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29)
너희들은 변호됐다-629화(629/641)
이세화가 보육원 앞에서 진행한 인터뷰는 그야말로 엄청난 화제를 낳았다.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기에 가능한 발언이라며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법조계의 전통을 무시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둘 중 뭐가 됐든, 대다수의 언론이 이세화는 나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로 인해 나를 코드 인사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특별검사로서의 임무가 끝나면 여당에 입당할 거라는 추측도 거세어졌다.
어차피 이건 지금 당장 아니라고 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게 말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꿔 정계에 입문하는 사람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행보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이세화의 인터뷰가 끝났을 무렵, 나는 미리 잡아 둔 박영기와 변협 회장과 저녁 약속을 위해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흐음, 특검보 후보라.”
박영기와 변협 회장은 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잖아도 변협은 특검 후보 추천으로 정신없이 바빴는데, 이번엔 내가 특검보 후보를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냐고 하니 난감한 듯했다.
“전부 동기나 후배 기수 중에서 추천해 달라는 뜻은 아니겠고. 선배 기수 중에서 승낙할 만한 사람으로 잘 찾아야 특검팀 준비가 원활하다는 인상을 줄 텐데. 몇 기수 위가 아니라, 좀 더 높은 기수 선배 중에서 찾아야 중장년층도 안심할 거야.”
“대통령님이 저렇게 지원 사격까지 해 주셨는데, 여기서 선배 기수들이 특검보 후보 거절하면 정의 수호보다는 서열이 중요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거지.”
변협 회장의 걱정 섞인 말에 박영기가 대꾸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서 거절할 사람은 많을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때문에 힘들다느니, 본인의 역량이 부족하다느니, 댈 수 있는 핑계는 많고요.”
내 말에 박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고려할 수 있는 인사 범위가 넓은 건 다행이야.”
이번 특검법에서는 나를 특별검사 후보로 올리기에 적합한 조건을 만드느라 여러 조건들이 이전의 특검법에 비해 다소 느슨한 편이었다.
“우리 차 특검이 생각하는 사람부터 들어보고 싶은데. 적어도 한둘쯤은 생각해 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변협 회장의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처음 생각한 건 고일국 변호사님입니다.”
“고일국 변호사님? 아, 그분 인품 좋으시지. 그런데 차 특검한텐 엄청난 대선배님이잖아. 거의 아버지뻘인데. 혹시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큰 인연이랄 건 없습니다. 검사 시절에 재판에서 몇 번 뵈었다 보니, 고일국 변호사님은 저에 대해 잘 아십니다. 개인적인 대화라고는 몇 마디 섞은 게 전부고요. 변호사로 개업하자마자 잡힌 첫 재판이 고일국 변호사님 법정이었습니다.”
2008년에 내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처음으로 맡은 사건인 여희숙, 김철환 살인 사건 1심 판사가 고일국이었다.
그는 내가 존속 살인을 인정했던 김연준의 공소 사실 전부를 부인하자 몰래 피식 웃기까지 했다.
당시 그는 정년을 2년 앞두고 있었는데, 이후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를 거쳤다가 2010년부터 법원도서관장을 지냈고, 그해 정년 퇴임했다.
법원도서관장은 고등법원 부장급 직책이고, 대법관들이 임명 직전에 이 자리에 있었던 경우가 종종 있다.
비록 고일국은 대법관이 되지 못했지만, 거대 로펌에 들어갔다면 그곳이 어디든 최고의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일국은 친분이 있던 법조인들과 작은 로펌을 차렸다.
큰돈을 만지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음에도, 그는 지금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 있다.
이전 삶에서 내가 지켜봐 왔던 그의 모습, 그리고 이번 삶에서 그가 보이는 행보 모두 일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고일국 변호사님이 특검보를 맡아 주신다면 그 이상 좋을 게 없지. 그리고 전에 고일국 변호사님 뵀을 때 지나가듯이 차 특검이 눈에 띄는 후배라는 말씀도 하셨었고. 그런데 고일국 변호사님이 권위적인 분은 아니지만, 특검 보좌직을 제안하는 거잖아. 기분 나빠하실 수도 있어. 어쨌든 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계신 분이니까. 그래서 승낙하실지는 잘 모르겠어.”
변협 회장은 자신 없는 말투였다.
“그래도 의견을 여쭤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나. 그 정도로 기분 나빠하실 분은 아닌 것 같은데. 고일국 변호사님 같은 분이 합류해 주시면 나머지 5명의 후보를 섭외하는 건 일도 아니지. 워낙 존경받는 분이니까. 그분이 수락하시는데 다른 사람들이 무슨 명분으로 거절하겠어?”
박영기는 변협 회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의사만 확인해 주시면 제가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 순간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강 변 데리고 갈 거지?”
이윽고 박영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것이 침묵의 이유였구나.
* * *
이튿날 아침, 변협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일국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특검보라는 자리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여전히 짐작되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오늘 오후에 청와대에서 특별검사 임명장을 받기로 되어 있었기에, 다소 급한 감이 있지만 오전에 만나기로 결정했다.
“으, 떨리네요.”
강민재는 고일국의 로펌에 가까워 올수록 긴장을 놓지 못했다.
변협 회장이 나와의 통화가 끝난 직후, 바로 강민재에게 전화를 걸어 ‘자네가 꼭 따라가!’라며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변협 회장은 내가 강민재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강민재는 아무 생각 없이 내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많이 나아졌다고 판단하고 있었는데 그럴 정도인가 싶었다.
“너는 차에서 기다려.”
로펌 건물 주차장에 도착해, 나는 태식에게 말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강민재와 함께 그의 사무실이 있는 6층으로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근처에 있던 변호사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일국과 함께 로펌을 차린 변호사 중 하나인 도지환이었다.
“차 특검, 반가워요. 임명 축하합니다.”
그러면서 손을 내밀며 수더분하게 웃었다.
“교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번 삶을 시작하고 나서는 본 적이 없지만, 이전 삶에서 그는 내가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교수였다.
그 이후 그는 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가 되었고, 나는 연수원 수료 직후에 군법무관이 되었으니 그 밖의 접점은 없다.
하지만 사법연수원에서 들은 그의 강의는 나에게 시야를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그는 만일 검찰에 쭉 남았더라면 지금쯤 검사장급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일국과 미리 그려 둔 미래가 있었던 것인지, 그가 정년 퇴임하자 검찰을 나와 채근수 변호사와 함께 3인 로펌을 차렸다.
잘 어울리는 만남이었다.
“교수는 무슨. 이제 그냥 변호사인데요. 하하.”
“안녕하십니까, 연수원 36기 강민재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이고,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아무리 후배라도 말 막 놓으면 됩니까. 하하. 고 변호사님하고 약속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아까 통화 중이셨는데, 그래서 바깥 소리가 안 들리시나?”
도지환은 고일국의 방으로 다가가더니 노크했다.
그리고 문을 작게 열고는 빼꼼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고 변호사님, 차 특검 오셨는데.”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도지환이 다시 나와 말했다.
“의뢰인하고 통화가 좀 길어진 것 같네요. 차라도 한잔하면서 기다릴래요? 커피도 있고, 그냥 차도 있고.”
도지환이 탕비실 쪽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 * *
“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죠?”
커피 냄새가 번지기 시작했을 무렵, 고일국이 방에서 나오며 머쓱하게 웃었다.
인사와 악수를 나눈 뒤, 고일국은 시계를 보더니 자신의 방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청와대에 임명장 받으러 가기 전에 얼른 얘기하고 싶어서 왔을 텐데. 이거 참 미안하네요. 내 방에서 얘기합시다.”
그의 방에 앉자, 고일국이 입을 열었다.
“차 특검이 나를 특검보 후보로 추천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간결하게 대답해서인지, 강민재가 슬쩍 치고 들어왔다.
“무례하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차주한 변호사님이 평소 후배로서 변호사님을 존경하고 있었고, 잘해 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실례를 무릅쓰더라도 말씀은 드려 보고 싶다고…….”
“아, 강 변호사를 왜 데리고 왔나 했더니 금칠이 목적이었어요?”
고일국이 허허 웃었다.
능글맞게 넘어가는 데에는 도가 튼 강민재도 이번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무라는 건 아닙니다. 내가 차 특검 성격을 알지. 우리 도 변호사님이 연수원 시절 얘기를 많이 해 주셨거든. 법정에서 자주 봐서 내가 보고 느낀 것도 있고. 긴장 많이 한 것 같은데, 편하게 얘기합시다.”
“아……. 예, 제가 마음이 급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강민재는 민망한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마음 급할 법하지. 특검 제도 도입 이후 이렇게 젊은 특검은 처음이니까요. 인선부터 고행길일 겁니다. 그런 상황에 내가 특검보가 되면 앞으로 좀 편해질 테니 공들이고 싶은 마음 이해합니다.”
“변호사님 말씀대로, 그런 목적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본 건에서 지금 국민은 소위 권력자들에게 큰 반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부國富를 이루는 데 1등 공신이었다는 인식을 가진 우신과 정관계 인사들이,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국민을 착취하는 데 사용하며 일어난 일이니까요. 저는 국민이 소위 권력층 중에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것도요. 또, 이번 특검을 통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랄 겁니다. 국민의 한 사람인 저도 그렇습니다.”
고일국은 내 이야기를 계속 듣겠다는 듯 대답을 미뤘다.
“특검법에서 특검이나 특검보의 조건으로 과거의 행적만을 기준으로 삼았을 뿐, 미래에 어때야 하는지는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아무리 법이라도 개인의 미래 결정권을 제한할 수는 없기 때문이겠죠. 그렇기에 특검이나 그 관계인이 사건 종결 이후 피의자의 회사에 입사하거나, 특검이었던 변호사가 피의자의 회사에서 몰아주는 어마어마한 수임료의 사건을 받으며 거래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겁니다.”
고일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특검은 국민의 명령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천한 법조 경력을 가진 저에게 우려되는 바가 있음에도 일을 맡겨 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검팀은 관련 법이 생겨난 본질적인 이유를 생각하고, 국민이 원하는 바를 고려하며 그 교집합을 찾아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럼 차 특검은 내가 후불로 떡값 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겁니까?”
“확신하진 못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 아닙니까.”
강민재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무례한 발언을 해서 말리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들은 고일국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한계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지금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신념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다른 길을 탐닉하게 될지 모릅니다.”
“솔직하군요. 그럼 차 특검은 왜 나를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변호사님께서 신념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시는 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물질과 권력보다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 위하는 분이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파랗게 어린 저에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호사님께서 더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하셨을 겁니다. 그렇기에 법조인들의 존경을 받으신다고 생각합니다. 고일국 변호사님 같은 분이 이번 특검에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궁금합니다.”
“변호사님이 판사로 재직하셨을 때의 판결문들을 전부 읽었습니다. 거기서 처음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변호사님이 도지환 변호사님, 채근수 변호사님과 함께 설립하신 로펌의 주력 분야를 보면서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오늘 의뢰인과 직접 통화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한 번 더 느꼈습니다.”
“그게 별스러운 일입니까?”
“보통의 로펌에서는 의뢰인과의 통화는 사무장이 진행하고, 일반적으로는 변호사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건 내방 상담 때에 국한되지 않습니까. 보통의 법조인들은 의뢰인들이 겪는 일들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이해는 하더라도 공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어렵게 내방 상담하러 온 의뢰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사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서류를 받았다는 확인 등의 단순한 연락이 아니라면 직접 통화하는 편이기도 했다.
나를 찾아온 의뢰인 중 다른 로펌에서 상담을 진행했던 이들은 ‘변호사님과 이렇게 직접, 자주 통화할 수 있는 경우는 처음’이라고도 했다.
“변호사님이 의뢰인과 직접 통화하시는 건 그런 한계에서 벗어나 의뢰인을 진정으로 변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변호사님은 본인의 편리성보다는 의뢰인이 겪는 심적 고통에 더 무게를 두신다는 뜻으로도 읽혔습니다. 또, 수임하시는 사건들도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과찬이군요. 그런데, 그 이유만으로 내가 차 특검의 제안을 수락할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