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6)
너희들은 변호됐다-66화(66/641)
시험지 유출이라는 말에 사무실 안은 침묵에 휩싸였다.
강민재는 눈을 크게 뜨고 차트상에서 내가 짚어 주었던 부분들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고, 태식은 달달 떨던 다리를 멈추었다.
다시 곱씹어 생각해 보아도, 시험지 유출 외에는 그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장명고 교사 중, 김학성에게 시험지를 유출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가정이 생기면, 모든 의문이다 해결된다.
장명고 학생만 과외하는 것도, 수학 과외를 했을 뿐인데 전교 등수가 말도 안 되게 높아진 것도, 매년 한명씩은 그의 아래서 전교 1등이 배출된다는 것도, 그 1등이 항상 전과목 만점이라는 것도.
단순히 김학성에게 실력이 있다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는 우연이 여러개 겹친다.
“……변호사님 말씀이 일리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전교 1등이라고 해도, 이 지역 내신 시험은 수능보다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전 과목에서 한두 개 틀려도 1등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만큼 올백이 쉬운 게 아닌데.”
강민재가 파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택도 없는 학습량으로 이혁민이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 것도, 김학성이 시험지를 유출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해되지.”
“네. 허, 근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죠?”
교육감의 아들이 시험지 유출로 전교 1등을 차지해 왔다는 것은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입증만 된다면 이혁민은 당연히 퇴학 처리 될 것이고, 그 아버지 역시 교육감의 신분으로 아들이 시험지를 유출했으니 당연히 파면될 것이다.
게다가 교육열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곳에서, 단순히 그렇게 마무리지어질 리가 없다.
교육감과 교장 사이의 커넥션도 연이어 밝혀질 것이고, 그간 장명고가 이혁민에게 어떤 특혜를 주었는지까지 전부 털릴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이혁민 왕국이 붕괴되는 시점이다.
새로 부임한 교사가 엄석대의 권위를 빼앗자, 아이들은 모두 엄석대의 부정을 토로했다.
마찬가지다.
더는 학교도 이혁민의 뒤를 봐 줄 수 없고, 이혁민은 학교에서 불명예스럽게 퇴학당한다면 어떨까.
아이들은 이혁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여태까지 있었던 사건에 대하여 전부 증언해 줄 것이다.
“터트려야겠다, 이거.”
나는 강민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수로요?”
강민재가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
“확실한 건, 유출하는 현장을 잡는 거겠죠.”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은 있었다.
시험지가 유출된 근거를 잡은 후, 우선 그대로 시험을 치르게 해야 한다.
즉, 유출 현장을 포착하되 유출하는 교사가 자신이 들켰음을 인지하지 못해야 한다.
단순히 시험지 유출하는 현장을 덮치는 경우에는, 그 유출된 시험지를 어디로 빼돌리려 했는지 당사자가 입을 다물면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시험지 유출만 화제되고 이혁민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현장을 덮치지 않고 증거만 확보했다가, 시험을 치른 후에 사건을 크게 터트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언론과 경찰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또다시 시험지를 유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범인이 한 차례 구속된 상황이니, 또 그런 짓을 해 줄 교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혁민은 재시험 답안지를 받지 못한 채로 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성적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간 김학성을 통해 유구하게 시험지가 유출되어 왔다는 자료를 공개하고, 김학성에게 과외를 받았던 이혁민과 그 무리를 특정하면 그들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하, 그런데 현장을 덮치기 어려울 텐데……. 이 정도면 심증이 충분히 가니까 언론 쪽에 토스하는 게 낫지않겠습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강민재가 말했다.
사실, 그의 말대로 이 자료를 모두 윤세연 기자에게 보내고 기사로 써달라고 하면 사건은 알아서 무르익을 것이다.
하지만, 무르익기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대한민국의 공공 기관은 그리 재빠르지 못하다.
윗선에 보고하고, 또다시 윗선에 보고하고, 그 과정이 반복된 후에야 결정이 내려진다.
우리의 목적이 단순한 정의 구현이라면, 기다릴 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피해자 박진철을 보호하고, 학교 폭력 가해자인 이혁민이 처벌받게 해야 하는 입장이다.
시험지 유출 건은 학교 폭력을 드러내기 위한 도움닫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너무 오래 걸려. 진철이는 두 달 뒤에 퇴원할 거고, 그때까지 적어도 이혁민으로 특정시켜 놔야 진철이가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거 아냐.”
무엇보다, 조사 과정에서 어떤 불순물이 끼어들어 사건이 축소될지 알 수 없었다.
교육감이라는 직책이 그리 영향력이 크다고 보지는 않지만, 또 이혁민의 아버지가 사회 생활 열심히 해 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은가.
“현장을 무슨 수로…… 김학성이 직접 학교에 들어가서 시험지를 가지고 나오지는 않을 테고, 분명히 어떤 교사한테서 시험지나 답안지를 받을 텐데……. 김학성의 뒤를 캐서 현장을 덮쳐야 하나?”
강민재가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일 그들이 직접 만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하거나, 다른 수단을 이용한다면 그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현장을 대체 무슨 수로 잡죠?”
언제 시험지를 빼돌릴지 알 수 없으니, 타이밍을 잡기도 어렵다.
“범인을 특정하고 뒤를 쫓는 게 제일 편하지.”
“누구로 특정은 또 어떻게 하고요. 장명고에 교사가 얼마나 많은데.”
강민재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잘 몰라서 묻는 건데, 모든 선생이 다른 과목 시험지까지 다 볼 수 있는 겁니까?”
조용히 있던 태식이 말을 보탰다.
강민재는 그 말에 휴대폰을 꺼내 정신없이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친구 중에 고등학교 교사가 있어요. 그 친구한테 물어보겠습니다.”
“그 친구한테 시험 출제 기간도 물어 봐.”
“넵.”
강민재는 베란다로 통화를 하러 나갔고, 잠시 뒤에 다시 돌아와 말했다.
“담당 과목 교사는 본인 과목만 보고, 타 과목까지 전부 볼 순 없답니다. 전체 시험지를 다 볼 수 있는 건 교무부장하고 교감, 교장뿐이라네요. 시험지 든 캐비닛도 시험 직전까지는 그 셋만 비밀번호를 알 거라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의 선상은 좁혀졌다.
교장, 교감, 혹은 교무부장.
“교장이든, 교감이든, 교무부장이든, 지금 상황에선 특정할 수 없어. 누가 될지 모르니까.”
“교장이 제일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이혁민 아버지랑 친구라고 하고요.”
“그렇긴 하지만, 교장이라고 짚었다가 만일 교감이나 교무부장이면 기회를 날리는 거니까.”
“네. 그리고 그 셋의 뒤를 다 밟는 것도 좀, 힘들겠죠?”
강 변이 태식을 보며 말했다.
태식은 손가락을 접으며 직원들 수를 헤아렸다.
“지금은 상길이가 이혁민을 쫓고있고, 대철이는 김학성을 쫓고 있어서요. 그 밖에 네 놈 정도 있긴 한데, 다른 사건도 맡은 게 있어서 수가 좀 모자라네요. 그리고 시험지 유출을 언제 할지 알 수 없고, 학교 안까지 따라 들어갈 순 없으니까요. 한 명만 집중적으로 파는 거면 할 만할 것 같은데…….”
태식의 말에, 강민재가 한숨을 쉬었다.
“학교만 아니었으면 더 쉬웠을 텐데, 하필 학교라서…….”
“강 변 친구가 시험지 출제 기간은 언제라고 했어?”
“시험 치르기 2주 전에 완전히 시험 출제를 끝낸다고 했습니다.”
나는 소파에 깊게 기댔다.
시험을 치르기 2주 전에 출제가 완전히 끝난다면, 시험지를 유출할 수 있는 기간 역시 2주다.
앞으로 남은 시간도 2주라는 뜻이다.
“용의 선상은 좁혀졌으니, 그중 한명을 특정해서 뒤를 쫓는 수밖에 없지. 여기 차트 보면, 김학성한테 과외받은 학생들 성적이 2003년부터 기입되어 있는데, 이전은 없는 거야?”
“이전에도 과외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성적이 마구 오른 건 2003년부터라고 했습니다. 브로커한테 들으니까, 그 업계 강사들도 김학성이 좀 의심스럽고 해서 데이터를 만들게 됐나 보더라고요.”
“그래? 그럼 2003년부터 시험지 유출이 있었다고 봐야겠네.”
나는 장명고 교원들의 나이를 찬찬히 짚어 보았다.
“교장은 내년이 정년이니, 퇴임하면 연금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살 테고. 교감은 정년이 좀 멀었으니, 교장까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교무부장이 좀 나이가 많네. 정년까지 3년밖에 안 남았어.”
어쨌든, 범행 동기가 가장 강한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 기본이다.
단순히 이혁민과 연관 짓는다면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교장이다.
하지만 직업적인 배경으로 살폈을 때는 승진이 가장 늦은 교무부장이 의심스러웠다.
정년은 코앞인데, 교감도 되지 못했다.
퇴임하기 전에 땡길 수 있는 돈은 전부 땡기겠다고 다짐하더라도 이상 할 것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또, 의외로 교감에게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세 사람 모두, 의심하려고 마음먹으면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시험지 유출을 한 번도 아니고, 6년간 해 왔다면……. 저 셋 중 누구든 걸리면 무조건 파면에,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공무원 연금도 받지 못하게 될 텐데. 대체 왜 그런 모험을 시작했을까.”
강민재는 팔짱을 끼며 한참을 고심하다, 입을 열었다.
“협박을 받았다거나?”
“협박을 받았다면, 한 번에 그쳤어야지.”
“……그렇네요.”
“급전이 필요했을까.”
내가 중얼거리자, 강민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음……. 급전이 필요했다면, 교사는 대출도 잘 나올 텐데. 이런 모험을 몇 년씩이나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 급전이 대출로 메워지지 않는 수준이라면, 또 모르지. 아무리 교사라도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내신 정기 고사는 매년 4회 치러지고, 3개의 학년이 있다.
2003년, 한 해만 했다고 하더라도 12개의 시험지가 유출된다.
개당 천만 원을 받았다고 가정한다면, 1년만 해도 1억 2천이라는 거금이 생기는 것이다.
파면당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얻어야 하는 목돈, 그리고 아무 문제없이 퇴직했을 경우 이어질 안정적인 삶.
만일, 범인에게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던 사정이 있었다면?
“말씀하신 대로 범인이 큰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그럴 수 있겠네요.”
사람은 돈이 궁해지면 처음에는 은행을 찾는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것으로도 모자란 경우에는,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린다.
그러다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은 주로, 제3금융권.
하지만 제3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말로는 그리 좋지 못하다.
법정 이자를 지키지 않는 대부업체는 수두룩하고, 며칠 쓰지도 않았는데 이자는 원금보다 더 불어나 있다.
그걸 막기 위해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해도, 교사의 월급은 한정적이다.
다른 부수적인 사업을 할 수도 없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큰돈을 벌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학구열이 높은 이 동네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장사는 단 하나.
시험지 장사뿐이다.
자신의 안정적인 직업과 편안한 노후를 담보로, 큰돈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2003년 처음 시험지를 유출한 범인은 운 좋게 들키지 않았고, 목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급한 불을 끄고 난 뒤, 다음해 2004년.
이제 범인은 손쉽게 목돈을 버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미 한 차례 들키지 않았고, 모든 것은 완벽했다.
그렇게 2004년, 2005년, 그리고 2008년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범행이 이어졌다면.
“이 정도 모험을 할 정도였다면, 이미 돈을 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봐야겠지.”
“네, 그렇죠.”
“그럼 대부업체에도 한 번 돌았을것 같은데.”
“하하, 하하하하!”
대부업체라는 말에 태식이 껄껄껄 웃으며 일어나 사무실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뮤지컬 무대라도 되는 줄 아는지, 두 팔을 벌리고 한껏 웃어젖히던 그가 우리 앞에 멈춰서며 말했다.
“대부업체는 또 제 전문이죠.”
“알아볼 수 있겠어? 교장, 교감, 교무부장 중에 대부업체에서 돈 빌린 사람이 있는지.”
“얼굴하고 이름, 나이, 직업까지 다 있는데 못 찾을 게 뭐가 있습니까. 금방 찾아 드리죠.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