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36)
너희들은 변호됐다-636화(636/641)
탁! 턱! 타악!
수사관들이 문고리를 내리치는 소리가 지하 2층에 울렸다.
이 문은 일전에 리본 의료원 자판기 뒤에서 확인했던, 은행 금고에서나 볼 법한 철제문은 아니었다.
문 자체를 부수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한 나무 문이었다.
“이제 그냥 뜯어!”
찌그러진 문고리가 문에 걸려 허공에 늘어지자, 수사관이 도구를 내려놓고 문고리를 붙잡았다.
무게를 싣고 몇 번 힘주어 당기자, 그대로 문고리가 빠지면서 문이 열렸다.
“뭐야, 이건 또.”
열린 문 안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이번에는 리본 의료원에서 봤던 것 같은 철제문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장치가 미디어 속에나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미디어가 현실을 모방했다고 봐야 한다.
이전 삶에서 중앙지검 특수부와 대검 중수부에 있을 때 질리도록 봤던 광경이라 놀랄 것도 없었다.
재계 50위권의 모 기업 회장의 탈세 건을 수사했을 때는 회장 집무실, 재무팀, 비서실, 회장 자택에 모두 저런 장치가 있었다.
또 한 번은 실종된 키맨을 검거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추적도 되지 않고 지명 수배를 걸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의심스러운 점이 있어 가택 압수수색을 한 차례 더 했는데, 그때 집 안 비밀 공간에 숨어 있었던 걸 발견한 적이 있다.
심지어 그 비밀 공간은 목조 건물 벽의 나뭇결을 따라 합판으로 덧대 감춰 놓았기에 첫 수색 때는 문을 찾지 못했었다.
그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클래식하지.
“이거는 열쇠가 있어야겠습니다. 꽤 견고합니다. 저희가 갖고 있는 도구로는 못 부술 것 같습니다.”
수사관이 철제문 손잡이에 난 열쇠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방에 지원 요청하세요. 철문 딴다고.”
소방 당국은 10분도 되지 않아 고상준의 집 앞에 대원을 보내 주었다.
“이쪽입니다.”
수사관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을 데리고 문 앞으로 왔다.
소방대원들은 능숙하게 도구를 사용해 순식간에 철문을 땄다.
그러자 이번엔 방화 셔터처럼 보이는 문이 나타났다.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나.”
지켜보고 있던 허민우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소방대원이 방화 셔터까지 찌그러트리자, 내부 공간이 드러났다.
열 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벽면마다 사물함과 책장이 놓여 있었다.
당연하게도 책장은 텅 비어 있었고, 사물함도 열어 봤자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한가운데에는 책상과 파쇄기, 그리고 다량의 박스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젊은 남자 한 사람이 있었다.
“이쪽으로 나오세요.”
수사관들이 파란 박스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면서 남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두말 않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파쇄기는 멈춰 있었지만, 우리가 철문을 따는 동안 위치를 예상하고 전원을 내렸을 수도 있다.
나는 파쇄기로 다가가 그 위에 손을 얹었다.
뜨겁다.
“진짜 방금 전까지 갈았나 본데요.”
파쇄기를 열어 본 수사관이 말했다.
내용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어, 바닥에 쌓인 박스 내부를 확인했다.
아직 파쇄되지 못한 서류들과 이미 파쇄된 잔여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그중 멀쩡한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
“은행 계좌 거래 내역이네요.”
계좌 주인들은 죄다 낯선 이름이다.
특검 공식 수사 개시 전에 전략실 소속 직원 이름들은 전부 기억해 뒀는데도.
“이것도 압수 품목인데, 이 안에서 갈고 있었단 말입니까?”
차라리 증거 인멸을 의심받더라도 인멸해야만 하는 증거였다는 뜻이다.
특검의 본격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도 우신이 집에서 보관해야 했던 계좌 목록은 무엇일까.
이 집 지하 2층의 존재 의의를 생각했을 때, 회사 재무나 경영과 관련된 건 아닐 테고.
“…….”
직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증거 인멸 직후 현장에 있었으니 본인 현행범 체포돼도 할 말 없는 거 알죠?”
허민우가 수사관을 불러 직원의 처리를 맡겼다.
나는 압수품을 챙기는 수사관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고상준이 지금 가장 우선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특검팀이 우선해야 하는 바와 겹친다.
지금 특검팀은 우신에게 불법 로비를 받은 정관계 인사들의 발본색원과 고상준의 인신매매에 쓰인 해외 계좌 추적에 집중해야 한다.
고상준이 해외 계좌만큼은 처음부터 철저히 준비했을 테니, 지금까지 증거를 인멸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파쇄된 서류 속 계좌들은 우신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건넨 돈과 엮여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잡혀간 장부 속 사람들, 아직 잡혀가지 않은 그 밖의 사람들을 분류하고 특검이 증거를 얼마나 잡아낼 수 있을지 셈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이 서류들은 그 모든 것을 분석하기 위해 직원들이 지하 2층에서 날밤을 지새운 결과일 것이다.
“다 됐습니다.”
파란 박스 5개 분량의 내용이 나왔다.
파쇄된 잔여물은 맞춰 봐야 할 수도 있으니 섞이지 않게 출처에 따라 따로 담았다.
“끝났습니다.”
그렇게 압수 수색은 7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가택에서 이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건 처음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벌써 깜깜한 밤이었다.
“특검님.”
수사관들이 파란 박스를 옮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김종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7시간 동안 담배 참았더니 죽겠어서요. 아니지, 압색 영장 받고부터 바쁘게 움직이느라 못 피웠으니까 8시간이네요.”
그는 수사관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특검팀에 파견은 처음이라 그런데, 원래 특검님이 압수 수색 현장까지 직접 오시나요?”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수사관이 물었다.
김종석이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보통은 아닙니다. 우리 특검님이 별난 거죠.”
“그래도 특검님이 직접 와 주셔서 변호인이 헛소리하는 것도 금방 컷된 것 같긴 해요. 결정권자가 현장에 있으니까 좋더라고요.”
“기사 보니까 특검님 젊으시다고 꼭두각시 특검이 될 수도 있네, 뭐네 공격하기 바쁘던데. 세상 어떤 꼭두각시가 현장 지휘까지 합니까. 그 기자들이 우리 특검 사무실 한 번이라도 와 봤으면 좋겠습니다.”
“꼭두각시 특검이요? 그딴 말을 한 기자가 있어요? 거기 일중일보죠?”
“그랬을 거예요. 일단 싸지르면 다 말인 줄 아나 봅니다.”
“저는 그 비밀 공간 찾아내신 게 진짜 신기했습니다.”
수사관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나도 설계도면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비밀 공간의 존재를 의심은 해 봤겠지만, 고상준의 집은 지상 2층짜리 건물 두 개와 지하 2층으로 구성된 대저택이다.
벽을 하나하나 다 두드릴 수도 없고, 벽이 아닌 바닥이나 천장 공간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제보 없이 찾는 건 불가능하다.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적당히 대꾸했다.
“얼핏 보니 계좌 사용 내역서들을 갈아 댄 것 같던데. 역시 차명 계좌겠죠? 용도는 뭘까요. 비자금?”
“비자금 조성이 메인 용도겠지만, 고윤수가 전략실 직원 명의 계좌를 어떻게 썼는지 생각해 보면 다른 용도도 있었을 겁니다.”
수사관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김종석이 입을 열었다.
“다른 용도요?”
“김미자 씨 장부를 통해서 우신이 뇌물 준 정관계 인사들 일부가 드러나긴 했지만, 극히 일부 아니겠습니까. 김미자 씨의 진술서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요정에 출입한 건 우신과 생사를 함께하기로 결의한 사람들뿐이었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그 장부에는 15년 이상의 데이터가 쌓여 있는데도 한국인은 51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엄선된 개새끼들 중 16명은 잘먹고 잘살다 죽었죠.”
그뿐만 아니라 공소시효가 지나서 공소권이 상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 당장 확정적으로 기소할 수 있는 사람은 8명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장부에 적힌 시점 이후에도 우신에게 뇌물을 받아 왔다는 게 밝혀진다면 포괄일죄를 적용하여 기소가 가능해진다.
“그렇죠.”
“그런데 우신이 돈 먹인 놈이 고작 그 정도에서 끝나겠습니까.”
김종석의 말대로, 장부에 적힌 사람들은 받은 돈도 크고 우신에 갖다준 이득도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우신은 그들에게 당장 이득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돈을 주는 게 아니다.
정관계 인사들이 미래에 우신에 갚아야 할 빚을 달아 두는 게 목적이기에, 높은 자리로 갈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도 마수를 뻗친다.
금액이 얼마가 됐든 우신에게 검은돈을 받은 사람의 수를 헤아리면 장부 속 51명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정관계 인사에게 줄 돈을 관리하려면 차명 계좌가 필수적이다.
이번에 압수 수색을 통해 찾아낸 계좌들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저 계좌들을 쑤시다 보면 언제 누구에게 얼마 줬는지 흐름이 보일 수도 있겠네요.”
“네, 그럴 겁니다. 그런데 돈 줄 땐 현금 인출 해서 넘겼을 거라 계좌만 봐서는 모르고, 영업점 은행원들을 조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던 내용이 김종석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괜히 특수통 에이스가 아니었다.
파견 검사를 제대로 뽑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아무리 비자금하고 뇌물 목적이라지만, 저 많은 차명들은 다 어디서 빌렸을까요. 파쇄되지 않은 서류만 봐도 500개는 넘어 보이던데요. 파쇄된 게 더 많았으니까 일단 1,000개는 그냥 넘을 텐데. 전략실 직원들 명의를 이용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전략실 직원들의 수보다 훨씬 많잖습니까. 이 정도면 임원이나 그 가족들 명의까지 동원했다고 봐야겠죠?”
수사관은 질린다는 듯 물었다.
“그래도 1,000개 언저리면 차라리 다행이죠. 제가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서는 7,000개 정도 굴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7,000개요?”
수사관은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렸다.
“거긴 또 어딥니까?”
“GW그룹이었습니다.”
“아, 금고지기가 자살했던 그 건이죠? 그때가 2005년이었던가요? 그 사건 부장님이 하셨었구나. 몰랐습니다.”
“네. 2005년부터 시작해서 2006년에 수사 끝났었죠.”
“재벌들은 아예 은행하고 작정하고 거래를 트니까 돌릴 수 있는 계좌가 많나 보네요.”
“그러니까 더더욱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사관들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들에게 주어질 업무량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세요. 이럴 때를 대비해서 특검님이 국세청 에이스분들 데려오셨으니까.”
김종석이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정리 끝나서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그때, 압수품을 차에 싣던 수사관이 이쪽으로 달려와 말했다.
“특검님은 이제 댁으로 가십니까? 벌써 밤 10시 넘었는데.”
그러자 김종석이 자리가 남은 차량을 찾으려는 듯 시선을 움직이며 물었다.
“아뇨, 특검 사무실에 들러서 오늘 압색 내용 대충이라도 파악하고 가려고 합니다.”
“댁으로 가세요. 그런 것까지 다 본인 손 거치게 하려면 몸이 10개라도 부족합니다. 특검팀에 에이스가 63명이나 있잖습니까.”
그때, 골목으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경쾌하게 클랙슨도 두 번 울렸다.
김종석이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며 나에게 말했다.
“강 변 왔네요. 이 프로가 특검님 운전기사 보낼 테니 특검 사무실 못 오게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거든요.”
“……그 정도입니까.”
“이 프로 말로는 특검님이 기본적으로 인간 불신이 내재돼 있기도 하고, 본인만큼 출력이 안 나오는 인간들이 많다 보니 스스로 하는 게 제일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던데요. 제가 봐도 맞는 말 같네요.”
최종현, 조봉준, 오 사무장, 허민우, 강민재.
이 한정된 인원들과만 일해 온 세월이 길었기 때문일까.
내가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게 편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 프로랑 같이 일했던 시절부터 그랬으니 4년도 넘었죠? 그 정도 시간 동안 사람이 바뀌었을 리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검사 시절에도 그랬던가?
나에게는 14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
“특별검사는 고검장급입니다. 고검장이 이런 서류 일일이 다 검토하는 거 봤어요?”
“…….”
“열심히 할 겁니다, 다들. 믿어 주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특검님.”
김종석과 인사를 나눈 뒤 돌아서자, 운전석에 있던 강민재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차주한 씨 본인이시죠?”
그리고 퍽 진지한 얼굴로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내가 차주한 아니면 뭔데.”
“차주한 환자 워커홀릭 증상 있으시다고 해서 격리하러 왔습니다. 타시죠.”
내가 정말 그 정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