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68)
너희들은 변호됐다-68화(68/641)
“오늘부터 교장만 뒤지게 조질까요?”
태식이 비장한 얼굴로 물었다.
손가락 마디를 뚝뚝 꺾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기까지 했다.
“조지진 말고 뒤를 쫓아.”
“네, 뒤를 쫓아서 시험지 유출하는 그 장면을 딱 캐치하면 되는 거죠?”
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태식은 후후 웃으며 말했다.
“맡겨만 주십쇼.”
“웬만하면 동영상으로 확보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동영상이요?”
“아마 교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새벽 시간에 학교에 가서 시험지를 유출할 거야. 학교에 아무도 없을 시간인 만큼 조심해야 해. 교장한테 들키기 쉬우니까.”
태식은 잠시 소파에 상체를 깊게 묻으며 침음을 흘렸다.
머릿속으로는 그 상황을 그려 보는것 같았다.
한참을 생각하던 태식은, 곧 허리를 곧게 펴며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아, 근데 걱정이……. 각이 잘 나와야 할 텐데요. 동영상으로 찍으려면 창문 너머에서 찍거나, 아니면 교무실에 미리 숨어 있거나 해야 할텐데. 타이밍이 잘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미리 가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어 보이고. 교장이 차 타고 장명고 쪽으로 움직이면 상길이 오토바이 태워서 학교로 미리 보내놔야 하려나요.”
그 말에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천하의 장태식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확실히 이전 삶에서, 내가 태식과 같이 움직이게 된 것은 2년이 흐른 다음이 었다.
아직까지 그런 노하우는 쌓지 못한 모양이 었다.
전에는 척하면 척이었는데.
나는 대답 대신 내 책상으로 향하고 그에게 손짓했다.
내가 컴퓨터 앞에 앉자, 태식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바탕화면 한구석에 저장해 둔 동영상을 재생했다.
며칠 전 보았던 뉴스인데, 이번 사건에 필요할 것 같아서 따로 저장해둔 것이었다.
[이것은 지난 10월 말경, 현행범으로 붙잡힌 절도범 일당에게서 확보한 범행 도구의 하나입니다. 겉으로 보면 얇은 줄 정도로 보이지만, 단면을 자세히 보면 작은 렌즈가 달려있습니다. 바로 카메라입니다. 절도범 일당은, 현관문에 설치된 우유 투입구를 통해 이 카메라를 넣고, 집 안을 살핀 뒤 빈 것이 확인되면 범행을 시작한다고 진술했습니다.]2008년 즈음, 절도범들이 흔히 범행에 사용하던 카메라다.
그들끼리는 흔히 ‘스네이크 캠’이라고 불렀다.
현관 앞에서 우유 투입구로 밀어넣은 뒤, 뒤에서 조종해서 카메라 렌즈를 원하는 위치에 맞추고 동영상 촬영까지 할 수 있는 최신식 장비다.
우유 투입구를 이용한 절도는 오래 전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온 방법이지만, 이 카메라만큼은 해가 바뀔수록 점점 진화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얇은 줄 정도의 굵기로, 어두운 곳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 된 것이다.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로움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걸 구해 봐. 스네이크 캠이라고 알아보면 더 구하기 쉬울 거야.”
“와, 누가 검사 출신 아니랄까 봐 이름까지 자세한 거 보소. 기깔나네요, 기깔나.”
“제품 사진 필요하면 동영상 메일로 넣어 주고.”
내 말에 태식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름만 알면 구하죠.”
그것도 못 할 것 같냐며 재는 태식에게, 나는 그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에게 맡겨 놓으면, 조만간 내 앞에 시험지를 유출하는 교장의 모습이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주 주말.
장명 고등학교 사이트에 고지된 기말고사 날로부터 열흘을 남겨 둔 금요일 새벽, 상길에게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마침 공교롭게도, 나와 강 변은 사무실 인근 감자탕집에서 늦은 야식을 먹는 중이었다.
[교장 갑자기 택시 잡아타고 나왔음. 가는 방향이 장명고 같음ㄷㄷㄷㄷ]“변호사님!”
강민재에게도 같은 문자가 도착했는지, 그가 휴대폰을 내 앞에 내밀어 보였다.
퍽 긴장된다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소주를 두 병이나 비우고 얼굴이 새빨갛게 된 것을 보니 평소보다 오버를 두 배쯤 더 하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 개자식 이거 드디어 범행을 저지르러 가나 봅니다.”
대충 오늘 밤부터 이번 주말까지가 범행 날짜일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나는 시험지 유출의 혜택을 받는 것이 오로지 혁민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김학성이 맡았던 학생들은 모두 비약적으로 성적이 올랐다.
시험지를 유출하는 것은 워낙 예민한 문제라, 여러 공범을 만들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것을 그대로 두기에는 아까웠을 것이다.
고액의 그룹과외를 하는 상황이니, 성적을 올려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다.
1등으로 점찍어 놓은 학생 외 다른 학생들에게는 시험지에 있는 문제 일부를 숫자만 바꿔 예상 문제처럼 제공했을 공산이 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출된 시험지를 미리 풀어 볼 시간이 필요하다.
시험 1주 전은 너무 늦고, 2주 전은 조금 이른 감이 있다.
딱 이 시기.
시험을 열흘쯤 앞둔 시점이 제일 안정적이다.
“잘되어야 할 텐데요.”
강민재가 휴대폰을 붙잡았던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난 모양이었다.
[장명고 도착해서 지금 교장 내렸음 우리도 이제 내려서 뒤따라갈 예정ㄷㄷ 이제부터는 동영상 확보할때까지 문자 못할 것 같음 전화 꺼둡니다]이윽고 상길에게서 문자가 한 통 더 도착했다.
강 변은 잽싸게 그 문자를 확인하고는 못 참겠다는 듯이 소주를 음료수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너무 긴장돼서 맨정신으로 못 있겠어요.”
얼큰하게 술이 오른 강민재는 흔들흔들 몸을 움직이며 감자탕 국물을 떠먹었다.
분명히 동영상 확보될 때까지 연락할 수 없다는 상길의 문자를 봤는데도, 조용하기만 한 휴대폰을 몇 번이나 툭툭 치며 문자를 기다렸다.
“내 폰 망가졌나?”
“한 시간은 지나야 연락 오겠지.”
나는 그가 테이블 가득 흘린 국물 위에 휴지를 덮으며 한숨 쉬었다.
“아니, 보면 진짜 로봇이라니까? 긴장 안 돼요?”
“되지.”
이 일이 성공해야 혁민의 왕국을 무너트리고 진철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데, 긴장이 안 될 리가 있는가.
시험지 유출은 주요한 범죄이고,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법조인의 입장에선 당연히 들춰야 할 과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문제다.
우리에게는 박진철에게 학교 폭력을 일삼은 이혁민이 처벌받게 하는 것이 제1의 목표이므로.
“에휴. 매번 이런 질문 하는 것도 지겹다.”
강민재는 휴대폰 플립을 닫았다 여는 것을 반복하며 문자함을 계속 들락날락거렸다.
“아아아! 미치겠다! 잘되겠죠?”
“큰 실수만 없다면 당연히.”
* * *
수능이 시작되면 으레 추위가 찾아왔다.
지난달 치러졌던 2009학년도 수능이 끝난 후, 12월 초입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살을 엘 듯한 추위가 이어졌다.
주변의 미용실이나 음식점에서는 수능 수험표를 가져오면 할인해 주는 행사를 진행했고, 뉴스에서는 수능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에도 수능 이야기를 메인 꼭지로 다루었다.
하지만 수능이 끝났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다.
수능이 끝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뿐이다.
1, 2학년 학생들은 여지없이 12월초에 기말고사를 치른다.
그리고 오늘은 장명 고등학교 기말고사가 끝난 지 이제 겨우 사흘이 지난 날.
드디어 가까워 오는 겨울 방학을 기다리며 즐거워하던 장명고 학생들은, 난데없는 소식에 얼떨떨하기 이를 데가 없다.
“너 얘기 들었냐? 시험지 유출?”
그리고 그 소식은, 여지없이 2학년 5반 교실에도 전해졌다.
“시험지 유출? 못 들었는데. 어디꺼 시험지 유출됐대? 수능?”
“아니, 미친아. 수능 말고 우리 학교. 우리 학교 기말 시험지 유출됐다고 난리잖아.”
“우리 학교 기말? 리얼? 누가 유출했는데?”
“그건 안 밝혀졌는데, 누가 교육청에다가 제보했나 봐. 유출하는 장면 담긴 동영상 인터넷에 올라온 거. 존나 소름.”
“동영상? 미친, 진짜야?”
두 학생의 대화로 시작된 이야기는 순식간에 반 아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뭔 소리임? 유출?”
“아, 너도 못 들었냐? 우리 학교 시험지 유출됐다고 지금 난리야.”
“엥? 진짜?”
“아, 나도 그거 봤어. 오늘 아침에 몰컴하다가 봤는데, 지금 실시간 검색어 1위던데.”
반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이자 점점 보았다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누가 인터넷에 시험지 유출 현장이라고 제목 달아서 동영상 올렸는데, 거기 동영상에 장명고라고 적힌 출석부가 찍힌 거야. 그래서 장명고 시험지 유출이라고 난리잖아. 화질은 좀 구리긴 했는데, 장명고라고 존나 선명하게 나와. 범인 얼굴은 모자이크로 칠해 놨더라.”
“헐, 진짜구나. 몇 학년? 설마 우리 학년?”
“모르지, 그건. 근데 진짜로 밝혀지면 재시험 보나?”
“아마 그렇지 않을까?”
“아, 씨바 이번에 나 국어 찍은 거 세 개나 맞았는데. 뽀록이라고 좋아했더니 좋아할 게 아니었구만.”
순식간에 학생들의 화제는 시험지 유출로 이어졌다.
본래 조용했던 아침 자습 시간은 아이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했고, 이미 30분 전에 교실에 들어와 아이들을 자중시켰을 담임 선생은 아직 소식이 없었다.
“반장, 담임 왜 안 와?”
“몰라. 안 그래도 교무실 갔다 왔는데 학생 출입 금지 붙어 있었어.”
“헐, 대박. 지금 시험지 유출 이야기 하나 보다.”
한 학생의 말에 아이들 전부가 긍정하며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근데 시험지 유출한 거, 선생이겠지?”
“당연히 선생이겠지.”
“그럼 선생이 유출해서 누구 갖다준 거임?”
“그건 모르지. 학생이나 학원한테 팔았겠지.”
“와, 씨발 좆같다. 나는 뒤지게 공부했는데 누구는 유출된 시험지로 졸라 편하게 공부해서 시험 잘 봤겠네?”
“그러게. 억울해서라도 시험 다시 봐야지. 존나 소름 돋네.”
그때, 시끌벅적한 교실 뒷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학생이 들어왔다.
“어, 혁민! 지각인데 운 좋네. 담임 아직 안 왔어.”
학생이 손을 흔들며 알은 체 하자, 혁민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 다행이다.”
을해 첫 지각으로 개근상을 놓칠 뻔하였음에도 들키지 않는 행운을 얻은 혁민은, 그럼에도 이상하게 표정이 나빠 보였다.
혁민은 굳은 표정으로 가방을 풀고 자리에 앉아 양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 MP3를 틀고 가장 시끄러운 음악을 찾아 재생시켰다.
“와, 시험지 유출된 거로 시험 잘 본 새끼 진짜 인생 쉽게 사네.”
“완전 개새끼지. 걸리면 퇴학이겠지?”
“당연하지. 퇴학도 당하고 인생 좆됐으면 좋겠다.”
큰 음악 소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반 친구들의 목소리는 애써 모른 체했다.