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19)
너희들은 변호됐다-619화(619/641)
11일 전.
“아, 변호사님. 죄송합니다. 영장 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전화 온 줄도 몰랐네요.”
고상준과 고윤수가 피의자로 전환된 날이었다.
허민우가 집에 들어가지 못한 지도 3일이 흐른 시점이었다.
차주한에게서 몇 시간 전에 전화가 왔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많이 바쁘시군요.
“아무래도 그렇죠. 고상준하고 고윤수가 피의자로 전환됐으니 이제 더 바빠질 거고요.”
─그럼 바쁜 데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셨겠습니다.
“아, 그렇죠. 그리고 민재가 얼마 전에 한약도 보내 줘서 꽤 도움받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적응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조금 더 바빠지셔도 되겠네요?
“네?”
그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민우는 차주한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문역 여관에 있는 천종남을 납치해서 동해항으로 데리고 오라는 지시를 받아서 잡으러 갔는데, 누군가한테 그 장면을 목격당했다는 말입니까?”
“네……. 그 사람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천종남이 도망쳤습니다. 천종남을 쫓아갔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도 사라진 다음이었고요.”
문역에 숨어 있던 천종남을 납치해 일본에 넘기기 위해 파견됐던 다섯 명의 우신 끄나풀들이 제 발로 나와 모조리 자수했다.
오래전 차주한이 태식의 직원들을 보내 천종남과 끄나풀들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건 이미 공유받은 사안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이렇게 경찰서에 와서 조사를 받고 있는 풍경은 그리 이상한 게 아니었다.
원래 계획은 천종남에게 수배가 떨어지면 그 즉시 천종남과 저들을 경찰에 넘기는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우신을 속이기 위해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고, 이들을 경찰에 넘기는 것도 그만큼 미뤄졌을 뿐이다.
그래서 시간이 더 생긴 만큼 변동 사항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온순하게 있는 그대로 (태식의 직원들 얘기는 쏙 빼놓고) 아름답게 자수를 할 줄은 몰랐지.
“저희도 예상치 못하게 천종남을 놓치는 바람에 당황했고……. 보복이 두려워서 계속 도망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우신이 저희에게 그런 일을 시킨 이유가 천종남의 입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걸 알게 됐고, 잡히면 진짜 죽겠구나 싶어서…….”
“알겠고요. 그럼 천종남을 일본행 배에 실으라는 지시를 했던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 진술해 주시죠. 이름, 나이, 아는 정보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사실 이름은 잘 모릅니다. 성도 모르고……. 그런데 인상착의나, 그 사람이 평소에 해 줬던 본인 정보에 대해서는 기억 나는 게 꽤 있습니다.”
“그럼 그거라도 말씀해 보세요.”
첫 조사가 끝난 뒤, 허민우는 함께 자수했던 나머지 넷의 조서도 확인했다.
끄나풀들 모두 잘 교육된 사람들처럼 필요한 진술만 했다.
뒤탈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차주한이 보내준 사람들이니 조사 결과를 얘기해 줘야겠지.
허민우는 옥상으로 올라가 차주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사 끝나셨습니까?
전화를 받자마자 차주한이 물었다.
“아, 네. 결과 궁금하실 것 같아서요. 다행히 헛소리는 안 했습니다.”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가끔 허민우는 차주한이 가진 자신감의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절대 상대방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닌데, 대체 어떻게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걸까.
최종현이나 조봉준이 그를 무당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육감이 극도로 발달한 것 같기도 하다.
─길주승입니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차주한이 대뜸 말했다.
“네?”
─그놈들한테 천종남 배에 실으라고 시킨 놈 말입니다. 그놈들이 진술했을 테니 잡으러 가셔야죠. 지금 더 센트럴 타워 101동 2901호에 있습니다. 바로 가시면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허민우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아니, 변호사님. 감사하긴 한데, 저 궁금합니다. 대체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우신과 관련된 일에 올인할 수 있는 차주한이나 다른 동료들과는 다르게 허민우는 경찰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중요한 내용은 전부 공유받긴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까지 다 알진 못했다.
─뭐가요.
“길주승 위치 찾은 건, 워낙 유능한 직원들이 있으니 그렇다 치겠지만. 저 사람들 마음 어떻게 돌렸습니까?”
차주한이 다 만들고 포장까지 예쁘게 해서 넘겨주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저 사람 저렇게 밖에 두는 게 맞는 걸까?
다시 검찰로 돌아가든, 경찰 특채로 들어오든 해야 할 것 같은데.
─천종남도 자수시켰는데 그놈들이라고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걱정 마십시오. 폭행이나 기타 유혈사태는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얼른 길주승 잡으러 가셔야죠. 그래야 고상준, 고윤수 소환 때 컨텐츠가 풍성해질 것 아닙니까. 아, 어차피 길주승 잡혔다는 소식 들어갈 테니 소환 일자 미루겠네요.
“그럴 겁니다, 아마도. 어쨌든…….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변호사님 말씀대로 엄청 바빠지겠네요. 문역 사건 현장에도 한번 가 봐야 할 것 같고요.”
─아. 문역에 가시면 여관 주인이 사건 현장 사진 줄 겁니다. 위조지폐 흩뿌려져 있고, 몸싸움이 있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현장입니다. 증거로 아주 적당하죠?
그렇게 말하며 차주한이 피식 웃었다.
허민우 역시 한숨 섞인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고상준, 고윤수.
너희 사람 진짜 잘못 건드린 것 같다.
* * *
“고윤수 씨는 그 사실에 대해서도, 그 지시를 내린 게 누구인지도, 정말 아무것도, 전혀, 까맣게 모릅니까?”
허민우의 말에 고윤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정말이지 진실돼 보여서 순수하게 감탄까지 나왔다.
“모르겠습니다.”
고윤수는 예상과 한 치 어긋남 없이 대답했다.
모르쇠 컨셉 진짜 열받네.
허민우는 서류를 들추며 다시 물었다.
“그렇군요. 천종남을 죽이려던 이 다섯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두목 격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길주승이라는 사람인데. 혹시 이 사람에 대해서도 모르십니까?”
“길주승이요?”
고윤수가 되물었다.
“네. 길주승.”
허민우가 힘주어 발음하자, 고윤수는 다시금 기억을 되짚어 보는 것처럼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이 길주승이라는 사람은 6월 2일에 천종남을 동해항으로 납치하는 대가로 현금 1억을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즉, 길주승에게 1억을 준 사람이 바로 차주한 씨를 청부살인을 은폐하려고 했던 사람인 겁니다. 여기까진 이해되셨죠?”
“네.”
고윤수는 마치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해?’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허민우는 이제 슬슬 저런 태도에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 별로 화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1억을 준 게 우신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윤수는 놀랍다는 듯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러나 곧 표정을 가다듬고 차분히 대답했다.
“우신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건지 판단이 어렵습니다. 우신은 기업 집단이고, 기업 역시도 개인의 집단입니다. 집단의 집단인 거죠. 따라서 대표할 만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고윤수 씨. 지금 말장난합니까? 제가 왜 고윤수 씨한테 물었을 것 같아요?”
“저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혐의가 짙습니다.”
고윤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왜 그렇게 판단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냅다 오리발을 내밀었다.
“길주승을 체포한 곳은 우신 물산에서 지은 고급 아파트 더 센트럴 타워입니다. 정확히는 101동 2901호입니다. 그리고 해당 호수는 우신 물산 소유죠. 서류상으로는 현재 세입자가 없는 공실 상태로 되어 있지만, 길주승은 이곳에서 1년간 거주했습니다. 또한, 길주승이 타고 다녔던 이 차량. 벤츠 4117. 우신 법인 차량입니다. 우신은 법인 소유의 집과 차량을 아무한테나 빌려줍니까? 이거 대가성 임대 아니에요?”
허민우는 아파트 모습과 차량 사진을 책상 위로 내려놓았다.
고윤수는 그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법인 소유의 집과 차량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진만 봐서는 판단이 어렵습니다.”
“이미 저희가 파악한 사실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 그러니까, 경찰에서 그렇게 파악을 하셨다면 그게 사실이겠죠.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법인 소유의 물건을 누군가에게 사용하도록 허가하는 것은 제 업무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겁니다. 이런 것까지 일일이 제 허락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럼 누구의 허락을 받습니까?”
“관련 부서의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법인 소유의 집과 차를 빌려줄 수 있는 건 나보다 낮은 놈도 가능하단 소리다.
그 낮은 놈이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자수했던 김수찬과 공원호를 의미할 터였다.
“길주승이 돈을 받은 건 6월 2일 오후 4시고, 6월 3일 새벽 1시에 천종남의 납치 시도가 있었습니다.”
“네.”
“이건 우신 사옥에 위치한 고윤수 씨 집무실 유선 전화 이용 내역인데요.”
허민우는 사진을 옆으로 치우고 다른 문서를 꺼냈다.
지난 압수 수색에서 건진 내용이었다.
“6월 2일 오후 2시, 고윤수 씨는 집무실 유선 전화로 우신 사옥 1층에 입점한 금정 은행 출장소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고윤수 씨는 직원을 보낼 테니 1억을 현금으로 인출해 주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기억이 안 납니까?”
“…….”
“그럼 기억나실 때까지 계속 말하겠습니다. 10분 뒤, 고윤수 씨 비서팀 소속 직원 박지헌 씨가 금정 은행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전략실 소속 직원인 진우범 씨의 신분증을 내밀며 진우범 씨의 계좌에서 1억을 인출해 달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지점장은 고윤수 씨의 요청만으로 본인이 아닌데도 확인 절차 없이 그 돈을 줬죠.”
“…….”
“박지헌 씨의 휴대폰 GPS 및 기지국 정보에 따르면 박지헌 씨는 그 길로 경기도 양평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길주승은 우신 직원에게서 양평에서 1억을 받았다고 했고요. 길주승에게 박지헌 씨의 사진을 보여 주니 돈을 준 사람이 맞다고 하더군요.”
“…….”
“정리해 볼까요? 고윤수 씨는 본인 비서팀 직원에게 돈을 줬습니다. 그 직원은 길주승에게 그 돈을 배달했고요. 길주승은 그 돈을 받고 천종남을 납치하러 갔습니다.”
음, 이제는 그냥 다물기로 했나 보다.
이건 고윤수 역시도 헛소리하다가 삐끗하면 좆된다는 걸 감지했다는 뜻이다.
“아까 우신이 집단의 집단이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셨죠. 그럼 이제는 범위도 좁혀졌겠다, 충분히 아실 것 같네요. 고윤수 씨, 길주승에게 천종남 납치를 교사한 우신의 대표자는 누구 같습니까?”
“…….”
여전히 대답이 없다.
허민우는 한숨을 쉬며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슬슬 시간이 됐는데.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조사실 문이 열렸다.
형사 한 명이 들어와 허민우에게 짧게 귓속말을 하더니, 서류철 하나를 놓고 나갔다.
허민우는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고윤수와 변호사 사이에 내려놓았다.
“고윤수 씨. 지금까지 말씀드린 여러 증거를 기반으로 살펴보면, 고윤수 씨는 매우 혐의가 짙습니다. 게다가 증거 인멸이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고, 피해자 및 참고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구속 영장 신청했고요, 영장 실질 심사는 내일입니다. 오전 11시까지 출석하십쇼. 법원에서는 부디 솔직하게 진술하길 바랍니다.”
* * *
[수사본부, 고윤수 구속 영장 신청] [고윤수, 차주한 청부살인 천 씨 납치 교사 증거 나와] [덤프트럭 천 씨 죽이려던 괴한 5명 자수] [살인청부업자 입 막겠다고 죽이려고 한 고윤수… 대체 어디까지 가나?] [본인 없어도 신분증만 주면 2억 인출 가능? “고윤수의 차명계좌”] [금정 은행, 재벌 눈치 보다가 과태료 물겠네]고윤수의 조사가 끝나자 경찰은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증거들과 고윤수의 조사 태도를 언론에 공개했다.
특히 고윤수가 제대로 소명도 못 하고 불리하면 진술 거부권을 쓰거나 기억 안 난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조롱이 쏟아졌다.
녹음 파일을 들었음에도 ‘백 퍼센트 조작이다’, ‘우신이 그랬을 리가 없다’라며 돈도 받지 않고 친위대 노릇을 하던 사람들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튿날.
법원은 고윤수에게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고윤수다!”
미결수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고윤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푹 숙이지도, 그렇다고 빳빳하게 쳐들지도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닭장차라고 불리는 호송 버스로 걸어갔다.
“경찰 조사에서 계속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정말 차주한 변호사를 살해하려던 청부업자 입을 막으려고 하셨습니까?”
“입장을 밝혀주십시오!”
당연히 영장이 기각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소식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충격에 빠졌다.
“저거 고윤수 태운 차 아니에요?”
법원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통창 앞에 쌍안경을 들고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네 사람은 빼고.
“그런 것 같은데요? 어! 출발한다.”
강민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버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야, 우리 사무실 잘 구했다. 여기서 법원이 다 보이네요.”
“쌍안경 4개 값이 하나도 안 아깝네요.”
“고윤수 콩밥 구경 실컷 하겠네요. 강 변호사님, 옆으로 좀만 가 보세요. 차 변호사님 안 보이실 것 같은데.”
“강 변 때문에 안 보이는 게 아니라, 태식이 때문에 안 보입니다.”
“저 변호사님 뒤에 있는데 왜 저 때문에 안 보여요.”
“아, 진짜 꼬시네.”
닭장차는 어느덧 교차로를 지나 구치소를 향해 사라졌다.
강민재는 유리를 뚫고 나갈 기세로 고개를 앞으로 뺐지만, 도저히 보일 각도가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1인 1쌍안경은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돈이 안 아깝네요.”
강민재는 쌓여 있는 쌍안경 박스를 접으며 말했다.
“그러게.”
모처럼 차주한도 그 의견에 동의했고 말이다.
“그럼 이제 슬슬 마지막 발악에 대비해야지. 그만 놀고 흩어져.”
물론 여운에 젖을 시간 따위는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