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3)
너희들은 변호됐다-63화(63/641)
“날씨가 너무 좋네요. 흥, 흐흥~ 써니써니 데이~”
운전대를 잡은 강민재가 콧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내비게이션은 아까부터 차가 다른 길로 들어서서 경로를 재검색하고 있다며 깜빡였지만, 강민재는 그마저도 BGM으로 여기고 있었다.
어차피 약속 장소인 주산구까지는 별로 멀지 않았고,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지만…….
“조용히 가자.”
“써니써니……. 넵. 아, 다른 길로 들어섰네. 죄송합니다아.”
사건에서 빠지라는 말을 했을 때 이후로는 칙칙한 색의 셔츠만 입고 오더니 오늘은 달랐다.
밝은색의 셔츠와 가죽 재킷,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강 변.”
“예?”
“혹시 나 몰래 휴가 가나? 어디로 가? 좋겠네.”
“예? 저 안 가는데요?”
“차림새를 보니 당장 공항으로 가도 될 것 같은데, 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내비게이션 인천공항으로 찍지그래.”
“아, 이거요? 흐흐, 그러실 것 같아서 정장도 하나 준비해 왔죠.”
선글라스를 고쳐 끼며 강민재가 뒷좌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슈트 케이스가 뒷좌석에 잘 놓여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입고 왔으면 좋잖아.”
“어제 퇴근하고 쇼핑을 했더니, 너무너무 입고 싶어서 그냥 입어 버렸습니다.”
기분이 어지간히 좋았나 보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썬바이저를 내리고 팔짱을 끼며 눈을 감자, 사나워졌던 정신이 조금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잠시 그렇게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덧 한준이 다니는 고등학교 앞에 다다랐다.
한준의 모친과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저는 옷 좀 갈아입고…….”
강민재가 뒷좌석으로 넘어가며 말했다.
나는 혀를 찼다.
“누가 보면 강 변 변태인 줄 알겠어.”
“아오, 단추를 잘못 꿰었네.”
셔츠 단추를 빠르게 잠그며 그가 투덜거렸다.
왜 강민재가 점점 태식을 닮아 가는 것 같은지, 모를 일이다.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사이, 중년의 여성이 입구 주변에서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민재가 일어서자, 그녀가 강민재를 확인하고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차주한 변호사님?”
“아, 안녕하십니까. 제가 차주한이고 여기 이 친구가 어제 전화드렸던 강민재 변호사입니다.”
강민재가 명함 두 장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함을 지갑에 넣었다.
그녀가 마실 차를 주문한 뒤, 잠시간의 침묵 끝에 강민재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댁 주변으로 찾아 뵈어도 되었는데요.”
“아니에요. 어차피 애 학교 끝날때 데리러 와야 해서, 여기가 편해요.”
“아, 아드님을 직접 데리러 오십니까?”
한준의 모친은 강민재의 물음에 깊게 한숨을 쉬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조금 마신 뒤에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애 걱정이 되어서요.”
강민재는 그 말에 탄식했다.
이미 학교 폭력을 겪은 아들이, 등하굣길에 변을 당하지는 않을까 염려되어 등하교 시에는 늘 차로 데려다 준다는 것이었다.
진철의 부모가 문신 삼촌을 붙인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한준이는 새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까?”
“네. 다행히, 못된 애들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친구도 사귄 모양이에요.”
“다행이군요.”
“……애가 전학 첫날에 그 말을 하더라고요. 못된 말인 거 아는데, 자기 반에 이미 왕따 당하는 애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녀의 얼굴이 안쓰러움으로 물들었다.
“한준이가 장명고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텐데, 어머님이 보시기에 상처는 좀 치유된 것 같으십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직도 정신과 치료받고 있는데, 그때마다 애가 울더라고요.”
모친의 말은 퍽 덤덤하게 들렸지만, 오히려 이미 상처가 너무 많아 무뎌진 것으로 느껴졌다.
그 일이 있은 후 1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아직도 상처를 이기지 못했다니.
“변호사님들은 이혁민, 걔에 대해서 묻고 싶다고 하셨죠.”
한준의 모친은 한숨을 쉬며 화제를 전환했다.
“네. 유선상으로 간단히 말씀드리긴 했지만, 저희는 이혁민 학생에게 학교 폭력 피해를 당한 학생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들어 보니, 이혁민 학생이 이전에도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있다고 해서, 혹시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강민재의 말에, 한준의 모친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악마 같은 애가 또 다른 학생을 괴롭히고 있다니, 정말……. 정말 끔찍하네요.”
우리는 그녀에게 간단히 진철의 상황을 말해 주었다.
앞서 만났던 김대성과 달리, 우리는 그녀에게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가 우리에게 한준이 당한 일들을 숨기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피해를 입은 학생이 처한 상황을 알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 되는 정보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애가 2층에서 떨어졌다고요?”
이야기를 듣던 한준의 모친이 기함하듯 놀라며 입을 가렸다.
“네. 그 일로 두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요.”
“학교에선 뭐라고 하던가요?”
“장난치다가 실내화가 날아가서, 그걸 잡으러 달려가다가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하, 말도 안 되는 소리네요. 그걸 어느 부모가 믿겠어요?”
새삼, 학교의 입장이 누가 들어도 믿지 않을 허술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애는 좀 괜찮은가요? 그런 사고를 당했으면 충격이 컸을 텐데…….”
“처음에는 폭력적인 성향을 많이 드러냈는데, 이제는 좀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트라우마가 클 거예요……. 우리 애도, 이혁민 그놈이 오토바이로 받아 버리려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 뒤로 오토바이만 봐도 경기를 해서…….”
강민재는 눈을 크게 떴다.
“오토바이로 받아 버리려고 했다고요?”
“네. 걔네 무리가 몇 있는데, 한밤에 애를 불러내서 오토바이 앞에 멀찍이 세워 놓고 받아 버릴 것처럼 애를 향해 달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애 치겠다 싶으면 꺾고, 애는 놀라서 주저앉고. 이러는 걸 몇 번씩이나 했죠. 애가 다른 데로 가려고 하면, 두드려 패서 거기 앞에 서 있게 하고요. 정말, 정말 생각만 하면 치가 떨려서…….”
한준의 모친은 떨리는 목소리를 삼키며 이마를 짚었다.
자신들은 처음부터 한준을 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해도, 오토바이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 자체가 충분히 위협적인 상황이다.
그러다 실수라도 저질렀다면, 정말 큰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정말 악마 같은 아이군요.”
강민재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 외에,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진철의 것과 겹쳤다.
폭행, 금품 갈취, 공공연한 왕따와 무시.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면, ‘아, 더립게 학교에서 똥 싸는 새끼’라며 비웃고는 대걸레 빤 물을 그 안에 부어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변호하시는 학생 추락 사고에 대해서 학교에서 다른 말은 없었나요?”
그녀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 웃음에는 당연히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피해 학생의 보호자와 함께 학교에 가서, 사건을 제대로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굉장히 저자세로 죄송하다고, 조사해 보겠다고 하죠?”
모친은 다 안다는 듯 말했다.
“그거, 기대하지 마세요. 조사해 봤는데 아무 문제 없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결국엔 애를 허언증으로 몰고 가요. 우리 애가 이혁민, 그놈한테 반감이 있어서 거짓말한 건 아니냐고요.”
“그렇게 대놓고 말했었습니까?”
경악에 물든 강민재가 물었다.
“아니죠. 태도는 시종일관 저자세예요. 엄청 죄송한 척하면서 돌려서 말하는데, 결국 말뜻은 그거예요. 우리 애가 이혁민 모함하는 거 아니냐고. 이혁민은 평소 행실이 바르고, 반 애들에게 물어도 반에 왕따 문제가 없었고, 이혁민 당사자를 불러물어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고. 그따위 소리나 지껄여 대는 게 장명고 선생이라는 인간들이죠.”
점점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던 한준의 모친은 다 식은 차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찻잔을 들어 올리는 손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어머님께서 한준이를 전학 보내기로 결심하신 계기가 있으십니까.”
“일단, 경찰도 제대로 수사를 안했어요. 학교랑 짰는지, 어쨌는지. 우리 애가 당한 일에 대한 증거가 없어서 조금 어렵다고. 애가 구타당한 걸 보여 줘도, 그게 이혁민이 짓인지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혁민 걔가 얼마나 치밀한지, CCTV 없는 데서만 애를 때렸어요. 그래서 경찰도 증거를 뭐, 확보하려고 노력은 했는지 모르겠지만, 증거가 안나오는 거예요.”
학폭위, 경찰.
일반적인 학부모가 조치할 수 있는 것들 전부가 제대로 역할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찰의 태도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그리고, 둘째로는. 이혁민 아버지가 교육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학교가 설설 기었겠죠. 거기에 더해서, 이혁민 아버지가 장명고 출신인데, 그 학교 교장도 장명고 출신이거든요. 보니까, 둘이 학교를 같이 다녔더라고요. 친구예요, 둘이.”
교장과 이혁민 아버지 사이의 커넥션은 우리도 알지 못했던 정보였다.
이혁민 아버지가 교육감이기만 해도 학교는 설설 기기 마련인데, 거기에 교장이 친구이기까지 하다면 사실상 문제를 덮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혁민 아버지는 친구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이자, 자신의 모교이고, 자신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인 장명고에 특혜를 많이 주었을 것이다.
교장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혁민의 생활 기록부를 완벽하게 남겨 주는 것으로, 이혁민의 학창시절에 불명예를 모두 삭제해 주는 것으로.
“그 정도라면 제가 아무리 난리를 피워 봤자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경찰에서 의미 있는 조사 결과가 나오거나 학폭위가 열리면 피해 학생이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도록 이혁민이를 정학시키거나, 그런 식으로 해 줘야 하는데. 그런 조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애는 계속 이혁민이랑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거예요.”
그랬을 것이다.
이혁민을 정학시키는 것은 징계에 해당하니, 이혁민의 생기부를 깨끗하게 해 주어야 하는 학교 입장에서는 한준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김대성의 말처럼, 한준의 부모는 전학 전까지 학교를 보내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결국에 방법이 없으니까, 애를 전학시킨 거예요. 부모가 못나서……. 이혁민이 부모보다 힘을 못 써서 애를 고생시킨 거죠…….”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하지만 그녀는 곁에 놓인 티슈로 눈물을 닦으며 헛기침했다.
“지금 변호사님들이 담당하시는 그 학생은 우리 애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약이 없으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 집은 돈이 좀 있는 집인가 봐요. 변호사도 쓰고요. 저희 집은 애 교육 때문에 빚내서 그 지역 살던 거라서, 그런 것도 못 해주고…….”
감정을 가다듬던 그녀는, 결국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강민재는 모자란 티슈를 가지고 와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저희가 어떻게든 이혁민 학생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어머님과 대화 나눈 부분들을 증거로 제출하거나, 재판에서 활용해도 되겠습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럼요. 그럼요. 그렇게 해서라도 이혁민 그놈이 우리 한준이를, 그렇게 괴롭혔다는 거……. 그놈 때문에 우리 한준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거 다 알릴 수 있으면 제가 더 감사하죠. 증인이 필요하면, 제가 증인 설게요. 이혁민 그 자식, 꼭 죗값 치르게 해 주세요.”
그녀는 충혈된 눈으로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 벌써 네 시가 넘었네요. 이제 슬슬 한준이 학교 끝나겠어요. 데리러 가 봐야 해요.”
모친은 가방을 챙기며 다급하게 말했다.
마치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는 듯했다.
아마, 그 잠깐 사이 아들이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네, 어머님. 들어가십시오.”
우리는 통창 너머 주차장에서, 그녀가 허겁지겁 운전석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혁민, 그거 진짜 악마 같은 새끼네요.”
강민재는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를 원샷하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사고 치는 정재계 인사 자녀들은 저런 식으로 자란 경우가 많았다.
어린 시절, 그들의 그른 행동을 바로잡아 주는 사람은 없고, 덮어 주는 사람만 가득했다.
그래서 커서도 천지 분간하지 못하자,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이다.
이혁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대로 뒀다가는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눈에 선했다.
“우리도 슬슬 진철이 병원 가 봐야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카페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부터는 이혁민의 왕국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양심 있는 아이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