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17)
너희들은 변호됐다-617화(617/641)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나는 열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강민재는 로비 층 버튼을 누르며 물었다.
“무슨 말이요?”
“고윤수가 헛소리 지껄이는 동안 왜 아무 말도 안 했냐고.”
“저보다는 변호사님이 더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아서요. 같은 공간에 있는 1분 1초가 역겨운데 저까지 같이 떠들면 더 오래 있어야 하잖아요.”
그는 장난스레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보다는 강 변이 더 할 말이 많았을 텐데.”
강민재는 우신에 의해 이 땅에 남은 유일한 친족 강관웅을 잃었다.
반면에 나는 이 삶을 시작하면서 부모님을 구했다.
결과적으로 이 삶에서 사람을 잃은 건 강민재뿐이었다.
“다들 이어폰 있어요?”
그때 강민재가 직원들을 돌아보며 뜬금없는 말을 했다.
“갑자기요?”
태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더니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직원들도 쭈뼛쭈뼛 주머니에서 줄이 엉킨 이어폰을 꺼내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민재가 자신의 휴대폰을 톡톡 쳤다.
“모두 이어폰을 낍시다. 그리고 휴대폰에 연결하고 본인이 아는 가장 시끄러운 노래를 고막이 상하지 않을 정도의 음량으로 틉시다.”
강민재의 갑작스러운 주문에도 직원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정말로 크게 틀었는지 이어폰 너머로 온갖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준비가 끝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강민재가 그들 앞에 서서 말했다.
“태식 씨가 돈 없어서 여러분 급여 삭감할 거래요. 아까 그랬어요.”
그리고 없는 말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태식도, 직원들도 반발하지 않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강민재를 보고만 있었다.
강민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뭐 하는 거야?”
“변호사님 비밀 지켜야 하니까요.”
“비밀?”
“결과적으로 가족을 잃은 건 저뿐이라고 생각하실 테니, 변호사님이 보기에 우리 둘 중 더 할 말이 많은 건 저여야겠죠. 다행히 이 우주에선 변호사님도, 변호사님 부모님도 정말 건강히 잘 계시니까요.”
“…….”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도 변호사님이 기억하시는 건 다르잖아요. 그 기억 속에서 우신은 부모님도, 변호사님마저도 살해했어요. 변호사님은 그 기억을 벌써 4년도 넘게 갖고 계시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제가 더 할 말이 많아요.”
강민재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느덧 최상층에 있던 엘리베이터는 로비층에 다다랐다.
문이 열리자, 강민재가 직원들 앞에 서서 이어폰을 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직원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입 모양으로만 ‘뭐라고요?’하고 끔뻑였다.
강민재의 말이 안 들릴 뿐인데 왜 본인들이 음소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이어폰 빼라니까요!”
나는 한숨을 쉬며 덤앤더머들을 놔두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 * *
[日의원 오다 사토시 사퇴, “국민에게 폐를 끼쳐 죄송”] [오다 사토시 “결단코 녹음한 적 없어”] [“도청당했다” 오다 사토시의 뒤늦은 항변] [‘녹음 절대 안 했다, 명백한 도청’ 음성 파일 진실 공방]당연하지만, 오다 사토시는 사퇴와 동시에 도청을 주장했다.
본인은 떳떳하기에 일본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겠다고도 밝혔다.
재미있는 건, 한국보다 일본이 더 오다 사토시의 도청 주장에 야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다 사토시가 직접 자신의 집 컴퓨터를 들고 경찰서로 들어가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게 포착되었는데,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는 유머 자료로 쓰인다고 한다.
도청 의혹과는 별개로 녹음 파일의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오노데라가 한국에 와서 조사받으라는 권고를 무시하자, 경찰도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입국 요청한 지 시일이 얼마 흐르지 않았음에도 벌써 인터폴 적색 수배를 언급한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수사본부에는 인력이 충원되었고, 경정급 인사도 추가로 3명이나 파견되었다.
수없이 많은 전략실과 우신 복지 재단 관계자들에게 소환장이 날아갔다.
[고상준·고윤수 父子 집무실 하드디스크 교체됐다] [총수 일가 증거 인멸 시도?] [포렌식에 대비한 하드디스크 교체] [우신, PC 고장으로 교체했을 뿐] [고상준, 건강 이상으로 경찰 출석 불가 통보] [고윤수 소환 일자 조율 요청] [고윤수 경찰 소환 일주일 연기… 시간 버나?]당연하게도, 고상준은 경찰 출석을 앞두고 서울 우신 병원에 입원했다.
효자인 고윤수도 아버지를 돌본다는 명목으로 소환 일자를 미뤘다.
나이 든 정재계 인사들이 조사를 앞두고 병원에 실려 가는 건 없으면 아쉬운 수준의 행사다.
하지만 그가 너무 오래 누워 있는 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일정을 미뤘다고 해도 고상준보다 고윤수가 먼저 조사를 받을 것 아닌가.
고윤수도 첫 소환에서부터 유의미한 진술을 하진 않겠지만, 시간이 흘러 증거들이 더 쏟아지면 그는 고상준을 배신할 테니까.
나를 만나서 씨알도 안 먹히는 헛소리를 하며 협상을 제안한 것만 봐도 그려지는 미래다.
경찰에 제대로 혐의 부인도 못 해 보고 아들에게 뒤통수를 맞으면 후폭풍이 클 것 아닌가.
[도청 파일, 증거 능력 있나?] [法전문가 “도청이 맞다면 증거 능력 상실할 것”] [경찰, 입수한 파일에 도청 흔적 없어] [수사본부, 음성 파일 적극 활용할 것]그리고 또다시 시간은 빠르게 흘러 고윤수가 애써서 번 1주일이 지났다.
고윤수의 경찰 출석 당일인 오늘, 유난히 도청 파일의 증거 능력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전 국민이 고윤수가 과연 혐의를 인정할지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고윤수가 피의자로 전환된 것도 녹음 파일 때문이니, 그의 인정 여부도 파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그러나 정작 고윤수는 지금 혐의를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크게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나와의 합의가 결렬된 고윤수가 지금 당장 우선시해야 하는 사항은, 김미자와의 협상 시도다.
물론 그것도 연락이 될 때의 이야기지만.
* * *
“김미자 연결은 언제 되는 겁니까.”
서울 경찰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고윤수가 조수석에서 앉은 비서에게 물었다.
“면목 없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시도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지금 계속 그 말만 하는 거 알고는 있죠?”
‘이 사람 연결해’ 한마디면 대통령이 아니고서야 그 누구와도 한 시간 안에 대화가 가능한 삶을 살아온 고윤수로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확실히 우신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시스템이 삐걱거리다 못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다.
“죄송합니다.”
“씨발, 죄송하다는 소리밖에 못 하나.”
어차피 장기 매매 폭로는 이미 벌어진 일이다.
물적 증거가 나올 확률은 거의 없고, 음성 하나만 가지고는 법정에서 유의미한 판결을 이끌어 내기 힘들다.
대중은 반발하겠지만, 원래 재판부는 욕받이 아닌가?
조사 때도 적당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버티면 그만이다.
지금 우신이 최우선해야 할 과제는 하나.
김미자의 성매매 폭로를 막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과 법적 책임을 전부 감수하더라도 모든 것을 폭로하기로 한 것 같다.
출장을 가장해 출국해서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폭로가 시작되면 그건 단순한 성상납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건의 팽창을 막을 수 없다.
“반드시 진전된 내용으로 보고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틀에 박힌 말 하게 할 겁니까.”
“…….”
“누구나 최선을 다합니다. 중요한 건 잘하는 거지.”
지금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김미자의 학력 위조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박사 학위는 고사하고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다는 게 밝혀지면 어떨까.
우아한 이미지로 일본 여성들의 동경을 받았던 그녀의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이라면.
그녀가 공식 석상에서 했던 말 중 자극적인 거짓말들을 솎아내고, 무식해 보이는 모습이나 일화를 인터넷에 뿌리면 사람들은 신나게 달려들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그녀에게 병적인 허언증이 있다는 낙인을 찍으면 꽤 해 볼 만한 싸움이 된다.
아무리 오다 사토시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사람들은 병적인 허언증 환자보다는 그를 더 믿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김미자가 공개한 음성도 도청으로 볼 가능성이 커진다.
동시에 문제가 두 개나 해결되는 것이다.
“경찰청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15분 남았습니다.”
그런데 우신은 이 좋은 방법을 마음 편히 고를 수가 없다.
김미자가 성상납의 물적 증거를 수집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 매매와 다르게 성매매는 도청하지 않아도 요정 관리자인 그녀가 수집할 수 있는 증거가 너무 많았다.
도청은 수사기관이 아닌 사인私人에 의한 위법 수집 증거라고 하더라도 배제되지만, 그 외의 증거는 사정이 다르다.
그녀가 불법적으로 증거를 수집했더라도, 그녀를 병적인 허언증 환자로 만든다고 해도 증거만 멀쩡하다면 채택될 수 있다.
결국 그녀를 무턱대고 정신병자로 만드는 건, 쉬운 방법일 수는 있어도 좋은 방법은 아닌 것이다.
“대표님, 거의 다 왔습니다.”
“압니다. 입 다물고 가세요.”
하지만 성매매를 폭로하기 전에 김미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증거의 출처이자 증인인 김미자가 의사를 철회하면, 아무리 차주한이라도 해도 억지로 터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엄연한 사생활 침해이고, 분쟁의 소지가 있다.
무엇보다 윤리나 정의 따위에 목을 매는 차주한이 그런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다.
“대표님.”
“…….”
김미자가 성매매를 폭로하기 전에 어떻게든 접촉해야 한다.
아직 그녀에게는 본인도 모르는 선택지가 남아 있다는 걸 알려 줘야 한다.
여기서 멈춘다면 김미자는 공격당하지 않을 것이고, 추악한 과거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바를 이뤘는데 책임을 안 져도 된다는 건 심약한 김미자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유혹이다.
과연 그 여자가 뿌리칠 수 있을까?
“저, 대표님.”
“또 뭡니까.”
“도착했습니다. 이제 내리셔야 합니다.”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어느덧 도착했나 보다.
득달같이 기자들이 달려와 창문에 대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 댔다.
경찰 측에 요청한 비공개 소환이 거절되었을 때부터 예견했던 상황이다.
고윤수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안면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현재 심정이 어떠십니까?”
“오늘 혐의를 인정할 겁니까?”
“오다 사토시가 음성 파일이 도청된 거라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피해자들에게 할 말은 없나요?”
“증거 인멸 인정하십니까?”
고윤수는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기자들의 말을 흘려들었다.
기다리고 있던 경찰 몇 명이 새까맣게 몰려든 기자들을 정리했고, 고윤수는 겨우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마이크 뭉치가 놓인 곳까지 다가가 입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그리고 틀에 박힌 문장을 줄줄 읊었다.
바로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앞으로 약 1분간 사진 찍을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는 최대한 죄송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타악!
그때였다.
무언가 작은 물체가 쏜살같이 날아오는가 싶더니 고윤수의 어깨를 후려쳤다.
“우신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
“피해자들한테도 사과해!”
“무릎 꿇고 사과해!”
이것이 시작이었다.
기자들 틈에 섞여 있던 사람들이 날달걀을 던지기 시작했다.
탁! 턱! 타악!
어깨, 가슴, 팔에 날달걀이 수도 없이 날아왔다.
비위 상하는 액체들이 소매를 타고 끈적하게 늘어졌다.
“사과해, 개새끼야!”
“짐승만도 못한 새끼!”
곁에 있던 경찰들이 빠르게 다가와 고윤수의 몸을 낮췄다.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경찰청 안으로 이끌었다.
고윤수는 반쯤 끌려가다시피 경찰청 계단을 올랐다.
“으윽.”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짓눌린 채 이동하던 터라 계단에 발이 걸려 휘청였다.
고윤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탁! 타악!
너무 멀어 고윤수에게 닿지 못한 날달걀들이 바닥에 부딪혀 깨져 있었다.
사방에서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인정하고 사과해!”
어느덧 고윤수는 경찰청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그를 질타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그가 떠난 자리에조차 대중의 분노가 범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