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2)
너희들은 변호됐다-62화(62/641)
한국대 앞 카페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싸이월드에서 보았던 김대성의 얼굴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차주한 변호사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강민재가 쪽지를 통해 간단한 상황설명과 함께 약속 시간을 잡았고, 김대성은 흔쾌히 만남을 수락했다.
강민재가 그와 약속을 잡으며 나눈 간단한 대화를 통해 몇 가지 신상 정보는 미리 확인한 차였다.
한국대 교육공학과를 졸업했고, 진로는 교사가 아닌 완전히 다른 쪽이라고 했다.
지금은 사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같은 교사라면 이런 대화가 편치는 않았을 테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건지…….”
김대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쩌면 자신이 교생 실습할 당시의 상황에 책임을 묻기 위해 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눈빛에 담긴 불안을 읽으며,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작년에 김대성 씨가 맡으셨던 반에, 이혁민이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기억하십니까?”
“아, 그럼요. 기억하죠.”
김대성은 망설이지 않고 한 번에 대꾸했다.
한 달을 함께 보냈다고 해도, 일 년 이상 지났고 한 반에 학생 수가 40명 가까이 된다.
이름만 듣고 바로 기억할 정도라면 그에게도 꽤 인상 깊은 학생이었다는 뜻이다.
“사실, 김대성 씨의 싸이월드를 이혁민 학생의 싸이월드에 댓글을 남기신 걸 보고 찾았습니다.”
“댓글이요?”
“네.”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던 김대성, 곧 웃으며 대답했다.
“뭐, 한때 가르치던 학생이었고 제 일촌평에 사진 남겼다고 보러 와 달라고 해서요. 그래서 댓글 남겼죠.”
“지금도 연락하면서 지내십니까?”
“아뇨. 그럴 리가요. 그때야 교생 끝나고 얼마 안 됐을 때니까 싸이로 안부 주고받고 했지만, 지금은 뭐 전혀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학생도 아니었고요. 하하.”
[진실]나는 김대성의 머리 위에 뜬 글자를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만나서 대화한 내용이 이혁민 귀에 새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 질문드리겠습니다. 이혁민 학생에 대해 인상 깊으셨던 부분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김대성이 시원스레 대꾸했다.
“그 반 짱이었어요. 애들이 혁민이 말이면 설설 기었죠.”
“짱이라는 표현은, 소위 말하는 일진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좀 애매하네요. 일진이라기엔 공부를 너무 잘해서. 일진들을 수족처럼 부려서 인상적이었어요.”
“이혁민 학생이 비행을 저지르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습니까?”
김대성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차가운 커피를 한 번 들이켠 뒤, 그는 찬찬히 기억을 되짚으려는 듯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리고 한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비행 저지르죠. 그런데 아무도 터치 못 해요. 치외 법권을 가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는 그런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도 대놓고 사고를 치진 않는데, 방과 후에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탈선 같은 걸 많이 했죠.”
“그걸 김대성 씨가 목격하셨습니까?”
“음, 한번 담배 피우는 건 본 적 있었어요. 실제로 어떤 선생님하고 얘기가 길어져서 같이 퇴근하고 있었는데, 학교 주변 골목에서 혁민이가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선생님이 못 본 척하라면서 저를 끌고 다른 쪽으로 가셨어요. 그땐 좀 놀랐죠.”
“그밖에 다른 건요?”
“목격하진 않았는데, 그 선생님이 슬쩍 말해 줘서 알았죠. 아, 그러고 보니 그게 다가 아니네요.”
김대성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왕따 주동자였어요.”
“그건 직접 보셨습니까?”
“아뇨, 그건 아닌데……. 그때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그것이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이었다.
김대성은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한준이라고, 혁민이랑 같은 반에, 어떤 애가 있었거든요. 제가 교생 실습 가기 전부터 애들한테 왕따를 당하고 있었어요. 근데 한준이는 학교를 거의 나오지 않아서, 드릴 말씀이 별로 없네요. 하지만, 그때 학폭위를 열겠다고 학부모가 찾아와서 교무실을 한바탕 뒤집었거든요. 그거 하나는 똑똑하게 기억나요. 교생 실습 첫 주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학폭위가 열렸습니까?”
“안 열렸어요. 실습 끝날 때쯤 애가 전학 갔어요, 그래서. 참 안됐죠.”
김대성은 혀를 쯧쯧 찼다.
“한준이 부모님이 애가 맞은 데 멍 사진을 다 찍어서 교무실에 뿌리고, 이혁민이 데리고 오라고 난리를 피웠거든요. 그때 사진이 제 앞에 떨어져서 하나 보긴 했는데, 정말 말도 안 나오더군요. 애들 싸운 수준이 아니라, 무슨 애를 죽일 작정이었는지…….”
김대성의 표정이 흐려졌다.
“사건 전개 과정은 저도 일개 교생이라 잘 모르겠지만, 학부모가 학폭위를 열어 주지 않으면 교육청에 찌르겠다, 언론에 제보하겠다 난리였거든요. 그래서 뭐 나름의 조사를 한 것 같긴 한데, 결과적으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학폭위가 안 열렸죠. 그래서 저희 교생들끼리는 이혁민 부모가 촌지를 엄청 뿌렸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했어요. 한준이만 안됐죠. 듣기로는 주산구 쪽으로 전학 갔다고 하던데. 거기도 학군 좋은 동네니까 거기서라도 잘 지내면 좋겠네요…….”
“그렇군요. 혹시, 그 한준이라는 학생 성이 어떻게 됩니까? 성이 한이고, 이름이 준입니까?”
“아, 아뇨. 두 글자 성씨였는데……. 남궁, 선우, 이런…….”
“두 글자 성이라면 독고, 사공, 황보…….”
“아, 황보요. 황보한준입니다.”
여태까지 김대성의 머리 위에는 [진실]이라는 글자가 떠난 적이 없었다.
사건을 축소하는 기색도 없었고, 그렇다고 확대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교생이라는 존재는, 학생도 교사도 아닌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든, 교생이 알려고 하면 끼어들지 말라는 말만 돌아왔을 것이다.
어차피 그 당시 전학 갔던 학생의 이름과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그를 만난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 학생을 통해 들으면 되는 일이다.
“오늘 말씀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변호사님이 다 물으러 오시고……. 혁민이가 또 그런 짓을 저지른 건가요?”
“변호사가 그런 걸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라. 죄송합니다.”
“아, 아이고. 아닙니다. 그냥 여쭤본 겁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오르면서, 나는 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쇼.
무언가를 쩝쩝 먹는 소리와 함께, 건성건성 전화를 받는 태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식아. 전화는 예의 바르게 받아야지.”
-아, 아! 변호사님. 아이고, 아이고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요~ 아이고오~
이제 슬슬 편해졌다고 뺀질거리는 게 늘었다.
생각해 보면, 이전 삶에서도 그는 뺀질거리고 빈정거리는 게 습관이 든 인간이었다.
함께 움직이던 기자 한 사람이 태식의 턱주가리를 날리려다가 그의 근육에 쫄아 가까스로 참은 적도 있었다.
“…….”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세요?
“그 전학생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거 말인데.”
-아, 네. 지금 찾아보고는 있는데 단서가 너무 적어서 좀 시간이 걸리네요. 죄송함다.
“황보한준. 주산구로 전학 갔다고 하는데. 이쯤이면 찾을 수 있겠냐?”
-예? 황보한준이요? 이름 겁나 특이하네요.
“내일까지 가능하겠냐?”
-이름하고 지역 나왔으면 게임 끝났죠. 내일 딱 목 씻고 기다리십쇼.
“나 죽이러 와? 목을 왜 씻어?”
-……그게 그런 뜻입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 * *
이튿날 오후, 예상대로 태식은 한준의 연락처, 한준이 다니는 학교, 그외의 정보들을 모두 알아 왔다.
이전 삶에서 이런 정보는 어떻게 알아내는 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태식은 그때 ‘알면 다치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마 불법적인 루트가 아닐까 싶다.
일단은 법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법조인 입장이니 썩 반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이번에도 묻지 않기로 다짐하고 태식을 돌려보냈다.
“강 변.”
“넵.”
사건에서 빠지라는 말을 들은 이후, 강민재는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주로 했다.
내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름대로 반성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는 중간중간 진철의 모친과 통화하며 진철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폈다.
다행히, 진철은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폭력적인 성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짜증을 내는 수준에 그쳤다는 것 같았다.
욕설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철이 담임은 내일 병원에 온다는 것 같아요. 오후 5시에요.”
그가 흘리듯이 말했다.
나는 달력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던가.
“황보한준 학부모한테 연락해 봐.”
나는 그의 책상에 태식이 적어 주었던 연락처 메모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이 떠나가자, 강 변이 재빠르게 쪽지를 집어 들었다.
“바로 약속 잡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할까요?”
강 변이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찍다 말고 물었다.
“왜 일일이 물어, 당연한 걸.”
“제가 혹시 실수할까 봐 그러죠.”
그는 머쓱하게 목덜미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번 사건에서 빠지라는 게 그렇게 큰 충격이었던가.
아까 태식이 왔을 때도 평소처럼 시끄럽게 수다 떨지 않고 잠자코 있었던 것도 그렇고.
“약속 잡고, 이왕이면 오전이나 점심 직후 정도에. 오후에는 병원에 가 봐야 하니까.”
“네. 그럼 변호사님 한준이 학부모 만나시는 동안 전 뭐할까요?”
그가 수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우며 메모지를 떼었다.
“같이 안 가?”
“……예?”
“운전기사 필요한데. 피곤해서 운전하고 싶지가 않네.”
“어, 어! 운전기사! 저 그거 잘해요! 저 그거 엄청 잘할 수 있어요! 같이 가도 되는 겁니까? 되는 거죠? 진짜 되는…… 여보세요? 아, 혹시 황보한준 학생 어머니 되십니까? 하하, 예. 아, 다름이 아니고…….”
강민재는 펄펄 뛰다 말고 삽시간에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나는 기분 좋아 보이는 강민재를 뒤로하고, 베란다로 나왔다.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생각이 문득 많아졌다.
진철의 담임이 내일 병원에 온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진철의 모친에게 담임이 연락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내일 조사 결과를 말할 심산인 게 분명했다.
정말로 그 반에 진철을 도울 학생이 있을지는, 내일 밝혀지는 것이다.
‘적어도 한 명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