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39)
너희들은 변호됐다-639화(639/641)
“변호사님, 오랜만이네요.”
김찬영과 만난 곳은 경기 남부에 있는 작은 별장이었다.
김화영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던 사촌이 매입한 곳인데, 김찬영도 가끔씩 생각을 정리할 때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내 앞에 앉기 전 바깥으로 난 통창을 내다보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변호사님이 이상한 거 달고 오셨을 리가 없고. 저 차 변호사님 쪽 차예요?”
그는 별장 인근을 뱅뱅 돌고 있는 태식의 차량을 가리켰다.
“아, 내 경호원이야.”
“아직도 경호원이랑 다니세요? 아무리 고상준이 돌았다고 해도 이미 변호사님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는 게 밝혀졌잖아요. 게다가 특별검사까지 됐는데 그런 미친 짓은 안 하지 않을까요.”
“맞아. 그래서 이제 경호 단계를 좀 낮췄어. 다른 차로 따라오면서 내가 어디 갈 때 붙는 미행 떼어 내고, 혹시 모를 사고 막는 정도로.”
“그래서 저렇게 계속 도는 거구나. 걱정 마세요. 여긴 고상준도 몰라요.”
김찬영은 내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결국 해내셨네요, 변호사님.”
“뭘?”
“고상준 조지는 거요. 솔직히 변호사님한테 처음 접근했을 땐 정말 조질 수 있나 싶었는데, 이런 날이 정말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줄을 잘 선 것 같아요. 저 고상준 구속된 날 샴페인도 땄다니까요.”
[진실]김찬영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정도로 큰 공헌을 했다.
다만 연락을 그다지 자주 하는 편이 아니기에 김찬영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잘 모른다.
그가 그런 걸 나에게 다 오픈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연락이 없던 사이에 어떤 일로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지 모르지 않은가.
특히 고상준은 본처의 자식이 아닌 걸 그렇게나 아까워했다고 하니까.
확인이나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아직 기뻐하긴 일러. 구속되기만 한 거니까.”
“그렇긴 하죠. 김수찬하고 공원호, 그 두 놈이 진짜 충신은 충신이에요. 그걸 뒤집어쓸 생각을 하는 게 참……. 하긴, 안 뒤집어썼으면 자살 압박 있었겠죠. 어쩌면 지금도 있을지 모르고.”
정재계 거물이 검찰에 제대로 걸려 곤욕을 치를 때마다 측근이 자살하는 건 흔한 일이라 놀랍지도 않다.
“전략실을 한 번 더 압수 수색할 거야.”
“아하. 증거 은닉 어디다 했는지 정보 내놓으란 말씀이시죠?”
김찬영이 씩 웃으며 두툼한 파일을 내 앞에 밀어 주었다.
“안 그래도 수사본부에서 압색 나올 때 저한테 물어보실 줄 알았는데, 말씀이 없으셔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일부러 그러신 거죠? 제가 증거품들 어디 숨겼는지 다 파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특검 압색 때 털어 버리려고.”
“그것도 있고, 다른 이유도 있고.”
그때 김찬영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그는 분명 위험해졌을 것이다.
압수 수색 영장을 청구할 때는 수색 범위와 압수 품목을 설정해야 한다.
이 범위 바깥에서 찾아 압수한 증거는 아무리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더라도 위법 수집 증거다.
수사본부의 압수 수색이 시작되기 전, 우신은 전략실 바깥으로 증거를 옮겨 놨을 것이다.
그런 곳에까지 영장을 받으려면 제보가 있었다는 명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코드네임 NP와 BB1의 정체를 밝히느라 전략실 내부인의 이름을 한 번 빌려 쓴 상황 아닌가.
만일 또 전략실 내부인이 정보를 흘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우신은 열과 성을 다해 색출 작업에 들어갈 터였다.
김찬영이 아무리 조심했다고 해도, 두 번의 문제 상황을 겪은 우신이 작정하고 찾으면 드러나지 않을 리 없다.
“아,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요?”
“고상준 집 압수 수색 나갔을 때, 영장 나오자마자 전략실에서 바로 알았지?”
“당연하죠.”
“어디서 정보 입수했는지도 알아?”
“그건 모르겠고, 사건 초반에 이런 얘기는 들었어요. 전에는 법원에서 소식이 금세 들어왔었대요. 그런데 이번 중앙지법 영장 전담 판사 셋하고 공보 판사가 다 돈을 안 먹어서 곤란하다고 하더라고요. 사돈에 팔촌까지 이용해서 먹여 보려고 했는데도 안 된다고.”
“그래? 그거면 됐어.”
법원에서 샌 게 아니라면 특검팀 내부에서 샌 거다.
나는 김찬영이 건넨 파일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법무팀장 처조카 집 바닥에 차명 주식 장부 숨긴 건 참신하네.”
“처조카 정도는 돼야 의심 범위에서 벗어나잖아요.”
파일 안에 있는 문서들에는 붉은색으로 취급 주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각 증거품마다 꽤 구체적인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전략실, 우신 화재, 우신 생명 외에도 압수 수색 나갈 곳이 더 많아졌다.
“안타깝게도 비자금 장부 위치는 고상준 금고지기인 김수찬밖에 몰라요.”
“김수찬?”
“네. 그 비자금 장부에 정관계를 포함해서 여기저기 뿌린 돈이 다 적혀 있다고 들었어요. 전략실에서는 고상준 집에서 털어 간 차명 계좌 거래 내역으로 추적할 수 있는 건 절반도 안 될 거라고 보고 있고요. 아무래도 현금으로 주니까 오래된 내용일수록 증거 잡기가 힘들겠죠. 근데 그걸 찾으면 전부 다 알 수 있는 거예요.”
“분량은 어느 정도 돼?”
“박스 하나 정도. 그건 제가 직접 봤어요. 김수찬이 자수하기 전에 차에 싣는 거.”
“차량 번호판 확인했어?”
“하긴 했는데, 추적 힘들 거예요. 차를 엄청 바꿔 타면서 이동했을 거라.”
김찬영은 내 손에 들려 있던 파일을 뒤로 넘기더니, 끼워져 있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조만간 김수찬 불러서 조사할 생각이긴 했는데, 이건 좀 묵혀 놔야겠네.”
“왜요?”
“이 사진 들이밀면서 취조하면 네가 드러날 거 아니야. 주차장 CCTV 뒤지면 네가 그때 근처에 있었다는 게 나올 텐데.”
“아.”
“너도 우신에서 슬슬 나와야지. 이거 전략실 내부인 중에서도 극히 일부한테만 접근 권한이 있는 문서 같은데.”
“그래도 한 15명 정도 돼요. 그 안에서 저를 그렇게 빨리 특정할 순 없을 거예요. 변호사님하고 연락할 때는 대포폰 따로 쓰고 있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주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야. 위험해지기 전에 김화영 씨 있는 미국으로 넘어가는 게 어때.”
“네, 그래야죠. 준비도 다 했고, 가볍게 짐도 다 싸 놨어요. 나가려면 당장 내일도 나갈 수 있어요. 압수 수색 영장은 언제 청구하시려고요?”
“너 출국한 다음에.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비행기 끊어.”
내 말에 김찬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저 아직 이스타 신청 안 했어요. 미국 입국 못 해요.”
“너 좋아하는 여행지 있어?”
“여행지요? 어……. 이탈리아?”
“그럼 이탈리아 가는 걸로 끊어. 거기서 쉬면서 이스타 신청하고 심사 끝나면 들어가.”
김찬영은 한숨을 쉬며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항공사 사이트로 접속해 항공권을 찾기 시작했다.
“내일 오후 5시에 출발하는 거 있어요.”
“내일 오전 8시도 있네. 이걸로 끊어. 지금 집에 가서 부지런히 준비하고 5시까지 공항 가면 되겠네.”
“아니, 그럼 잠도 못 자고 공항 가야 하잖아요.”
“비행기에서 자.”
“…….”
“끊어, 얼른. 돈 없어? 내 카드로 끊어 줘?”
“제가 돈이 없겠어요? 하, 진짜…….”
“공항 앞에 직원 보내서 너 진짜 가는지 확인할 거야.”
김찬영은 결국 이탈리아행 티켓을 한 장 끊었다.
그는 결제가 완료됐다는 창을 나에게 확인시켜 주고는 노트북을 덮었다.
“변호사님 처음 봤을 땐 피도 눈물도 없고 사람 막 이용하는 스타일일 줄 알았는데.”
“피도 눈물도 없고 사람 막 이용하는 스타일인데 검사 하고 변호사 해?”
“그런 사람 많잖아요. 아무튼 변호사님이 저를 이렇게까지 보호하려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솔직히 고상준 혼외자면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을 수 있잖아요.”
“내가 네 골수를 왜 빨아먹어.”
“그냥 제가 사람 잘 봤다는 말을 또 하고 싶어져서요. 감사해요.”
김찬영이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해방감과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엉킨 듯한 미묘한 미소.
지금까지 김찬영을 오랫동안 봐 왔는데, 그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더 고맙지. 그동안 고생했어.”
“……막상 변호사님한테 고맙다는 말 들으니까 기분 되게 이상하네요. 한 번만 더 해 주세요.”
“왜?”
“아니 좀……. 제가 숨마쿰라우데로 졸업했거든요? 그때랑 기분이 매우 유사해요. 빨리 한 번만 더 해 보세요.”
“싫어.”
나한테 칭찬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지.
* * *
이튿날, 나는 박영기와 김종석, 이예진을 제외한 파견 검사 전원을 회의실에 모았다.
“휴대폰 꺼내서 책상에 내려놓으세요.”
검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 점을…….”
“지난 고상준 자택 압수 수색 때 상황을 들어 알겠지만, 미리 소식을 접하고 증거물들을 파쇄하고 있었습니다.”
“…….”
“특검팀이 특검 사무실에서 출발해 고상준 자택에 도착하기까지 15분 걸렸습니다. 고상준 본인에게는 고지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현상이 있었던 겁니다.”
검사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챈 것 같았다.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심지어는 특검팀이 고상준 자택으로 향한다는 걸 기자들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추측 기사가 아니라 확정 기사였습니다. 1보를 낸 게 누군지 확인해 보니, 특검 사무실 앞에 나와 있던 일중일보 기자더군요. 하지만 그때 특검팀 수사관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차에 탑승했고, 기자들과 접촉할 틈이 없었습니다.”
일중일보가 가택 압수 수색 소식을 굳이 기사화한 이유는 명확하다.
우신이 정관계에 뿌린 돈으로 압수 수색 소식을 미리 접한 게 아니라 기사를 보고 알았다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나는 영장이 나오자마자 파견 검사 중 누군가가 검찰에 실시간으로 보고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검사들은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다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특검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일중일보에서 1보를 냈다면, 저희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수사관들이 전화나 문자로 정보를 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특검팀 내부인이 아니더라도 법원에서 샜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여기 있는 모두는 검찰에 고상준의 가택에 압수 수색 영장이 나왔다는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박영기와 김종석, 이예진은 이미 능력으로 검증을 끝냈다.
검찰에서 샌 게 맞다면 여기 7명 말고는 없다.
“네.”
[진실]자신 있게 대답한 검사 머리 위에 글씨가 떠올랐다.
어제 회의실에 있던 서부지검 홍승호였다.
그가 대답하자, 나머지들도 자연스럽게 대답을 시작했다.
“네.”
거짓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진실이었다.
나는 그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미 알고 있으니 좋은 말로 할 때 대답하라는 압박을 주기 위해서였다.
“공식 수사 개시일에 철저한 보안을 당부했던 이유는, 파견 검사들이 검찰에 특검의 수사 내용을 보고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우리 특검팀은 우신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불법 로비를 한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검찰 내부인 중에서도 요정에 드나들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특검팀은 반드시 보안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나는 검사들을 두루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검찰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자신 있게 통화 목록을 확인시켜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검님, 그건…….”
“다른 목록은 필요 없습니다. 영장이 나온 시각부터 일중일보 기자가 1보를 낸 시각까지. 그 사이 통화 내역만 보여 주면 됩니다. 이러면 프라이버시 문제는 해결될 것 같은데. 의심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수사 초기부터 신뢰 관계가 깨지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모두 휴대폰을 꺼내 놓았으니 잠금을 풀고 화면을 위로 쓸어 올리는 행위 외에 다른 행위를 하면 목록을 지우고 있다는 뜻이다.
검사들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미리 목록을 지워 놨을 가능성은 있지만, 나는 거의 없다고 본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굳이 숨기지 않을 것이고, 내가 수사 개시 며칠 만에 이렇게 목록을 확인하겠다고 나설 거란 생각도 안 했을 테니까.
“…….”
홍승호가 휴대폰 화면 잠금을 풀기 시작하자, 다른 검사들도 연달아 잠금을 풀고 화면을 쓸어 올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확인을 시작했다.
그렇게 머리 위에 거짓 글자를 달고 있던 검사의 휴대폰 앞에 멈췄을 무렵.
[발신 : 금정환 남부지검장님]역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