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35)
너희들은 변호됐다-635화(635/641)
강민재는 현장에 추가 인력이 필요해서 후발대가 갈 것 같다며 그때 내가 같이 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강민재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 길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가장 끝 칸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한 번 더 문을 잠그고 그대로 변기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우욱!”
식도를 타고 위산 섞인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다시 복부가 울컥, 울컥 튀는가 싶더니 위액이 역류했다.
구토 때문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변기를 짚은 채 몸을 지탱하던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고상준을 마주한 직후에는 확실히 의식의 동요가 있었지만,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딱히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문제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조사가 끝나고 긴장이 풀리니 바로 반응이 오는구나.
“으…….”
나는 그간 연습했던 대로 호흡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호흡수를 줄였다.
그렇게 5분 정도 있었을까.
점차 불쾌감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주머니 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아.”
손수건을 쥐었더니, 손바닥에서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손바닥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볼썽사납게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만년필촉으로 손바닥을 찌르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헤집어 놓은 줄은 몰랐다.
손금을 타고 피가 흘렀는지, 손바닥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조사실을 나오는 동안 가볍게 주먹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내 손바닥을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변기 물을 내리고 세면대 앞에 섰다.
그리고 물을 틀고 그 아래 손바닥을 무작정 집어넣었다.
“윽.”
상처 부위에 물이 닿자 더욱 선명한 고통이 느껴졌다.
얼핏 보기에는 상처가 깊진 않은 것 같은데, 조금 찢어진 듯 보였다.
조사 시간 동안 지혈은 된 상태라 손바닥에 굳은 핏자국을 문질러 닦은 뒤, 나는 잠가 뒀던 화장실 문을 열었다.
* * *
수사관들과 고상준의 집으로 향하면서, 나는 기사를 확인했다.
[영장실질심사 기다리며 구치소로 향하는 고상준] [고상준 조사 2시간 반 만에 끝났다… 건강상의 이유?] [고상준 변호사 “고령의 고상준 오랜 조사 버틸 수 없다”] [“구치소에 수감되는 것조차 걱정스러운 상황” 고상준 변호사의 한숨] [차주한 특검, 압수·수색 현장까지 직접 지휘하나] [고상준 자택으로 향하는 특검팀]어떻게든 구속 영장을 기각시키겠다는 듯, 본래라면 입 다물고 고상준 휠체어나 밀었을 변호사가 기자들 앞에서 입을 놀린 모양이다.
취재진들은 조사 내용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그 질문에는 절대 대답하지 않았다.
잡아떼고, 기억 안 난다고 하고, 앞뒤 안 맞는 변명이나 하다가 아프니까 그만해 달라고 했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들이 말 못 한 촌극은 고일국이 조만간 정례 브리핑에서 공개할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어느덧 차량은 고상준의 가택 앞에 멈춰 섰다.
수사관들은 접힌 박스를 들고 열려 있는 대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
안에 들어섰을 때, 착잡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서서 압수 수색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윤성희와 눈이 마주쳤다.
압수 수색이 나오자마자 부른 건지, 변호사 두 명과 함께 서 있었다.
일부 수사관은 거실 한쪽에서 파란 박스를 펼쳐 테이프를 붙이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은 바로 행동으로 들어갔다.
“이쪽도 봐!”
사방에서 수사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상준의 집은 알려진 대로 매우 넓었다.
야간 집행이 가능한 영장을 청구하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볼 곳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집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마침 김종석이 지하로 내려가려고 했던 듯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있었다.
“특검님이 직접 오셨습니까?”
내가 따라 타자, 김종석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15인승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은 살다 살다 처음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김종석이 중얼거렸다.
이미 김찬영을 통해 설계도면을 받아 보았기 때문에, 이 집 구조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다.
지하 1층에는 고상준의 수집품이나 고급 주류를 보관하는 창고, 만일을 대비한 벙커 등이 있었다.
벙커는 증거품을 은닉하기에 적당하지만, 공공기관 제출용 도면에서 확인 가능한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 지하 2층에 내렸다.
“이게 무슨 집이야.”
젊은 수사관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듯, 나와 김종석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충분히 그 말이 나올 법하다.
고상준은 고윤수와 달리 사옥 출근을 잘 하지 않고 웬만한 보고는 다 집에서 받았기 때문에, 지하 2층은 사옥의 사무실 하나를 옮겨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무용 책상과 의자, PC, 문서 보관용 캐비닛 등이 늘어서 있었다.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전략실 직원이 지나가듯 언급한 적 있는 만큼, 고급 정보를 취급했을 것이다.
전자 기록물을 압수해서 열어 보긴 하겠지만, 하드를 갈아 놓았을 거라 큰 의미는 없을 터다.
그래도 수사관들은 PC를 켜고 하드디스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고상준이 아무리 미리 증거물들을 다 없애 놨다고 해도, 수사 기간이 길었으니 그간 이런저런 보고를 받느라 집에 들여놓은 서류의 흔적 정도는 있을 겁니다. 데이터로 남겨 놓으면 포렌식에서 나오니까, 종이로 받았을 거예요.”
김종석이 곳곳에 놓인 파쇄기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특검님, 이거 되게 뜨거운데요.”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나는 일부러 고상준에게 압수 수색 영장이 나왔다는 걸 알리지 않았고, 수사관들은 고상준의 소환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 집에 도착했다.
수사관들이 특검 사무실에서 고상준의 집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5분 남짓.
그런데도 이렇게 뜨거워질 정도로 갈아댔다면, 영장 발부와 동시에 정보가 샜다는 소리다.
“파쇄기 내부가 비어 있네요.”
고상준에게 보고해야 해서 갖고 있었거나, 우신 사옥에서 작업하기에는 곤란해서 여기서 처리하던 문서들이었을 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많은 취재진이 이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바람에 파쇄물들을 외부에 반출하진 못했을 거란 점이다.
아직 이 집 안에 숨겨져 있겠지.
물론 태웠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파쇄기가 아직도 이렇게 뜨겁다면 압수 수색 나오기 직전까지 갈았다는 뜻이다.
태울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도 비었습니다.”
“이것도요.”
곳곳에 놓인 파쇄기를 열어 본 수사관들이 소리쳤다.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나는 대답 대신 벽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벽을 두드려 보기 시작했다.
틱틱.
이건 내력벽이다.
틱틱.
이것도 내력벽.
“하드가 싹 비워져 있어요.”
“데이터 살아 있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 키워드로 검색 중인데 나오는 건 없네요.”
“하드가 비워져 있든 살아 있든 싹 다 포렌식 해야지.”
내가 벽을 두드리고 다니는 동안, PC를 살피던 수사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하다.
우신 사옥 압수 수색했을 때도 그런 식으로 해 놨었는데.
그 덕분에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게 인정되어서 고윤수의 구속 영장이 발부됐었다.
고상준도 그때의 경험에 미루어 보아, 이 압수 수색 결과가 내일 있을 영장 실질 심사에 영향을 미칠 거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쇄기를 돌린 걸 보면, 그냥 구속된 뒤에 건강 핑계로 구속 집행 정지를 받아 보려는 심산 같긴 하지만 말이다.
텅텅.
반대편 벽을 두드렸을 때, 기존의 내력벽들과 다른 소리가 났다.
기둥 뒤에 있는 벽체였다.
“경위님.”
나는 PC 앞에 앉아 있는 허민우를 불렀다.
허민우는 옆에 서 있던 수사관에게 맡기고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뛰어왔다.
“언제 오셨어요?”
“방금 왔습니다. 지금 여기서 도면을 펼쳐 볼 수가 없어서 기억에 의존해서 체크해 봤는데요.”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허민우에게만 들릴 정도의 볼륨으로 말했다.
“이 뒤에 설계도면에서 봤던 비밀 공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충 위치도 맞아요.”
밖에 반출할 수 없고, 태울 수도 없는 물건이라면 당연히 여기 숨겨 두지 않았겠는가.
리본 의료원 급습 당시, 경찰이 비밀 공간과 비밀 통로를 찾아냈으니 우신도 이 집의 비밀 공간이 안전하지만은 않을 거란 계산은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반드시 찾아내고 싶은 주요 증거들, 예컨대 해외 계좌나 RND와 관련된 페이퍼 컴퍼니 자료들은 이미 빼돌렸을 테고.
하지만 상관없다.
고상준의 범죄 증거는 뭐가 됐든 최대한 많이 보유하는 게 좋으니까.
사소하더라도 실마리가 될 만한 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아무래도 비밀 공간 위치 여기 맞는 것 같습니다.”
허민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준 씨 대리인 이쪽으로 불러오세요!”
허민우가 수사관에게 소리쳤다.
나는 윤성희가 오는 동안 설계도면에서 보았던 비밀 공간 출입문 위치를 떠올렸다.
“저 커다란 캐비닛들 뒤에 있을 것 같은데요.”
허민우도 나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캐비닛 5개가 연달아 놓인 곳을 가리켰다.
나는 캐비닛 문고리를 잡고 한 번씩 당겨 보았다.
당연하게도 열리지 않는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느덧 엘리베이터가 지하 2층에서 멈추고, 윤성희와 변호사들이 등장했다.
“이 캐비닛 안을 보고 싶은데 잠겨 있어서요. 열어 주셔야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자 윤성희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제가 사용하는 게 아니라 비밀번호를 모릅니다. 전 이 층에 오지도 않아요.”
“그럼 비밀번호 아는 사람은 누굽니까.”
“……확인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고상준 씨 자택에 있습니까?”
“그것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기약할 수 없다는 뜻이군요. 부숴도 되겠습니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변호사가 소리쳤다.
“비례성 원칙에 어긋납니다. 이 캐비닛 안에 압수 품목이 있다는 증거가 있는 게 아니라면 파손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죄질이 나쁠수록 비례성의 원칙은 옅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호인단에 몇십, 몇백억을 들일 우신이라면 어떻게든 걸고 넘어지겠지.
“그래요? 그럼 안 부수고 열 방법을 찾아 봐야겠네요. 우선 전문가를 불러 놓고, 기다리면서 좀 살펴보겠습니다. 캐비닛을 눕히는 건 괜찮으시죠? 파손하지 않고 열 방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내 말에 허민우와 수사관들이 캐비닛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비켜 주는 척하며 벽에 몸을 기댔다.
“음?”
“왜 그러십니까?”
허민우가 물었다.
나는 윤성희와 변호사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한 번 더 벽에 몸을 쿵 부딪쳤다.
“이거, 소리가 가벽 같네요. 구조상 여기가 가벽일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변호사들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 뒤에 비밀 공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인 듯했다.
아마 고상준과 동석했던 변호사로부터 지령을 받았겠지.
“윤성희 씨. 여기 왜 가벽이죠? 이 뒤에 무슨 공간 있습니까. 문 같은 건 안 보이는데요.”
그러자 윤성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금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모르죠.”
실랑이를 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냥 가벽을 부숴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압수 수색이라고 하더라도 미디어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처럼 그렇게 할 순 없지만 말이다.
“하나, 둘 하면 들고, 저쪽으로 눕힙니다!”
그때, 캐비닛 앞에 모여 있던 수사관 세 명이 소리쳤다.
동시에 변호사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그들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전화를 걸러 가는 것 같았다.
쿵!
수사관들이 캐비닛을 차례차례 들어 올리고 바닥에 눕히자, 이곳에 남아 있던 변호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캐비닛이 사라진 벽면을 바라보았다.
“문이 있네요. 이 뒤에 공간이 있는 게 맞나 봅니다.”
내가 윤성희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하자,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대꾸했다.
“……저도 처음 보는 곳입니다.”
“그렇습니까. 이 집 건축주가 남편인 고상준 씨 아닙니까. 어떻게 본인 집에 이런 공간이 있는 걸 몰랐을 수 있죠.”
“저는 설계도를 일일이 다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쓰는 곳이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이 문의 비밀번호도 모르시겠습니다.”
나는 문고리를 당겨 본 뒤, 문 옆 벽면에 설치된 비밀번호 입력기를 가리켰다.
“모릅니다.”
“부수세요.”
나는 곁에 서 있던 수사관에게 말했다.
그러자 변호사가 소리쳤다.
“캐비닛과 동일하게 비례성의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이 안에 압수물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캐비닛이야 부수면 수리가 불가능한 물건이니 그렇다 치겠지만, 이 잠금장치 부순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무엇보다 형사소송법 120조에 압수 수색의 집행에 있어 건정鍵錠, 그러니까 잠금장치를 열거나 기타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설마 몰라서 하시는 말씀은 아닐 테고.”
그때, 통화를 마친 듯 사라졌던 변호사가 다시 돌아왔다.
두 변호사는 소리 죽여 대화를 나누더니, 나를 향해 항변했다.
“이 문의 잠금장치를 파손하는 것까지 기타 필요한 처분에 해당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여기에 해석의 여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헛소리를 하는 걸 보면 어떻게든 막거나 시간을 끌어 보라고 했나 보다.
“변호인. 왜 자꾸 알맞지도 않은 논리로 막습니까. 지금 이게 임의 제출 같습니까? 압수 수색은 강제 수사입니다.”
“…….”
“지금 이 방은 고상준 씨 가택 아닙니까? 수색 장소에 포함되는 곳입니다. 지금 대리인과 변호인은 특검이 방 내부를 수색하겠다는데 문을 안 따 주고 있는 겁니다. 벽을 부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잠금장치 떼겠다는데 이게 필요한 처분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내가 묻자, 변호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게다가 지하 2층 파쇄기들이 무척 뜨겁더군요. 파쇄기 안에 파쇄물이 하나도 없던데, 압수 수색이 시작되기 전까지 열심히 증거 인멸하신 것 같습니다. 그 파쇄물이 이 안에 있을 공산이 큽니다. 파쇄물 역시도 압수 품목에 포함됩니다. 증거 가치의 중요성과 증거 인멸 의심 등을 고려하면 비례성의 원칙도 충족됩니다. 지금 몸을 날려서 부수는 걸 막아도 전문가 불러서 딸 겁니다.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야간 집행도 가능한 영장입니다. 시간 끌어도 소용없습니다.”
나는 다시 수사관들을 향해 말했다.
“문고리 뜯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