼자서 내 설계였음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똑똑.
그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이 준비된 음식을 가져와 불판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저희가 굽겠습니다.”
강민재는 집게와 가위를 넘겨받고 다시 직원을 내보냈다.
그리고 허민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여튼, 지금 단계에서는 브리핑이나 보도 자료들은 장기 매매 위주로 돌리라는 게 윗선 지시라 그쪽에 치중되어 있을 뿐입니다. 페이퍼 컴퍼니하고 해외 계좌 추적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등한시하지 않아요.”
“경찰이 등한시한다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어차피 장기 매매 수사를 하다 보면, 대가를 지급하고 지급받은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페이퍼 컴퍼니와 계좌, 최선을 다해서 파악한 다음에 특검팀으로 토스하겠습니다. 어차피 이런 건 특검팀 전문 분야 아닙니까?”
“토스라뇨. 허 경위님도 특검팀 오셔야죠.”
“어우, 싫습니다.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허민우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구워진 대창을 앞접시로 옮기며 중얼거렸다.
“컵라면만 먹는 생활 지겹습니다.”
지이이잉.
허민우가 대창 위에 소스를 올리는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처럼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는 상황이라 웬만하면 전화를 안 받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는 무심한 눈으로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다,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았다.
“어, 왜? ……뭐라고?”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강민재와 오 사무장 역시 허민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알았어. 지금 갈게. 한 20분 걸릴 거야.”
“무슨 일이에요?”
전화가 끊기자마자 강민재가 물었다.
허민우는 대답 대신 젓가락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말했다.
“김수찬, 공원호 기억하십니까? 현장에서 잡혔던 전략실 사람들 말입니다.”
“네. 아직 아무것도 진술하지 않은 상태 아닙니까?”
“그랬죠. 그런데 입을 열었다네요.”
“갑자기요? 이 늦은 시간에?”
“……네. 전화가 왔답니다.”
그는 오 사무장에게 대답하며 벗어두었던 겉옷에 팔을 꿰었다.
목소리는 낮아져 있었다.
방송에서 NP와 BB1이 고상준과 고윤수라는 걸 밝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이 상황에 고상준과 고윤수의 수족이었던 둘이 지금 할 말이라면, 뻔하지 않은가.
“장기 매매 본인들이 사주했다고 자수했답니다. 일단 얼른 가 보겠습니다. 상황 파악 먼저 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허민우가 급하게 룸을 떠났고, 우리는 짠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