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26)
너희들은 변호됐다-626화(626/641)
방송이 끝난 뒤 최종현과 조봉준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는 것이었다.
김미자가 핵폭탄을 터트린 만큼, 그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연락이 쏟아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우신에게 미성년자 성상납 받은 ‘정관계 인사’ 누구?] [김미자의 충격적인 폭로… 허언증 환자가 돼야 했던 이유] [우신의 조직적 인신매매… 국민 ‘큰 충격’] [구조된 ‘천사의 집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고氏 부자, 이래도 모르쇠로 일관할까?] [김미자 주장 검증 필요해]비판하는 기사들이 물밀듯이 올라왔지만,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우신을 옹호하는 듯한 기사들도 종종 올라왔다.
어이가 없었지만, 공범이 공범 행동을 하는데 놀랄 것은 없었다.
지이잉.
뒷정리를 도우려고 일어나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키리하라 사치코였다.
“차주한입니다.”
─방송 끝나신 것 같아서 연락드렸는데, 통화 괜찮으세요?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천사의 집 아이들 상황을 좀 여쭤보려고요.”
─네, 저도 그것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저도 경시청에서 나오는 길이거든요.
“아이들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이미 메일을 받긴 했지만, 목소리 톤이 고양되어 있는 것을 보니 상황이 좋은 것 같았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아무래도 건강 상태가 아주 좋다고 할 순 없죠. 그래도 크게 아픈 데는 없는 것 같아요.
“기습 과정에서 아이들이 부상을 입진 않았습니까?”
─가벼운 타박상 정도. 그 외엔 괜찮아요. 리본 의료원처럼 경비 인력이 아주 많았던 것도 아니고, 건물 자체가 범죄에 쓰이기 위해 준비된 곳도 아니다 보니까 생각보다 금방 끝났어요.
리본 의료원에서는 구출 과정에서 인질극이 있었기 때문에 돌발 상황을 염려하고 있었다.
“일본 쪽 수사 분위기는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사건이 워낙 크다 보니 조금 혼란스워요. 그런데 경찰 내부에서는 현실적으로 고상준을 데려와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피의자 신분이라 그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좀 고민이 많은 것 같았어요.
“한국 경찰하고 공조가 필요할 겁니다. 서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네. 그렇겠죠. 속도가 중요하니 오래 끌진 않을 거예요. 오히려 일본 쪽에서는 한국 경찰이 오노데라 마사오를 인터폴에 수배하기도 하고, 상당히 강경한 태도를 보여 와서 좀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한국 경찰이 원한다면 그 점은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그 과정에서 이가연 씨 같은 분들의 입국도 금세 처리되겠습니까? 일본 경찰도 이가연 씨의 진술을 수사에 활용하고 싶어 할 텐데요.”
이가연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우신이 벌이는 성착취를 알려 주었던 사람이다.
천사의 집에 있다가 영재로 발탁되어 일본으로 넘어갔던 그녀는, 함께 갇혀 있던 몇몇 피해자와 함께 목숨을 걸고 도망쳐 생활하고 있다.
─이가연 씨는 기약 없이 기다리던 시간이 길었는데, 이제는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아니까 더 기다려도 상관없다고 하긴 해요. 그런데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겠죠. 저희도 힘 써 보려고요.
우리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천사의 집 아이들을 구출할 방법도 함께 강구해 왔다.
그러다 오노데라 손자의 수술이 가까워 오면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이가연과 키리하라를 연결해 주었다.
아이들이 아직도 그녀가 도망치기 전까지 지냈던 숙소에 있다면, 구출을 빠르게 진행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가 도망친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탓인지, 찾아갔을 때는 이미 숙소를 옮긴 다음이었다.
심지어는 건물이 허물려 있기까지 했으니, 우리가 그들의 인신매매를 인지하기도 전에 옮긴 듯했다.
그러나 키리하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허민우가 있듯이, 키리하라 역시 경시청 형사와 오랜 친분을 다지고 있었다.
키리하라와 형사는 끈질기게 근처 탐문을 통해 정보를 모았고, 수백 수천 개의 CCTV를 돌려 보며 천사의 집 아이들의 위치를 추적했다.
김미자가 아이들을 요정으로 데리고 올 때 사용했던 차의 번호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우신이 장기 매매 보도 직후 숙소 위치를 한 차례 더 옮겼기 때문에, 조사에는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56명의 아이들이 안전할지, 흩어지진 않았을지, 혹시라도 너무 늦진 않았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결국 오늘 56명 전원을 구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럼 천사의 집 아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건 어떻겠습니까. 일본 경찰은 이가연 씨보다는 구조된 아이들이 더 수사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할 것 같아서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국 입국이 늦어질 텐데요.”
─그렇겠죠. 하지만 일본에서도 김미자 씨의 폭로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보니, 피해자들을 얼른 돌려보내야 한다는 말이 많아요. 피의자도 아니고 피해자들인데, 수사 욕심에 계속 붙잡아 두는 건 문제가 있으니까요. 저희도 그런 여론이 정부에 닿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해 봐야죠.
“네,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야 변호사님이나 다른 분들이 고생하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또 다른 소식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변호사님도 연락 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스튜디오 내부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피해자들이 얼른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해 보겠다고 합니다. 여론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하고요.”
내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최종현은 ‘잘됐다, 잘됐어’라는 말만 되뇌었다.
* * *
김미자는 그로부터 사흘 뒤 입국했다.
보안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기자들의 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김미자가 방송에서 입국하겠다는 말을 꺼낸 다음 날부터 공항 출국장에서 대기한 기자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입국과 동시에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처음 경찰은 장부를 검증하기 위해 그 안에 적힌 인물들의 방문 날짜와 출입국 기록을 비교했다.
당연히 장부는 진실만을 담고 있었기에, 그들 모두 그 시기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장부가 상당한 신뢰도를 지녔다는 가정하에, 뇌물을 받았다고 기재되어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조사가 시작되었다.
[한·일 협동 수사 결정] [피해자 56명, 10일 내로 한국 땅 밟는다] [일주일 차에 접어든 ‘김미자 게이트’ 현황] [장부 속에 ‘전·현직 국회의원, 전 국세청장, 금감원장, 법조인, 거대 언론사 임원’ 있었다] [2001년 우신 분식회계 의혹 때 집행유예 선고한 판사, 요정에 32회 출입 밝혀져] [하나같이 ‘김미자가 누군지 모른다’ 땀 뻘뻘]지금까지 나는 사건을 터트리고 나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가 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체감될 정도였다.
원래라면 최종현과 조봉준은 방송을 통해 관심이 이어지도록 계속해서 곁다리 정보들을 제공했을 것이다.
관련자들의 과거 행적을 확인해서 우신에게 어떤 특혜를 주었는지, 그들이 향후 어떤 법의 적용을 받아 어떤 처벌을 받는지 등을 설명하는 식으로.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이미 그러한 글과 보도가 넘쳐났다.
이 내용이 국민의 분노를 더욱 자극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18만 우신 임직원 공범으로 만든 총수 일가 물러나라] [저급한 범죄로 국가 망신시킨 총수 일가] [고상준 꾀병 그만 부리고 수사 받아라] [총수 일가의 범죄 얼마나 더 참아줘야 하나]처음 사건이 물 위로 올라왔을 때부터 시동을 걸었던 우신 노조는 창단 이래 최대의 결집력을 보여 주었다.
파업을 선언하고 집단행동을 시작했다.
우신이 우리 사회에 공급하는 용역이 상당했기에, 파업의 영향은 매우 컸다.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휴대폰 서비스 센터조차 돌아가지 않으니 이로 인해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지 않고 응원했다.
그리고 집단행동은 우신 노조의 파업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건 관계인들과 연관된 각계각층에서 성명서를 발표했고, 각종 인권 단체에서 주말을 이용해 집회를 주최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을 하는데도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 [미성년자 성상납을 받는 인간들이 제정신이냐] [저런 인간들에게 어떻게 국정을 맡기냐] [관련자 즉각 처벌하라]놀라운 점은 이 집회에 응답해 나온 사람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많아졌고,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국민의 요구는 매우 명확했다.
정치색을 떠나, 장부에 이름이 적힐 정도로 확실하게 미성년자 성상납과 뇌물을 받은 사람들을 엄중하게 처벌하라는 것.
이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 아니었기에 더욱 많은 사람을 끌어당긴 게 아닐까 싶다.
[여당, 우신 특검법 발의] [“특검법 20일 숙려기간 생략” 여·야 합의… 바로 법사위 간다] [우신 특검법 법사위 문턱 넘을 수 있을까?] [청와대, ‘비윤리적인 인권 유린의 참극, 그런 자들에게 국민의 일 맡길 수 없다’] [유원호 의원 ‘이런 범죄 듣도 보도 못했다’] [경찰, 피해자이자 내부고발자 김미자 보호할 것]이러한 영향으로, 동력을 얻은 여당에서 빠르게 우신 특검법을 발의했다.
청와대에서도 대국민 담화를 통해 강력한 수사 의지를 표명했다.
“차 변, 그거 알아요?”
이세화는 씁쓸한 눈으로 기사를 읽다가 나를 향해 노트북 화면을 돌려 주었다.
관련자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과, 그 아래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집회 모습이었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수사는 상당히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됐어요. 그런데도 지난 주말 집회 규모는 꽤 상당했죠. 이유가 뭘까요. 국가가 강한 처벌 의지를 보여 주는데도,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 말이에요.”
“아마도 오랜 시간 축적된 국가에 대한 불신 때문 아니겠습니까.”
내가 대답하자, 이세화가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정답이긴 한데, 너무 거리낌 없이 말해서 좀 얄밉네.”
법은 시민에게는 가혹했지만, 재벌이나 권력자에게 상냥했다.
시민은 검찰청과 법정을 두려워했지만, 재벌과 권력자들은 우습게 여겼다.
그리고 이러한 간극은 시민으로 하여금 이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무기력감을 학습시켰다.
아무리 지금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끝까지 잘할지는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서로 의견이 갈린다고 하더라도 권력자라는 점에서는 똑같기 때문이다.
기회만 되면 그들을 다시 이 사회에 풀어 놓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대통령님 혼자만의 탓은 아닙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은 그 고리를 끊기로 결심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김미자 씨 장부 속에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건 좀 충격적이었지만.”
이세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고상준과 이정찬이 호형호제하던 사이였기 때문인지, 확실히 장부 속에는 야당 인사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장부에는 15년 치 기록이 담겨 있지 않은가.
고상준은 정치색을 떠나 자신에게 특혜를 줄 수 있는 여당이나 정부 인사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니 여당이 바뀌면 로비 대상도 바뀌었을 테고.
민우당뿐만 아니라 여당 인사 중에서도 우신의 부역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법사위 쪽은 어떻습니까? 전에 빠르게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하셨지만, 상황은 가변적이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대규모 집단행동을 벌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에요. 심지어 이번 사안은 특정한 일부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거고요. 여태까지 국민은 어느 정도의 윤리적 타락은 눈감아 줬어요. 큰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큰돈 오갈 수 있지. 그런데 이 정도 수준의 타락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겁니다.”
이세화는 유리잔 모서리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국민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적인 사정들이 있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이번엔 달라요.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국가가 감수해야 하는 문제가 뭐죠? 외교적 문제? 일본도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상황이잖아요. 정치색? 그런 거 없지. 많고 적음의 문제지 똑같이 잘못했으니까. 가치 판단의 영역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이걸 반대하는 놈이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지.”
그녀는 그 ‘제정신이 아닌 놈’을 떠올린 것인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외신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고, UN 인권위에서 조사까지 나올 판이에요. 국제 사회도 주목하는 지금, 특검법에 제동을 거는 사람들을 국민이 과연 잊어 줄까?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은데, 나라면.”
지금 이 사건에는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고, 혹시라도 이 사안에 대해 조금이라도 말실수를 한 정치인들은 철저하게 조롱당했다.
지금은 11월.
그리고 총선은 내년 4월이다.
국민이 5개월 만에 그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추태를 잊어 줄 리는 없다.
“차 변은 특별검사 인터뷰 준비 열심히 하고 있어요.”
* * *
얼마 뒤 ‘우신의 인신매매 및 정관계 불법 로비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었다.
그 결과 재석 230명 중 찬성 201명, 반대 12명, 기권 17명으로 가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